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여행 다섯째날(3): 2015년 8월 22일 토요일, 18:00




 버스는 도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BSI 터미널 근처에서 정차했습니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은 막혀 있었습니다. 오오 축제 오오. 헬가펠에서의 생사의 넘나드는 경험 이후 당장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던 저였지만, 교통 통제 구간부터 뭔가 시끌시끌한 걸 보니 마음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BSI 터미널 근처에서 중국인 학생 둘을 만났는데, 아이슬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다고.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렇지만 뭐 핀란드도 좋은 나라니까... 안 부러워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속으로는 부들부들... 으아





 티외르닌 호수 쪽으로 가면서 본 놀이 기구들. 사실 (여기선 기본 날씨인) 비가 조금씩 내렸다가 안 내렸다가 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타진 않았지만 오오 축제 하나 제대로 하네...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티외르닌 호수 건너로 보이는 시청사.



 그리고 여전한 오리떼.



 『오리떼와 시 청사』, 갤럭시 노트 3으로 촬영, 900px*506px, 2015. 



 사실 말 수가 극도로 줄어들긴 했는데, 할 말이 실제로 없습니다. 저는 그저 아... 힘들어... 배고파... 발 아파... 하면서 놀이기구를 지나 호수 변을 걸어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런 감상도 장기적인 플랜도 없이, 시티 센터로 가면 뭔가 있겠지...하는 생각으로 발을 옮기던 일종의 좀비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시티 센터. 확실히 사람이 많아 보이긴 합니다. ㄷㄷ 평소 대비 2배로 늘어난 듯. 그리고 메인 스트릿인 라우가베귀르 거리로 들어서니...









엥!?




 비범한 러시아 국기 전사가 성큼성큼 걸어가며 이미 축제가 여기선 한참 전에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엥!? 이거 완전 메탈리카 아니냐?



 ...는 당연히 아니지만, 아재들 노래 열심히 부릅니다ㅠㅠ 나도 지금부터 배워볼까... 하고 몇 년간 항상 생각해왔지만 전혀 배운 악기가 없다...




 멋진 아재들 공연 때문에 길거리 다 블락킹행ㅋ 그래도 행복해보입니다. 겨울도 아닌데 초현실적으로 시린 느낌의 제 발과 행복해보이는 거리의 광경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군요.




 좀 지나가다 본 또다른 공연. 누나 예쁘긴 한데 노래는 아까 아재들이 훨 나았습니다. 아재들 찬양해...





 산타클로스에게 보내는 우체통입니다. 핀란드 산타마을이 파산한 틈을 타 귀신같이 산타를 빼앗아가는 아이슬란드 ㄷㄷ해;




 중간에 들른 서점, 전통 아이슬란드 요리의 대표주자는 역시 스비드...! 이견이 있을 수가 엄슴니닷...








 길 가다가 거리에서 본 일본인 마술사. 끈 하나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셔서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퍼포먼스도 짱 좋으심. 부럽다.




 


 그런데 역시 저는 먹을 게 걱정입니다. 비싸서 걱정에다가, 사람 너무 많아서 자리도 없어서 걱정. 발도 시린데 배까지 고픔 ㅠㅠ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결론은 "아이슬란드의 음식점은 세 종류가 있다: 비싼 집, 꽉찬 집, 이상한 집..."







 그러던 와중 유일하게 먹을 만한 가격의 국수 집을 발견하지만, 저번에 영국산 빵+수프를 먹어놓고 이번에도 국수를 먹자니 내 항공권이 부끄럽다 포기. ㅠㅠ





 다시 들어온 서점에서 굉장히 아스트랄한 내용의 책들을 보고



 오 이런 거 하나 있으면 분위기 있겠다 생각하다가 돈 보고 바로 포기하고



 다 때려치고 감자튀김을 먹을까 하다가 이번에도 역시 줄 때문에 포기하고




 저번에 봤던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 근처에서 하는 공연을 보다가 역시 음악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ㅠㅠ







 꽉찬 물고기집도 지나가고



 무슨놈의 1,680크로나짜리 양 수프집은 비좁아터졌는데도 줄이 산더미라 도저히 시킬 수가 없습니다.





 하...



 다 때려치고 숙소에나 들어갈까 하던 찰나,





 아까 사람이 많았던 물고기집의 줄이 거의 사라진 걸 보고 조심스레 줄 서 봅니다.






 그리고 요리를 시켰습니다. Steamed Fish. 가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역시 착한 가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외딴 자리에 혼자 앉아서, 아 이것만 먹고 들어가서 쉬어야지 생각하는데...






 제 옆 테이블에 앉은 아저씨 한 분이 저를 쳐다보셔서, 저도 말을 걸었습니다. 약간 벌개진 얼굴에 덩치(+배) 있는 백인 아저씨여서 약간은 긴장했는데, 벨기에에서 오셨다네요. 약간 억양이 특이하긴 해도 영어도 엄청 잘 하고 해서 저도 맥주 시켜서 계속 얘기함ㅋㅋㅋ



 캬 참으로 착한 맥주 가격 1,000 크로나...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남녀와도 얘기하게 되었는데, 여자는 타이완 사람이었고 남자는 한국계였습니다. 오오 한국계 오오. 그런데 홍콩 출신에 미국에 산댔나 뭐랬나... 아무튼 굉장히 복잡한 성장 배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영어가 자연스러워서 부러웠음.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 나온 Steamed Fish. 이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요리인데 맹맹합니다. 으아아아아아.



 타이완 여자 분 리액션이 좋으셔서 오래 재미있게 얘기를 하고, 곧 둘은 나갑니다. 저는 벨기에 아저씨와 얘기하다가, 그냥 집에 가버릴까... 했지만, 그래도 불꽃놀이는 봐야 하지 않겠냐! 하는 사자후에 바로 넘어가서 남기로 합니다.



 오후 10시의 레이캬비크 축제 풍경.



 길에는 간이 클럽이 있네요. 사람들 춤추고 있음 ㅋㅋㅋㅋㅋ



 중간에 벨기에 아저씨가 술 잔뜩 취하셔서 옷이나 살까 하고 들어간 모직품 상점인데 이건 뭐 저 따위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입니다 ㅠ_ㅠ


 벨기에 아저씨도 보다가 나옴..



 ...뭔가 사람이 많아 보입니다.



으아아아 정녕 이 도시가 광역권 포함 인구 20만 도시란 말인가



 ...



 ...



 엥!?



지금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이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의 30%는 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이슬란드어로 공연 중인데, 뭔가 씐나는 분위기이긴 한데 너무 멀어서 하나도 안 보임ㅋㅋㅋㅋㅋㅋ 술을 좋아하시는 벨기에 아저씨에 이끌려 저는 맥주를 한 잔 더 하기로 합니다. 끄아아아아 내 피같은 만원. 핀란드에서는 클럽같은 데서 맥주 한 잔 5,000원도 아까워서 못 먹는데... 역시 술맛은 분위기에 달렸습니다.



 술을 마시며 이야기. 알고 보니 아저씨는 부가가치세법 전공 변호사였습니다. 구글에 이름 검색하면 나올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저는 술 취해서 만난 40살 나이 차이 나 보이는 인연끼리 무슨 더 연락을 하면 받아 주기나 할까... 아니 일단 나부터가 뻘쭘하다 싶어서 지금까지 안 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연락을 해 봐야겠거니 싶기도 합니다.




 구글에 검색하니 웬 간지나 보이는 미중년이...! 으아아아아아





 그러나 관광지에서라면 막장 잉여 대학생도, 부가가치세법 변호사님도 모두 맥주 원샷...! 너도 나도 맥주 한 잔이면...!





 맥주를 비우고 다시 찾아간 콘서트장, 콘서트는 어느새 끝나 있고,




 시간이 되자 무언가가 솟아오릅니다...!





 도대체 불꽃놀이는 얼마만에 보는 것인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불꽃놀이에 감흥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었는데,




 시린 발, 피곤한 다리, 허전했던 마음, 부실한 준비로 인한 후회, 그 모든 것이,




 불꽃놀이와 함께 조금씩 녹아내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잠시 소강 상태가 있고 나서 하이라이트...!






 정말 화려했던 마지막 불꽃놀이로, 



 그렇게, 축제는 끝났습니다.






 저는 원래 타던 정규 버스를 타기 위해 빨리 달려서 막차 시간에 맞추려 했는데요, 축제로 정규 버스는 편성이 안 되고 대신 특별 버스가 편셩되어 있습니다. 원리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행선지를 말해주면 현장에 있는 경찰들이 어디로 가서 줄 서서 버스를 타라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저는 비록 3일 버스권을 날린 건 아쉬웠지만, 취기가 도는 몸으로 매우 무난히 숙소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저는 곧 노트북 모니터를 보고 


아이슬란드 여행 최후최대의 삽질, 


저의 가혹한 운명에 좌절하게 되는데...
















꼐속








아이슬란드 여행 다섯째날(1): 2015년 8월 22일, 토요일




 어제의 실패를 곱씹으며 저는 잠에 들었고, 그렇게 잠을 자고, 잠을 자다가 아침에 일찍 깨어났습니다. 시각은... 오전 8시였나.










 그런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저는 다시 잠에 듭니다. ^_^ ;; 으으으으으으 역시 침대가 짱이야 하면서 다시 잠에 든 저를, 여기서 묵은 이래 처음으로 쓰란두르 씨께서 깨우셨습니다. 갑자기 문에서 노크소리가 나더니, 오늘 저녁에 레이캬비크 컬쳐 나잇, 그러니까 문화의 밤 축제가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저는 몽롱한 상태로 침대에 앉아 그 말을 듣고는 아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생각하면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아마 이 때가 오전 8시 정도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출근 전에 알려주신 셈이죠.










 



 그러나 ...



















나의 수면욕은 끝이 없고


같은 취침을 반복한다.













 ...



 저는 침대에서 헤드뱅잉, 스트레칭, 괴성 지르기, 온몸운동 등과 유사한 동작을 하며 반-수면 상태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방문 밖으로 아주머니께서 말을 거십니다. 투나잇 이즈 레이캬비크 컬쳐 나잇! 맞아 그랬었지. 알았어요. 부군께서도 그리 말씀하시더이다. 그런데.......
















투데이 시티 버스 이즈 프리!!











왓??????????














 잠이 갑자기 달아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틀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갑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진공청소기를 끄시고 말씀하십니다. 투데이 올 시티 버스 이즈 프리. 버스가 다 공짜라구요. 그런데... 그러면...


















이건... 이건 어떻게 되는건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흐-뭇














 아주머니께서는 오...오... 말하지말걸그랬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만 어차피 버스 타면 알게 될 거... 미리 말씀해주시려는 따뜻한 마음만이라도 감사하게 느끼는 심정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뭐 따지고 보면 내가 돈 더 손해보는 건 없잖아요? 덜 손해볼 순 있었겠지만... 진짜 저의 아이슬란드 여행은 삽질의 연속인 듯 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삽질은 아직 안 나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오늘 저의 일정은 헬가펠 하이킹으로 자기 전에 생각했는데... 축제를 가야 하나... 생각합니다. 보니까 낮에도 재미있는 이벤트가 많더라구요. 그렇지만 어차피 Culture Night이라서 밤에 봐도 괜찮겠지...하는 생각으로 일단 헬가펠부터 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지금 쓰다 보니 알았는데 사진 제한이 한 번에 50장이고 여러 번에 걸쳐 업로드하면 50장보다 더 많이 되네요. 이걸 왜 이제 알았지... ㅠㅠ 역시 사람이 난관에 부딪히면 길을 찾게 되는 것인가...











 헬가펠(Helgafell)이라는 이름의 산은 아이슬란드에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구글에 처음 헬가펠을 검색하시면, 아이슬란드 남부 해안 베스트만 제도에 있는 헬가펠을 먼저 보여줄 겁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헬가펠 중에 하프나르피외르뒤르에 있는 헬가펠을 선택하시면 저 위치가 나올 거에요. 레이캬비크에서 남쪽, 해발 고도 약 300미터 가량의 산입니다. 한국 기준으로 그리 높은 고도는 아니지만, 아니지만...






 아무튼 쓰란두르 씨께서 말씀하시길 걸어서 갈 만하고 로컬들이 하이킹으로 꽤 가는 산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하프나르피외르뒤르까지는 레이캬비크에서 가는 시내버스가 있어요. 그래서 시내버스를 타고 간 다음,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려고 합니다. 헬가펠 산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걸어가야 할 거리는 7.8킬로미터! 으아아 조금 걱정이 되는 거리긴 하지만 뭐 그닥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니까, 망설임 없이 가기로 합니다. 기다려라 헬가펠 내가 간다...!















 역시나 숙소 앞에 나와 시내버스를 타는데, 자그마치 시내버스 요금통을 종이로 덮어 놨었습니다. 확인사살 감사합니다 ^_^;;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들어올 때 봤던 이케아. 다시 보게 되네요. 뭔가 굉장히 멀리 온 느낌 ^_^;;










 버스를 갈아타는 피외르뒤르 정류장. 항만에 접해 있습니다.











 이렇게 생긴 항만에 접해 있습니다 ^_^;;









 레이캬비크는 큰 아파트는 없으면서 낮은 건물이 많아서 그런지, 인구 20만의 수도권인데도 꽤 멀리까지 확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변두리에 가도 건물만 봐서는 변두리라는 느낌이 안 오네요. 아무튼 남쪽으로 가면서 몇 번의 회전 교차로를 지나다가...














 내렸습니다. 오오.















 사실 여기보다 더 남쪽에 버스정류장이 단 하나 더 있었는데, 이 도로가 아니고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걸 파악을 못하고 여기 내린 거였습니다. 덕분에 왕복 합쳐서 600미터 정도는 더 걸은듯 ^_^;;




 이것은 도로 좌측의 광경. 진짜 도시가 끝나는 곳까지 오니 좀 변두리같은 느낌이 들긴 합니다. 원경의 산은 여전히 멋짐ㅠㅠ

















 그리고 이제..



 걸읍시다.
















 걸으면서 뜯어 먹는, 마트에서 산 빵쪼가리. 뜯어먹읍시다. 근데 뜯어먹다가 빵쪼가리 땅에 떨어트리면 가슴아픔...




 여기서부터 길 양쪽에 모두 집이 하나도 없어요. 



 게다가 걷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기껏해야 자전거 타는 사람 있고, 대부분은 차로 다녀요. 그런데 저 혼자 걷고 있자니 굉장히 뻘쭘하면서 외롭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어폰도 안 가져갔었어요 ^_^;;



 중간에 있는 갈림길. 중간중간에 갈림길이 많고, 차량들도 저 쪽으로 꽤 들어갑니다. 물론 '꽤'는 아이슬란드 기준이에요. 




 지나가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 여기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집보다는 농업용이나 축산용으로 지어 놓은 건물들 같습니다.







 드디어 시야가 탁 트이고... 저 앞에 보이는 것이 헬가펠인가 ...?


 

 올라갈 생각하니 설렙니다.


 


 





 또 갈림길.





 갈림길이또...






 길에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이지만 그래도 차가 좀 지나다니는 것 보면 이 정도면 로컬들한테 인기 있는 것 맞는 것 같습니다 ^_^










 ... 어제 겪은 똥피하기의 기억이 새록새록







 아 진짜 걷는 사람 저밖에 없어요. 우울하다. ㅋㅋㅋㅋㅋㅋㅋ한 절반 쯤 온 것 같은데, 온 몸이 더워 땀이 납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헬가펠의 자태.




 아이슬란드답지 않게 너무 푸른 것 같아서 찍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엥?







 맥주 캔, 담뱃갑 등 쓰레기들이 자꾸 눈에 띄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으으 이 아름다운 자연을 이런 식으로 망치다니 ㅠㅠ





 푸르른 곳을 지나자 다시 이끼 필드... 정말 아이슬란드의 지형은 변화무쌍하네요  ^_^




THE POJANG DORO'S END




 포장이 끝나는 곳. 포장의 끝. 저 지점을 지나고 나서 찍어서 그런데 포장이 시작되는 곳이 아니라 끝나는 곳 맞습니다.




 

 이쯤 왔는데도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아서 저는 멘탈이 나갑니다. 하긴 겜돌이 IT중독 인간이 인터넷도 안 되고 사람도 한 명도 없고 지형마저 끊임없이 단조로운 곳에서 혼자 터벅터벅 걷고 있으니... 으아아아아아





 좀 가까워진 것이 느껴지는 헬가펠! 점점 커집니다. 하긴 고도가 300미터지. 오른쪽에 있는 산은 구글 맵으로 보면 헬가펠 서쪽으로 해발 고도 100~200미터 가량의 산맥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가까운 산인 것 같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대지에 뜬금없는 흰색 대문. 





 터벅터벅, 힘 풀린 다리로 최후의 갈림길을 지나,




 드디어 헬가펠이 눈앞에...!





 헬가펠 주변 지도입니다. 하이킹로 가꾸어 놓은 것 인정합니다. 하긴 인구 33만 아이슬란드에 인구 5천만 한국 정도의 편의를 기대하면 안 되죠. 표지판 하나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헬가펠 2.8km...!







 사실 쓰란두르 씨께서 처음 헬가펠을 소개해 주셨을 때는 걸어서 아예 남쪽 해안까지 갈 수도 있다고 말씀하셔서 읭? 했는데 여기까지 2시간도 안 걸렸으니까 무리는 아닌 것 같아요. 점심 저녁 먹을 것 챙기고 부지런히 걸으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쪽 해안에 가도 잘 곳이 없다는 것... 그러니까 도시가 없어요. 뭐 롯지 같은 것들 있을 법 하긴 한데 찾아보질 않아서... 가장 가까운 도시...또는 마을 그린다비크까지 가려면 정말 부지런히 새벽부터 밤까지 걸어야 할 것이고, 지도 오른쪽 하단의 Strandakirkja는 정말 교회 건물 딱 하나만 있는 곳이고(...) 더 동쪽으로 가면 민가인지 축사인지 건물 몇 개가 보이네요. 아무튼 그냥 남쪽 해안에 닿는 것 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이 안 되는 동네입니다. ㅋㅋㅋㅋ



 

 헬가펠부터 클레이파르바튼, 그리고 바로 아래의 남쪽 해안까지는 모두 자연 보호 구역입니다. 만약 제가 시간이 충분했다면, 그러니까 하루를 통째로 하이킹에만 썼다면 클레이파르바튼 호수 정도는 갔을 것도 같아요. 어제 갔더 엘리다바튼보다 훨씬 넓은 호수인데다가 주변은 훨씬 더 황량하고 깨끗하니 경치가 멋질 것 같습니다. 어쨌든 컬쳐 나잇도 가야 하는데다가 힘이 빠지...고 있던 저는 클레이파르바튼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아무튼 위의 표지판을 따라 우측으로 가서 헬가펠에 올라가려 하는데...



 우왕ㅋ굳ㅋ




 연못에 떨어지는 빗줄기들 보이시죠?




 비가... 옵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물러날 수는 없는 법...!









...강행 돌파한다..






 훗. 이래야 내 여행답지. 방수는 안 되지만 따뜻한 후드 모자 눌러쓰고, 가방에서 우산 꺼내들고, 앞으로 전진합니다.




 경로를 나타내는 듯한 주황색 폴. 용암의 흔적이 남아 있는 평원에 외로이 서 있습니다.













 두 철망 사이로 길이 있어서, 저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왼쪽 철망은 수질 보호 구역을 둘러싸고 있는 듯해요. 오른쪽 철망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_^;;








 수질 보호 구역. 





 비가 많이 옵니다 ㅠㅠ 으아 빗줄기가 갑자기 쏟아지는데 아이슬란드 와서 이렇게 비가 제대로 내리는 거 처음 본 듯 합니다ㅋㅋㅋㅋㅋ 우산을 제대로 받쳐들고 점점 더 높아지는 헬가펠을 향해 전진합니다. 부츠도 등산화도 뭣도 아닌 저의 한심한 밑창 떨어진 뉴발 스니커즈는 물을 너무나도 잘 흡수하네요. 발이 시원해집니다. 아아 신나라...




 헬가펠 하이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듯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과 젊은 여성이었는데 아마 모녀가 아닐까 싶네여... 인사하고 지나오다가 아 도저히 이걸 계속 가야 하나? 싶은 생각, 회의감이 너무나도 들어 뒤를 돌아본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돌아가자니 너무 부끄럽죠.





 조금 더 가니 나타난건 어마어마하게 펼쳐진 용암 평원. 아아 검고 거대한 용암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계속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헬가펠...!




 올라가는 길이 딱 봐도 가팔라 보이는데, 다가가니까 더 가팔라 보입니다.




 정말? 정말 올라갈 수 있을가? 이렇게 비도 오고 미끄러운데,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는 땅을 짚어 가며 올라가야 하는데, 신발이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밑도 끝도 없는 걱정이 저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시도도 안 해보고 돌아갈 순 없죠. 올라갑시다.






 ... 그런데 처음 보이던 그 길을 나타내던 형광 막대는 어디 갔지..?






 한 3분 정도 올라왔나, 중턱도 안 되었는데도, 뒤를 돌아보니 황량한 평원이 산들 사이에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말 잘 왔구나, 잘 왔구나, 올라오길 잘 했구나, 하고 소리내어 말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잉여로운 모습만 보이던 제가 드디어 뭔가 해냈다 싶어 괜히 감동이 밀려옵니다. 솔직히 아무 일도 아닌데...



 

 그러나 올라가는 길은 험난합니다. 눈만 덮여 있으면 백운대 올라가는 길 같았을 것 같네요. (엄격 진지 근엄)


 

 



 

 그러다가 잠깐 완만해지는 부분이 나오더니 ...

 


 

 

 오오... 게다가 올라오니 비도 그쳤습니다.

 


 

 

 헬가펠 산 중앙에 있는 분지입니다. 한국지리 시간에 배우는 울릉도의 나리 분지같은 분지인 것 같네요 ^_^; 주변은 높게 솟아오른 능선이 둘러싸고 있는데, 분지는 참으로 평평합니다.

 


 

 

 그러나 정작 올라가는 길은 분지는 지나지 않습니다. 뭐 이건 정상으로 가야 하니 당연한 건가... 앞 사람들의 발자국을 좇아 열심히 따라갑니다.


 

 

 기껏 올라왔더니 내려가는 곳도 있고 ㅠ_ㅠ

 


 

 

 아아 왼쪽 아래에 손가락이 찍힌 게 너무 화가 나긴 하지만, 그걸 빼면 이게 제 시야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인 것 같습니다.

 

 헬가펠의 넓은 화산 분지, 그 아래에 있는 제가 지나온 황량한 용암 평원, 그리고 멀리 보이는 다른 산맥들과 세계의 끝...


 

 

 세로로 찍어봤습니다. 아무래도 사진에서는 고도 차이가 잘 안 드러나는 것 같네요.


 

 

 그런데 저는 이 쯤에서 길을 잃습니다. 딱히 길이 보이지도 않고 발자국도 조금씩 안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주변에는 다 험난한 지형들 뿐이네요...


 

 

 제 쪽에서 바라본 분지 왼편인데, 역시 올라갈 곳은 못 되는 듯 합니다 ^_^;;


 

 

 그러다가 이 곳은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여기도 경사 가파르지만, 밟을 만한 곳들이 꽤 보이네요. 이 곳으로 정하고 올라가는데...

 

 

 

 

 좀 올라가니까 너무 말도 안 되게 가파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네 발로 기어서 겨우 겨우 올라가게 됩니다.

 

 올라가다가 너무 힘들 때마다 아래쪽을 바라보면 힘이 납니다.

 

 

 

 

 

 

 

아아...

 

 

 

 

황량하다 황량해! 하하하.

 

 

 

 그야말로 황량함 덕후가 되어버린 저의 내면이 저를 계속해서 앞으로, 위로 끌고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_^

 

 

 

 

 

 

 

 

 


 


드디어 올라선 고지!

 

 

 

 

 

 

 

 

 

 

 

 제가 올라온 위험천만하게 가파른 경사로를 되돌아보자니, ...

 

 

 

 

 

 

 

 

 

 

 

 

 


 태평양 전쟁에서 이오지마 섬을 점령한 미군이 섬의 꼭대기에 성조기를 세우던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으아 산 중턱밖에 안 올라왔는데 쓸 데 없이 감동먹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한국에도 정말 아름다운 산이 많지만, 한국은 나무가 많고 산도 많아서 정말 높이 올라가기 전까지는 내가 높이 올라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힘들죠. 그런데 헬가펠은 중턱에만 다다랐는데도 정말 멀리까지 시야가 닿으니, 마치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 느낌 ㅠㅠ

 

 

 

 

 

 

 

 

 

 

 

 

 

 

 

 

 

 

 

 

 

 

 

 

 

 

 

 

 

 

 

 

 

 그런데 ... 이런 감격도 잠시

 

 

 

곧 일생일대의 위기가 들이닥치는데...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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