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여행 여섯째날(1): 2015년 8월 23일 일요일




 축제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 달걀 냄새가 나지만 그래도 괜찮은 물로 씻고 나서 저는 잠에 들려다가, 혹시나 해서 대중교통을 체크했습니다.






 저는 요쿨살론으로 가는 패키지 투어를 예약했는데, 픽업 시간은 07:30, 장소는 도심 근처에 있는 힐튼 호텔로 예약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슬란드 버스 사이트에서 길찾기를 하니... (참고로, 아이슬란드에서는 구글 맵 대중교통 메뉴가 작동을 안 합니다 ㅠ_ㅠ)



















가장 빠른 도착은 오전 열 시...엥!?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다시 찾아봐도 가장 빠른 출발은 오전 아홉 시 몇 분. 가장 빠른 도착은 오전 열 시, 이게 뭥미... 뭔가 싶어서 계속 봐도 변하는 건 없습니다. 아아... 이게 무슨 일인가 대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저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빡친 저는 혹시 내가 또 바보 짓을 했나 싶어 제가 투어를 예약한 사이트를 들어가 봤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은 리스트의 호텔들 사이에 Mjodd 버스 정류장이 있었습니다. 이 놈의 버스 정류장까진 걸어서 15분밖에 안 걸립니다. 으아아아... 진작에 리스트들을 다 살펴봤어야 했는데... 너무 선택지가 많아서 귀찮다고 그냥 힐튼 호텔 선택했더니 이런 재앙이 ㅠㅠ 저의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 최악의 삽질에 당당히 명함을 올립니다.





 그런데 이미 시간은 오전 1시, 그리고 픽업은 오전 7시 30분, 지금 연락하더라도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상황. 저는 갈등에 빠집니다.



















 그러나 패키지 투어비를 날릴 수는 없죠.









강행돌파. 걸어갑시다.











 



 6.7km, 1시간 21분. 아마 중간에 휴대폰을 본다거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거나, 길을 잘못 든다거나, 여러 변수가 있을 상황까지 생각하면 1시간 30분보다 더 많이 잡아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헬가펠에 갔다 온 탓인지 발까지 아픈 상태니까요.








 1시간 30분이라면, 역산하면 저는 6시에 숙소에서 나가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그래서 저는 침대에 눕지 못합니다.


















감히 침대에 눕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합니다.











 여자 분 사진이긴 하지만 책상에 엎드려 자는 상황이 저랑 너무 똑같아서 이 사진을 퍼왔습니다. 노트북 앞에 가이드북을 펼쳐 두고 거기에 엎드려서 쪽잠을... 정말 이전에 헬가펠에서 개고생한 것과 맞물려, 이렇게까지 투어를 가야 하나 비참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_^;;



























 짧은 잠의 시간이 지나고, 제가 일어난 것은 새벽 다섯시 반.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저는, 재차 취침하게 되고...


제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시계는 이미 6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정신을 차리고 뭐시고 할 겨를도 없이, 바로 일어나서 옷 입고, 양말 신고, 얼굴에 물 찍어 바르고 정신없이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머리를 감아야지... 감아...야지...하는 생각을 옷 입으면서 했지만 시간의 폭력 앞에 그 생각은 바로 진압당했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와 혹시나 해서 선 버스 정류장 앞.







 네... 없네요...






 한 노선은 일요일 첫 차가 9시 넘어서 시작하고, 두 노선은 아예 일요일에 영업을 안 합니다. 하긴 레이캬비크에 사람도 별로 없고 하니 일요일에 노는 건 이해가 되긴 합니다. 투어 회사는 당연히 픽업을 운영하니 일요일에 영업을 해도 되구요. 괜히 저만, 호텔까지 버스 타고 가면 되겠지ㅋㅋ 하면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예약했다가 망한 것이니 누굴 탓할 일이 아니긴 합니다만... 빡치는 건 어쩔 수 없네요ㅠㅠ







 게다가 웃긴 게 두 노선이 일요일에 영업을 안 하는데 한 노선은 일요일 부분을 아예 가려 놓았고, 한 노선은 칸은 살려 놓고 분만 안 써놨네요. 게다가 그 노선은 토요일도 영업 안 하는데 칸을 살려 놓음. 뭐 하는 거지 이 미친 노선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숱하게 버스 타고 다니면서 듣던 그 지명들을, 이제 발로 누빌 때가 된 것입니다.






 사실 가면서 히치하이킹 할까 생각도 했는데 정말이지 도시는 깨-끗 산-뜻 ^_^;; 우울하고 적적하니, 버스 안내방송이나 흉내내면서 걸어갑시다. 수드르홀라, 게르도우베르그, 하면서... 미친 것 같네...




 당혹스러울 정도로 고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새벽에 아파트들은 서 있는데 이렇게 고요하니 무섭습니다. 새벽의 저주라도 곧 들이닥칠 듯한 분위기입니다. 하긴 일요일 아침에 버스 없는 것 자체가 새벽의 저주겠지...







 사람 아무도 없는 새벽에, 어제 엄청난 피로가 누적된데다가 별로 자지도 못한, 씻지 못해 찜찜한 몸을 가누고 별의 별 곳을 다 지나야 하네요 ^_^;





 다만 아이슬란드라서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지형과 기후 특성상 나무들의 키가 다 낮아서 숲도 그렇게 무섭진 않다는 거... 그래도 그냥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짜증납니다ㅠㅠ. 그리고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하고, 내가 바보다... 내가 멍청이다... 하고 생각하더라도, 걷고 있는 발을 멈추면 안 된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_^;




 그리고 저는 이제 슬슬 레이캬비크의 남동 권역을 벗어나 북서 권역으로 진입하게 되고, 그 사이에 있는 간선 도로를 지나야 하네요.





 와 진짜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가 있나.





 간선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로 가기 위해 저지대로 들어서니 정말 깨-끗합니다.




 토끼가 너무 귀엽지만 현실은 엄청 빠르게 걷다가 잠깐 서서 찰칵찰칵하고 다시 빨리 걸어감.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시내인데, 점점 흘러가 바다로 흘러가긴 합니다. 엘리다바튼 호수 기억나세요? 그 호수에서 발원하는 강과 거의 하구에서 만납니다. 물론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지금 없습니다 ^_^;

 




 또 보이는 토끼.





 육교...




흔한_21세기_선진국의_간선도로.jpg






 하...





 육교에 올라가서 저 사진을 찍으며 진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제가 지금 처한 상황을 만든 저의 삽질과, 아무리 삽질했더라도 저를 이렇게 만든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의 교통 환경을 생각하니 형언하기 힘든 복잡하고 서러운 감정이 솟아오릅니다. 그래도 반은 왔구나... 하는 안도감도 조금 드네요.





 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도 얼마 안 남음ㅋㅋㅋㅋㅋ ㅇㅇㅇ 시간은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뭔가 마음이 급해진 저는 지금부터 굉장히 빠르게 걷기 시작해서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부터 지나온 레이캬비크 거리는 뭔가 굉장히 잘 정돈된 느낌이라 좋긴 했는데, 그런 걸 찍다가는 늦을 수도 있다는 저의 소심한 마음이 촬영을 용납하지 않았나 봅니다.



 뭔가 도심 원예농업을 하는 것 같아 신기해서 한 컷...




 레이캬비크 남서부에서 북서부로 들어서는 육교에서 찍었는데 흔들려서 흐려졌네요. 남서부에서 수없이 많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아침 일찍 나온 보행자 몇몇을 볼 수 있었는데, 뭐 다들 운동이나 산책하러 나왔으니 저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여 부러웠습니다. 난 왜 관광을 와서 사력을 다해 파워워킹해야 하나...





 레이캬비크 북서부로 들어섰습니다. 지금 시각은 7시 15분, 거리가 얼마 안 남은 것을 깨닫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은 정말이지 다들 쉬는 시간인가봐요. 도시가 휑...



힐튼 호텔...!





 와 진짜 태어나서 힐튼 호텔을 보고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힐튼 너무 반가웠습니다. ㅠㅠ앞으로 패리스 힐튼 욕을 안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은 오전 7시 24분. 그래서 혹시 제 픽업 버스가 아닌가 해서 물어봤습니다만, 아니라네요. 이 차는 Reykjavik Excursions의 차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12분...이나 기다린 후, Gray Line의 픽업 차를 타고 출발합니다.














...10분이면 충분히 머리 감고 자시고 할 수 있었잖아...



















 네. 갑자기 허탈감이 몰려오지만 뭐 인간의 일을 어찌 되돌리겠습니까. 저는 머리까지 젖었으면 추웠을 거라는 괴상한 논리로 중국 아Q식 정신승리를 자행하고, 곧 픽업 차에서 관광용 버스로 갈아탄 후, 그 깊이를 짐작하기 힘든 잠에 빠지는데...
























 그러던, 새벽의 저주에서 헤어나 정신 없이 자던 제가 일어난 것은 오전 10시였습니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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