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볼륨은 가벼우면서도 흥미로운 책도 오랫만이다. 260페이지 가량에 글씨 크기도 큰데 문장 하나하나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2012년 여름학기 수업에서 처음 소개받은 책인데 그 때는 큰 관심은 없다가, 입대^_^ 하고 나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순식간에 독파했다.

 


 

1. 머리말

 

 이 책은 고종과, 그가 주도하였던 광무개혁, 그가 주도해서 세운 대한제국에 대해서 정말 국내 유수의 학자들이 대립하며 토론하며, 낱낱이 따졌던 기고문들을 한 데에 모아 놓은 것이다. (제목 한 번 정말 잘 지었다.) 정확히는 교수신문에서 2004년에 지면상으로. 책은 약 20여 개의 기고문들과 마지막 1회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서울대 경제학부 김재호 교수가 이태진 당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가 집필한 『고종시대의 재조명』이라는 책에 대해 비판적인 서평을 게시한 것이 시작이었다. 김재호 교수는 이태진 교수의 저서에 대해 '조명이 너무 세다.'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에 대해 이태진 교수가 반박 기고문을 쓰면서, 장대한 논쟁이 시작된다.

 

 신문 기고문이라는 특성상 방대한 내용이나 근거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강렬한 표현을 구사하며 자신들의 논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마치 눈앞에서 세기의 토론이 벌어지듯이.

 

 


2.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이태진 교수의 고종 옹호론

 

 이 논쟁이 갖는 성격을 이해하려면, 한국 근대사를 바라보는 상이한 두 개의 시각, 즉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내재적 발전론이란 말 그대로 한국의 근대가 외부의 영향 없이도 '내재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일제의 침략 이전에도 조선 후기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맹아가 형성되고, 계급 사회가 철폐되는 등 근대가 자주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는데, 일제의 침략으로 그 내재적으로 발전하던 근대가 왜곡되었고 식민지 체제가 성립하였다는 주장이다. 이는 서울대 국사학과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견해이며,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근대 태동기'라는 단원까지 따로 만들면서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견해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일제 침략 이전에 조선왕조는 이미 내재적 파탄 상태에 이르렀으며, 식민지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근대화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선왕조는 이미 1800년대에 이르러 극심한 흉작, 빈발하는 민란, 문란한 정치로 인해 19세기 중반에는 체력이 소진되어, 외세의 침략 없이도 멸망할 운명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즉, '내재적 발전'이 아니라 이미 '내재적 파탄'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경제사학자들이 실증적 통계자료들을 무기로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견해이며, 이 책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교수들도 대부분 경제사학자들이다. 

 

 다만 유념해야 할 것은,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사이에 (또는 그 밖에) 많은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이다. 일제가 조선을 위해서 은혜를 베풀었다는 식민지 시혜론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합리적 토론에서 당연히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재적 발전론도 (맹꽁이 서당에서 봤던 것 같은) 정말 조선이 정조가 살아있었다면 미국보다 더 쎄졌을거라거나... 이런 차원을 논하는 게 아니다.

 

 한편 이태진 교수의 견해는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과는 조금 다르다. 이태진 교수는 조선 후기의 전체적인 근대화 추세보다는 '고종'과 '대한제국' 시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 시기에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개항 이전의 시기들보다는, 개항 이후 고종의 적극적인 대처로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근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내재적 발전론과도 다르면서, 식민지 근대화론과는 충돌하는 견해이다. 이태진 교수에 따르면, 근대화의 시작은 고종의 개화정책이고, 본격적 시작은 광무개혁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종의 개화정책이 신속하게 추진되자 이에 경계심을 품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조기 병탄하였다는 것이다.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굉장히 논쟁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고종황제


 


 

3. '대한제국 논쟁'과 고종

 

 책은 대한제국의 전방위에 대해 논쟁을 멈추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경제성장으로부터, 고종의 정치이념, 민국정치 이념이 근대성을 띠고 있는지, 고종은 근대적 개명군주인지, 개화기 급진 개화파는 일본의 사주를 받은 친일 분자였는지 개화의 선각자들이었는지, 고종의 국정 운영은 근대적이었는지, 궁내부 위주의 재정 운영은 전근대적 재정 운영을 반영하는 것인지 왕권 강화를 노렸던 고종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인지. 이태진 교수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 이외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논쟁은 매우 심화된다.

 

 책에서조차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이므로 내가 이 논쟁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독자니까 여기다가 내 생각을 써 놓고자 한다. 나는 이태진 교수가 제시한 고종에 대한 견해들이 다 옳다고 하기엔 너무 섣부른 것 같지만, 기존에 지속적으로 견지되어 왔던 고종에 대한 암약설 등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하고 고종과 그의 측근들이 진행한 근대화 사업들의 위상을 적극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사를 배우면서도,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서는 평소에 회의를 품고 있었지만 고종이 암군이었다는 것은 그냥 대전제로 받아들이던 차에, 이태진 교수가 제시한 사료들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학설들은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사실 제도권 근현대사에서 고종의 위상은 매우 낮다. 일반적으로 개화기 초기는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대립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고, 중기 이후에 급진 개화파가 개화를 주도해 나가고 고종은 끊임없이 개화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만 묘사된다. 그러나 전제국가였던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에서 고종과 그를 중심으로 한 이용익 등의 측근세력의 역할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대원군-민비-독립협회 중심으로만 역사를 이해하려다 보니 항상 어디가 비고 허전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고종이라는 인물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읽어나가다 보니 근현대사의 빈 조각이 맞아 들어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에 비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견해는 지나치게 고종에게 엄격한 느낌마저 들었다. 경제적 수탈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억압이 있었던 식민지 시대에 '근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하면서도, 주변 외압에 시달리면서 8년간만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고종에 대해서는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폄훼하는,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느낌이었다. 자신들이 근대화 지상론자가 아니라는 김재호 교수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당시 민중이 겪었던 고통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화폐정리사업과 토지조사사업을 예찬하는 부분에서는 근대화 지상론의 그늘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통계적 수치로 역사를 그려내려는 작업을 하고 있고, 그런 작업들이 성과를 얻고 있고, 그런 성과들로 근거를 제시하여 역사를 서술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 대해 찬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국사까지만 배운 나로서는,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아직 실증적인 연구방법이 정착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처럼 기후, 지질, 식생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역사서는 아직 보지 못한 것 같지만, 흩어져 있는 여러 통계자료들을 모으고 추계하는 작업으로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으로도 대단한 발전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런 자료들의 해석 과정에서 오직 숫자만을 고려하려는 것 같은 점은 아쉬웠다. 숫자는 분명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숫자를 고려하면서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도 같이 고려해야 통합적인 역사 서술이 되지 않을까. 현재 이태진 교수의 『고종시대의 재조명』을 읽고 있는데, 이를 다 읽고 나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저서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논쟁을 살펴보면서 느꼈던 것은 양쪽이 동의하듯이 어떠한 편견으로 결과를 미리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이건, 내재적 발전이건, 고종 주도의 근대화이건, 셋 중 하나는 답일 수 있고 셋 모두가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민족주의적 감수성이 손상된다고 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처음부터 틀렸다고 재단하거나, 자신의 편견에 합당하지 않는다고 내재적 발전을 틀렸다고 재단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분명히 양 쪽 모두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그런 편견이 느껴졌다.   양 쪽 모두 역사적 담론들과 실증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편견을 버리고 소통해 나간다면 인식의 간극을 조금씩은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4.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이 책을 온전히 감상하기에는 나의 끼적끼적댄 부분들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짧은 기고문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호소력있는 정말 인상깊은 문단들이 많다. 이러한 구절들을 살펴보기만 해도 책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될 것이다.

대한제국 근대화 사업은 더 많은 발굴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 사업은 일제 침략으로 미완에 그쳤지만 우리의 자학자조를 걷어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대한제국은 무능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근대화 사업의 빠른 성과에 대한 일본의 조기 박멸책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 이태진,「식민사관의 덫을 경계해야 한다」, 책 32p

앞날을 내다볼 수 없이 전개됐던 한국근대사를 친일이라는 현재의 잣대 하나로 재단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대한제국 재정의 난맥상과 악화(백동화) 남발에 의한 인플레이션마저도 일제의 '국제선전전'에 의해서 날조된 것이라고 사고하는 이 교수에게 객관적 사실 인식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주장하듯이 국왕만 홀로 남은 역사에서 우리는 과연 '자학자조'를 싯어내고 자긍심을 되찾게 될 것인가. 역사 연구가 어느 개인을 지목해 책임을 지우고 청산하는 것으로 전락해서는 앞날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면 대한제국 '국제'에서 규정하고 있는 유일한 주권자 고종황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 김재호,「대한제국에는 황제만 산다」, 책 40p

 

김재호 교수는 나의 작업을 '고종 홀로 남기기' 역사라고 했다. 이것은 큰 오해다. 내가 그동안 고종을 주로 거론한 것은 이 시대 역사 왜곡이 그의 무능을 핵심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역사학도가 근대화란 시대적 대과제를 황제 1인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겠는가. 그에게는 그의 노선을 지지하면서 소리 없이 임무를 수행한 많은 신료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변방 상공인 출신(이용익), 서얼 출신(이채연) 등 비 양반 출신들이 많았다. 근대화의 주역이라면 김옥균 같은 존재보다 이들이 앞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 이태진,「'고종시대' 악센트는 '시대'에 있다」, 책 46p

 

우리 사회는 식민지시대에 개시된 근대 경제성장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 식민지시대의 과거는 제도의 연속성을 통해서 현재와 굳게 연결돼 있다. 이 점을 숙고한다면 '내재적 발전론'이 주장하듯이 식민지시대에 개시된 근대 경제성장 과정을 우리 역사에서 소거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장기역사에 통합해야만 한다. 이 때 과거는 외국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낯선 이방인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식민지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 김재호,「누가 근대화 지상주의자인가?」, 책 58p

인간 사유의 역사에서 근대란 무엇인가? 이 어려운 질문에 부닥칠 때마다 나는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오랜 전통에 따라 자연과 사회의 분리, 정치와 경제의 분리 또는 공과 사의 분리 등과 같은 명제로 평범히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상식으로서의 근대에 비추어 볼 때 앞과 같은 근본주의적인 성리학의 교의체계는 근대가 아니다. 지난 50년간 한국의 사회과학과 역사학이 이른바 실학이란 장을 펼쳐 놓고 18~19세기의 선각자들에게서 성리학을 넘어서는 사유방식이나 적어도 그 조짐을 발견하고자 그렇게 애써 왔던 것도 다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이 교수는 따지고 보면 성리학의 교의에 더 없이 충실한 민국이념을 근대 지향이라고 함으로써 우리들의 오랜 상식과 전통을 간단히 일축하고 있다. 상식과 전통은 결국 어느 위대한 지성에 의해 무너지기 마련이다. 나는 이 교수가 그러한 위대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중인지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래서 나는 이 교수의 논문을 그 행간까지 몇 차례 뒤졌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상식으로서의 근대를 대체할 새로운 근대를 제시하거나 모색하고 있음을 확인하지 못했다.

 

- 이영훈,「고종은 여전히 소중화적 세계관에서 헤엄친다」, 책 96~97p

나는 이 교수가 주도한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의 성과를 주목한다. 학계는 이 책이 제시한 많은 통계 분석들을 크게 활용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 교수가 총설을 통해 재확인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이 글에서 수량 분석적으로 나타난 1896년부터의 반등세에 대한 해석은 빠져 있다. 그러면서 1860년대의 '위기적 형세'만을 가지고, 조선왕조가 "어떤 강력한 외세 작용이 아니라 모든 체력이 소진된 나머지 스스로 해체된 것"이란 엄청난 결론을 내렸다. 1890년대 후반 이후의 반등세를 건너뛴 이런 역사 규정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 이태진,「1896년 이후 반등세, 왜 그냥 넘어가는가?」, 책 113~114p

 

도대체 1873년 20세에 친정에 나서서 30여 년을 다스렸던 군주가 아무런 사상적 발전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1876년부터 이루어진 문호개방 과정에서 고종은 대체로 개방론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김홍집이 들여온 《조선책략》과 《이언》을 유생들의 천식을 개도한다는 명목으로 인쇄해 반포하도록 한 사람이 바로 고종이었다. 1882년 일본에서 조선 정부 내에서 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한 자들이 고종과 김옥균, 박영효 정도밖에 없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아관파천 이후에도 척사론자들의 요구에도 단발령의 취소를 거부했고 대한제국 수립 후에는 대신들의 단발을 강요하기까지 했던, 그리고 과거제의 부활과 연좌제의 재도입을 주장하는 보수세력의 요구에 끝까지 응하지 않았던 고종이 성리학적 도학군주를 지향했다고 주장하는 논리에서 고종의 의미를 철저하게 부정해 식민지화의 필연성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비록 실패했고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고종이 개명군주를 지향했다는 점은 인정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 주진오,「개명군주이나, 민국이념은 레토릭이다」, 책 128~129p

경제사학자들이야말로 일제시대 경제성장을 조선후기 이래 우리의 '장기' 역사와 완전히 단절시켜 '맨땅'에서 새로 출현한 것으로 보면서 고작 36년에 불과한 이민족 지배자의 '단기' 통치를 현대의 우리 경제와 통합시켜 보자는 의도는 무엇인가? 한국 현대 경제성장의 기원이 일제의 '효율적인' 식민 지배체제에 있다고 보는 것인지, 아니면 일제 지배체제의 경제적 효율성을 '극적으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대한제국은 부정부패와 비효율이 만연한 봉건왕국의 오명을 굳이 뒤집어써야 한다는 것인지 그 저의를 의심케 한다. 일제의 재정정리사업이나 토지조사사업이 가진 그 심각한 폭력성과 수탈성은 무시한 채 더없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듯한 외피를 입힌 통계 수치로 그 야만의 시대를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근대만 달성되었다면 그것이 이민족 지배자에 의해서건 아니건 상관없다는 태도를 우리는 근대화 지상주의라고 부른다. 혹자는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부패한 왕정이나 이민족 지배자나, 수탈자이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성으로 코스모폴리턴을 꿈꾸는 우리네 지식인 연구자들과는 달리 역사속의 보통 대중들은 오히려 소박한 동포애와 애국주의에 이끌려서 '나랏님'을 위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조선왕조의 유교 지식인들이 내내 중화 문명에 경도되어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듯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 역시 '근대'라는 또 하나의 우상에 갇혀 있는 것인 아닌지 걱정된다.

 

- 서영희,「일제의 폭력과 수탈 잊었는가?」,  163~164p

3·1만세시위운동 후,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헌법기초위원회는 새 국가의 국호를 조선공화국으로 준비했다. 그러나 대의원 회의에서 수개월 전, 대한문 앞에서 고종황제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일어난 함성은 곧 고종황제에 대한 온 국민의 충정을 보여준 것으로, 새 국호는 대한제국을 승계하는 대한민국으로 하자는 동의가 나왔다. 이것이 다수 의견으로 채택되고 임정 제1차헌법은 제4조에 대한제국의 영토를 승계한다고 명시했다. 백범 김구는 이 승계의식을 끝까지 지킨 임정 지도자였다.

 

- 이태진,「민국이념은 역사의 새로운 동력」, 198p

엉뚱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대한제국은 완전히 멸망하지 않았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다. 대한제국으로 집성된 조선사회의 문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호흡하고 있는 현대 문명을 밑바닥에서부터 규정하고 제약하고 있다. 그것이 역사인 것이다. 그 역사적 맥락을 실체적으로 잡아내고 현대 문명을 선진화시키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의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재규정하는 데 쉽게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렇게 되기를 똑같이 바라고 있지만 아직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거나 서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다투고 있는지 모르겠다.

 

- 이영훈,「논쟁을 마무리하며」, 216~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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