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수요일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이 12월 16일인 것을 생각해 보면, 사실 한 달 뒤의 일기가 '사진역사학'이었고 두 달 뒤의 일기가 '사진고고학'이었다면 지금은 뭐 '사진방사선측정학'정도는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기억의 재구성... 기억의 재구성... 그렇지만 다행히 9월 9일의 이 일기는 10월 말에 사진을 업로드해 두었으므로, 그 때의 온기가 남아 있...나?
현장감이 생명인 이런 류의 생활기를 지금 쓴다는 것은 착잡하지만 제가 이걸 쓰는 목적은 무의미의 침식에 맞서기 위함이므로 일단 씁시다.
이 날은 첫 한국어 수업이 있는 날이었을 겁니다. 아마두요. 저는 한국어 3 수업과 한국어 2 수업의 도우미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신기하게 딱 한 단계 차이가 나는데 구성원의 느낌이 확 달라요. 한국어 2 수업이 한국어와 기타 동양어를 전공하는 저학년 학생들 위주라면 한국어 3 수업은 연령대가 대체로 높고 전공도 다양한 느낌? 그리고 교수님의 말씀대로라면 한국어 2 수업은 분위기가 좀 별로...고 3 수업은 굉장히 화목하다고 하시는데, 제 생각에는 그냥 한국어 2 수업 학생들이 한국어를 잘 못해서... 였던 것 같아요.
아무튼 이날은 한국어 3 수업이었습니다. 한 분을 제외하고는 다 여자 분들이었어요. 몇몇 핀란드 학생들과 말을 틀 수 있었는데, 한국 갔다 온 분들도 굉장히 많았고 한 명의 남자 분은 한국을 스2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고 한국인 여자친구도 있으시다고!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 여학생 세 명과 함께 한국어 도우미를 했습니다. 아마 저는 한국어가 통하는 핀란드인을 만난 게 너무 신기해서 말을 너무 빨리해서 많이들 당황하셨던 것으로 기억...
수업이 끝나고 같이 밥을 먹습니다. 사진을 보니까 배가 고프네요. 그런데 아마 보나마나 간이 덜 되어 있을 거라서요, 소금이 필요한 식단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헬싱키 하드 락 카페에서 각자가 악기를 가져와서 공연할 수 있는, 오픈 스테이지 행사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 가기로 결심하고, 뭔가 집에 갔다 오긴 시간이 애매해서 학교에서 기다리기로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헬싱키 대학교는 8시에 닫아요...
그런데 행사는 10시에 시작...
ㅠㅠ
그래서 맥도날드에서 시간을 떼우기로 합니다. 아 맥날 보니까 더 배고프다ㅠㅠ
신기했던 게 예전의 그... 뻘쭘하게 서 있었던 클럽에서 만난 사람들 중 한 명, 제 튜터 베이코의 룸메 중 한 명이 여기서 알바를 하고 있었어요. 우왕ㅋ굳ㅋ. 뭔가 헬싱키 대학교라니까 맥도날드 알바가 안 어울린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나봅니다. 그치만 여긴 핀란드니까요. 사교육 시장이 그리 크지도 않을 뿐더러, 맥도날드의 페이도 굉장히 높으니 문제는 없습니다. 물론 덕분에 햄버거 값도 비싸구요.
한편 약속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고 생각하여, 저는 9시 50분까지 도착하려 길을 나섭니다.
도착했다.
...그리고 시작된 참교육.
안 와요 안 와.
... 절대 약속시간에 오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저의 교환학생 친구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니 오늘 온다는 사람들, 이탈리아 셋, 이스라엘 하나, 체코 하나... 그렇습니다. 다 남쪽 사람들이군요 ㅠㅠ... 피부로 느낀 먼나라 이웃나라는 가혹했다...
다행히 뭐 9월이라 밤이라고 춥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참교육의 감동이 온 몸을 전율시키는 것은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기나긴 기다린 끝에, 입장.
누군가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하드 락 카페에 온 건 처음이에요. 인도에서 소고기를 파는 거의 유일한 음식점이라길래 갈까 하다가 비싸서 가지 않았었습니다. 한국에는 잠실과 해운대에 있다고 해요.
"...where the classes could happily mingle."
...가격을 보고 얘기합시다 양심이 있으세요 업주님? ^_^;
벽에는 유명 락 스타들의 물건들이 걸려 있습니다. 뭐 당연히 레플리카겠지만유.
본 조비의 기타..!
마돈나, 리한나, 그런데 리한나가 락이었나, 몰랐네유. 아님 그냥 셀레브리티라서 걸어 둔 건가. 하긴 워낙 다양한 음악을 하긴 하지만요.
빠질 수 없는 존 레논.
그런데 저희 팀 앞에 하도 팀이 많았어서 자리가 정리되는 분위기.
물론 제가 공연을 했으면 좋겠지만... 저는 공부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아니 요즘은 공부도 모르지만, 하여튼 게으른 사람이라 공연은 못 하고, 그냥 공연하는 친구들 응원하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늦어버려서 이미 판이 다 정리되는 분위기이니, 더욱 열렬히 응원해야겠죠. 물론 늦은 것은 너희들이 나를 기다리게 한 응분의 댓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____^
그러니까 기다리는 도중에 셀카나 찍읍시다.
이렇게.
요즘 보는 모습이랑 머리가 많이 달라서 사진 보면서 제가 깜짝깜짝 놀라네요.
어느덧 준비를 완료한 친구들. 페라스는 드럼을 치고, 이탈리아에서 온 알레산드로는 베이스를 칩니다. 그리고 한 명은... 아마 스탭 같아요.
우와아아으으우와아
공연 동영상도 찍었는데 제가 몸을 너무 상하로 많이 흔들어서... 아마 기분이 좋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공연이었어요. 관중석은 적막했지만... ^_^;;
이렇게 저는 오늘도 생존을 마치고 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였었다고 추측합니다.
제발...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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