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폭의 그림으로 부활한 탄청 현

왕여인의 죽음을 읽고


※ 이 포스트는 제가 2011년 1학기에 '동아시아문화의 성립과 발전' 수업 기말과제로 제출한 레포트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대체로 지배층의 역사이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지배층, 그 중에서도 왕이나 일부의 이름난 사람들의 경우만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사책에 이름을 올린 피지배층이라고 하면 만적이나 임꺽정처럼, 반역을 일으켰거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경우일 텐데, 이 경우도 결국 이들은 평범한 피지배층, 즉 민중의 모습을 반영하지는 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결국 교과서에서민중에 대한 묘사는 사회∙경제사의 일부 서술에 국한된다.


그러나 이는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 중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피지배층에 대해 과도하게 적은 비중만을 할당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많은 비판들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비판은 역사가 오래되진 않았지만, 아주 새로운 비판은 아니다.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935년에 쓴 시 「한 읽는 노동자로부터의 질문들(Questions from a worker who reads)」에서 어린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였는가?’라며 문제 의식을 노골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비록 조너선 스펜스의 저서인 『왕 여인의 죽음』은 민중의 역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이례적이지만, 매우 특별한 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단순히 민중을 조망했다는 것을 넘어서, 세 명의 관찰자와 함께한 서술이라거나, 중간중간에 삽입된 환상적 이야기 등 문학적 수사와 잘 짜인 구성을 통해 탄청(郯城) 현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에 생명을 부여하고, 덧붙여 지나친 전체사 추구를 피함으로써 아날 학파와도 다른, 그 자신의 미시사적인 독특한 위치를 획득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까를로 진즈부르그의『치즈와 구더기』의 사례와는 달리, 역사 탐구에서 미시사적 직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왕 여인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여러 미시적 사료들을 섭렵하는 전통적 방법의 도움을 받아 짐작컨대 청나라에는 왕 여인과 비슷한 여인들이 적지 아니 있었을 것 같고, 탄청 현과 같은 다른 수많은 현들이 존재했을 것 같다.’는 당시의 조망을 제시하고 있다.


 『왕 여인의 죽음』


탄청을 기록한 세 명의 관찰자

 

이 책은 총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중 첫번째 장은 이 책의 사료를 제공해 준 세 명의 관찰자에 대한 장이며, 나머지 네 개의 장은 이 세 명의 관찰자와 스펜스가 함께 그린 탄청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관찰자인 빙가참, 황육홍, 포송령은 모두 신사(紳士)층에 속하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각자 다른 시각과 경험, 표현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칫 단지 사료 제공자의 위치로 격하될 수 있었던 이들을 저자는 자신의 서술의 동반자로 격상시킨다. 많은 경우에 스펜스의 서술은 서술자의 이름이나 그 저술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렇기에 독자는 서술자로서 저자인 스펜스 뿐 아니라 빙가참, 황육홍, 포송령을 받아들이고, 친근하고 가까이 느끼게 될 뿐 아니라, 당시의 중국을 살아가던 사람들인 그들이 되어 직접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어 책에의 몰입을 강화한다.


이 세 명의 관찰자는 각기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빙가참은 거의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현지』를 통해 탄청의 분위기를 꾸밈없는 말로 묘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배경 서술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지의 서술만을 통해서는 잘 알 수 없는 빙가참의 매력은, 1장에서 드러나듯이 그가 삼번의 난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그 뒤의 그는 젊었을 때, 그가 몹시 좋아하던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반역을 일으킨 영왕 린의 밑에서 시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의 시를 더 이상 읽기를 거부했던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은 이러한 매력을 극대화한다. 그는 비록 청나라에 정복된지 얼마 되지 않은 한족이었지만, 동시에 그에게 진사 학위를 주었고 그가 지사로서 섬겼던 나라를 배신할 수 없었던 진정한 사대부였던 것이다비록 그는 황육홍과 포송령에 비해 개성은 떨어지지만, 그의 『현지』에서의 서술을 볼 때마다, 우리는 관직을 잃은 상태였음에도 나라에 충성하고자 했던 빙가참의 면모를 생각하게 된다.


황육홍은 빙가참이 지사 직을 부임 2년 만에 잃은 1670, 탄청의 지사에 부임한 사람이다. 그는 빙가참과 마찬가지로 탄청의 지사로서 열심히 일하였고, 회고록을 남겼다. 이는 지사로서 후임 지사들에게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지침서로서의 역할도 겸했다. 황육홍은 유능했고, 민중들을 사랑했던 것 같다. 성황신에게 메뚜기의 화를 막아 달라는 제사를 지낸다거나, 왕 산 도적단의 소탕, 왕 여인 살해 사건의 해결 과정 등에서 그런 모습을 알 수 있다. 특히 후기로 첨부되어 있는 재판 과정에서는 탐정처럼 직접 사건을 수사하며 추리 소설과 같은 흥미진진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황육홍도 탈세를 단속하는 데에서는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황육홍의 모습은 전근대 중국의 관리들에 대해 우리가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고뇌에 동감할 수 있게 하며 그 과정에서 기존의 편견은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포송령은 위의 두 명과는 다른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지사를 역임한 두 명과는 달리, 포송령은 진사 학위를 얻은 후에 숱하게 시험을 치렀으나 거인(擧人)의 지위에 이르지 못했고, 71세가 되어서야 하급 벼슬을 받았을 뿐이다.이런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가 저술한 『요재지이』를 통해 서술의 전면에 나타나는 그는 당시 중국인의 삶, 그리고 고독과 관능과 꿈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의 책에는 빙가참과 황육홍은 다루지 않은 성(), 반체제적 인물, 힘들었던 과부들의 삶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가 나와 있다. 그는 비록 전근대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수사도 뛰어나,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의 이야기가 전기(傳奇)성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늙은 노파와 젊은 여자의 이야기처럼 풍자와 함께 섬뜩한 공포를 주는 이야기도 있고, 추이 멍의 이야기처럼 전기성을 배제하면서도 잘 쓰여진 이야기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빙가참과 황육홍의 서술의 빈자리를 메우며 독자를 책 속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스펜스와 포송령의 합작의 절정은 왕 여인이 죽기 바로 전 잠에 빠져 들어갈 때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에 대해 상상일종의 몽타주 부분에서 극대화된다. 저자는 이 세 서술자들을 통해, 즉 빙가참이 제공하는 ‘배경’과 황육홍이 제공하는 ‘현실’, 포송령이 제공하는 ‘꿈’을 합쳐 ‘탄청 현’을 ‘토지’, ‘과부’, ‘분쟁’, ‘가출한 여인’이라는 주제를 가진 네 폭의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조너선 D. 스펜스 (Jonathan D. Spence)



네 개의 위기에 나타난 구성

 

스펜스가 그린 그림들은 기본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재난으로 고통받아 왔으며 1668년에 지진으로 폐허가 되기도 한 탄청은 그림의 매력적인 배경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배경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위기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위기들을 작은이야기라고 부르는 것은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고 하는 말이지 실제로 이 사건들에 연루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사건들은 절대적이며 치명적인 위기였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특별하지 않았던 네 개의 위기는 스펜스의 책을 통해 특별해진 것이다.


한편 네 이야기의 구성은 비슷한 모습을 보이지만, 획일적이지는 않다. 첫 번째 이야기라 할 수 있는, 큰 눈이 내린 이야기로 시작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다룬 제2토지에서, 저자는 빙가참과황육홍, 포송령의 자료를 활용하여 탄청이라는 현을 설명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탄청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경제적 어려움은 여러 자료와 묘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포송령의 이야기 중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등장 인물인 샤오어가 등장하는 이야기 이후, 황육홍(또는 두 읍장)이 현실에서 맞닥뜨렸던체납을 상대로 한 위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의 이야기인 제3과부부터『현지』 또는 배경 설명의 비중은 줄어든다. 물론 여러 과부의 이야기를 싣고 있으나, 이들을 다 합쳐도 포송령의 현명한 과부 시리우의 이야기하나보다도 비중이 낮다. 그리고 그 뒤에는 당시 탄청에서 벌어졌던(그리고 아마 황육홍이 처리했으리라 생각되는)펑여인이 겪은 위기가 등장한다. 이는 계속 이어져 분쟁의 경우 포송령의 추이 멍의 이야기와 황육홍이 왕 산 도적단을 소탕하는 내용이 한 장의 거의 전부를 차지할 정도이다. 5가출한 여인의 경우 포송령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늘어나 비중이 높아졌고 황육홍의 비중이 후기로 옮아가긴 했으나, 구성 자체는 비슷하다.


이는 즉, 저자가 독자들에게 제1장과 제2장 초반의 설명들을 통해 탄청이라는 무대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이후에는 그 무대 위의 배우들만 교체함으로써 탄청의 여러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당연히 제3장부터의 배경 설명은 그 분야에 대한 설명에만 국한되지만, 제1장과 제2장 초반의 설명은 포괄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이렇게 설정된 무대에, 저자는 포송령의 ‘꿈’과 황육홍의 ‘현실’을 번갈아 올리며 당시의 탄청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간혹 포송령의 이야기가 너무 길거나 자주 나오는 부분에서는오히려 포송령의 이야기가 그 장의 핵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제3장의 시리우의 이야기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비록 저자가 장의 가장 앞에 곧 다루어질 펑 여인의 이야기를 짧게 언급해 놓고는 있으나, 포송령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앞의 짧은 언급은 머리에 잘 남지 않는다. 그리하여 죽은 남편의 탐욕스런 친척들에게 용감하게 맞섰지만 아들을 잃은 비극적인, 그러나 비교적 평범한 펑 여인의 이야기는 조명을 덜 받게 된다. 이것이 스펜스의 단순한 실수인지, 아니면 당시 과부들의 경제적 문제로 인한 압박을 오히려 강조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후자라면 소기의 성과를 획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청률례』의 부작용으로 인한 과부에 대한 압력이 현존하는 당시의 탄청을 생각했을 때, 돈이 문제의 핵심이 되지 않는 시리우의 이야기는 당시 중국인들의 꿈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그에 비해 펑여인의 이야기는 중국인들의 현실이었고, 이 둘은 스펜스의 구성을 통해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펑 여인의 비극을 독자의 기억 속에 남기고 있다.

 


역사 서술의 새로운 지평

 

그러나 단지 개성있는 세 서술자를 통한 묘사, 또는 구성의 탁월함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왕 여인의 죽음』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이러한 성과는 결국 역사 서술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왕 여인의 죽음』은 미시사로서, 또한 문학에 가까운 역사서로서 기존의 역사 서술과 차별되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미시사로서의 『왕 여인의 죽음』

 

이 책은 민중의 삶을 미시사적 서술 방식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탄청의 5년에는 중국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큰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은 없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탄청에 애정을 쏟으며, 보통 사람들을 행동하는 인간으로, 역사의 주체로 서술의 중심에 끌어들인다. 비록 저자가 빙가참, 황육홍, 포송령의 붓을 빌려 탄청을 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펜스가 묘사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펑 여인이나 관 밍유, 왕 여인과 같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또한 넓게 본다면, 관직에서 쫓겨나 산 속에서 최후를 맞이했던 빙가참이나, 늙어서야 벼슬을 얻을 수 있었던 포송령 모두 대단한 사람이 아닌 일반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민중의 역사를 다룬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미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생활사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존에는 정치사나 기껏해야 경제사 정도의 책만이 출판되었지만, 최근 생활사 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생활사는 이 책처럼 꼼꼼한 사료와 치밀한 구성으로 당대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서술에만 그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는 식의 서술은 미시사적 접근과는 거리가 멀며, 단지 하나의 부문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시사의 기준은 무엇이며, 『왕 여인의 죽음』은 어떤 의미에서 미시사인가?


독일의 역사학자인 위르겐 슐룸봄은 서술 대상의 규모를 기준으로만 미시/거시를 구별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미시사가 강조하는 것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세밀하게 관찰하되 그 연구 대상의 범위를 넓게 잡는 것이다.’라고 했고, 또한 더욱 중요한 사실은, 미시사의 연구 중점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을 행동하는 인간, 즉 자기들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이해하려는 데 있었다.’라고 했다. 즉 미시사에서 민중은 통계 숫자나 평균치가 아닌 각각의 인간으로 파악되는 것이다미시사라는 말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러한 의미의 미시사는 70년대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왕 여인의 죽음』은 미시사의 초창기적 작품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왕 여인의 죽음』은 이러한 의미에서 미시사이다. 저자는 탄청 현이라는 넓은 세계에 대한 관찰을, 왕씨네가 리의 모욕에 대한 보복을 의논하던 1670 7 6일이 우연의 일치로 첸 구오샹이 첸 리엔을 탄청 시 변두리에서 쳐죽인 바로 그날인 것까지 알아차릴 정도로 세밀하게 관찰했으며,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을 행동하는 인간으로 이해했음은 이미 위에서 계속해서 밝혀 왔다. 또한 반대로, 미시사적 서술이 『왕 여인의 죽음』과 같은 책을 쓰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왕 여인이나 펑 여인, 다른 민중들이 그저 익명으로 파악될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왕 여인의 죽음』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청대의 공문서를 뒤져보는 것 이상의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역사와 문학의 경계의 해체

 

『왕 여인의 죽음』은 보기만 해도 일반적인 역사서와 다르다. 누구나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소설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물론 모든 서술은 사료에 충실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서술의 문체는 소설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물론 소설이라면너무나도 늦은 왕 여인의 등장 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있었을 듯도 하다.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위협하는문학 분야의 시도는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가 단연 유명하다. 『로마인 이야기』는 명백히 역사학자가 아니라 작가가 쓴 문학 내지 에세이이며, 서술에 허구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지나친 편애, 이념적 편향 등이 드러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역사서로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역사에 흥미를 처음 부여하는 용도로는 『로마인 이야기』는 훌륭한 저서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문제는 더욱 커지게 된다.


그렇다면 『로마인 이야기』처럼 흡인력 있는 역사서를 만들면 어떨까?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마치 문학을 읽듯이 역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펜스의 『왕 여인의 죽음』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역사를 역사이되 문학처럼 쓰기, 그러므로 정확성재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책이 된 것이다. 조너선 스펜스의 다른 대표작들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비슷한 서술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된다. 『왕 여인의 죽음』은 역사와 문학의 높은 경계를 긍정적으로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3년이나 지난 지금 읽으니, 여러 모로 정말 미숙했구나 싶기도 한데, 한 편으로는 정말 그 때 열심히 머리 싸 매서 쓰긴 썼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그 때보다 지금 퇴화한 것도 많은 것 같아요. 복학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할 텐데.


이 이후에 조너선 스펜스의 책을 하나도 안 읽었는데, 얼마 전 한국일보 책 란에서 또 그 이름을 봤었습니다. 계속 안 읽기에는 너무 아쉬우니 꼭 시간 내서 읽어봐야겠어요. 


왕 여인의 죽음 - 10점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재정 옮김/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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