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매혈기는 예전에 읽었다. 입대하고 논산에서는 정말이지 정신없고, 하루하루 생각할 시간도 없었는데, 경찰수련장에 오니까 꽤 여유가 생겼다. 하필 내가 온 날 뒤에 현충일이랑 주말이 연달아 있어서 제대로 된 훈련도 안 하고, 군기만 쓸데없이 잡으면서 잉여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었다. 생각보다 꽤 빨리 공중전화 통화를 풀어줘서 전화번호 아는 친구들한테 다른 전화번호를 묻고 또 물어서 계속 전화를 했었다. 그리고 여기 너무 지루하다고, 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징징댔다. 다행히 그 다음 주부터 제식이니 체력이니 방패술이니 훈련이 시작되어서 책 읽을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고맙게도 부모님이 공부라도 하라고 한자사전과 영어단어집을 보내주셨고, 그 뒤에 자대배치 받자 마자 친구 한 명이 이 책을 보내 주었었다. 자대에서 눈치는 보였지만 너무 잘 읽혀서 쉬는 시간에 순식간에 읽어버리고 말았었다.


 사실 나는 중국 현대 소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아니, 이전에 소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주로 읽는 책들은 역사나 교양과학 책들이거나, 그런 저자들이 쓴 에세이류니까. 중국 현대 소설은 완전히 문외한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앞으로 중국 현대 소설을 좀 읽어 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삼관매혈기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시종일관 담담하면서도 희극적인 어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허옥란이 허삼관의 아이를 낳으면서 허삼관을 원망하는 장면이나, 허옥란이 허삼관의 구박(구타?)을 당할 때마다 대문밖에 앉아서 하소연을 하는 장면 등등. 사실 장면으로 굳이 따지지 않아도 책이 전체적으로 허삼관이 피를 팔아서 생계를 부양하는 내용이고, 중국 현대사의 우여곡절과 그로 인한 보통 사람들의 생계의 곤란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인데도. 나는 이러한 희극적인 서술에서 일반 민중이 고난에 대처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고통스러운 것을 계속 고통스럽다고 질질 짜봐야 긴 인생에서 큰 소용이 없다는 걸 노인 분들은 알고 있다. 부조리나 고난이 심했던 과거라면 당연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판소리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어렵고 슬픈 일도 가능하면 웃음으로, 웃으면서 넘기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허삼관매혈기에서의 서술도 이를 반영한 것일 거라 생각했다. 담담하면서도 희극적인 어투 뒤에 펼쳐지는 허삼관 가족과 민중들의 생활은 결코 희극적이지 않으므로. 


 허삼관매혈기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역시 주인공인 허삼관이다. 그는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인 사람이다. 아내를 구박하고, 불륜도 하고, 일락이에게 모질게 대하는 동시에, 때로는 가족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걸고 피를 파는 사람이다. 읽으면서 처음엔 모순적이고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니 이게 보통 사람들이었다. 충동에 이끌려 실수를 하기도 하고, 성품이 안 좋아서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굴기도 하면서,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고 사소한 공공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하기도 하는 사람들. 마지막에 허삼관이 피를 팔면서 상하이로 가는 부분은 그래서 더 찡했다. 그 부분은 정말 책에 적힌 카피처럼, '세상 모든 아버지에게 건네는 따뜻한 황주 한 잔'과 같은 느낌이었다. 작가는 이 부분을 결함도 있고 편견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하기도 하는 모든 아버지들을 위해 썼을 것이다.



덧. 독후감을 쓰기 전 기억을 되살릴 겸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놀랐다. 허삼관매혈기가 하정우 감독 및 주연의 영화로 나온다고 한다. 나중에 나오면 꼭꼭 봐야지.


허삼관 매혈기 - 10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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