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 일요일




 어제 역사의 공백기를 보내고 허무감에 시달리던 저는, 문득 여기서 육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밖에선 좀 먹더라도 집에서 먹는 건 매일 감자 뿐... 이러다가 감자마름병에 걸릴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저는 육식의 충동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트에 갑니다.




바로_억제됨.jpg






 고기 가격을 보고 억제되는 저의 육식 충동이란 마치 자기보다 쎈 사람 앞에서는 조절되는 분노조절장애처럼 미약한 것이었습니다. 으아아아아아





 그러던 와중에,




400그람에 1.99유로...?




 사실 이걸로 요리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고기는 고기겠죠. 사서 해 보기로 합니다.





흐..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와서, 걍 대충 뭉쳐서 팬에 올려 놓고 삼겹살처럼 굽기로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보니까 웃긴데 저 때는 고기를 먹어야겠다는 생각 하나 뿐이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




아...







ㅁㅊㄷ ㅁㅊㅇ...





 와 제가 지금 봐도 참... 어떻게 이걸 먹을 생각을 했지 싶은,




간 고기 구이 ^_^







 군데군데 제대로 익지도 않았고, 무슨 이상하게 씹으면 뽀독뽀독 고무같은 느낌이 날 뿐더러 기름도 넘쳐 흐르지만 그러려니...하고 먹는 게, 아니라,











복수를 다짐합니다.













8월 31일, 월요일




 ...그러나 숙성된 복수가 맛있는 법,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학교에를 갑시다.



 이제 학교가 개강한 첫 주입니다. 몇몇 수업은 이번 주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미리 수강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수강신청을 못 할 공산이 큽니다. 그럴 경우 보통은 메일을 보내면 교수님들이 수강생 명단에 넣어 줍니다. 뭔가 수강신청 경쟁이 빡센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헬싱키대학교 자체가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 낮에 뭔가 이벤트를 한다길래 아담과 함께 헬싱키 대학교로 갑니다.




 왼쪽에 보이는 아담.




 ...뭔가 학생 행사 같은데.



 건물 안에 들어가 보니 삘이 옵니다. 동아리 소개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메트로폴리아 대학교 소속이죠. 뭔가 노잼으로 보이는 것을 바로 눈치챈 아담은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하고, 저만 남아서 튜터 그룹 친구들일 기다립니다.




 정말 여러 동아리가 있습니다. 당연히 태권도 동아리도 있구요.



 코스프레부...도 있네요.




 Kirjasto는 도서관이라는 뜻인데 뭔가 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뭘 했더라. 대책 없이 사진을 안 찍었네요.



 사실 중간에 첫 사진에 있는 기린 모양 공기 트렘벌린에 들어가서 막 놀다가 프랑스 남자의 엉덩이에 얼굴이 찍히는 대참사...는 아니고 굴욕을 당하기도 했고, 수시로 실험 참가비를 주는 실험 참가 요청을 받겠다고 원서를 쓰기도 했고(그 뒤로 한 번도 참가 안 했지만), 추첨을 해서 먹을 걸 받기도 했고, 성가 동아리가 노래하는 걸 듣기도 했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나봅니다. 기억이 안 나고 사진도 안 찍었네요 ㅠㅠ





 다만 사우나의 나라 핀란드 답게 이 사우나는 굉장히 인상깊었나 봅니다.



 핀란드는 워낙 사우나 덕후라, 2차 세계대전 때도 전쟁할 때 막사보다 사우나를 먼저 지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전설을 반영하듯 정말 건물들에는 대부분 사우나가 다 있고 사우나가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 글을 쓰는 지금(10월 15일)까지 한 번도 사우나엘 안 들어가봤네요. 곧 가 봐야지...




 그리고 저도 귀찮아졌는지 그냥 집에 가기로 합니다. 왜 이렇게 귀찮았을까요. 곧 다가올 개강이 싫어서였을까요? ㅠㅠ












9월 1일, 화요일




 드디어 9월이 되었습니다. 사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야 맞는 건데, 저는 한 주 더 쉬기 위해서 9월 2일의 수업을 빼버렸습니다. ^_^ 참 막장이네요. 그래서 저는 수업이 다음 주부터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낮에 일어나서 블로그에 글을 썼습니다. 이 때 만큼만 썼으면 지금처럼 밀리지도, 기억이 안 나지도 않았을 터인데 ㅠㅠ엉엉






 오늘의 도전은... 전자레인지 계란찜인데.




 음...





 숟가락으로 휘저어 놓으니 좀 계란찜 같습니다. 마늘은 많이 넣었는데 소금이 부족해서 간장을 곁들여 먹다가,










 간장 하니까 베니건스였나 아웃백이었나, 아무튼 빵이 생각나서 빵도 가져와서 찍어먹습니다. ^_^;;





 그런데 계란찜과 빵이라는 요상한 조합을 못 견딘 것인지 옆에서 아담이 뜬금 등장, 간 고기를 요리합니다!



 과연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저 공들은 곧 형체도 없이 분해되었다 카더라 ㅠㅠ





 그렇습니다 사실 아담도 경험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나 아담이나 똑같이, 고기와 야채만으로 모양을 만드려는 말도 안 되는, 그러나 그때는 왜 말도 안 되었는지 모르는 야심찬 시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은 또 클럽에서 파티. 이스라엘에서 온 페라스, 잉글랜드에서 온 글렌, 튜터 베이코와 율리우스, 이탈리아에서 온 파울로, 벨라루스에서 온 캐서린과 같이 어딘가에 갔습니다. 당연히 저는 술만 쪽족. 캐서린이 춤 추는 걸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춤을 추나 싶을 정도로 잘 춰서 기겁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어떻게 한 학기 동안 여기서 살 지 막막했던 것 같네요. 춤도 못 추는데 맨날 이런 데 가야 하나 엉엉ㅠㅠ 이런 느낌. 






이번_학기_할_게임_추천받습니다.jpg










 아아... 가끔 술을 홀짝거리긴 해도, 댄스 홀에 나가는 친구들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면서, 처음에 저는,


이넘들~ 서양,놈,년들,,,, ㅋㅋㅋ 너네는...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날,천,날 춤바람만 났나~~!!ㅋㅋㅋ










 하는 생각을 잠깐 했으나,




 바로 생각을 바꿉니다.






 사실 제가 나이를 스물 다섯살이나 먹으면서 별다른 취미를 갖지 못한 게 문제이니까요. 저 스스로가 그렇게 특출나게 취미를 찾아서 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사회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만 중요시되고 공부 이외의 것들은 못 해도 좋거나, 아니면 아예 잡기로 취급받기 때문에, 결국 제가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것 같습니다. 뭐 외국 친구들이라고 다 춤을 잘 추고 그러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추고 아니면 악기를 다루거나, 다 하나씩 하는 건 있더라구요. 결국 부끄러운 건 똑같은데, 부끄러움의 원인은 남이 아닌, 나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한국의 클럽은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여기의 클럽은 딱히 춤 추는 것 빼고 그렇고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뭐 어제의 클럽 타이거에서는 키스하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눈에 띄는건 그만큼 소수이기 때문이었고, 여기는 다 학생들이라 그런지 한 명도 그런 케이스를 못 봤네요. 저도 핀란드에서 클럽 딱 두 군데 가 보고 이렇게 단정하는 건 우습긴 한데, 아무튼 그랬습니다.










 ...결국 피로에 지쳐 새벽에 돌아온 저는 결국 다시 육식을 포기하고, 삶은 감자와 조미료만을 먹는 감자마름병 식단에 일시 항복합니다.








9월 2일, 수요일







 ...그러나 복수의 날은 다가오는 법.





 웬지 저렴한 가격의 마늘과 양파를 찾아 야채를 곁들일 준비를 마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컨셉은 간 고기에 야채 곁들여 먹기. 과연 이 야채들이 끔찍했던 미친듯한 기름과 고무 씹는 듯한 느낌을 중화해줄 수 있을까요?




 ...야채를 다 썰어 놓고 고기를 덮어버리니 채식같은 느낌.



 그러나 실제로 고기는 많습니다. 엄청 많아요. 소금을 막 뿌려 주고 




 볶...





 음... ^_^;;




 음...!




 싱거우니 간장을 뿌려줍시다.




 그렇게 맛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일단 야채가 있으니 저번보다 훨씬 낫네요.




 팬을 한쪽으로 기울이니 기름이 알아서 빠집니다. 숟가락으로 긁어 먹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저번보다 낫더라도 가루가 된 고기를 먹는다는 점, 식감이 영 안 좋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문제는 고기 그 자체인 것입니다. 가격 때문에 저 고기를 고를 수밖에 없었던 가난에서 이미 저의 비극이 잉태되어 있던 것입니다. ㅠㅠ. 



꺼-억






 그치만 일단 배도 고팠고 사람이 먹을 수 있을 만한 요리를 했다는 생각에 팬을 말끔히 비웠습니다. ^_^;; 하하 혀도, 마음도 편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발달해가는 저의 육식문화에 위안을 얻어야 할까요...  ㅠㅠ



















 그리고 새벽까지 블로그, 페북질을 합니다. 마침 들어온 아담과 술을. 뜬금없는 권주에 뜬금없어하는 아담 ^_^;





 아담이 처음 가져왔던 친자노로 원샷하고, 저는 잠에 듭니다. 내일은 신입생 행사가 있는 날이자, 한국어 교수님을 만나는 날이라 긴장이 되네요.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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