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여행 다섯째날(2): 2015년 8월 22일 토요일, 14:00




 그렇습니다.





 바로 직전 고지에 올라온 저는, 눈 앞에 펼쳐진 새로운 풍경에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딱딱하면서도 빈틈 없이 채워진 표면,



 그 표면이 갈라진 날카로운 부분이 저의 낡은 뉴발 운동화를 사정없이 공격하였습니다.






 게다가 처음에는 글자 EG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오오 역시 길을 잘 들었어... 생각했지만,









이 곳에서 더 올라갈 길이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갈라진 대지 너머로 보이는 것은 오직 깎아지른 봉우리들 뿐, 더 이상 나아갈 곳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갈라진 대지 너머의 깎아지른 봉우리를 찍은 사진이 없네;; 절망이 너무나 컸나 봅니다. 뭐 어차피 여기랑 비슷하게 생김;;





물론 내려갈 곳도 보이지 않음 ㅎㅎㅎ






















그런데 그 때 뭔가 꼬물거리는 것을 포착;;






너무 멀어 저의 안 좋은 눈으로는 성별 구별도 안 되는 한 명의 사람이, 흰색 개 한 마리를 앞세워 길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으아아아아아 저 곳이 길이었구나. 그렇습니다. 저번 편에서 '힘들게 올라왔는데 갑자기 내려가야 한다.'고 할 때, 이상한 걸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잘 안 보이신다구요? 



 빨간 동그라미 안에 사람이, 파란 동그라미 안에 흰색 개가 있습니다.



 개는 무지막지하게 길을 잘 찾아 빠르게 올라갑니다. 아니 어떻게 개가 정상도 찾아가지. 정말 잘 찾아가는 것 보니까 저보다 123091374배는 영리한듯 ㅠ



 어느덧 제대로 된 고지에 오른 인간의 형체. 부럽다ㅠ







 



 올라온 곳은 네 발로 기어서 겨우 올라온 엄청난 급경사. 앞으로 나아갈 곳은 다 더 말도 안 되게 높은 경사의 봉우리들 뿐. 사방을 둘러 봐도 출구는 없고, EG라고 적힌 두 글자의 알파벳 외에는 인간의 흔적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 가장 가까운 인간은 단 한 사람, 저기 올라간 사람 뿐이고 불러 봤자 소리가 들릴 지도 모르겠고, 지평선 위로는 눈으로 겨우 인지 가능한 소방헬기 하나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게다가 구름까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제갈량에게 속아 호로곡으로 들어온 사마의가 생각났습니다. 아아 내려가는 길의 발자국에 속아 이런 먼 사지까지 들어오다니.






이 곳이 나의 죽을 자리인가







 갑자기 온 몸이 서늘해집니다. 다행히 가방 안에 종이와 필기구가 있으니 유서는 어떤 식으로 쓸까 생각합니다. 종이에도 남기고 핸드폰에도 남겨서 최대한 비 안 맞을 것 같은 자리에 보관해야지... 생각했는데 여기가 워낙 황량한 곳이고 오랫동안 침식된 곳이라 그런 곳도 없어 보임 ^_^;; 










 그러다가 유서보단 영정 사진을 먼저 남기는 게 낫겠다 싶어, 내가 죽게 될 곳들의 광경들을 배경으로 영정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영정 후보 제1호






영정 후보 제2호




영정 후보 제3호




영정 후보 제4호



 다 죽음을 앞둔 결연한 표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ㅠㅠ 으아아 저는 배경은 1호가 좋지만 표정은 2호가 좋네요. 영정으로 쓴다면 2호를 쓸 것 같습니다. 














최종_채택_영정.jpg















 그 와중에 아재와 흰 개는 내려오는군요. 너무 허탈하고, 힘도 빠져서 말도 안 나옵니다. 제 갈 길을 가도록 합시다.







 난 정말 여기서 죽는 걸까. 죽는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 낮은 산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죽는다니, 얼마나 쪽팔린 일인가. 준비 하나도 없이 아이슬란드로 오다니 이렇게 철도 없는 일이 있을까. 그런데 죽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왜 핸드폰은 신호가 하나도 안 잡힐까. 다음 사람이 오면 소리를 최대한 질러 볼까.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정작 내가 새로 올라온 이 곳을 제대로 둘러보지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희망을 찾아 보자. 








 엥!? 여기 완전 가망 있어 보이는 곳 아니냐?




아니네요.




다른 곳인데 여기도 아님.




아... 진짜 너무합니다.ㅠㅠ




 경치는 좋은데 심장이 떨려서 나아가지를 못하겟음. 조금만 헛디디면 발이 미끄러져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비까지 왔었으니 ^_^;;






도대체가 이 미친 놈의 고지는 둘러싼 게

낭떠러지와 절벽 뿐인가





그리고 절벽일 거면 다 절벽일 것이지 한 군데는 애매한 절벽으로 해놔서 엄한 사람 죽게 만들고 아아 ㅠㅠ




 도저히 답이 없는 상황에 절망한 저는, 만악의 근원인 제가 올라온 처음 올라온 곳으로 돌아와 발 사진을 찍어 봅니다. 원래 헬가펠 정상 올라가면 찍으려고 했던 샷인데, 억울해서 여기서라도 찍어야겠다. 부들부들. 그런데 꼴에 무서워서 모서리엔 다가가지도 못합니다. 쫄보 인증잼ㅠ








 그런데 혹시나 해서 옆을 보는데...







엥!?






 분지로 내려오는 완만한 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개념도를 그리자면 이렇습니다.




(발로 그려서 죄송합니다.) 


 붉은 색은 낭떠러지, 검은 색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곳이라고 보면, 대충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진짜 묘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올라올 때도 저런 길이 있는 지 몰랐고, 올라가서도 사람을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ㅠㅠ 내려갈 때 뭐 개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엉거주춤하게 서서 내려가면서, 왜 난 기어서 올라온 것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분지에서 보는 정상 가는 길. 너무나도 아쉽지만 정상은 포기해야겠습니다. 너무 급한 감정의 변화를 겪어서 다리도 후들거리고 구름도 다가옵니다ㅠㅠ



 사실 헬가펠 정상 찍었다고 구라칠까 생각도 0.1초간 했었는데 아이고 의미없다. 나중에 다시 와서 정ㅋ벅ㅋ하겠노라 다짐합니다.




 사실 분지까지 올라오는 길도 꽤 급경사였기에 내려갈 때도 약간은 위험하다 싶었습니다만 아까의 일을 생각하면 꿀오브꿀




 이건 뭐 50m도 안 올라온 발샷행... 그치만 괜히 발로 산이 다 가려지고 분지가 보여 찍고 싶어졌습니다.




 점점 다가오는 평야.



 아아 그리웠어 평지야 ㅠㅠ



 그러고 보니 있는지도 몰랐던 레몬탄산음료를 꺼내어 먹습니다. 역시 생명에 위협이 느껴질 때는 모든 욕구가 일시정지되는 듯 하네요...



 다시 갖게 된 황량함!의 대지의 품. 저 멀리서 새로이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이는군요. 저 분들은 저의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할텐데...



 기분이 좋았는지 동영상까지 찍었습니다. 죽음에서 풀려나서 기분이 좋아졌나. 



 정상에 오르지 못해 아쉬운 헬가펠.ㅠㅠ 다시 올라가는 게 나을까 생각했지만,



 바로 비가 오네요. 완전 젖기 전에 빨리 갑시다.



 출발지에 돌아와서 지도를 보면서 저의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굵게 표시된 노란색 순환선과 그보다는 얇지만 여전히 굵게 표시된 노란색 선 두 개는, 'Marked Route'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처음에 본 주황색 막대같은 마크가 되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제가 택한 곳은 지도에서는 얇게 표시되어 있는 최단루트인데, 'Unmarked Route'입니다. 왜 처음엔 주황색 막대가 서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졌을까 하는 의문은 한 번도 갖지 않고, 처음에 보고 찍어 둔 지도도 다시 확인하지 않고, 그냥 최단거리에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고 우왕ㅋ굳ㅋ 하며 올라간 제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습니다. 으아아아아 ㅠㅠ



 물론 중간에 제대로 된 길 찾아서 올라갔으면 모르겠지만요. 근데 제가 그 길을 보지 못한 건, 그 길도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닌 엄청나게 가파른 길이었다는 것이었다는 결론이 충분히 나오니 결국 제가 이상한 지름길로 간 게 원인입니다.



 사실 쓰란두르 씨, 뭐가 로컬들 하이킹 코스에요 존나 사기꾼이네 하고 잠깐 생각했는데 지도를 보면서 다시 반성하게 됩니다.




 야아 비 온다 비 온다. 비 맞으면서 5km을 걷는다.





 가다가 본 트램플린과 작은 축구 골대가 있는 집. 너넨 당연히 차 타고 레이캬빅 가겠지.




 비가 곧 그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미친 갑자기 퍼부어 댑니다. 퍼부어대는 비 사이로 다시 돌아본 헬가펠의 사진입니다.


 우산을 쓰고 후드를 입었지만, 바람까지 불어서 막 비에 몸이 젖습니다. 신발은 물이 새어서 완전 패망했습니다. 양말이 완전 축축히 젖어 매우 기분 좋은 상태로 레이캬비크로 걸어갑니다. 비가 계속 이렇게 오니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습니다.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어폰을 안 가져와서 못 듣는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을 지웠다가 다시 생각을 예토전생합니다. 어차피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데 이어폰 안 껴도 되잖아? 그래서 핸드폰 스피커로 음악을 틉니다. We'll carry on, We'll carry on...







 그런데 사실 전 컴앞대기니트족인데다가 한국에서는 휴대폰으로 음악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인터넷으로 들었기 때문에, 휴대폰엔 하도 많이 들어서 사골이 된 노래들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감정의 폭발을 이기지 못한 저는 빡쳐서 노래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휴대폰에도 들어 있던 Welcome to the Black Parade를 따라 부르다가, 나중에는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를 부릅니다. 분명히 주변에 귀 열고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아이슬란드에서 머리가 다쳐서 여기가 파린 줄 아는 미친 놈 지나가는구나 생각했을 듯...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섬나라고 모든 도로는 레이캬비크로 통한다. 드디어 상상 속의 샹젤리제 거리도 끝이 나고 하나 둘씩 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퍄퍄퍄. 이미 제 양말은 모든 부분이 균질하게 수분을 최대의 양으로 흡수한 상태였습니다.






 거의 버스 정류장에 다 다가가서 본 전봇대. 무슨 스테이플러가 다다다다다다다다닥 박혀 있는 걸 보니 무섭습니다. 영화 호스텔이 생각나네요. 그래도 살아 돌아왔으니 어디야.





 으아아아 다시 보는 인간 문명.




 오늘은 토요일. 버스는 한 시간에 두 번 옵니다. 기다립시다.





 콘크리트 계단인데 신기하게 위쪽은 덜 젖고 아래쪽은 다 젖었네요. 부실공사를 해서 투수가 매우 잘 된다던가 그런 것인가. 아무튼 앉아 버스를 기다립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버스 정류장이 헬가펠 쪽에 가까운 게 한 군데 더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먼저 내리고 먼저 올라타서 500미터는 족히 더 걸었을 듯 하지만, 뭐 이미 다 지났으니 됐습니다.




 1번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대기 중. 어차피 숙소로 가려면 도심 쪽으로 접근해야 하기에 탑니다. 이 때만 해도 컬쳐 나잇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빨리 이 빌어먹을 양말 좀 벗고 발 씻고 편히 쉬자는 생각 뿐이었지만...




 엥!? 이거 완전 5515 버스 아니냐?










 아이슬란드에서 버스 타면서 좌석이 꽉 찬 것도 본 적이 없는데 입석까지 꽉 찼습니다. 옆에 앉은 10대로 보이는 남자애한테 물어봤는데, 대부분 축제 가는 것 같다고... 이 축제가 고로케 대단하단 마뤼야? 갑자기 그래도 축제 보고는 가야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슬란드에서 보낼 날이 이제 만 이틀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이대로 끝내기는 원통해 ...!




















꼐속














아이슬란드 여행 다섯째날(1): 2015년 8월 22일, 토요일




 어제의 실패를 곱씹으며 저는 잠에 들었고, 그렇게 잠을 자고, 잠을 자다가 아침에 일찍 깨어났습니다. 시각은... 오전 8시였나.










 그런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저는 다시 잠에 듭니다. ^_^ ;; 으으으으으으 역시 침대가 짱이야 하면서 다시 잠에 든 저를, 여기서 묵은 이래 처음으로 쓰란두르 씨께서 깨우셨습니다. 갑자기 문에서 노크소리가 나더니, 오늘 저녁에 레이캬비크 컬쳐 나잇, 그러니까 문화의 밤 축제가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저는 몽롱한 상태로 침대에 앉아 그 말을 듣고는 아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생각하면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아마 이 때가 오전 8시 정도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출근 전에 알려주신 셈이죠.










 



 그러나 ...



















나의 수면욕은 끝이 없고


같은 취침을 반복한다.













 ...



 저는 침대에서 헤드뱅잉, 스트레칭, 괴성 지르기, 온몸운동 등과 유사한 동작을 하며 반-수면 상태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방문 밖으로 아주머니께서 말을 거십니다. 투나잇 이즈 레이캬비크 컬쳐 나잇! 맞아 그랬었지. 알았어요. 부군께서도 그리 말씀하시더이다. 그런데.......
















투데이 시티 버스 이즈 프리!!











왓??????????














 잠이 갑자기 달아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틀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갑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진공청소기를 끄시고 말씀하십니다. 투데이 올 시티 버스 이즈 프리. 버스가 다 공짜라구요. 그런데... 그러면...


















이건... 이건 어떻게 되는건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흐-뭇














 아주머니께서는 오...오... 말하지말걸그랬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만 어차피 버스 타면 알게 될 거... 미리 말씀해주시려는 따뜻한 마음만이라도 감사하게 느끼는 심정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뭐 따지고 보면 내가 돈 더 손해보는 건 없잖아요? 덜 손해볼 순 있었겠지만... 진짜 저의 아이슬란드 여행은 삽질의 연속인 듯 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삽질은 아직 안 나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오늘 저의 일정은 헬가펠 하이킹으로 자기 전에 생각했는데... 축제를 가야 하나... 생각합니다. 보니까 낮에도 재미있는 이벤트가 많더라구요. 그렇지만 어차피 Culture Night이라서 밤에 봐도 괜찮겠지...하는 생각으로 일단 헬가펠부터 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지금 쓰다 보니 알았는데 사진 제한이 한 번에 50장이고 여러 번에 걸쳐 업로드하면 50장보다 더 많이 되네요. 이걸 왜 이제 알았지... ㅠㅠ 역시 사람이 난관에 부딪히면 길을 찾게 되는 것인가...











 헬가펠(Helgafell)이라는 이름의 산은 아이슬란드에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구글에 처음 헬가펠을 검색하시면, 아이슬란드 남부 해안 베스트만 제도에 있는 헬가펠을 먼저 보여줄 겁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헬가펠 중에 하프나르피외르뒤르에 있는 헬가펠을 선택하시면 저 위치가 나올 거에요. 레이캬비크에서 남쪽, 해발 고도 약 300미터 가량의 산입니다. 한국 기준으로 그리 높은 고도는 아니지만, 아니지만...






 아무튼 쓰란두르 씨께서 말씀하시길 걸어서 갈 만하고 로컬들이 하이킹으로 꽤 가는 산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하프나르피외르뒤르까지는 레이캬비크에서 가는 시내버스가 있어요. 그래서 시내버스를 타고 간 다음,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려고 합니다. 헬가펠 산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걸어가야 할 거리는 7.8킬로미터! 으아아 조금 걱정이 되는 거리긴 하지만 뭐 그닥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니까, 망설임 없이 가기로 합니다. 기다려라 헬가펠 내가 간다...!















 역시나 숙소 앞에 나와 시내버스를 타는데, 자그마치 시내버스 요금통을 종이로 덮어 놨었습니다. 확인사살 감사합니다 ^_^;;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들어올 때 봤던 이케아. 다시 보게 되네요. 뭔가 굉장히 멀리 온 느낌 ^_^;;










 버스를 갈아타는 피외르뒤르 정류장. 항만에 접해 있습니다.











 이렇게 생긴 항만에 접해 있습니다 ^_^;;









 레이캬비크는 큰 아파트는 없으면서 낮은 건물이 많아서 그런지, 인구 20만의 수도권인데도 꽤 멀리까지 확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변두리에 가도 건물만 봐서는 변두리라는 느낌이 안 오네요. 아무튼 남쪽으로 가면서 몇 번의 회전 교차로를 지나다가...














 내렸습니다. 오오.















 사실 여기보다 더 남쪽에 버스정류장이 단 하나 더 있었는데, 이 도로가 아니고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걸 파악을 못하고 여기 내린 거였습니다. 덕분에 왕복 합쳐서 600미터 정도는 더 걸은듯 ^_^;;




 이것은 도로 좌측의 광경. 진짜 도시가 끝나는 곳까지 오니 좀 변두리같은 느낌이 들긴 합니다. 원경의 산은 여전히 멋짐ㅠㅠ

















 그리고 이제..



 걸읍시다.
















 걸으면서 뜯어 먹는, 마트에서 산 빵쪼가리. 뜯어먹읍시다. 근데 뜯어먹다가 빵쪼가리 땅에 떨어트리면 가슴아픔...




 여기서부터 길 양쪽에 모두 집이 하나도 없어요. 



 게다가 걷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기껏해야 자전거 타는 사람 있고, 대부분은 차로 다녀요. 그런데 저 혼자 걷고 있자니 굉장히 뻘쭘하면서 외롭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어폰도 안 가져갔었어요 ^_^;;



 중간에 있는 갈림길. 중간중간에 갈림길이 많고, 차량들도 저 쪽으로 꽤 들어갑니다. 물론 '꽤'는 아이슬란드 기준이에요. 




 지나가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 여기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집보다는 농업용이나 축산용으로 지어 놓은 건물들 같습니다.







 드디어 시야가 탁 트이고... 저 앞에 보이는 것이 헬가펠인가 ...?


 

 올라갈 생각하니 설렙니다.


 


 





 또 갈림길.





 갈림길이또...






 길에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이지만 그래도 차가 좀 지나다니는 것 보면 이 정도면 로컬들한테 인기 있는 것 맞는 것 같습니다 ^_^










 ... 어제 겪은 똥피하기의 기억이 새록새록







 아 진짜 걷는 사람 저밖에 없어요. 우울하다. ㅋㅋㅋㅋㅋㅋㅋ한 절반 쯤 온 것 같은데, 온 몸이 더워 땀이 납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헬가펠의 자태.




 아이슬란드답지 않게 너무 푸른 것 같아서 찍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엥?







 맥주 캔, 담뱃갑 등 쓰레기들이 자꾸 눈에 띄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으으 이 아름다운 자연을 이런 식으로 망치다니 ㅠㅠ





 푸르른 곳을 지나자 다시 이끼 필드... 정말 아이슬란드의 지형은 변화무쌍하네요  ^_^




THE POJANG DORO'S END




 포장이 끝나는 곳. 포장의 끝. 저 지점을 지나고 나서 찍어서 그런데 포장이 시작되는 곳이 아니라 끝나는 곳 맞습니다.




 

 이쯤 왔는데도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아서 저는 멘탈이 나갑니다. 하긴 겜돌이 IT중독 인간이 인터넷도 안 되고 사람도 한 명도 없고 지형마저 끊임없이 단조로운 곳에서 혼자 터벅터벅 걷고 있으니... 으아아아아아





 좀 가까워진 것이 느껴지는 헬가펠! 점점 커집니다. 하긴 고도가 300미터지. 오른쪽에 있는 산은 구글 맵으로 보면 헬가펠 서쪽으로 해발 고도 100~200미터 가량의 산맥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가까운 산인 것 같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대지에 뜬금없는 흰색 대문. 





 터벅터벅, 힘 풀린 다리로 최후의 갈림길을 지나,




 드디어 헬가펠이 눈앞에...!





 헬가펠 주변 지도입니다. 하이킹로 가꾸어 놓은 것 인정합니다. 하긴 인구 33만 아이슬란드에 인구 5천만 한국 정도의 편의를 기대하면 안 되죠. 표지판 하나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헬가펠 2.8km...!







 사실 쓰란두르 씨께서 처음 헬가펠을 소개해 주셨을 때는 걸어서 아예 남쪽 해안까지 갈 수도 있다고 말씀하셔서 읭? 했는데 여기까지 2시간도 안 걸렸으니까 무리는 아닌 것 같아요. 점심 저녁 먹을 것 챙기고 부지런히 걸으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쪽 해안에 가도 잘 곳이 없다는 것... 그러니까 도시가 없어요. 뭐 롯지 같은 것들 있을 법 하긴 한데 찾아보질 않아서... 가장 가까운 도시...또는 마을 그린다비크까지 가려면 정말 부지런히 새벽부터 밤까지 걸어야 할 것이고, 지도 오른쪽 하단의 Strandakirkja는 정말 교회 건물 딱 하나만 있는 곳이고(...) 더 동쪽으로 가면 민가인지 축사인지 건물 몇 개가 보이네요. 아무튼 그냥 남쪽 해안에 닿는 것 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이 안 되는 동네입니다. ㅋㅋㅋㅋ



 

 헬가펠부터 클레이파르바튼, 그리고 바로 아래의 남쪽 해안까지는 모두 자연 보호 구역입니다. 만약 제가 시간이 충분했다면, 그러니까 하루를 통째로 하이킹에만 썼다면 클레이파르바튼 호수 정도는 갔을 것도 같아요. 어제 갔더 엘리다바튼보다 훨씬 넓은 호수인데다가 주변은 훨씬 더 황량하고 깨끗하니 경치가 멋질 것 같습니다. 어쨌든 컬쳐 나잇도 가야 하는데다가 힘이 빠지...고 있던 저는 클레이파르바튼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아무튼 위의 표지판을 따라 우측으로 가서 헬가펠에 올라가려 하는데...



 우왕ㅋ굳ㅋ




 연못에 떨어지는 빗줄기들 보이시죠?




 비가... 옵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물러날 수는 없는 법...!









...강행 돌파한다..






 훗. 이래야 내 여행답지. 방수는 안 되지만 따뜻한 후드 모자 눌러쓰고, 가방에서 우산 꺼내들고, 앞으로 전진합니다.




 경로를 나타내는 듯한 주황색 폴. 용암의 흔적이 남아 있는 평원에 외로이 서 있습니다.













 두 철망 사이로 길이 있어서, 저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왼쪽 철망은 수질 보호 구역을 둘러싸고 있는 듯해요. 오른쪽 철망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_^;;








 수질 보호 구역. 





 비가 많이 옵니다 ㅠㅠ 으아 빗줄기가 갑자기 쏟아지는데 아이슬란드 와서 이렇게 비가 제대로 내리는 거 처음 본 듯 합니다ㅋㅋㅋㅋㅋ 우산을 제대로 받쳐들고 점점 더 높아지는 헬가펠을 향해 전진합니다. 부츠도 등산화도 뭣도 아닌 저의 한심한 밑창 떨어진 뉴발 스니커즈는 물을 너무나도 잘 흡수하네요. 발이 시원해집니다. 아아 신나라...




 헬가펠 하이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듯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과 젊은 여성이었는데 아마 모녀가 아닐까 싶네여... 인사하고 지나오다가 아 도저히 이걸 계속 가야 하나? 싶은 생각, 회의감이 너무나도 들어 뒤를 돌아본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돌아가자니 너무 부끄럽죠.





 조금 더 가니 나타난건 어마어마하게 펼쳐진 용암 평원. 아아 검고 거대한 용암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계속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헬가펠...!




 올라가는 길이 딱 봐도 가팔라 보이는데, 다가가니까 더 가팔라 보입니다.




 정말? 정말 올라갈 수 있을가? 이렇게 비도 오고 미끄러운데,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는 땅을 짚어 가며 올라가야 하는데, 신발이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밑도 끝도 없는 걱정이 저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시도도 안 해보고 돌아갈 순 없죠. 올라갑시다.






 ... 그런데 처음 보이던 그 길을 나타내던 형광 막대는 어디 갔지..?






 한 3분 정도 올라왔나, 중턱도 안 되었는데도, 뒤를 돌아보니 황량한 평원이 산들 사이에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말 잘 왔구나, 잘 왔구나, 올라오길 잘 했구나, 하고 소리내어 말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잉여로운 모습만 보이던 제가 드디어 뭔가 해냈다 싶어 괜히 감동이 밀려옵니다. 솔직히 아무 일도 아닌데...



 

 그러나 올라가는 길은 험난합니다. 눈만 덮여 있으면 백운대 올라가는 길 같았을 것 같네요. (엄격 진지 근엄)


 

 



 

 그러다가 잠깐 완만해지는 부분이 나오더니 ...

 


 

 

 오오... 게다가 올라오니 비도 그쳤습니다.

 


 

 

 헬가펠 산 중앙에 있는 분지입니다. 한국지리 시간에 배우는 울릉도의 나리 분지같은 분지인 것 같네요 ^_^; 주변은 높게 솟아오른 능선이 둘러싸고 있는데, 분지는 참으로 평평합니다.

 


 

 

 그러나 정작 올라가는 길은 분지는 지나지 않습니다. 뭐 이건 정상으로 가야 하니 당연한 건가... 앞 사람들의 발자국을 좇아 열심히 따라갑니다.


 

 

 기껏 올라왔더니 내려가는 곳도 있고 ㅠ_ㅠ

 


 

 

 아아 왼쪽 아래에 손가락이 찍힌 게 너무 화가 나긴 하지만, 그걸 빼면 이게 제 시야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인 것 같습니다.

 

 헬가펠의 넓은 화산 분지, 그 아래에 있는 제가 지나온 황량한 용암 평원, 그리고 멀리 보이는 다른 산맥들과 세계의 끝...


 

 

 세로로 찍어봤습니다. 아무래도 사진에서는 고도 차이가 잘 안 드러나는 것 같네요.


 

 

 그런데 저는 이 쯤에서 길을 잃습니다. 딱히 길이 보이지도 않고 발자국도 조금씩 안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주변에는 다 험난한 지형들 뿐이네요...


 

 

 제 쪽에서 바라본 분지 왼편인데, 역시 올라갈 곳은 못 되는 듯 합니다 ^_^;;


 

 

 그러다가 이 곳은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여기도 경사 가파르지만, 밟을 만한 곳들이 꽤 보이네요. 이 곳으로 정하고 올라가는데...

 

 

 

 

 좀 올라가니까 너무 말도 안 되게 가파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네 발로 기어서 겨우 겨우 올라가게 됩니다.

 

 올라가다가 너무 힘들 때마다 아래쪽을 바라보면 힘이 납니다.

 

 

 

 

 

 

 

아아...

 

 

 

 

황량하다 황량해! 하하하.

 

 

 

 그야말로 황량함 덕후가 되어버린 저의 내면이 저를 계속해서 앞으로, 위로 끌고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_^

 

 

 

 

 

 

 

 

 


 


드디어 올라선 고지!

 

 

 

 

 

 

 

 

 

 

 

 제가 올라온 위험천만하게 가파른 경사로를 되돌아보자니, ...

 

 

 

 

 

 

 

 

 

 

 

 

 


 태평양 전쟁에서 이오지마 섬을 점령한 미군이 섬의 꼭대기에 성조기를 세우던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으아 산 중턱밖에 안 올라왔는데 쓸 데 없이 감동먹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한국에도 정말 아름다운 산이 많지만, 한국은 나무가 많고 산도 많아서 정말 높이 올라가기 전까지는 내가 높이 올라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힘들죠. 그런데 헬가펠은 중턱에만 다다랐는데도 정말 멀리까지 시야가 닿으니, 마치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 느낌 ㅠㅠ

 

 

 

 

 

 

 

 

 

 

 

 

 

 

 

 

 

 

 

 

 

 

 

 

 

 

 

 

 

 

 

 

 

 그런데 ... 이런 감격도 잠시

 

 

 

곧 일생일대의 위기가 들이닥치는데...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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