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여행 넷째날(2): 2015년 8월 21일, 금요일, 18:00




 ...직전에 양의 머리를 먹어치운 저는 급격히 몰려온 허탈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먹었구나, 내가 양 머리 하나를 다 먹어치웠구나. 우와.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여섯 시가 다 되어가고, 어차피 일어나는 순간부터 망한 것을 알았지만 오늘의 일정이 모두 망했다는 생각이 들자 허탈감은 배가되었습니다. 아아 ... 그렇구나.









 ...크면 나는 무엇이 될까 하던 나는, 나는 결국 커서, 게으름뱅이가 되었구나. 그래... 그렇게 되었구나.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생경한 자연이 있는 곳에 와서, 그걸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히키코모리 수면과다 무능력자가 되었구나. 갑자기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한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아이슬란드. 오후 여섯 시가 되었는데도, 8월의 해는 아직 하늘에 걸려 있었습니다. 


 물론 날씨는 5분에 한 번씩 바뀌어서 구름도 끼고, 비도 오고 하겠지만, 낮은 길고도 길어 해는 계속 걸려 있었습니다. 마치...























포기를 모르는 남자가 되라는 것처럼요.










 





 그래, 시간은 아직 여섯 시. 포기하지 말자. 조금이라도 더 아이슬란드를 보고, 걷고, 느끼자. 그래서 가기로 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엘리다바튼(Elliðavatn) 호수





 레이캬비크 남동쪽에 있습니다. 레이캬비크 시가지와 헤이드뫼르크(Heiðmörk) 사이에 있어요. 사실 헤이드뫼르크야말로 레이캬비크 주변의 아웃도어로 유명한 곳입니다만, 저기는 너무 멀어서 포기하고... 아 포기하면 안 되는데... 포기를 모르는 남잔데... 아무튼, 이 곳은 별로 유명한 곳은 아닙니다만 일단 레이캬비크에서 가깝고, 이 곳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시내가 있습니다. 쓰란두르 씨와 마리아의 말로는, 걸을 만한 산책로가 있다고 해요. 아 뭐 안 유명해도 아이슬란드니까 괜찮겠지 아몰랑 하는 심정으로, 구글 맵에서만 보던 엘리다바튼 호수로 갑니다.







 ... 물론 철자가 Ell이니까 에틀리다바튼... 뭐 이런 느낌으로 소리가 나겠지만 저도 아이슬란드어 잘 모르고 복잡하니까 엘리다바튼이라고 부릅시다 ^_^







 보시다시피 BSI 터미널에서 꽤 멀긴 합니다만 괜찮습니다. 나에게는 버스 3일권이 있으니까 우헤헿헿헿헿 일단 버스를 탑시다. 엘리다바튼 호수 위에 있는 413번 도로가 시작되는 곳까지는 레이캬비크 시내버스로 갈 수 있습니다.









 양 머리에 깃든 원혼을 뒤로한 채 BSI 터미널을 나왔을 때의 모습. 역시나 아이슬란드틱한 어마어마한 구름들 사이로 푸른 하늘이 살짝 보이네요. 포기하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















 그리고 30분 후, 버스는 레이캬비크의 남동쪽 끝자락에 저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여전히 밝은 아이슬란드입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여기부터 413번 도로. 레이캬비크가 끝나는 곳. 레이캬비크의 끝 413... 그리고 포기를 모르라는  .












 다시 말씀드리지만 레이캬비크에는 아이슬란드 인구의 1/3이 살고 있습니다. 수도권을 다 합하면 2/3이고, 수도권은 대부분 레이캬비크 남서쪽에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그 2/3의 인구를 등지고 황무지로 걸어가고 있네요.












 사람들은 없고, 어딘가에 언젠가 쓰였던 듯한 시설들만 많은...







 무지개는 레이캬비크에서 솟아오르고 있네요. 










 그런데 걸어가다 보니 공사판이 ...?




 엥!? 아이슬란드 거기 레이캬비크밖에 없는 거 아니냐? 하고 궁금증이 생기시겠지만...






 이 곳의 이름은 코파보귀르입니다. 레이캬비크의 위성도시인데, 레이캬비크의 남쪽을 책임지는 도시이고, '수도권'에 같이 묶여 있어요. 신기하게 레이캬비크 남서쪽도 코파보귀르, 남동쪽도 코파보귀르입니다. 





 그러니까 전 레이캬비크에서 코파보귀르로 온 겁니다. 즉, 서울에서 광명으로 온 겁니다. 뭔가 느낌이 오시죠?





 그럼 위에서 황무지 운운은 무엇인가? 그냥 그런 감성이란 겁니다 ^____^






 그런데 무슨 도시가 유령건물이 엄청 많습니다. 아까 보셨던 그 건물도 공사중이고, 이 건물도 공사중인데 사람이 없네요. 으스스합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세계 경제 위기가 터졌을 때 금융업에 굉장히 의존하고 있던 아이슬란드는 직격탄을 맞았었는데, 아마 그 여파인가 봅니다.















 뭔가 모기들이 서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연못이지만 모기는 없었습니다. 오오 극지 오오.













 드디어 시내 옆의 도로에 도착해서 호수로 걸어갑니다. 다 때려치고 싶을 때마다 무지개를 봅니다. 으아아아 오늘 한 짓을 생각하니 무지개 다리를 건너가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참읍시다. 














 이런 곳에 집 하나 있으면 좋겠다. 아 어차피 있어 봤자 물가 때문에 못 살려나 ^_^;;




 쓰란두르 씨는 한 때 덴마크에 있는 집을 4,000만원 가량에 구매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교통이 불편하고 자주 안 갈 것 같아서 다시 팔았다고. 이 말을 듣고 설렜습니다. 나도 4,000만원이면 유럽에 내집마련이 가능하단말인가 ...!? 하긴 한국에서도 교통 매우매우 불편한 곳은 더 싸게도 가능할듯 ㅋㅋㅋㅋ










 엘리다바튼 호수에 거의 다 왔습니다...!












 오오...






 파노라마가 되게 잘 나왔는데 세로로 올리겠습니다. 사진을 올리는데 계속 세로로 올라가서 뭐지 했는데 세로로 올리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ㅋㅋㅋㅋㅋ 휴대폰 돌려서 보세여...













 황량하기 그지없는 호숫가. 딱 제 취향이었습니다ㅠㅠ 게다가 호수 반대편으로는 펼쳐진 사면과 민둥산, 멀리 만년설이 보이네요. 정말 너무 멋져서 진짜 저기까지 갈까 말까 너무나도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파노라마에는 작게 나옴 ㅠㅠㅠㅠ 저 시력 0.7인데도, 경치 보는 데에는 카메라보단 눈이 낫네요.




 어제 스비드를 먹고 오늘 일어나서 엘리다바튼 호수 건너편을 관광했으면 참 좋았을텐데, 후회해봤자 시간은 떠나갔습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는 정말 늦은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평소에 열심히 삽시다. ㅠㅠ













 아무튼 저는 아뽕에 취해 이 호수 앞의 저 목제 의자에, 젖을까봐 완전히 앉지는 못하고 엉덩이만 살짝 걸친 채, 약 십오분 간 앉아 있다가 너무 바람이 추워져서 일어났다 카더라...







 무지개 하프샷.








 ... 그리고 저는 이제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왔던 길로 가면 식상하니까 시내 옆을 걸어서 돌아가려 합니다.











 ...엥!?





 말 표지판은 처음봅니다 ^_^;;












 돌아가는 길의 평범한 풍경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호수에서 여기까지 온 길이 말들이 다니는 길이었네요;;








지금부터 15분간 똥피하기 타임입니다 ^_^










 오랫만에 이 게임을 다시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똥을 피했지만, 정작 옆에는 차도가 있어서 시외버스들이 지나다니는데도 울타리를 넘지 못한 채, 저는 말들이 쓰는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으아아아아아아







 난 도대체 왜 여길 온걸까...







 포기하지 말라고 했던 레이캬비크의 의도가 매우 사악하게 느껴집니다. 포기를 하지 않으면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인가...












 제 위치 보이시나요? 쑤 에르트 헤르가 유 아 히어 로군요. 여기서 왼쪽의 노란색 길을 따라가서 숙소로 빨리 돌아가느냐, 아니면 위쪽 길을 가서 돌아가느냐 살짝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똥피하기만 15분 하고 걸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 위쪽으로 갑니다. ^_^;






 수도권 전체 지도.













 아니 여기 시내 엄청 좁은데 여기서 낚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일단 신기하고, 게다가 여기 태국어가 있다는 게 더 신기... 영어,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그러려니 한데 태국 뜬금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때 태국의 전설적인 낚시꾼 무리들이 아이슬란드를 정ㅋ벅ㅋ하러 이 멀고 추운 세계의 구석까지 온 것일까요...






















진실은 저 너머에

















 제가 아까 지도가 있는 곳에 도착하기 직전에 비가 내렸었는데 그쳤더니, 이제 다시 비가 내립니다. 그래서 저는 짜증나니까 덕내를 풍기며 하아...(먼산)하며 먼산을 봅니다. 아아 만년설 날 가져요ㅠㅠ





















 중간중간에 의자가 있는데 앉을 수가 없어요. 너무 축축함. 도저히 마를 시간이 음슴. 






 사진엔 하나도 안 나왔지만 ^_^ 여긴 의외로 사람이 꽤 있었어요. 헉헉거리며 뛰는 분들도 몇명 지나감. 

















 참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게 아이슬란드다운 산책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 여기서 풀까지 뺀 곳을 내일 가게 되고 ... 그 곳에서 죽음의 고비를... 아 그건 내일편에서 이야기합시다.










 10km 달리기 코스가 마련되어 있네요. 사실 태어나서 10km 한번에 뛰어본 적 한 번도 없는데 반성하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확실한 건 10km를 뛰는 동안 날씨가 일정하지는 않으리라는 것 같습니다 ^_^;;












 드디어 지도에서 봤던 다리에 도착했습니다. 인간 문명으로 돌아갑시다 ㅠㅠ






 다리 위에서 찍은 상류.



 다리 위에서 찍은 하류.









 정말 태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조그마한 시내에서 낚시를 했다니 그 태국 사람들 누군진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들인 듯... ㄷㄷ해;;















 아이슬란드에는 화사한 꽃은 없습니다. 정말 거의 없어요. 대신 아이슬란드에 익숙해지면 황무지에서도 피어나는 이런 수수한 꽃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넵. 제가 아뽕에 취했네요.







 그리고 붉은 화살표를 따라 걸은 결과 마침내..!









 인간계로 복귀했습니다 ㅠㅠ









  처음에는 숙소로 걸어서 가려고 생각했으나 ... 







 저에게는 버스 3일권이 있지요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한 정거장 걷고 바로 버스로 태세변환했습니다. 










 아 그래도 오늘은 뭔가 봤구나, 약간의 개운함을 안고 게르도우베르그에 돌아왔는데,




 엥?


 

 지금까지 지하도 있는 것 몰랐는데 신기해서 찍어봤습니다. 도로 폭도 엄청 좁은데(심지어 가장 좁은 곳은 1차선!) 횡단보도가 없어서 뭔가 했는데 지하도가 있었네요. 도대체 왜 이 곳은 이렇게 셋팅된 것인가. 추운 곳이니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 합니다.















 ...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 오늘을 날린 것 같습니다. 스비드를 먹긴 했는데 어제 먹었어야 하는 거고, 호수 잠깐 본 것밖에 한 게 없는데다가, 피로도 안 풀리고 여전히 피곤 ㅠㅠㅠㅠㅠ 으아아아아아 분노한 저는 숙소 복귀 전 스키르를 삽니다.












 스키르(Skyr)가 뭐냐면 아이슬란드의 전통 요구르트입니다.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뻔질나게 아이슬란드 장수의 비결은? 하면서 광고하고 있는 제품이 이건데요. 뭐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공해도 없고 사람도 적으니까 스트레스도 덜받고 레이캬비크 지역 빼면 남한 면적에 인구 10만명이니까 마주칠 일도 적어서 범죄도 적게 일어나고 그러니까 장수하겠지... 생각하지만 일단 궁금하니까 먹어보기로 합니다. 절대 오래 살려고 먹는 게 아님.





 그런데 혹시나 맛이 좀 이상할까봐 걱정되어서 베리맛...을 샀습니다.






 대충 겉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우왕ㅋ굳ㅋ

















마시쪙!












 사실 보통 요구르트랑 크게 차이를 못 느끼겠어요. 특징이라면 뻑뻑하단 것. 일반 요구르트보다 밀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그 외에는 다 괜찮고 맛있어요. 아이슬란드 전통 음식 중 유일하게 매우 평범한 음식이 되었네요 ^_^;;














 그리고 오늘 이렇게 산보를 하게 된 저는 이럴 거면 도림천이나 갈 것이지 왜 여기 온 것인가... 하는 고민과 함께 내일은 새벽처럼 일어나 그야말로 인생에 길이 기억될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기억의메모리... 모험의어드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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