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1997년작『7번국도』를 읽었다. 13년 뒤에 다시 쓴『7번국도 Revisited』와는 비슷한데도 다른 느낌이었는데, 시간에 쫓기듯이, 그리고 익숙해서 막 넘기면서 읽느라 제대로 못 느낀 것 같다.

7번국도 Revisited의 메인 주제는 기억과 망각이었던 것 같은데, 7번국도의 주제는 그에 분노와, 더욱더 진해진(진했었던) 허무함이 더해져 있는 것 같다. 마치 요즘 일베 글들같이 (용법은 다르지만) '민주화'라는 단어가 이탤릭체로 강조되어서 조롱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데, 민주화 이후 우리 세대가 놓인, 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이기까지 했던 희망찬 미래상을 상실한 상황, 그렇지만 윗 세대는 그런 절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을 풍자한 듯하다. 낙원은 가짜 낙원이고, 우리를 대신할 놈들은 세상에널려 있다. 아버지 세대들이 만든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일 뿐이고, 우리에겐 다른 맥락과 방법이 있다. Revisited에서는 없어진 자주 등장하는 성 묘사나, '나' 또는 재현의 어두운 뒷이야기들도 그렇고, 그 외에도... 일단 다시 읽어봐야지. 

어쨌든 나에겐 Revisited 버젼이 마음에 드는데, 거의 40이 된 작가가 그나마 좀 더 원숙한 눈길로 청춘을 바라보고 있어서, 청춘의 짧음과 불완전함, 절망이 덜 드러나는 것 같고, 조금은 더 친절하고 따뜻한 눈길로 청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 책에서 말하듯이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나도 눈부셔서, 그 때의 일들은 나이 자체가 발하는 광채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스무 살을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스무 살은 더 먹고 뒤돌아 봐야 하는 걸까.

그리고 갑자기 몇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1. 김연수 작가도 어쨌든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비교적 어린 시절에는 지금보다는 미적으로나 뭐 조금 불완전한 문장들을 구사했다는 것이 김연수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레 생겼던 약간의 열등감 같은 게 아주 약간 해소되었다는 것. 2. 그리고 너무 급하게 소설을 읽고 나서 드는 찜찜한 같은 걸 느끼면서, 아무래도 교양서가 아니라 소설이야말로 여유 시간이 많이 남고 넉넉할 때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3. 아무래도 이제 잠시 현대 소설 읽기를 쉴 때가 된 것 같으니 이미 대출한 것들만 읽고 잠시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 마지막으로 4. 인생에 마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것. 이제 겨울인데 또 한 번의 겨울 마법이 오려나.

소설을 한 번 읽고 그 소설의 다른 버젼까지 읽었지만, 나는 아직 희망은 기억에 있는 지, 망각에 있는 지 모르겠다. 기억들을 학살하는 망각에 맞서는 것이 희망인지, 아니면 모든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후 나의 과거에 평화가 찾아오게 하는 것이 희망일지. 희망이란 둘 다에 있을 지도 모르고, 둘 중 어디에도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다음 휴무 때 다른 생각일랑 안 하고 천천히 읽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난 찜찜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다. 그리고 정기휴가는 웬지 3월인 것 같으니 나도 자전거여행!이나 가볼까.

마지막으로 7번국도에는 있는데 Revisited에는 없었던 것 같은 인상적이었던 구절.

결국 우리는 누구도 영원히 기억할 수는 없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은, 그러니까 영원히 기억할 수 없는 그 사람을 별들의 무리 속으로 보내어 그 별들의 무리 안에서 우리가 영원히 기억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게 만들려는 생각의 소산일 것이다. - 196p


7번국도 Revisited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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