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을 하려면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고, 그 중 큰 부분을 언어가 차지할 것이다. 요즘은 국제화가 많이 되어서 관광지 같은 곳에서는 영어가 많이 통하고 구글 번역기도 굉장히 잘 작동하긴 하지만 하지만, (나처럼) 현지인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거나, 중남미처럼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드문데다가 휴대폰을 선듯 꺼내기 망설여지는 곳이라면, 언어의 장벽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중남미에서 다행인 점은 언어의 장벽이 그리 높지는 않다는 점이다. 중남미의 주요 국가들 중에서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스페인어만 공부한다면 그 드높은 언어의 장벽은 낮아진다. 

 물론 스페인어를 좀 깔짝댄다고 해서 현지인과 프리토킹을 하기는 어렵지만, 표지판도 잘 읽을 수 있고, 질문도 할 수 있고, "조금만 느리게 말씀해 주시겠어요?(¿Podrías hablar un poco despacio, por favor?)"를 입에 달고 살다 보면 현지인과 어느 정도 대화도 가능하다.


스페인어의 힘이 보이시나요?

 

 게다가 스페인어의 최대 장점은 우리가 (그나마) 익숙한 영어와 공통점이 상당한 언어라는 것. ① 같은 인도유럽어족 CENTUM 어군에 속한 언어라는 근원적 유사성 외에도, ② 영어의 근본은 게르만어이지만 영어는 프랑스어의 영향을 아주 오래 받았다는 점이 크다. 

 영어의 고급어휘는 로망스어계통의 어휘가 많고, 그런 어휘들은 스페인어에서 즉시 활용이 가능하다(!). 진짜 즉시다 즉시. 영어 화자들은 계통적으로 유사한 독일어를 배우는 것보다 스페인어를 배우는 게 더 쉬울 정도이니 뭐...

영어 화자의 언어 습득 난이도. 스페인어는 독일어보다 쉽다. 한국어는? 88주... 영어가 괜히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ㅠㅠ


오오 스페인어 오오


 이렇게 조금만 공부하면 효과가 쩌는, 가성비 쩌는 언어를 공부 안 하고 배낭여행을 가는 것도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여행 전부터 스페인어를 틈틈히 공부하고 2주 전부터는 비교적 좀 빡세게 해 보았다. 그랬더니 콜롬비아에 와서도 택시기사와 어느 정도 대화도 가능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실제로 아주 큰 문제에 처한 적도 있는데ㅠㅠ) 최소한의 대처는 가능했다. 

 아무리 "영어 하세요?(¿Habla Inglés?)"라고 외쳐봤자 돌아오는 것은 멋쩍은 웃음과 속사포 스페인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중남미, 그러면 스페인어를 배우긴 배워야겠는데 어디서 단기간에 배워야 할까?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내가 어떻게 야매 스페인어를 빨리 만들어서 갔는지 소개해 보았다.



Paso 1: Language Transfer



 가장 먼저 소개할 것은 랭귀지트랜스퍼(Language Transfer). 이 듣보잡은 뭐지? 싶으시겠지만 생각보다 괜찮다. 사실 엄청 괜찮다. 영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다는 전제 하에.

 랭귀지트랜스퍼는 팟캐스트인데, 스페인어는 10분 분량의 오디오가 총 90강이 있다. 오디오이므로 눈을 쓸 필요가 없고, 그러므로 뭔가 시간이 뜰 때, 바쁠 때, 병원에서 물리치료 받을 때^_^ 등등에 들으면 좋다. 


 랭귀지트랜스퍼의 최대의 장점은 이름 그대로, 영어를 스페인어로 전환(Transfer)한다는 점이다. 영어와 스페인어의 유사성을 토대로, 어떤 어휘를 어떻게 전환할 수 있는지 등을 먼저 짚고 시작하는데, 자신감 형성에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한국어 화자를 위한 스페인어 교재에서는 볼 수 없는, 어찌 보면 영어 화자의 특권인 점인데, 우리도 학교에서 12년 이상 영어 배웠는데 거기 버스 타지 못 할 게 뭐가 있음?

 예컨대 ① 영어에서 -al로 끝나는 많은 단어들이 스페인어에서도 그대로, 발음만 다르게 존재한다던가, ② -tion, -sion 등으로 끝나는 단어들은 스페인어에서 -cion으로 바뀌어 존재하고, 그 -tion, -sion 부분을 떼고 -ar을 붙이면 동사원형이 된다던가, ③ -ty로 끝나는 단어들은 -idad로 바꾸면 스페인어 단어들이 된다던가 등등을 짚어 주는데, 듣고 나면 뭔가 나도 스페인어 어휘를 잘 아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끔은 실제로 그렇고.


 해당 스텝이 끝나면 동사나 여러 문법 등을 진행하기 시작하는데, 다른 학생과의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그 학생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도 생각해서 머릿 속으로 답하다 보면 이해도 빨리 되고 자신감이 붙는다. 


 영어가 된다는 전제 하에지만 영어만 된다면 시작 용도로 정말 너무 추천하는 팟캐스트. 비록 나는 (아래에 나올) 다른 방법으로 공부한다고 30강 정도 듣고 갈아타긴 했지만(...) 스페인어를 처음 시작한다면 너무나 좋은 방법이므로 정말 너무너무 추천. 나도 이미 중남미에 와 있지만 폰에 다운받아 놓고 남은 60강을 시간이 남을 때 계속 차근차근 들을 생각이다.



Paso 2: 앱


 스마-트 시대, 여행하면서도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들을 알아보자. PC로도 가능하지만, 편의상 '앱'이라 칭함.


앱 1: Duolingo



나의 듀오링고 스페인어 화면

 말이 필요없는, 너무나 유명한 듀오링고. 언어 공부를 마치 게임처럼 할 수 있어서 공부인데도 중독성이 있다. PC로도 휴대폰으로도 가능하고 앱도 있는데, 앱으로 쓰는 게 편하긴 하지만 브라우저로 접속하면 챕터를 눌렀을 때 문법 설명이 떠서 일장일단이 있다(대체 이건 왜 앱으로 안 되는지 모르겠다만). 

 매일매일 목표를 달성하면 연속 목표 달성(Streak)이 주어지는데, 게으름을 피우다가 Streak이 깨졌을 때의 가슴아픔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ㅠㅠ


 다만 아무래도 퀴즈를 푸는 게 거의 전부이다 보니, 체계가 조금 떨어진다. 자연스럽게 여러 번 연습하며 언어를 배우게 되는 것은 좋지만, 뭔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있을 때에는 체계적으로 그러한 공백을 메우기는 어렵다. 다만 듀오링고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지 말고 다른 학습을 병행하면서 듀오링고를 같이 이용한다면 정말 최고의 보조교재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나같은 경우 처음 시작할 때 랭귀지트랜스퍼와 듀오링고를 동시에 활용했다.


내 모바일(앱) 듀오링고 화면. 즁남미 와서도 꾸준히 했더니 스페인어 트리의 거의 끝까지 왔다.


 듀오링고의 또다른 장점은 팔로우 기능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비교가 가능하다는 점. 같이 여행하는 친구나, 비슷한 시기에 여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스페인어를 공부하며 진척상황을 체크하면 어느 정도 경쟁도 되어서 더 불이 붙는다. 진짜 이러다보니 어쩔 땐 집에서 하루 종일 듀오링고만 붙잡고 있느라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적도 있었을 정도이니,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하던 듀오링고는 도움이 된다. 

(저와 듀오링고를 같이 하고 싶으시면 듀오링고 ID KissupCheon을 팔로우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스페인어는 어느 정도 끝이 보이긴 하는데, 어차피 포르투갈어도 해야 할 것 같으니 계속 서로 진척상황 체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앱 2: Memrise





 듀오링고처럼 게임 형태이지만, 단어 암기 위주인 어플인 멤라이즈(Memrise)도 상당히 괜찮다. 플래쉬 카드를 이용해서 단어를 암기하도록 하고, 틀린 경우 어려운 단어로 등록해 주는데다가, 단계만 통과하면 땡인 듀오링고와 달리 계속 복습하라고 리마인드를 시켜 준다. 그러면 질리면서도 하게 된다. 사실 암기 자체는 듀오링고보다 멤라이즈가 낫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멤라이즈는 듀오링고와 달리 커스텀 강의들도 지원된다. 비록 앱으로는 찾을 수 없지만, 웹으로 들어가서 커스텀 강의를 등록하면 그 강의를 공부할 수 있다. 제작사에서 제공하는 기본 학습 코스 뿐 아니라, 사용자들이 등록한 코스들까지 하고 있으면 정말 공부할 게 없어서 공부를 못 한다는 얘기는 쏙 들어갈 것이다. 

 나같은 경우 유저들이 올린 수준별 암기 단어 같은 코스들을 많이 등록해 두고, 시간날 때마다 하는 편. 이런 단순한 코스들은 언어별로도 많아서, 옛날에 하고 사망하신 중국어 단어들, 또는 영어 SAT 단어들도 스페인어와 같이 공부하고 있다.


 다만 멤라이즈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암기' 어플인 점. 듀오링고와 달리 문장을 만들지 않으니, 비록 암기는 되더라도 직접 문장을 써 보는 능력은 떨어진다. 물론 그 문제를 멤라이즈 측도 알고 있어서 꽤 긴 구문이나 문장을 암기시켜 주기도 하긴 하지만.

 또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로, 멤라이즈의 경우 언어 셋팅이 좀 귀찮다. 언어를 한국어로 설정하면 스페인어(스페인) 강의 밖에 안 나오고, 스페인어(멕시코)나 포르투갈어 강의는 영어로만 있는데, 앱으로 할 경우 듀오링고처럼 설정으로 넘어갈 수 없고 휴대폰 언어 설정 자체를 바꿔야 한다. 중남미식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를 배우려면 언어설정을 바꾸어야 가능하다는 것. PC로 하면 그나마 조금은 낫지만. 



멤라이즈 앱. 우주여행이 컨셉인 듯. 근데 암기화면은 식물이 컨셉인 것 같고... 혼란하다 혼란해




 어차피 한 어플이 제공하는 내용을 한 번에 다 익히는 것은 힘들다. 그렇다고 주구장창 한 앱만 붙잡고 있자니 빨리 질려나간다. 시간날 때 듀오링고와 멤라이즈를 번갈아서 사용하면서 수준을 쌓아 가면 한 단계를 두 번 공부한 효과를 내지 않을...까?





Paso 3: 인터넷 강의들



 인강. 제발 한국인이라면 인강 들읍시다! 비록 랭귀지트랜스퍼와 듀오링고 모두 좋은 방법이지만, 체계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교재를 보고 문법을 익히는 게 영어를 공부하던 어릴 때부터 들었던 습관이니까, 다른 인터랙티브한 방법도 쓰면서 이렇게 전통적인 방법까지 쓰면 입체적으로 스페인어를 익힐 수 있다.

 무슨 스페인어를 공부하는데 돈까지 내야 하나 싶겠지만,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라 무료 인강들도 많이 존재한다. 내가 들었던 인강과, 다른 사용가능한 무료 인강들을 소개한다.



인강 1: 해커스


 너무나도 유명한 외국어 인강계의 슈퍼 갑 해커스. 아니 해커스 인강은 당연히 돈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테고 물론 그렇지만, 가끔은 무료로도 들을 수가 있다. 특히 대학이나 회사 등에서 협약을 맺은 경우에 그렇다.

 내 경우에는 재학 중인 대학에서 해커스 인강 중 좀 오래된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게 제휴 협약이 되어 있어서, 스페인어 초급과 중급 강의를 해커스에서 수강했다. 비록 랭귀지트랜스퍼와 듀오링고로 어느 정도 공부는 했지만, 초급 강의는 그 내용들을 리뷰하고, 새로운 단어들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고, 중급 강의 정도의 내용은 암기할 것도 많아서 아무래도 앱 등으로는 익히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학교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던 순간.


 재학생들도 평소에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니, 어떻게 스페인어를 공부해야 할까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일단 학교나 직장에서 제휴 인강이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인강 2: EBS


 대부분 중남미 배낭여행을 준비하는 경우라면 수능을 본 지는 꽤 되었을 테고, 옛날의 기억 같겠지만 그렇다고 수능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2외국어에 관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 때는 다 아랍어를 선택해서 진짜 나는 수능 1주 전부터는 중국어만 공부했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난다. 그 말은 곧 수능 제2외국어의 난이도도 상당하다는 뜻이다. 뭐 상당하지 않더라도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는 다 똑같겠지만.


EBS 수능특강 스페인어 화면


 EBS에서는 수능특강 / 수능완성 두 개의 단계로 스페인어 강좌를 제공한다. 다 합치면 총 50강이나 되는데다 무료이고, 교재 내용도 그리 비싸지 않다. (수능특강 5천원, 수능완성 4천원) 이 쯤 되면 해커스 교재 제본 비용보다 쌀 수도 있다. 절대 가격 보고 억울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고등학교때 EBS를 너무 많이 들어서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좋은 인강임에 틀림이 없다. 



Paso 4: HelloTalk


 지금까지 이론들을 열심히 익혔으면 이제 실전에 나서야 언어가 늘텐데, 한국에서 스페인어 화자를 만나기도 어렵고 딱히 연습할 방법이 없을 때 쓸 수 있는 앱이다. '언어교환'을 테마로 하고 있는 채팅 어플이다.

 물론 언어야 쓰기만 하면 느니까, 틴더 같은 데이팅 앱에서 스페인어를 써도 늘긴 늘테고, 헬로우톡에서도 열심히 작업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① 테마 자체가 '언어교환'이니 그 목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고, ② 앱 자체에서도 채팅 교정이나 번역 기능 등을 제공하므로 언어 학습에 더 편리하다.


대충 이런 느낌. 내 화면을 올리고 싶은데 폰이 털려서 대화 내역이 날아갔다...ㅠㅠ

 다만 가장 큰 유혹인 영어를 조심해야 한다. 언어교환이 목적이긴 하지만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것이기에, 내 스페인어 수준이 낮으면 아무래도 짜증이 나기가 쉽고 더 빠른 대화를 위해 영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그러면 스페인어 공부는 물 건너 간 것이니까. 

 다만 상대방이 영어를 못 하는 경우 내가 아무리 영어를 써도 못 알아들이니까 자포자기하고 스페인어만 열심히 쓰게 되는데, 이 경우가 인간 대 인간 대화라면 답답하겠지만 언어공부에는 개 꿀 시츄에이션...




Paso 5: 러시아어 공부하기


 아무리 그래도 스페인어가 어렵다면 러시아어를 잠시만 공부해보자. 명사 격변화가 있는데 격이 여섯 개다. 동사도 인칭마다 다 있다. 성은 남/여/중 세 개다. 동사 시제 변화는 스페인어보다 단순하다지만 당장 격변화 모르면 문장 구성 자체가 안 되는데, 스페인어 배워 봤자 나중에 배울 동사 변형 좀 적다고 해서 위안될 것이 무엇... 신나게 벌어지는 격변화의 향연에 바로 (영어와) 스페인어의 쉬움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동기 부여를 다시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했던 여러 방법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스페인어를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현격히 경험의 차이가 있는, 게다가 대부분의 나라들이 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중남미라면, 스페인어 공부에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전혀 아까운 일이 아니다. 주변에 영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휴대폰이랑 돈을 다 털려서 구글 번역기고 뭐고 못 쓰고 돈도 한 푼도 없더라도(실제로 겪은 일), 스페인어만 할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하는 셈이니까.


 언어는 세상을 보는 하나의 창이기도 하다. 잠깐만 짬을 내서 스페인어를 공부한다면, 중남미 여행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을 더 갖는 셈이다. 진짜 요즘처럼 언어 배우기 편한 세상도 없었다. 인스타 볼 시간에 듀오링고만 해도 되겠다 ㄹㅇ루다가. 쫄지 말고 공부하자!


인스타 하루 15분 해봤자 뭐 하겠노? 게다가 우린 하루에 막 2시간씩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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