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여행 넷째날(1): 2015년 8월 21일, 금요일
어제 하루동안 아이슬란드에서 체류한 경험의 의미를 하우카르틀에서 찾은 저는, 오늘도 특별한 경험을 만들고자 다짐합니다. 그것은 스비드(Svið)! 우오오오
어제 아침과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고자 인터넷에서 스비드 하는 집을 검색해 보았더니 BSI 버스 터미널 건물 내에 있는 걸로 나와서 부들부들합니다.
그러나 역시 원래 계획인 일찍 일어나서 밖에 나와서 스비드도 먹고 뭐도 하고...는 늦게 일어남으로 인해 FAIL.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일어난 저는 씻고 뭐하고 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숙소에서 나섭니다.
오후의 Gerðberg. 정말 평범한 주택가인데도 황량하네요. 아 극지 너무 좋다 ㅠㅠ 여름마다 극지로 놀러가기 위해서 돈을 열심히 모아야겠다...하고 생각합니다. 캄차카, 그린란드, 스발바르, 아르항겔스크, 누나부트, 러시아령 북극해의 수많은 섬들. 가고싶은 곳은 너무나 많은데 이 작은 지구를 보기에도 내 인생은 너무나 짧구나... 하고 잠깐 감성에 젖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성 젖을 시간에 운동이라도 하면 더 오래살텐데 ^_^;; 너무나 게으른 나...
그런데 오늘은 뭔가 날씨가 좋고 구름이 적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어제에 이어 오늘 다시 만나는 BSI 터미널.
식당의 이름은... Fljótt og Gott입니다. 뜻은 Quickly and fast! 실제로 드라이브쓰루도 있고, 버스 터미널 옆에 있는 걸로 봐서 간단하게 빨리 밥을 먹기 위해 이용하는 식당인 것 같습니다. 스비드 전용 식당이 아니에요. 인터넷으로 찾았을 때는 웃고 있는 양의 머리 ^_^;; 가 마스코트였는데 이제는 그게 없네요. 다른 면에 있나 해서 찾았었는데 못 찾았어요. 확실치는 않네요 벌써 참 오래됐구나 ^_^;; 한 달 격차 나기 전에 빨리 쓰겠습니다..
적당히 들어가면서 찍은 내부 사진인데 내부가 전혀 보이지가 않네요 ^_^ 하하 재능없음 쿨하게 인정합니다.
카운터로 가서 어버버하며 떨다가... 스비드?하고 물어봅니다. 그런데 카운터에 있는 청년은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새초롬하게 뜸. 뭐냐 왜 그러는거냐. 다시 스비드, 스비드 스비드, 네 번째에서야 알아듣습니다. 와 d 발음과 ð를 이렇게 새심하게 구별하는거였나. 외국인인 거 딱 보면 딱 알잖아...
스비드는 뜨겁게, 차갑게 시킬 수 있는데 사실 뜨겁게 시켜도 그렇게 뜨겁진 않아요. 양 머리 자체는 준비되어 있고, 그걸 전자레인지 같은 곳에 돌려서 주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엔 이게 뭐야... 했는데
압도적인 비쥬얼에 생각을 바꿨습니다.
개 봉 박 두
스비드
으아아아아아아아 압도적인 비쥬얼...
도대체가 어디부터 손을 대어야 할 지 막막합니다. 표정이... 눈 감고 입 벌린 게 뭔가 먹기가 너무 불쌍합니다 으아아 ㅠㅠ
양 머리 바로 아래 놓은 흰 것은 메쉬드 포테이토, 노란색은 뭐였더라... 제가 아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뭐 비슷한 약간 젖은 탄수화물의 맛입니다.
아 그리고 오른쪽에 놓인 것은
맥주인데 한 캔에 1,100크로나(약 10,000원).
☆경☆창렬이 형 아이슬란드 진출☆축☆
근데 솔직히 여긴 나라 전체가 창렬임. 뭔가 파.괘.충동이 일어나는 가격이지만 아이슬란드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시다. ㅠㅠ.
일종의 뷔페처럼 생긴 곳에서 야채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저는 먹다가 중간에 도저히 생으로는 못 먹겠어서 담아왔는데, 식욕이 떨어져서인지 이것도 손이 안 감 ㅎ;ㅎ 피클은 많이 먹었습니다.
※주의※
아래는 스비드를 먹는 과정,
즉 양 머리의 해체 작업 과정을 찍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각적 자극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서는
스크롤을 내리실 때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나이프로 약간은 과격하게 볼에 상처를 내고, 피부를 자르고... 포크를 넣어 볼살을 뜯어냅니다.
물론 동물이니 피부가 아니라 '얼굴가죽'이겠지만, 표정이 너무 살아있어서 가죽이라고 부르기가 영 꺼림칙하네요.
스비드
이 사진을 다시 보니 심장 박동이 빨라집니다. 빨리 보고 끝내야겠습니다 ;;
일단 맛을 표현하자면, 피부는 돼지껍데기보다 연하고 괜찮습니다. 살은, 곰국에 넣는 소고기 있죠? 그 쇠고기를 곰국 국물에 푹 담근 것보다 좀 더 연한 것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역시 만들어 놓았다가 그때 그때 빠르게 데워 주는 것이기 때문인지, 좀 가열이 고르지 못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까 미지근함.
어쨌든 맛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한 입 먹고 나서 양의 얼굴 표정을 보면 식욕이 급 감퇴합니다.
이제 아랫쪽을 해체해 봅시다.
스비드
으으... 저 돌기가 있는 살은 짐작하시겠지만 양의 입 부분 살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진 모르겠는데, 턱과 입천장 사이의, 입을 벌리면 늘어나는 그 살이에요. 거그리고 기에 난 돌기들이구요. 저 부위는 굉장히 탄력있고, 식감이 좋습니다. 쫄깃쫄깃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스비드를 먹을 일이 있다면, 입 부분은 뒤집지 마시고 자르고 바로 드시는 걸 추천합니다.
으아아아아 저 돌기들을 계속 보니까 갑자기 뭔가 올라오네요. 빨리 이 글 마저 쓰고 자야지 ㅠㅠ 엉엉 심장떨림
턱뼈가 매끈하게 드러난 양의 모습입니다.
...아무래도 치아가 드러나니까 좀 덜 불쌍해 보이긴 하네요. 그래도 식욕 감퇴의 효과는 여전합니다 ㅠㅠ
...다음은 뒤부터 먹을까, 앞부터 먹을까 하다가 일단 앞으로 갑니다.
으아.............ㅠㅠ
보시다시피 콧구멍을 둘러싸고 있는 살도 같이 따라옵니다. 콧살이 드드드 찢겨나오는 그 느낌!!
처음 먹을 때 코딱지..콧물...다 먹겠구나 생각했는데, 파는 거니까 당연히 어느 정도 세척은 했을 거에요. 어차피 콧구멍 깊숙히 파먹는(...)것도 아니고, 그 위의 가죽과 살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막 짠맛이 난다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그냥... 그냥... 먹을 만 한 고기의 맛...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아 진짜 이미 도축된 보통 고기를 먹을 땐 이런 걸 몰랐는데 스비드를 먹고 있자니...
사람 얼굴과 1:1 매칭이 되니까 먹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ㅠㅠ
일류 미식가가 되기 위해 최대한 웃으려 노력해보지만 힘드네요 ㅠㅠㅠ
오히려 이 사진을 보고 이상민씨의 얼굴에 나이프질을 하는 저의 모습이 떠올라 소오름...ㅠㅠ우웩
사실 오줌같은 하우카르틀도 이거보단 먹기 쉬웠던 거 보면 저는 확실히 후각보단 시각에 약한 것 같습니다..
ㅠㅠ 진심 하우카르틀 먹을 땐 배는 고팠는데... 이제 배가 고프지 않아...
아무튼 위의 사진은(보시다시피) 눈 주변의 가죽과 살을 분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저기 흰색-검은색 물체가 보이죠? 나이프를 갖다 대어 보니까 통통합니다. 네 눈이에요 눈. 그런데 제가 진짜 차마 눈은 못 먹었습니다. 제 마음의 준비가 거기까진 되지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래 사진들에서도 눈은 계속 남아있습니다.
눈 위쪽까지 모두 먹은 모습. 이제는 아랫쪽 살밖에 안 남았습니다. 아아 차라리 이렇게 뼈가 되고 나니 그나마 덜 혐오스럽네요. 스비드 너란 음식... 아이슬란드 너란 나라...
앞부분을 거의 모두 먹은 모습입니다. 중간중간에 살점이 남아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식욕이 바닥을 쳐서 딱히 먹고 싶지 않아서 내버려뒀습니다. ㅠㅠ. 저의 목표는 배 채우기가 아니고, 그냥 "스비드 먹기" 업적을 쌓는 것이니까요ㅠㅠ 하... 으아... 으아... ㅠㅠ
정말 새삼 느끼는 거지만 예전의 아이슬란드는 참 살기 힘들었던 곳인 것 같습니다. 양 머리까지 먹을 생각을 다 하구요. 확실히 전근대에는 관광업, 항공 산업, 금융업, 지열 발전과 같은 아이슬란드의 주력 산업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거의 농업과 축산업에만 의존했을텐데, 척박하고 투수성이 강한 화산성 토양으로 인해 경작이 힘들었을 테고, 때때로 화산 폭발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 아이슬란드가 바이킹들이 발견했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완전히 척박한 땅은 아니었다는 고고학적 발견들도 있습니다. 즉, 아이슬란드가 바이킹 정착 이후 아이슬란드의 토양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유럽의 식량 생산 방법을 이식한 것 때문에 재빠르게 황폐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몰락』에서 아이슬란드를 이스터 섬과 함께 인간의 환경 파괴로 인해 몰락한 문명의 한 예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뒷면.jpg
뒷면에는 딱 봐도 뭔가 먹을 게 적어 보입니다. 일단 두개골 안에 뭔가 쭈글쭈글 있는 것 같은데 저건 안 먹을 겁니다. 먹으면 리얼 광우병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제가 살을 싸악 빼먹은 코가 매우 인상적으로 매끈하네요. 여기서 가장 큰 덩어리는, 아무래도 아래쪽에 붙어 있는 혀겠지요. 이 사진에서는 아랫쪽에 갈색-흰색으로 나와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니 이제 혀를 먹어보겠습니다. ^_^;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혀 역시 꽤 맛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동물의 혀 요리가 맛있게 여겨지잖아요? (물론 제가 먹어본 것은 거의 없습니다만 ^_^)
야들야들하고 잘 씹힘. 순대랑 같이 먹는 허파보다 약간 더 부드럽고 잘 끊어지는 느낌입니다. 그치만 치아의 움직임은 매우 느립니다. 시각적 자극 때문에 ^_^;;
맛있긴 한데 씹기가 싫은 이 딜레마. 굉장히 포스트모던한 요리네요.
FIN. ^_^
첫날부터 비쥬얼이 심상치 않았던 슬라우투르,
어제는 후각 끝판왕 하우카르틀,
오늘은 시각 끝판왕 스비드까지.
뭔가 괴식의 나라 같은 아이슬란드인데, 가이드북 같은 데 있는 양 고환 요리였나... 그걸 못 먹어서 아쉽네요 ^_^;; 다음에 꼭 먹어야겠습니다.
그럼 이제 뒤늦게 점심을 먹고 시간 다 날리고 돈이 아까워지기 시작한 저는 어딘가로 향하는데...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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