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토요일 오후 8시
...저번 포스트에서 언급했던 그 엄청난 일이란,
약속된 메탈의 땅 핀란드에서
콘서트에 간다는 거였습니다.
뭐 메탈이 아니고 포스트락이지만...
콘서트장은 뙬뢰(Töölö) 근처에 있었습니다. 참 글자만 봐도 어지러운데 발음하기 너무힘듦 ^_^;;
뭔가 사람이 모여있는 걸 보니 이곳이구나!
도-착
들어가기 전에 맞은편 마트에서 맥주를 한 캔씹 삽니다. 마침 살 수 있는 술의 개수가 팍 줄어드는 9시 직전이어서 타임어택의 느낌이 났네요.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으니 우왕ㅋ굳ㅋ 너무 설렘...
제가 이번에 온 콘서트는 God Is an Astronaut이라는 아일랜드 포스트락 밴드의 공연입니다.
사실 포스트락?하면 굉장히 낯선 장르인데요. 저한테도 그렇습니다. 파워/심포닉 메탈 때문에 핀란드를 알게 된 거지 포스트락은... 시규어 로스라고 아이슬란드 밴드가 유명한데, 몇 번 듣다 안 맞아서 안 들은 기억밖에는ㅠㅠ 물론 포스트-어쩌구 들어가는 것이니 당연히 설명하기도 힘듭니다.
일단 포스트락 곡들을 하나로 묶는 건 힘들겠지만, 하나의 지향점이라면 '락의 해체'나 '락의 극복'이고, 그러한 경향이 굉장히 다양한 방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통일성을 제시하기는 힘들어요. 특징이라면 반주가 굉장히 길다는 것 정도가 생각나는데 이거야 제가 뭐 많이 들어 본 적이 없으니... 같이 '반주가 길다' 하더라도 제가 위에 쓴 시규어 로스의 경우 가사/반주의 비중이 일반 락과 대동소이하다면 이번에 듣는 God Is an Astronaut의 경우 거의 보컬 부분이 없다시피합니다. 이쯤되면 뭐 락을 뛰어넘는 걸 넘어서 일반적인 밴드 음악을 뛰어넘으려는 시도 같은 느낌이죠.
그치만 일단 저 말고도 저희 튜터 그룹에서 셋이나 같이 갈 수 있는 락/메탈 콘서트가 여기가 처음이었기도 하고, 그 같이 가는 친구들이 다 친한 애들이었으며, 게다가 가격도 20유로대로 비교적 저렴하고 (나이트위시는 50유로가량^_^), 유투브에서 이 분들의 음악을 들어보니 굉장히 독특하면서 신비한 느낌이 들어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매우 잘 한 선택이었음!
근데 이때까지만 해도 적응 안 됐던 Security Fee 때문에 짜증이. 3유로를 더 내야 한다길래 덥기도 해서 티셔츠랑 바지 빼고 다 벗어서 맡겨버렸습니다 부들부들. 한국은 안 이런데 왜 이러지 생각하다가, 한국에서 콘서트장이나 클럽 가 본 기억이 없으니 뭐 비교도 못 하겠군요. 뭐 파리 테러가 난 것을 아는 지금으로서는 여기에 불만을 가지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무대가 세팅중인 콘서트장. 콘서트라고 해서 막 큰 경기장이나 홀이 아니고, 사각형 모양의 꽤 작은 강당같은 느낌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온 기념 사진...
...은 개뿔.
그러니까 후레쉬로 너네부터 찍고,
같이 찍습니다.
왼쪽부터 어제 베이스를 친 이탈리아에서 온 알레산드로와 포르투갈에서 온 로드리고, 항상 개꿀잼인 영국에서 온 글렌, 그리고 저...
...음 네 그렇습니다.
I had... had...
아이슬란드에서 산 이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솔직히 입을 때 어차피 셔츠 안이니까 하고 별 생각 없이 입었는데 이렇게 다 벗게 되니 굉장히 전위적인 느낌이군요. 마치 회의장에서 정장을 입거나 예식장에서 턱시도를 입은 것처럼, 콘서트장에서는 엘프 티셔츠, 굉장히 잘 갖춰 입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이슬란드 최고의 인기 직업
부러운 직업입니다.
아무튼 곧 누군가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God Is an Astronaut은 아니고, 어떤 핀란드 기타리스트 아재인데 굉장히 기타를 특이하게 치면서 특이한 노래를 특이하게 부릅니다. 처음엔 뭥미 했는데 퍼포먼스가 웃기셨음ㅋㅋㅋ
몇 곡 하시고 박수 받으면서 내려가십니다.
그리고... 곧 등장.
God Is an Astronaut
우와잉으읨ㅇ느리ㅡㅍ큼ㅇㄴ르밍ㄻ으리ㅡ빋ㄱㅂ
락이나 메탈 콘서트 처음인데 격렬하고 빠른 음악이 아니어서 그러니 굉장히 무겁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등장해서 바로 음악을 시작하는데 너무 부드러워서 좋았음...
그러니 여러분도 음악을 들으면서 그 느낌을 느껴보세요. 물론 어마어마하게 취향을 탈 것 같습니다.
2013년 앨범, All Is Violent, All Is Bright
으으앙닁ㅁ름릪ㅍㅁㄴㄻㄹㅇㅁ
저는 콘서트 처음 가서 (몇 번이나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알게 된 건데, 확실히 컴퓨터나 이어폰으로 듣는 거랑 빵빵한 스피커로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듣는 건 정말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컴퓨터로 들을 때는 몽환적이면서 묵직한 분위기에 비해 파워가 떨어져서 락같지 않다고 느꼈는데, 콘서트장에서 들으니 그 파워가 충분히 보강되어서 정말 최고...
한 곡 끝날 때마다 "Thanks a lot!"이라고 인사해 주십니다.
아무튼 그러니까 포스트락을 저처럼 별로 안 좋아해도 콘서트장 가면 느낌이 다르다는 결론입니다. 핀란드는 락/메탈 인프라가 정말 좋아서 많이들 공연을 오니까, 평소에 듣던 밴드가 아니더라도 합리적인 가격에 기회 되면 꼭 가세요 두번 가세요.
2015년 앨범, Helios Erebus
사실 조회수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인기있는 밴드는 아닙니다. 그래서 콘서트 가격도 저렴했던 것이기도 하구요.
그치만 정말 약간 다리가 아픈 것 말곤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이 쯤 되어 기존 공연이 끝나고 앵콜 곡들이 나올 차례인데, 정말 웃겼던게 ㅋㅋㅋ
기타리스트가 앞으로 나오더니,
"원래 이제 우리가 들어가고 여러분이 우릴 불러낼 차례입니다. 그치만 지금은 2015년이잖아? 다 알잖아요, 그런 거 다 귀찮고 다 아니까 그냥 잠깐 불 끄고 뒤로 돌아섰다 올테니 박수 많이 쳐주세여."
하고 불끄고 뒤돌아서서 3걸음 걷고 박수듣고 다시 돌아옴ㅋㅋㅋㅋㅋㅋㅋ완전 쿨하면서 웃겼습니다 ㅋㅋㅋㅋ
마지막!
으으... 끝이다 ㅠㅠ
끝났습니다.
밖에서 사인을 해 주고 계시길래 엘프 티셔츠에 사인을 받을까 하다가 몇번 빨면 지워지겠지 해서 걍 안 하는 걸로.
지금 글 쓰고 있는 12월 16일 기준으로, 제가 더 좋아하는 밴드인 스웨덴 파워 메탈 밴드인 사바톤(Sabaton)이 12월 19일에 헬싱키 근처 에스포(Espoo) 스트라토바리우스, 감마 레이와 함께 공연을 하는데, 정말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도 없고 요즘 삽질해서 돈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날렸는데 가격도 55유로나 해서 못 갈 것 같은 걸 생각하면, 정말 이 때는 행복한 시절이었군요. 광광 우럭따...
그리고 여운을 안은 채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간 뒤, 멍때리면서 게임 좀 하다가, 새벽에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데 ...
엥!?
갑자기 네덜란드 플메 둘이 소파를 들고 올라옴...
"버리려던 걸 주웠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들고오자 마자 갑자기 내려가서 하나 더 들고 와서, 소파가 두개나 되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
버려져 있던 거라 불안하긴 한데, 대충 닦아내고 말리고 하니까 뭐 의외로 냄새도 안 나더군요 ㅋㅋㅋㅋㅋ 진짜 뭔가 새벽에 파티 끝나고 소파를 들고 올라오다니, 이게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인가 ... 정말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한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봅니다 ^오^
그리고 뭐 어찌 되었든 플랫에 소파가 생겨 급 행복해진 저는, 행복한 느낌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기 위해 더 이상 깨어 있어 궁상떨지 않고 빨리 자야겠다고 다짐하고 잠에 듭니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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