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 일주일 간 이유도 없이 그냥 책만 읽었다. 나에겐 아무래도 학자보다는 딜레탕트가 어울리는 것 같다...

1-1.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은 너무 대단해서 한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전율이 일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이런 건가. 출판사의 횡포로 절판되어 살 수 없다는 게 아쉽다.

1-2. 어제 읽은 건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한 책 안에 4개의 중편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마지막 하나 빼고는 모두 사랑과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 있는 초기작 '가정의 행복'은 평범한 구성으로 흘러가지만, 남녀가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다시 권태를 느끼다가 진정한 부부간의 행복을 깨닫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로 성욕이 엄청났던 톨스토이는 인생의 후반기에서 더 이상 정욕이 가정...에서 제어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크로이체르 소나타'와 '악마'에서 주인공은 모두 파국을 맞이한다. 마지막 중편인 '신부 세르게이'는 주된 주제가 성욕은 아니다.
비록 자신의 지나친 성욕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톨스토이의 금욕적 세계관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그 금욕의 행복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욕정으로 인한 파멸을 그린 두 단편들은 톨스토이 특유의 심리 묘사 때문인지 정말 강렬하게 남았다. 다음에 감상실에 가면 꼭 꼭 크로이체르 소나타 1악장을 들어야겠다.

1-3. 장은진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전국의 모텔을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주소를 알아 편지를 쓰는 '편지여행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빨리 읽힌다. 이 책을 읽고 진심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휴대폰 번호 대신 주소를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1-4.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오웰은 프랑코에 맞서 총을 들고 스페인으로 뛰어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리스 독립 전쟁 때도 바이런이 총을 들고 뛰어들었다.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들에서, 흔히 선하다고 여겨지는 편에 작가나 예술가들이 목숨을 바친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벌어지는 전쟁들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는데, 전쟁이 산업화되고 총력전화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부분의 전쟁들이 제1세계 외부에서 벌어지기 때문인지. 아무튼 역시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오웰은 목숨을 걸고 목에 총을 맞아 가면서까지 싸웠지만 줄을 잘못 탔다는 이유만으로 공산당 정권의 탄압을 받아 프랑스로 도주하고, 잘 알듯이 스페인은 파시즘화된다.

1-5. 『빅 히스토리』. 한국어로 옮기면 거대사. 미국에서 빌 게이츠가 후원하는 중고등학생 대상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중등교육에서 빅뱅부터 지구의 형성, 지질, 진화, 그리고 문명의 발전에까지 모든 것을 연관지어 다른 학문들과의 관계에서 생각하도록 한다는 것이 놀라웠고 부러웠다.

1-6. 류성룡, 김시덕 역해『징비록』. 징비록은 임진왜란에 관해 류성룡이 쓴 사서인데, 읽으면 임진왜란에 대해 류성룡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느낄 수 있다. 매우 두꺼운데 어차피 한문은 안 읽으니까 생각보단 양이 적고, 역해가 본문보다 양이 많다...

1-7.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읽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서 그냥 덮었다. 대충 한 챕터를 다 읽으면 무슨 소린지는 알겠는데, 한 문단씩은 뭔 소린지 모르겠다. 정치철학 전공자들만 읽어야 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집중력이 부족해서 못 읽었나 싶기도 하고. 이런 책을 신문 광고에 내다니... 생각보다 우리나라 대중의 독서력이 쩌나 보다.

2. 그리고 무엇을 또 읽을까 생각하지만 도서관 검색해보면 지금 빌려가서 없는 게 너무 많아서, 어차피 생각나는 것들, 역사나 문학이나 한번에 다 빌리긴 힘들고 조금씩 조금씩 빌려와야 할 것 같다.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조급해하지 말고 많이 읽자.

3. 첫눈이 온다. 부대 앞에서 눈발이 엄청나게 휘날린다.

4. 특박이 얼마 안 남았는데 벌써 특박 끝나고 느껴질 공허함이 생각나는 걸 보면 정말 내가 권태에 시달리고 있긴 한가보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8점
장은진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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