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여행 셋째날: 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노르웨이 여행 지도, 10/19노르웨이 여행 지도, 10/19


 4시 15분에 몸을 실은 기차는, 여덟 시간을 달린 끝에 서쪽 해안의 도시, 스타방에르에 거의 와 닿았습니다.






스타방에르로 가는 도중


 눈을 떴는데, 잠깐 멈추어 있었습니다. 스타방에르 오기 전에 여러 곳에 조그마한 역들이 있는데, 그 곳 중 하나에 멈춰 선 상태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게..














 노르웨이 NetCom 유심이 안 되어서 짜증나서 빼고, 








핀란드 유심을 다시 꼈는데 비밀번호를 까먹어버려서,









PIN을 몇 번 쳤는데 안 돼서 먹통이 됨.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PUK 코드가 필요하니 영업점으로 문의하라는데, 나중에 핀란드 가서 문의해도 안 되더라구요. 프리페이드 살 때 등록했는데 그 정보로는 못 찾는다고. 처음 산 케이스는 이미 버렸으니 PUK 코드를 찾을 턱이 없고, 이렇게 남아 있는 충전된 통신료도 사뿐히 날렸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다 보니 옛날 '의대생의 명절' 만화 마지막 컷 표정이 떠오르더군요. 엉엉ㅠㅠ







 나중에 알고 보니 엘리사 PIN 코드는 처음 살 때 1234인 걸 깨달았다는 슬픈 이야기... 1234를 시도라도 해 봤어야ㅠㅠ






스타방에르로 가는 도중


 이런 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차는 다시 초원을 지나고 스타방에르로 들어섭니다.









스타방에르역


☆ 도착 ☆





스타방에르역


 도착하니 바로 앞에 스타방에르 역사가 있습니다. 역은 별로 크지 않음.




 

 오슬로에서는 에어비앤비에 묵었는데, 스타방에르에서는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을 통해 구한 집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카우치서핑이란 아실 분은 다 아시겠지만 ^__^; 자기 집에 공짜로 사람을 재워주고, 게스트들은 거기서 묵으면서 서로 경험과 문화를 교류하도록 사람들을 이어 주는 플랫폼입니다. 







 저는 이란 출신 이민자 한 분께 연락을 드렸는데, 그 분이 자긴 안 되는데 다른 사람이 괜찮다고 해서 그 쪽으로 연락을 했고, 처음 연락한 분이 딱 데려다 주시기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스타방에르 역에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스타방에르역


 기다리면서 화해했습니다. 역시 화나는 데는 잠이 장땡인가... 일단 당연히 제가 잘못한 것도 있을 뿐더러, 우리는 공론장에서 만난 토론자가 아닌, 어찌 되었건 내일까지 같이 다니기로 했고 핀란드에서 같이 지내는 친구이니까요. 잘잘못을 구태여 따지는 것보다는 좀 안 맞더라도 서로 이해해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와이파이도 잘 안 잡히고, 전화를 어찌저찌 했더니 어느 은행 앞에 있다고 해서 뭐지 하고 나가서 주변을 헤매며 둘러봤는데,








엥!?










 딱 저런 초록색의 택시를 탄, 동양인 기사 아저씨께서 밝게 웃으시면서 인사를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택시에 태우시더니 바로 출발...















개꿀ㅋㅋㅋㅋㅋ











 예상치 못한 뜻밖의 전개에 어리둥절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집 한 군데에 내려 주시더니, 주인은 저녁에 올 거라고 쿨하게 키를 주시고 가시는 아저씨ㅠㅠ



 





우왕ㅋ굳ㅋ












 넓군요. 넓습니다.











바르샤 팬인 듯한 주인 아저씨.








 경치 좋다.








 이 아저씨의 집은, 감레 스타방에르(Gamle Stavanger)라고 불리는 구시가지에 있었습니다. 18세기 후반의 목재 건물들이 늘어서있고 자갈길이 깔린 옛 스타방에르의 시가지인데, 참 그렇다면 말 그대로 그냥 관광지 내에 있는... 집... 









부럽네요.









아무튼 아직 1시밖에 안 되었고 소중한 시간을 날릴 수는 없으니, 빨리 샤워를 한 뒤 도시를 구경하러 밖에 나섰습니다.







 구름이 약간 껴 있지만 구시가지는 예쁩니다.






 소박하면서 예쁜 노르딕 목조 건물입니다. 레이캬비크 시내랑 비슷한 느낌이네요ㅋㅋㅋ 경사로를 따라서 아래로 내려오니,





 부두가 보입니다.







 크고...아름다운...배들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부두에 정박해있습니다.





 스타방에르는 인구가 123,900명밖에 안 되지만, 노르웨이에서 중요한 산업 도시 중 하나입니다. 노르웨이 인구가 500만 정도니까 사실 저 인구가 그리 적은 건 아니죠. 특히나 석유 산업과 임업이 발달해 있는 도시입니다. 저렇게 크고 아름다운 배들이 많은 것이 놀랍지 않습니다.






 저 멀리에는 관광용인지 커다란 목선이 보이네요. 방주인가... ^_^;;







 부두에는 또한 어시장이 있고, 광장 쪽으로 들어서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버거킹 짱귀엽.... 굉장히 귀여운 버거킹이 있습니다ㅋㅋㅋㅋㅋㅋ







 광장으로 올라와 바라본 부둣가.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는 게 보이시나유. 부두 건너편엔 구시가지가...







 전 아이슬란드 여행을 갔다온 뒤로부터 항상 티셔츠가 눈에 밟힙니다 ㅋㅋㅋㅋ 노점에 티셔츠가 있길래 사려고 봤는데, 아이슬란드만큼의 약빤 티셔츠는 역시 없네요. 하긴 그 정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광장의 부두 반대편에 우뚝 서 있는 건 스타방에르 돔키르케(Stavanger Domkirke, 돔 교회). 굉장히 작고 별 볼일 없는 교회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겉보기엔 작았지만 안으로 굉장히 깊고, 장중한 멋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작은 교회를 무시하다간 X 되는 거야... 아주 X 되는 거야...





 그리고 교회를 끼고 넘어가니, 교회와 저희가 처음 내린 역 사이에, 브레이아반(Breiavann)이라는 작은 호수가 있었습니다.




 10월 중순의 노르웨이라면 으레 추울 줄 알았는데, 따뜻한 날씨에 나른한 햇살, 그리고 떠다니는 오리들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ㅠ_ㅠ








 아 노르웨이 돌아가고싶다 ...





 앞의 악어는 무시하시고...





 호수 주변에서 잠시 노닥거리다가 다시 자리를 옮기는데, 큰 나무가 눈에 띄어 찍었습니다.




 교회의 뒷부분 모습입니다. 분명히 광장쪽 앞부분은 매우 소박한데 뒷부분은 거대한 걸 봐서 뭔가 노린 것 같기도 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







 잠깐 H&M에 들러 캐서린이 놓고 온 빗이 잇나 살펴본 뒤,




 없으니까 그냥 스타방에르 시가지로 들어섭니다. 감레 스타방에르에 속하는 곳은 아니고 스타방에르에서 나름 번화한 상가인데도, 북유럽 풍의 멋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 마트에서 북유럽 스타일 한복이니 뭐시기니 까지 하면서 북유럽팔이를 하는 걸까요...











 근데 정말 너무 따뜻한데다가 걷기만 해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맥도날드도 목재간판임ㅋ



 맥플러리 쳐묵쳐묵, 하면서 가이드북을 살짝 보면서 어딜 갈까 생각합니다. 중고서점에서 본 론리플래닛...





 그런데 여러분 지금까지 아마 가보지도 못한 도시에서 생판 남이 걷는 궤적을 머리로 따라오시느라 힘들고 다 때려치고 싶으실 것 같아요. 마치 서울이라고는 가본 적 없는 사람이 김연수의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을 읽는 기분일까...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스타방에르 지도!





 저의 의식의 흐름의 이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__^;;







 아무튼 이 동네는 뭐 가이드북에도 없고 그런 동네인데, 평범한 상가인데, 길거리 자체가 너무 예뻐서 경축스러웠습니다.






 그리스 식당이 있는 이 거리는 사진 찍기에 좋아보이네요.




 그래 찍어라.








 인구 13만인 이 도시에도 설마 했는데, 중&일 레스토랑이란 신기한 곳을 발견했습니다만 역시 한국 레스토랑은 없습니다 ㅠㅠㅠ 뭐 굳이 여기까지 와서 가고 싶지도 않다만...







 이 블럭을 딱 지나니, 펼쳐진 것은,



















그래피티!







 저런 예쁘고 옛스러운 상가에서 갑자기 그래피티의 광장으로 던져졌습니다.







 옛날에서 누군가 저를 붙잡고 현대로 잡아 끈 느낌이었습니다. 비쥬얼 쇼크.






 미분의 힘이 그대와 함께하기를!











 사실 제가 가려고 한 곳은 석유박물관(Oljemuseum)이었는데, 그 앞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있는 지는 몰랐습니다.




 석유박물관은 저 뒤에 보이는 회색 건물이에요. 그리고 그 앞으로 아마 예전엔 부두로 쓰였을 것 같은 광장에, 산업 시대에 종말론을 상상했으면 이랬을 것 같은, 고철, 고무공, 등등 산업 폐기물로 만든 예술품이 가득합니다.




 바트쨔응...




 뭔가 이 도시는 반전매력을 보여주는 게 특기인 듯.




 그리고는 석유박물관에 들어가려 했는데, 아쉽게도 들어가면 20분 후에 닫는다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아무래도 비수기이다 보니 스타방에르의 대부분의 박물관은 아예 문을 안 여는 곳도 많은데, 여기는 메인 박물관이라 열긴 했으나 오후 네시에 문을 닫았어요. 그래피티보다 박물관을 먼저 봤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해서 아쉽기도 했는데, 뭐 큰 후회는 없습니다.






 박물관 입장이 좌절되어, 그래피티 부두의 끝에서 바다를 노려다봅니다.






 평-화롭다.




 구름이 덮혀 오자 그래피티가 덮힌 고철들이 세상의 끝인 듯한 비장미마저 전해주지만, 해가 남아 있으므로 일단 일어섭시다.




 저희는 무작정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걸었습니다. 사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고, 뭔가 있는 걸 안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확인한 여러 가지 색다른 매력, 다양한 매력들이, 이 도시라면 뭔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이끌었던 것 같아요.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니 꽤 괜찮은 주택가가 나오고,




 고가도로가 마치 초자연적인 구조물처럼 도시의 하늘을 지납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또 그래피티. 다만 이번엔 여러 가지 재료를 다루기보다는 일반적인 벽화 위주의 그래피티입니다.




 사람의 크기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그래피티의 크기.


 이 어마어마한 것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큰 장잉력이 필요했을까요.







 살짝 보였던 괜찮은 주택가는 일시적 현상이었는지, 그 곳이 지나자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나타납니다. 그래피티의 수준은 보시다시피 매우 조악한 것으로부터,




 타이포그래피 수준의 것까지 있구요.



 제가 그림이나 그래피티를 잘 몰라서 말로 잘 못 옮기고 있는 것이 너무 유감입니다ㅠㅠ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해야해요 ㅠㅠ







 하다하다 바닥에 스티커까지.






 뜬금 귀여운 곰이 붉은 페인트로 글자를 씁니다.





 공단인 듯 어마어마하게 큰 시멘트 구조물이 보입니다. 아까 석유박물관 근처가 주변이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어 정말 '예술'적인 느낌을 줬다면, 이 곳의 그래피티들은 산업 구조물, 쇠락한 건물들과 맞물려 그래피티적인 분위기, 맥락들을 창조해내는 듯한 느낌입니다.








 가다가 발견한 인상적인 그래피티.



 놓칠 수 없죠.




 스트레스를 더 받고 싶은 사람은 없겠죠? 그래서 오른쪽으로 갔더니,



 다시 바다가 ㅠ_ㅠ 그런데 이제 다른 구조물들도 안 보이고, 멀리 구릉들, 피오르들이 보이는 바다입니다.







 적당히 따뜻한 온도, 바다 너머 보이는 구릉과 피오르들, 지나온 그래피티, 오른쪽에 있는 깔끔한 건축물까지, 모든 게 너무나 완벽한 순간이라 파노라마를 찍어봤습니다.




 그치만 여기서 물러나긴 좀 그러니까, 오른쪽 건축물 앞 부두까지만 가 보기로 합니다.






 가는 길은 완전 공사판이에요.





 완전 새로 지은 듯한 깔쌈한 건축물. Innovation Dock. 혁신 부두입니다. 인터넷 홒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혁신을 테마로 꾸민 공동작업, 교육, 기업 컴플렉스입니다. 



 정말 이런 곳에서 일하면 일할 말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진한 생각이겠지만요 ...



 돌아본 스타방에르. 고가도로가 저 멀리 보이는 걸 보니 많이 오긴 왔나 봅니다.




 혁신 부두의 끝에서.



 이 광경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여기서 계속 바다 건너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물론 이 생각은 내일 되어서 깨집니다ㅋㅋㅋㅋㅋ.)




 그치만 늦었으니 돌아가야죠. 호스트 아저씨도 어떤 사람인지 봐야 할 거구요. 정말 오래 걸어 왔으니 빨리 걸어 돌아갑시다.




     


보도블럭에 새겨진 집의 모습. 저렇게 생긴 집 앞 보도블럭에 저런 모양을 새겨놨어요 ㅋㅋ




 오덕오덕.




오는 길에 못 봤던 멋진 그래피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태국 음식점이 아주 가까운 곳에 두 군데나 있는 게 신기해서 찰칵.




히-익







 그렇게 부두 앞 광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기념으로 광장에 있던 동상과 기념샷을 ^____^ 반가워 동상아 ...











 으으 제가 봐도 저희 진짜 많이 걸은 듯...^_^;;





 솔직히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도시였는데... 오길 잘 한 것 같습니다.




 날이 많이 어두워졌으니 빨리 숙소로 돌아갑시다.





 내려온 구시가지를 지나...









 도착하니,










 정말, 정말 한국 동네 아저씨처럼 생긴 호스트께서 저희를 맞아주십니다.




그리고 밥(+보드카)부터.










 저희를 호스트해 준 카우치서퍼 마틴 후시니 씨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이에요. 완전 동양인 외모라서 신기했는데, 본인은 타지크계라서 중앙아시아 혈통이라고 합니다. 13년 전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이란과 러시아 터키 등을 거쳐 노르웨이에 도착한 지 10년 여가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국적은 노르웨이랍니다. 직업은 화가라고 합니다.








 요즘 난민 문제가 굉장히 이슈인데 난민을 직접 볼 기회는 없었잖아요. 실제 난민 출신 정착민을 만나니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만나자 마자 감자와 닭고기 요리를 직접 해 주셔서 굉장히 편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친절했어요. 물론 그게 저 때문인지 캐서린 때문인지 확신이 안 갈 수도 있긴 합니다만 일단 그랬습니다^__^; 일단 전체적으로 성공적으로 노르웨이 사회에 정착하신 것 같아 보기 좋았어요. 직업도 있고 집도 괜찮은 곳 구하고 프로 카우치서핑 호스트도 하고 부러운 삶을 살고계신...







 스타방에르의 야경.






 TV도 엄청 좋고 컴퓨터랑 연결도 됩니다. 오오 노르웨이 오오. 밥을 먹고 나서 유투브로 음악을 들으면서 얘기하고 놀았습니다. 주로 내일 갈 프레이케스톨른(Preikestolen)에 대해 얘기했지만, 그 외에도 스타방에르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카우치서핑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셋이서 사진. 아 머리스타일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진짜 왜케 이상하지 짜증난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여기 오기 전에 핀란드에서 머리를 했는데 머리스타일은 도 그거때매 파.괘하고싶고 표정은 대체 왜 이러지ㅠㅠㅠㅠㅠㅠㅠ 본판이 안되니 어쩔 수 없나 싶지만 그래도 분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유투브와 맥주로 재밌게 놀다가, 내일 프레이케스톨른... 스타방에르에 온 이유인 프레이케스톨른에 가야 했기 때문에! 일단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우리는 과연 내일 프레이케스톨른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나도모르겠음 ㅠㅠ









꼐속









노르웨이 여행 둘째날(2): 2015년 10월 18일 일요일, 16:30




 마지막 교환학생 일기는 10월 27일에 업로드되었고, 지금 제가 드디어 이 여행기를 쓰는 오늘의 날짜는 12월 15일. 열심히 쓰겠다는 수많은 약속, 모두 의미가 없었습니다. 제가 활동이 없어서였는지 심지어 댓글을 다셨다 지우신 분들도 있으시더라구요. 그런 고로 더 이상의 약속은 어차피 신용이 없을 게 뻔하므로 안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어디부터 써야 되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


 뭐 굳이 앞으로의 계획, 청사진 같은 걸 말씀드리자면 그때 그때의 감정, 느낌이 살아있는 게 중요한 '일기'보다는, 나중에 봐도 느낌을 쉬이 떠올릴 수 있는 여행기를 다 쓰는 데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그러니까 '존재할 수도 있었던' 이데아적인 글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나마 여행기가 품질의 열화가 덜할 것 같아서요. 그렇더라도 집에 가서 뭐 학교를 다니건 고시 공부를 하건 완결은 낼 겁니다. (물론 안 믿으셔도 됨) 교환학생 생활 자체가 여행이었으니까요.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오슬로 시청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노벨 평화 센터! 사실 오슬로에 오기를 결정하고 오슬로에 대해 알아보면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노벨은 스웨덴 사람이고, 노벨상은 (노벨이 창시하지 않은 경제학상만 제외하면) 스웨덴 한림원에서 수상자를 선정하여 시상합니다. 그런데 평화상만은 노르웨이 의회 노벨상 위원회에서 선정하고 오슬로에서 시상합니다. 사실 노벨이 왜 평화상만 노르웨이에 권한을 넘겼는 지 모르겠어서 대충 웹서핑을 해봤는데 명백한 근거는 없고 여러 가지 설들이 있더군요. 아무튼 이로 인해 오슬로는 '평화의 도시'라는 이명을 얻었습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입장권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입장권


 노벨 평화 센터 입장권입니다. 스티커 형태인데, 특이하게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 이름과 수상 연도가 적힌 스티커를 손에 붙여 줍니다. 저의 스티커는 1975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 옛 소련의 반(反)핵-인권 운동가입니다.





 캐서린은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고 쉰대서... 알겠다고 하고 센터로 들어갑니다. 근데 캐서린이 벨라루스 출신이라 그런지 반미-반서방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것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_^;;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기념품점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기념품점


 기념품점 쪽으로 먼저 들어가봤는데, 여러 기념품들이 있지만 역시 역대 수상자들의 얼굴이 나온 엽서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네요. 기념품점은 나중에 나올 때 또 들릅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전시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전시


 1층에서는 TARGET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하고 있었어요. 들어오기 전에 노벨 평화 센터 밖에 그 이름이 걸려 있었죠. 이처럼 센터 1층은 평화와 관련된 전시 공간으로 운영되고, 센터 2층은 노벨 평화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전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TARGET은 말 그대로 '표적'이죠. 수많은 '표적'들, 세계 각국의 여러 무력 집단에서 살인 훈련을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표적들의 이미지와, 그 표적들로 훈련을 받는 군인들, 그로 인해 변화하는 '적(Enemy)'에 대한 이미지와 관념이 전시의 핵심입니다. 지금 보니 제가 가기 한 달 전인 9월 25일에 시작했었고, 내년(2016년) 5월 22일까지 전시가 계속되는군요.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각국 병역제도 현황을 나타낸 지도.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나라별 병력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세계 각국의 병역 및 병력 현황. 대한민국도 역시 붉은색(징병제)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병력은 65만 5천 명.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군인들. 군인들 사이에는 사람이 아닌, 그러나 사람 얼굴의 모양을 한 표적이 있네요.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당연히 한국군 병장님의 얼굴에 잠시 시선이 가 박혔습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첫번째가 가장 어렵다는 것은 신화다. 나에게는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더 많은 군인들, 누군가에겐 총의 표적일 군인들의 모습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제가 지내고 있는 핀란드 사진도 있네요. 핀란드의 전사자 묘지의 모습입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중동의 미군. 전쟁은 모두에게 끔찍합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총기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뇌가 아니라, 우리가 '근육 기억'이라 부르는 것에 의해 이뤄진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동영상 전시실. 세 면에서 동영상이 나옵니다. 한 쪽에서 표적이 총을 맞고 쓰러지면, 다른 쪽에서 표적이 튀어오르고... 피도 전혀 튀지 않지만 총소리와 과녁만으로 전쟁의 끔찍함을 전해줍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전쟁은 정치인들의 체스 게임이고 우리는 말이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1층 TARGET 전시


 음성 자료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킬러의 독백"이 굉장히 인상깊었어요. 다만 제가 못 찾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음성은 영어로 나오는데 자막은 꿋꿋이 노르웨이어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_^;;



 이 전시에 대해 궁금하시면 오른쪽 링크를 눌러 공식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시길! 노벨 평화 센터 TARGETS 전시 공식 웹사이트






















 총소리와 표적들 사이에서 멍한 시간을 보냈던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노벨 평화상 전시 공간이 나옵니다.


 




 가장 먼저 저를 맞아주시는 분은, 201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인도에서 평생 아동 인권과 교육에 투신하여 오신 분입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전시카일라시 사티아르티


 예전에 인도에 여행을 갔었던 게 생각나 홀린 듯 글을 읽었습니다. 너무나도 강한 전통을 지녀 변화가 가장 느리고 더딘, 게다가 가난까지 겹친 거대한 나라 인도의 그 많은 어린이들을 품으려면 얼마나 큰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할까요.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고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아마... 엥!? 201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어린 여자애 아니였냐? 라고 하신다면 맞습니다. 작년에는 이 아저씨와 말랄라가 공동 수상했습니다. 여자애만 기억해주는 더러운 세상...은 아닙니다만 최연소 수상이라는 말랄라의 너무나 큰 이슈성에 살짝 묻힌 감이 있긴 합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전시


 두 수상자의 수락 연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전시말랄라 유사프자이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아동 인권, 교육, 나아가 정의와 관용의 상징이자 화신이 된 말랄라. 평범한 인간인 저로서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용기를 낸 97년생 10대 소녀.  탈레반에 지배받고 있는 파키스탄의 극도로 근본주의적인 지역에서도 배움의 의지를 놓지 않았고, 탈레반의 살해 협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느낌을 글로 써냈고, 그로 인해 결국 총을 맞게 되었지만 기적과 같이 살아나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지금도 근본주의와 가난에 대항하여 아동 교육과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전시




"모든 아동은 언론의 자유가 있다."



"모든 아동은 교육의 권리가 있다."



"모든 아동은 쉬고 놀 권리가 있다."



"모든 아동은 해로운 노동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이 둘의 전시 공간을 지나 보게 된 곳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의 모습이 스크린에 담겨 빛나는 정말 아름다운 방이었습니다. 헉 소리 나게 아름다웠는데 어두운 공간이어서인지 사진이 그 아름다움을 다 담지를 못하네요. 다만 역시 너무 감동해서인지 중국인 커플이 DSLR로 찰칵찰칵 소리를 내면서 막 사진을 찍고 다녔는데 그러진 맙시다 제발ㅠㅠ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빛나는 수상자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유일한 한국인 수상자의 사진도 있네요.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김대중 전 대통령, '햇볕 정치인'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얼마 전 미얀마 총선에서 승리한 아웅 산 수 지 여사의 스크린입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민주주의는 자유와 합치하는 유일한 이념입니다. 


민주주의는 또한 평화를 추구하고 굳건히 하는 이념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이념입니다. 


이것이 제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 투쟁에 참여하는 이유입니다."








 당시 노벨 평화상 2015년 수상자로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가 선정된 지 약 1달 후였는데, 공식 시상식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서인지 스크린에는 없었습니다. 아마 지금 쯤엔 카일라시와 말랄라의 전시도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네요.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다음 방에는 책 모양의 전시물이 있습니다. 정말 책은 아니고 영사된 것입니다. 책장을 넘기면 다음 스크린이 펼쳐집니다. 노벨의 노벨상 제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 오래되어 내용이 기억이 안 나네요 죄송합니다ㅠㅠㅠ 이래서 기록은 바로 바로 남겨야 하는 것이거늘...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그러나 책 자체는 아름다웠습니다. 실제 책이 아니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해상도가 높았어요.





 




 그 다음 방에 들어서자, 칠판이 저를 맞이합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PEACE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의 글들이 쓰여 있어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이 방의 주인공은 달라이 라마. 1989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지요. 티벳 독립 운동의 지도자입니다. 현재 무장 투쟁 노선을 포기하고 평화적 노선으로 선회하였으며, 인도 북부 맥그로드 간즈에 거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소심하게, 세계 평화라고 쓰고 나왔습니다. 


못난 글씨체를 둔 독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


 다음 전시실에서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 선정 과정에 대해 다루고 있었습니다.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각국 의회 의원, 법학·정치학·역사학 교수 등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 의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수많은 후보자 중, 노르웨이 의회 구성원 중 5명으로 구성된 노벨 위원회에서 심사하여 최종 수상자를 선정합니다. 위의 사진은 노벨 평화상 후보 심사 과정에서 사용된 카드인데, 여러 쟁쟁한 후보들 중 사람이나 단체를 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벨 평화상 수상에 잡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평화'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정치적이기 때문이죠. 대표적으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러일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공로'로 19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이로 인해 한일합방이 확정되었습니다. 노벨 평화상도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배경을 초월할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씁쓸한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점점 이처럼 반-평화적 인물에 평화상을 주는 일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흔히들 노벨 평화상의 공신력 얘기가 나오면 거론되는 것이, 히틀러나 전두환, 푸틴도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지만, 이는 각국 의회 의원이나 관련 분야 교수 등 다양한 사람들이 노벨 평화상 후보를 추천 가능하기에 일어나는 문제일 뿐, 최종 심사에서 이러한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비록 때로 정치적 지향 때문에 급진적이거나 모호한 이유로 노벨상을 수여하기도 하지만, 근래에는 배제될 사람들은 상식 선에서 배제되어 왔고, 투명하게 운영되어 왔습니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에 관해 말이 많았죠. 지금도 논쟁적인 문제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노벨상 수상의 이유로 거론되었던 햇볕 정책의 의도나 효과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노벨상 위원회에 뇌물을 줬다느니 음모론을 펼치는 것은 무리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아웅산 수 지, 만델라, 시린 에바디 …….


 전시가 끝나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공간에, 여러 수상자들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바로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입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그리고 바웬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카를 폰 오시에츠키, …….


 정말 수많은 수상자들이 한때 감옥에 갇혔었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인권이 누구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인지, 되돌아보도록 하는 공간입니다. 가장 왼쪽에 보이는 카를 폰 오시에츠키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결국 1938년 수용소에서 결핵으로 사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2층류샤오보.


 그리고 단 한 명, 단 한 명이 아직 갇혀 있습니다. 2010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중국의 운동가 류샤오보는 국가 전복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아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뿐 아니라, 그 동료들과 가족, 친척들의 출국까지 모두 막아, 노벨 평화상을 빈 의자에 수상하는 유례 없는 일이 벌어졌었죠. 언제 중국에 진정한, 아니 적어도 한국 정도의 언론의 자유가 가능하게 될 지, 류샤오보가 언제 출옥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언젠간 가능하리라 한 번 믿어 봅시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기념품점


 내려온 기념품점. 엽서를 몇 담았습니다. 이 사진에서 왼쪽이 프리드쇼프 난센, 중간이 민족자결주의와 국제연맹의 제창자 우드로 윌슨, 그리고 오른쪽이 테디 베어로 유명한, 그리고 한일합방을 확정지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입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기념품점No tanks, thanks.


 묘하게 어떤 한국인이 생각나는 엽서네요.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기념품점愛, 安


 사랑과 평안.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기념품점


 재활용품으로 만든 장신구들. 굉장히 예뻤습니다만, 노르웨지언 프라이스... 허헣 ^_^;;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기념품점


 정말 마음에 드는 티셔츠인데! 티셔츠인데!! 아동용 사이즈밖에 없습니다. 티셔츠가 너무 비싸서 다른 건 살 맘이 안 들고, 이거 하나 사고 싶었는데 못 사서 눈물이ㅠㅠ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서점


 기념품점에는 서점이 같이 있는데, 여기서 또 노벨 위원회에 한번 놀랐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죠. 그런데 마더 테레사의 위인전 뿐 아니라, 마더 테레사가 위선자라고 엄청나게 비판한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책 The Missionary Position도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위엄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한국어로는 '자비를 팔다'로 번역되었습니다만, 원래는 '선교사의 위치'를 의미하며, 사실 일반적으로 '정상위(네, 그 체위)'를 의미합니다.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서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 기념품점


 흥미로운 세계지도. 긁으면 색이 나옵니다. 어린이들에게 사 주면 지리에 관심이 좀 더 생기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게임이 훨씬 빠르겠습니다만 저처럼 인생이 망하니까...






 노벨 평화 센터에서 나와, 엄청 배고파 보이는 캐서린과 함께 뭔갈 먹으러 갑니다.


오슬로 페페스 피자


 너무 비싸서 먹을 엄두도 못 내면서 놀아다니다가, 아몰랑 그냥 먹자!해서 들어간 피자집.



오슬로 페페스 피자


 페페스 피자.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됩니다만 먹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



오슬로 페페스 피자


 피자 하나당 2~3만원 하는 아름다운 모습. 게다가 노르웨이까지 와서 이탈리아-미국 음식이라니 ㅠㅠ





오슬로 페페스 피자


 다만 엑스트라는 쌉니다. 저거만 먹고 떼울까 하는 생각을 0.3초동안 했다가 포기. 피자 한 판과 사이드 샐러드를 시킵니다.




오슬로 페페스 피자


 그치만 나온 피자는 어마어마하게 만족스러운 크기와 질감이었습니다. 오오 페페스 피자 오오. 하긴 이 돈 냈는데 맛없으면 굉장히 빡쳤을 듯. ^_____^






오슬로 페페스 피자


 으아아아아 잠깐 물가를 잊고 식도락에 빠집니다. 먹고 나서 어마어마한 지출에 후회했지만 먹을 때 쾌락을 보장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웃긴 게 오른쪽 테이블에 굉장히 근육 우락부락한 남자 둘이 피자 먹고 있길래, 캐서린이 오오 멋지다 했는데 갑자기 둘이 격렬 키스를...





... 정말 이건가










 근데 올리고 보니 저는 smart도 nice도 handsome도 아닌데 여집합의 정의는 없군여 어허헣 ㅠㅠㅠ





오슬로의 밤 거리


 어느새 어두워진 오슬로.


오슬로의 밤 거리


 ...그런데 정류장을 지나치기까지 해서, 결국 숙소로 돌아옵니다.






 숙소에서 에어비앤비 호스트였던 표트르, 지나와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희 기차가 새벽 4시 15분이었는데, 단 1박 요금만 냈음에도 불구하고 밤까지 계속 있게 해 주고, 심지어는 가면서 배고플 거라고 요구르트까지 ㅠㅠ



요구르트


 요구르트 받으면서 정말이지 너무 감동했습니다 ㅠㅠ 으아 이 동네의 미친 물가를 생각하면 정말 더더욱 감격스럽죠.












 근데 하필 여기서 캐서린과 싸움이 나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아침에 이어) "You never listen to me."라며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제가 아침에 캐서린 말 안 듣고 했다가 밥 망친 것 하며, 제가 낮의 바이킹 박물관에서 찍은, 캐서린이 웃기게 나온 사진을 페북 단체방에 올린 것 때문에 화가 났다는데요. 


 근데 저는 아침에 밥을 제가 알아서 잘 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건 미안하지만, 아니 사진때문에 갑자기 엄청 화내면서 그러는 게 너무 이해가 안 되어서 짜증이 나는 바람에,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을 올리지 말라고 했다는데 전 다른 사진 올리지 말라고 한 건 기억나지만 그 사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기도 하구요, 더군다나 노트북도 안 가져와서 계속 쓰게 해 줘서 할 일도 잘 못 하고 있었고, 계획 등등 많이 맞춰 줬다고 생각했는데 별 것 아닌 걸로 너무 짜증 내니까 돈 몇 푼 아끼려고 왜 얘랑 같이 왔지 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기분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콩간지내가 속이 더럽게 좁은건가...





 뭐 사실 그냥 미안하다고 했으면 될 일인데 피곤과 짜증까지 겹쳐 굉장히 속이 좁은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노벨 평화 센터를 보고 온 정신상태 치고는 정말 글러먹긴 했네요. ^___^;









 결국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어색하지만 중앙역으로 향합니다.


오슬로 버스 터미널


 거의 막차를 타고 나왔는데 기차역은 아직 열리지 않아, 좀 더 기다리기 위해 찾은, 역 근처의 버스 터미널.


오슬로 버스 터미널


 역 대합실에서 블로깅을 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블로그에 글을 썼구나, 사진을 보고 깨닫습니다 ㅋㅋㅋㅋ


오슬로 버스 터미널


 나쁘지 않은 라운지 풍경. 쌀쌀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열심히 잡니다.








오슬로 중앙역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려 들어올 수 있었던 기차역! 3시 56분이라는 시간을 보니 제가 다 답답하네요 ^_^; 스타방에르로 가는 4시 15분 첫 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향합니다.


오슬로 중앙역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잠시 기다리는데, 한국인 두 명이 지나갔습니다. 남자 한 분과 여자 한 분인데, 자전거로 여행 중이셨어요. 그런데 시간도 시간이고 멍-하니 있다가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노르웨이 기차


 마침내 기차에 탑승, 기차는 스타방에르로, 자그마치 8시간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노르웨이 여행 지도, 10/19노르웨이 여행 지도, 10/19


...그렇게 저는, 스타방에르로 가...가버렷!



스타방에르에서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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