DELE B2를 취득했다.

저 영롱한 APTO를 보라...

 

"APTO" 네 글자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공식적으로 내 스페인어 실력을 인정받았다!
Finalmente, con seguridad, ¡puedo decir que hablo español bien! 🥳

 

그니까 이제 요만큼은 한다는 것이지



근데 언제? 올해 2월 6일에 ㅋㅋㅋ

정말 좋고 후련했지만 스토리만 올리고 바로 포스팅을 안 한 건 합격증이 오면 포스팅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아무 소식도 없길래 몇몇 블로그를 보니 합격증 수령은 1년 가까이 걸림...😥 그래서 (이미 많이 잊었지만) 더 잊기 전에 뭐라도 남기고자 응시 4.5달 뒤, 합격 확인 2달 뒤인 지금 대충이나마 소감을 포스팅합니다...

 


1. 왜 DELE에 응시했는가

18년의 남미 여행 5개월은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어는 그 흔적이다.

17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현지인들과 접하면서, 러시아어를 안 배운 걸 가장 후회했다. 그래서 남미에 갈 때는 출발 전에도, 여행 중에도 계속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피곤한데 오늘은 나가지 말까? 그럼 오늘은 스페인어 공부야~ 진짜 이러고 다님;

그러면서 2~3달이 지나자 스페인어가 나름 유창해졌고, 현지인과 소통하고 다른 여행자들의 통역도 해주는 등 여행이 다채로워졌다. 또 새로운 언어로 말하다 보니, 한국어/영어로 대화할 때와 다른 필터로 세상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의 남미 여행이 집적되어 있고, 인식의 범위를 넓혀준 스페인어를 보다 명징한 형태로 드러내고 싶었다.

 


2. 왜 B2에 응시했는가

A는 너무 쉽고 C는 너무 어려운 건 명백했으니, B1과 B2 중 고민했다. 정규 스페인어 코스를 밟아본 적 없고 접속법도 생소했기에 그냥 B1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스페인어를 좀 한다고 하려면 B2는 있어야 할 것 같고.

B1은 안전한데, B2는 위험한 데다 떨어지면 아무것도 안 남을 것 같았다. 근데 이게 꼭 필요해서 치는 게 아니고 그냥 취미로 치는건데 그게 뭐가 중요?라는 생각이 순간 떠올라 B2를 질렀다. 오히려 어려우면 공부 더 하고 좋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어려웠다. 듣기가 문제였다. 평소에 스페인어 미디어를 듣지도 않으니 진짜 ??하는 사이에 오디오 끝나고 들은 몇 단어 짜내서 찍고^_^;; 쓰기도 문어적 표현들을 외우느라 고생했다.

 

출퇴근 때 스페인어로 된 디즈니 주제가(예컨대 Enredados - Veo en ti la luz)를 듣고, 밤에 누워서는 DELE B2 대비용 유튜브 채널들의 강의를 보면서(나는 a por el DELE를 제일 자주 본 것 같다 봤다. 시험관이자 채점관이셨다는데 아무튼 귀여우심), 혼잣말로 말하기를 연습하고 읽기와 듣기 모의고사 점수가 괜찮게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점점 이 정도면, 운만 좋으면 합격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3. 과목별 리뷰

 


각 과목의 만점이 25점이고, 읽기+쓰기의 합과 듣기+말하기의 합이 각 30점이 넘어야 합격이다. 위에서 보이듯이, 나는 읽기와 말하기에서는 괜찮은 점수를 받았는데 쓰기와 듣기에서는 다소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듣기가 너무 치욕적이라서 원점수 공개가 고민될 정도였지만... 뭐 어때 APTO인데!


읽기야 항상 자신있었고 다 풀고 나서는 만점 아닌가?생각했지만 아니네...^^; 그래도 22.92면 나름 만족.

듣기는 정말 문제였는데 정말 너무 안 들려서 속으로 울었는데, 듣기 시험이 다 끝나니까! 그때! 교수님 같은 분이 들어와서 오디오 품질이 나쁘다고 옆방으로 옮기자고 ㅋㅋㅋㅋㅋㅋ 듣기는 정확히 반타작... 12.50...

듣기 끝났는데 옆방으로 옮긴 건 약올리는 건 아니고, DELE B2에서는 쓰기 앞 부분에도 오디오가 나오기 때문이다. 열심히 외운 표현들을 휘갈겼더니 15.11. (솔직히 읽기 잘했을 것 같아서 걱정안함)

마지막 말하기 시험은 개별 시험이라 몇 시간 뒤에 치러졌는데, 근처 스벅에 가니까 다 DELE 수험생들이었다 ㅋㅋㅋㅋ 옆사람이랑 안면 트고 스페인어로 대화 좀 하고, 혼잣말로도 연습하다 밤이 돼서야 시험장에 입실했다. 듣기를 망쳤기 때문에 여기서 점수를 따야 했다. 여행 때의 자연스러움을 되살리고자 2인칭은 당신(usted)이 아닌 너(tú)를 선택했고, 내 앞의 과테말라였나 온두라스였나...에서 온 아저씨(아마 교수님이시겠지)가 12년 된 절친이라고 스스로 세뇌하며 들숨에 접속법을, 날숨에 고급어휘를 욱여넣으려 노력했다. 결국 점수는 23.38... 😭 결과 발표에 3달이나 걸려서 계속 마음졸였는데 말하기 덕분에 여유롭게 합격... 아저씨 고마워요... 근데 아저씨 아니면 어쩌지

 


4. 맺으며

벼락치기로 얻은 지식은 쉽게 잊혔지만, 자신감은 남았다. 언제든지 연습하면 다시 잘 할 거란 자신감.

DELE C1이나 러시아어 중급(TORFL 1)도 고려 중인데, 모르겠다. 여행 추억용으로는 B2도 차고 넘치는데, AI 번역도 우수한 시대에,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기 위한 제2외국어 공부'는 지나치게 귀족적인 취미 같아서. 요즘 '평균'인으로 살려면 할 게 얼마나 많은데, 30대 중반에 접어드는데도 이런 고상한데 쓸모없는 취미를 갖는 건 너무 무사태평한 태도인가 싶어 고민.

 

이번엔 인스타그램에 먼저 올리려고 2,200자로 맞췄더니 좀 많이 심심한 느낌이 드는데, 다음에는 같이 올릴 거면 블로그에 먼저 쓰고 ChatGPT한테 요약해 달라거나 해야겠다...^^;

 

소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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