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6일, 일요일






 8월 16일은, 그냥 일요일이 아니라 꽤 특별한 일요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8월 16일에 제가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입니다. .;;














 휴대폰에서 안 옮긴 게 아닐까 해서 확인해 봤는데, 여전히 찍은 사진 자체가 없습니다. 정말 당혹. 이래서야 일기를 쓸 수가 없습니다. "일기는 그때그때 쓰는 것"이라는 참교육을 해 주시는 선생님같은 날이 바로 8월 16일라고 할 수 있지요. 즉, 역사의 공백기입니다. 그 흔한 먹사조차 찍지 않다니...


















 마치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자행한 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역사의 소실, 가히 문명의 붕괴급의 기록 자료의 소실이 저에게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정도의 기록 문화의 후퇴는 기원전 12~13세기에 고대 중동에서 바다 민족의 침략이 있었던 이후로 처음인 것 같네요 ^오^
















파.괘.한.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이 없다면 다른 사료도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어딘가에 남긴 기록이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페이스북, 카톡 내역 등을 살펴 보니...





페이스북 메시지/글 없음





어어.. 카톡 발견







8월_16일_유물_제1호.jpg





 저도 정말 당황스러운 게 발견한 게 이게 답니다. 이게 다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ㄷ ㅁㅊㅇ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귀찮아보이는 모습에서 이 알려지지 않은 하루를 강렬하게 지배했던, 어떤 종류의 귀찮음의 그림자가 느껴집니다. 와 내가 봐도 한심하다 ...













 그런데 말입니다.



 단 하나의 단서가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제가 연재하는 교환학생 일기 시리즈의 첫 글이었습니다.





 8월 17일 7시 47분. ??? 싶으시겠지만, 핀란드와 한국의 시차는 6시간. 따라서 저는 저 글을 8월 17일 오전 1시 47분에 발행했다는 뜻이고, 따라서 8월 16일 밤에는 저 글을 쓰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한밤에는 뭐 하고 있었는지 알아냈네요 ^오^ 아아 대견하다.








 결국 제가 발견한 두 개의 유물과 전날 맥주를 마셨다는 사실, 그리고 아주 희미한 기억들에서 유추할 수 있는 저의 하루는 다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1. 느지막히 일어납니다. 어제 맥주 몇 잔 먹었다고 머리가 아픕니다. 배도 아픕니다. 그렇지만 일어나기 싫습니다. 마치 이불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듯이 이불을 덮고 침대에 틀어박혀 최대한 버팁니다. 그러나 어쨌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어납니다. 그런데 또 앉으니 피곤합니다. 다시 눕습니다. 다시 누으니 너무 편합니다. 다시 잘까 생각합니다.




 2. 아담이 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제 헬싱키 구경을 못 했으니 오늘 구경하겠다는 겁니다. 알겠다고, 잘 갔다오라고 문밖으로 소리칩니다. 복선이 있게 뭐 그런게 아니라, 뭐 잘 갔다 오겠지. 당연히, 정말 당연히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일어날까... 아 귀찮아.




 3. 시계를 봅니다. 오후 두시. 아 귀찮아. 일단 앉아서 컴퓨터를 켭니다. 네이버 뉴스를 보다 보니 세 시가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생일이랍니다. ㅊㅋㅊㅋ. ㅊㅋ해. 카톡을 날려줍니다.




 4. 이제 슬슬 배고픕니다. 먼저 화장실을 갑니다. 네시가 됩니다. 나와서 사 놓은 주스를 좀 마시고 빵을 꺼내듭니다. 빵을 씹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빵 먹으면서도 핸드폰은 손에서 놓지를 않습니다. 어차피 아무도 없겠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최대한 먹기 귀찮은 속도로 빵을 먹다 보니 어느새 다섯시 반이 되었습니다.




 5.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머리속에 짤방 하나가 떠오릅니다. 하하 개판이네. 안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허탈하게 하루하루를 계속 보내다가는 인생에 현재도 미래도 과거도 없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질 것 같습니다. 뭔가를 해야 한다, 머리에 교환학생 생활을 기록하자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6. 그러나 당장은 귀찮습니다. 손도 머리도 발도 너무나 무겁기에... 아... 뭐쓰지... 일리단 짤방을 갖다쓸까... 생각합니다. 생각만 계속 하고 오늘 분량까지 스토리 개드립 구상을 계속 합니다. 그러다 보니 침대에 누워 여덟 시가 되었습니다.




 7. 아차, 안 한 빨래가 떠오릅니다. 빨래를 돌리고 올라오니 아담이 옵니다. 아담과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다시 내려가 건조기를 돌리고, 얘기를 하다가 건조가 끝난 빨래를 가져옵니다. 열 시가 되었습니다.




 8. 뭔갈 먹습니다. 먹고 나니 한 일도 없는 주제 배는 또 아픕니다. 화장실을 갔다 오니 열한 시,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어 보입니다.




 9. 교환학생 일기 포스트 작성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막상 쓰자니 귀찮아서 사진 몇 개 넣고 땡 치고 싶지만 이러면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러워서 겨우 끄적끄적 몇몇 글자들을 씁니다.




 10. 그리고 잡니다.


























 그렇지만 뭐 때때로는 이런 날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제 경우엔 이게 너무 많아서 문제겠지만. 어찌 보면 오늘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은 찍은 사진이 아주 많고, 18일에는 아이슬란드로 출국!! 이니까요. 즉,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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