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침 근무를 하는데 동빙고동에서 한 파키스탄 사람이 "파키스탄 대사관이 어디에요?" 하고 물어왔다. 약간 검은 얼굴에 새하얀 치아가 보이는 입을 활짝 벌리며 맑은 눈에 웃는 얼굴로. 파키스탄 대사관의 위치가 아주 약간 애매해서 그냥 쉽게 손바닥에 지도를 그려 설명해줬는데, 한국어도 외국인 치고 굉장히 유창했고 무엇보다 그 선한 인상이 너무 맘에 들었다. 사실 동빙고동에는 파키스탄 말고도 많은 나라들의 대사관이 있지만, 다른 대사관들은 매우 찾기가 쉬우니까, 위치를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90% 이상 파키스탄 대사관을 찾는다. 

근데 사실 파키스탄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굉장히 컸는데, 그 이유는 작년에 고속버스에서 만난 어떤 파키스탄 아저씨 때문. 고속버스를 탔는데 잠이 안 와서, 옆 자리에 앉은 파키스탄 아저씨와 매우 어눌한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대화를 했다. 처음에는 한국에 적응했던 이야기, 지금 의경이라는 이야기, 대구 가 봤다는 이야기 이런 얘기를 하면서 재밌었는데, 갈수록 파키스탄에서는 여자들한테 돈을 안 준다고, 그래서 이혼이 없다고, 돈 안 주면 도망을 못 간다고, 그리고 이슬람 얘기랑 미국 욕만 주구장창 하는 것을 보면서 정이 떨어졌다. 한국에서 받는 돈과 집에 보내줘야 하는 돈 얘기할 때는 좀 인간적인 감정도 들었는데, 그런 파키스탄의 현실 - 가난하고, 위험하고, - 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현실을 낳고 유지시키는 구시대적 체제들과 관념들을 지지하고, 열변을 토하고... 

언뜻 보면 모순되는 것들 -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여자들 도망 못 가게 독립성 박탈'이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드러내며, 그 주장에 내포된 섬뜩함과 잔인함을 지각하지 못하는 (한국에 10년이나 살았다는) 파키스탄 아저씨를 보면서, 선진국 외국인들에게 한국인들, 아니면 나도 같은 느낌을 주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분명히, 어떤 측면에선 그럴 것이다. 정말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세 명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말은 (이 또한 고리타분하지만) 만고에 자명한 진리인 듯 하다. 

그래서인지 그 날 아침, 파키스탄 청년이 지나가고 나서 나는 씁쓸했다. 그 청년도 그 아저씨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말란 법 없을 것 같아서. 아무리 밝고 명랑하고 쾌활하게 웃는 얼굴을 지니고 있어도, 여성 학대나 여권 박탈 같은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할 것 같다는 그런 섬뜩함 때문에. 정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런 근거 없이, 근거는 첫인상 뿐이지만, 그런 첫인상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행동한다면 요즘 너무 감수성이 쓸데없이 풍부해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좀 많이 슬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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