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7일, 월요일




 




 일어나자마자 걱정부터 되었습니다. 우와, 오늘이 당분간 헬싱키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겠구나. 크으... 생각하니 아침부터 가슴이 저릿저릿합니다. 내일 떠나면 25일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이슬란드에서 저는 돌아옵니다. 그리고 26일은 오리엔테이션이구요. 그래, 오늘이 바로 (나의) 헬싱키 최후의 날이구나... 너무 긴장해서 다리가 후덜거립니다.












 게다가 메일까지 와 있습니다. 저는 University of Helsinki, Faculty of Social Sciences의 Economics 전공의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데요, Economics 전공을 맡은 튜터 두 사람이 오기 전에 먼저 인사하자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답장을 썼는데 다른 사람들의 메일의 내용들을 보니 대부분... 20일이 넘어서야 도착하리라는 내용들이네요. 나는 왜이렇게 먼저 온 것인가 ㅋㅋㅋㅋ 그렇지만 뭐 나름 재밌게 지냈습니다! 괜찮아요!











 헬싱키를 많이 구경하지 못한 아담은 수오멘린나를 보러 일찍 나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찍 와서 수오멘린나 따위 이미 다 봤지... 어헣헣헣. 저는 관광할 시간 따위 없습니다. 관광은 미루고 아이슬란드에서 필요한 물건 쇼핑하기만 해도 빠듯한 겁니다. 그러니까 출발합시다. 




 늦은 아침의 거리인데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헬싱키도 유럽이구나...를 또 새삼 느낍니다. 파리에서는 정말 전철역마다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길거리 음악 연주는 유럽을 나타내는 선명한 특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물론 한국도 요즘들어 많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유럽만큼은 아니니까요.








 하늘이 너무 예뻐 기분 좋아 찍은, 헬싱키 대학교 건물. 위로 길이 뻗어 있는데 오른쪽은 죄다 헬싱키대학교입니다.






HELSINGIN YLIOPISTO

HELSINGFORS UNIVERSITET

UNIVERSITY OF HELSINKI






 빨리 학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했을 때마다 후회했으므로 그 생각은 집어넣어두...어야 하나? 한국에서 재학생 입장에서 개강하는 것과 교환학생의 개강은 다를 것 같습니다. 그냥 학교에 다시 가는 것과 생판 혼자인 상황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ㅠㅠ













 그래서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H&M. 저에게 비싼 옷을 살 돈은 없습니다. 싼 옷을 삽시다. 가격도 한국이랑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서 사야 할 것은 따뜻한 옷! 지금 핀란드가 적당히 따뜻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따뜻한 옷을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글을 쓰고 있는 지금(9월 8일)까지도 소포를 발송받지 않았습니다. 몇일 전에야 소포 생각이 나서... 진짜 ㅁㅊㄷ ㅁㅊㅇ... 아무튼 아이슬란드에 가야하기 때문에 방한이 되는 적절한 옷을 사기 위해 들렀습니다.




 H&M에서 나오는 옷은 전세계 동일한 것 같습니다. 핀란드에서 반가운 한국어를 봄 ^_^








 그런데 저는 옷 사는 거에 정말 안 익숙해요. 사실 혼자 와서 옷을 사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정말 거의 없어요. 평소에 워낙 옷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데 여기 와보고 나니까 이정도 가격이면 옷도 어느 정도 살 만하겠다, 싶었습니다. 문제는 핀란드 1인당 GDP는 한국의 2배인데 옷 가격은 한국과 똑같다는 거겠죠. 그나마 H&M이니까 똑같지 더 비싸기도 하다는데 저는 옷에 대해 잘 몰라서... 조용히 하겠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저는 두 벌의 옷을 삽니다.



  



??왜 뜬금없이 블레이져가??  그냥 사고 싶었습니다.





 근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둘 다 정확히 저 옷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 옷들을 사이트에서 못찾겠음 ... 모자 달린 점퍼는 약 50~60유로, 블레이져는 80유로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대체 정확한 게 없네요 ㅠㅠ








 원래 아이슬란드는 비가 자주, 조금씩 오는 곳이기도 하고, 빙하 관광 등을 하려면 필히 방수 점퍼를 사야 합니다만, 저는 그런 걸 살 돈이 없어서... 결국 아이슬란드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저의 다음 목적지는 운동용품 매장입니다. 수영복을 사기 위해서인데요. 물론 저는 서울에 수영복, 수영모자, 수경을 다 갖고 있습니다 ^^ 부들부들... 아 원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기 온 것은 아이슬란드의 주요 관광지, 블루 라군 때문입니다.





보기만 해도 입이 뜨억 벌어지는 이 곳은 블루 라군...



 




 사실 H&M에서 반바지를 보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냥 대충 반바지를 살까, 수영복을 살까? 그런데 어차피 지금 반바지도 없어서 반바지 사는 데 돈이 들고, 헬싱키가 곧 추워지기 때문에 반바지 입을 일은 없을 것 같고, 전 어차피 집에서도 반바지를 잘 안 입어서 수영복으로 했는데 지금 보니 반바지가 나을 것 같네요. 수영복도 한 학기 내내 안 입는 건 똑같고 집 가면 원래 쓰던 수영복 있음...시무룩...ㅠㅠ







뭔가 삐까뻔쩍한데 사람은 없는 스포츠용품점, 인터스포트(Intersport). 











아디다스 슬리퍼가 19유로..!












 저거 한 켤레면 저희가 집에서 신고다니는 일반 삼디다스 슬리퍼를 9개나 신을 수 있군요. 


 진짜 슬리퍼뽕에 취해다닐 듯 합니다 ㄷㄷㄷ





 수영복 발견.




 이 사진을 왜 찍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 











 수영복을 막 뒤지다가 60%나 할인해서 파는 15유로? 짜리가 있길래 아싸 이거다 하고 구입하려다가, 혹시나 '안 맞으면 어쩌지'하는 생각으로(너무 크면 어쩌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수영복을 당겨 봤는데...









아뿔싸.









 아동용이었습니다 ^_^;




 사이즈가 다국적 치수로 적혀 있는데, AUSTRALIA 부분에 센치미터나 인치가 아닌, 6YEAR OLD라고 적혀있네요 ^^







 제가 아무리 말랐더라도 성인 남성의 골반이 들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작아 보였습니다. 역시 싼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또 공돈 날릴 뻔 했네요... 그나저나 그럼 성인용은 싼 게 없단 말인가 ㅠㅠ 하고 울면서 찾던 도중, 정말 디자인이 구려보이는 남성용 수영복 하나가 50%인가 할인하길래 그걸로 질렀습니다.













 평생 팔자에 없는 옷을 사느라 너무나 힘든 시간들을 보낸 저는 처음으로 헬싱키에서 맥도날드를 갑니다...



 학생 식당인 유니카페가 있는 이상 적어도 겨울방학이 되기 전에는 다시는 가지 않을 것 같은 맥도날드. 고급도 아니고 가격은 유니카페가 더 싸니까.











 그러나 정작 메뉴판을 보니 돈이 아까워서... 치즈버거세트를 시켰는데, 참 양이 적네요. 감동입니다. ㅠㅠ.







 맥도날드를 나와 다시 중앙역 쪽으로 걸으니... 하늘이 참 푸른게 뭔가 눈이 시립니다. 눈물이 나네...








 이쯤해서 저는 아담과 연락해서 저녁에 보기로 약속했습니다. 수오멘린나에서 돌아오면, 또 그 대성당 앞에서 만나기로요. 그런데 이제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니, 시간을 떼울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적합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카이사니에미 공원(Kaisaniemi Park)




 위의 지도에서 초록색으로 나타나 있는 곳이 카이사니에미 공원이에요. 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역광장 바로 옆에 있는, 넓고 아름다운 공원입니다. 헬싱키대학 역의 옛 이름이 카이사니에미 역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굳이 이 곳을 고른 건, 2년 전 여기서 개고생하던 일이 떠올라서입니다. 2년 전 3월 초, 친구와 함께 유럽 여행에 오른 저는 헬싱키에서 환승하면서 하루동안 체류하게 되는데... 저는 "3월의 유럽 날씨"란 한국보단 따뜻한, 비 좀 오는 날씨라고 생각했건만, 헬싱키에서 저를 맞이한 건 칼바람과 하늘 끝까지 쌓인 눈... 그나마도 저는 중앙역에 내린 뒤 길을 잘못 들어 도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카이사니에미 공원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이 방황과, 공항 노숙 등으로 인한 피로 누적으로 인해 저는 감기에 걸렸고, 유럽 여행 내내 감기는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 그런데 그 곳이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었다니. 눈물이 났습니다. ㅠㅠ






 그리고 분명히 맨 위에서 관광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고 써 놓은 것 같긴 하지만 그냥 넘깁시다. 의례적 수사일 뿐이었습니다.










 사실 필터를 안 먹인 게 더 예쁜데 필터 안 먹인 사진이 몇 개 없는데 섞이면 이상할 것 같아 필터 먹인 사진들만 올렸습니다. 역 광장에서 건물 하나만 지나면 나오는 공원이라니 너무 마음에 드는데 같이 올 사람이 없는 게 함정이다...












 카이사니에미 공원에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저는, 이제 슬슬 약속시간이 다 된 것 같아 대성당으로 향합니다. 



 대성당으로 향하던 도중에 지나게 된 에스플라나디.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엥!?
















엥!? 전도몬 그거 완전 한국에만 있는 거 아니냐?



















 그런데 있네요...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 미국인 관광객 행렬이 지나가더니... 그 가장 뒤에 있는 사람이었는지 반대편에서 오던 사람이었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한 명이 떨어져 나와서, 길가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대충 뭐 이런.




"TRUST JESUS!!! TRUST JESUS!!! JESUS IS COMING!!! END IS COMING"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찬송가를 부르더니

"GOD HATES SIN!!! !@()*!@(#_#!(_@# THIS CITY WILL BURN!!!"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빵터졌습니다 ㅋㅋㅋㅋ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웃고,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황당해서 웃고, 전도몬님만 혼자 소리치다가 가버립니다. 진짜 순간 정신병자를 본 줄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습니다. 사람이 꾸준히 병신같으면 직업이 됩니다.







 ...제가 이 블로그로 생계를 떼우지 못하는 것도, 제가 꾸준히 병신같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좀 꾸준히 병신같아야겠다... 다짐하는 하루입니다.







 사실 제가 전도하는 사람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중앙역 지하 메트로에서 어떤 아주머니께 기독교 홍보 책자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그냥 책자일 뿐이고, 뭐 추태를 부리거나 강요를 한 것도 아니라서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핀란드에선 전도도 점잖게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는 저 사람이 미국 관광객인 것 같은데 정확한 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








 어느새 도착한 대성당. 시간은 4시 30분을 가리키네요.








 갓렉산드르 2세 대제님 안녕히 계셨습니까.





 연락이 안 되어서,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래서 커피 받아서 대충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도착했다고 해서 허겁지겁 커피 입에 털어넣고 광장으로 다시 나감ㅠㅠ. 아아 오늘 왜 이러지.







 아담과 함께 카페에를 가려 하는데, 헬싱키대학교 카페가...! 우왕ㅋ굳ㅋ 디자인도 좋고 해서 그냥 드러갑니다.







 어헣.어헣.







 차마 커피를 또 마실 수는 없어서 이번엔 아이스티를... 그런데 먹고 나니까 갑자기 피곤해집니다. 도대체 나따위가 뭘 했다고 피곤한 걸까... 참 자책감이 들지만 그래도 피곤은 운명인 걸 어쩌겠습니까. 집으로 갑시다.






 

 ...게다가 아이슬란드 갈 준비도 안 하기도 했구요. 












...








"You are not prepared."

일리단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느낌이 듭니다.










 가는 길에 감자를 산 아담의 선택은 감자향신료오븐구이. 감자를 적당히 자르고, 향신료, 식용유? 등등 해서 오븐에 굽는 건데, 핀란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살았던 곳에서 먹은 요리와 거의 똑같아요.






 우오 흔들렸다.








 그 와중에 전 제가 산 요리들을 셋팅합니다. 특히 피자와 연어. 연어는 이번에는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고 또 새로운 걸... 가져왔는데 사실 진짜 저게 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ㅠㅠ 감자에 맛들이고, 요즘은 삼겹살도 발견하고, 게다가 유니카페까지 있는 상태에서 연어를 거의 안 먹게 되었네요...








 그런데 여기까지 셋팅된 상황에서, 갑자기 돌발상황이 발생합니다.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오 새로운 플랫메이트가 ...!








 새로운 플랫메이트가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우와. 이름은 루카스. 아담과 같이 체코에서 왔다고 하고,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방을 쓸 거랍니다. 충격과 공포.










 어쨌건 새로운 사람이 온 이상 접시도 하나 더 세팅하고 맥주도 하나 더 놓습니다. 








 여기에 감자까지 셋팅 ^오^ 맛있겠다... 이제 먹어야지...


















그런데 ...
























갑자기 두 명의 플랫메이트가 더 도착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 동안 한 명도 안 오다가, 

내가 아이슬란드 가기 직전, 

바로 전날에 세 명이 동시에 오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

말도 안 됨 ㅋㅋㅋㅋㅋ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FOREVER ALONE 










 새로 온 두 명은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하고, 아담/루카스와 같은 메트로폴리아 대학교를 다닐 거라고 합니다. 한 명은 루크, 한 명은 류드였나. 이름이 확실치가 않네요 요즘 얘기를 안하다보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플랫메이트의 이렇게 대홍수가 하루에 몰아닥치다니 정말 헬싱키 최후의 날 답구나 ㅋㅋㅋㅋㅋㅋㅋ













 하... 괜히 삼일 전 고독감에 못 이겨 아이슬란드 티켓을 끊었나 싶은 생각이 살짝 들면서 ... 열 시에 방에 틀어박혀, 아이슬란드에 가기 위한 짐을 싸고 침대에 눕지만. 쉬이 잠이 오질 않습니다.









과연 천기섭은 아이슬란드에 무사 도착하여 적당히 뽕을 뽑고 살아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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