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라는 신화에 대한 또다른 '원본'

김연수, 『꾿빠이, 이상』


I. 이상 신화, 그리고 김연수


 이상. 한국 문학사를 풍미한 천재 시인. 드라마틱한 삶과 난해한 작품들로 그는 한국 문학계의 하나의 신화로 자리잡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나도 어린 시절 이상에 매료되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오감도」연작,「이상한 가역반응」 같은 난해한 시들을 이해도 못한 채 읽고 또 읽으면서, 요즘 '중2병'이라 불리는 증상을 보이지 않았던가 싶다. 이상 전집을 샀는데 시·수필 편이 파본이라 반품하러 갔던 것도 기억난다. 이상 전집 소설 편은 그래서 중학교 때 딱 한 번 읽어봤는데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은 날개 뿐이었다. 그 뒤 대학 다닐 때 자취방에도 꽂아두었지만, 다시 읽어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문학적인 사람은 아니라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숭배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지 않은 일반인들은 그랬을 것 같다. 아니면 나의 바람일지도. 그렇지만 이상으 '천재'이지 '정신병자'는 아니라는 평가에 대다수가 수긍하는 것으로 볼 때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나는 이상이 천재라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이러한 지배적 관념은 어디서 형성될 것일까? 이상의 삶에는 하나의 영웅담이 녹아 있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엄청난 수재로 지금의 서울대학교의 전신 중 하나인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입학 졸업, 총독부에서 일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문학과 기생 금홍과의 사랑 때문에 이를 그만두고 다방을 차렸다가 망하는 이야기.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해 갈등하다가 원대한 포부를 안고 도쿄로 건너가지만 (당시 조선인들에 만연한) 가난과 일본의 탄압 때문에 폐병으로 숨을 거두고 만 이야기가 그 영웅담이다. 「꾿빠이, 이상」의 저자 김연수는 이를 두고 '이상수난곡'이라고 소설에서 쓴다. 이상이라는 한국문학사의 예수는 죽은 지 한 달만에 동료 작가평론가들에 의해 되살아났던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김연수가 최근 한국 문학계의 '아이돌'이며 '슈퍼스타'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왔다. 그런 그가 이상을 '정신병자'라 생각해서 이 작품을 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작품을 쓸 필요 없이, 고은이 「이상 평전「에서 이상을 비난했던 견해에 동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지만 김연수는 책을 통해 이상의 인생과 문학의 '신화성'을 드러내면서도, 이상의 삶에 또다른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연구와 조사로 탄탄하게 받침되는 줄거리 내에서, 지속적으로 '진본'과 '위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II. 책의 구성과 줄거리


「꾿빠이, 이상」은 총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목차를 봤을 때는 '김연수 장편소설'이 아니라 '김연수 소설집'인가 했다. 그렇지만 세 이야기는 모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첫 이야기 '데드마스크'는 이상의 데드마스크 대한 이야기이다. 이상이 죽으면서 떴던 데드마스크는 지금 전해오지 않는데,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을 잡지사의 김연화 기자가 접촉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김연화 기자는 자꾸 자신을 '김연'기자로 호칭하는 전화들을 받고, 이상의 데드마스크라는 소재에 끌려 이를 취재한다. 또한 그는 평생 이상을 추종했던 서혁민이라는 사람이 남긴 유고와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를 넘겨받는다. 그는 무엇인가에 이끌려 이상의 데드마스크의 발견 소식을 발표하지만, 접촉한 업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최 교수라는 사람도 가짜로 밝혀지자 검찰의 조사를 받기에 이르러 잡지사를 퇴사하게 된다. 첫 이야기에서 김연화 기자는 줄곧 '진짜'와 '가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피력하는데, 이는 세번째 이야기의 단초가 된다.


 두번째 이야기 '잃어버린 꽃'은 평생 이상을 추종해온 이상 연구가 서혁민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생 이상을 좇아왔지만 그는 이상이 아니라 서혁민이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대접받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인사동에서 이상에 관한 책을 수집하던 그는 이상의 미발표 시 소설을 가지고 있다는 일본인 와타나베의 말을 듣고 일본으로 향하지만, 와타나베는 그에게 자신은 이상의 원고들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평생 천재로 산 이상이 그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얘기였기 때문에, 이상의 문학세계를 지키기 위해 이를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처음에 분노하던 서혁민은 와타나베의 말이 옳음을 깨닫고, 이상이 죽은 동경대학병원에서 음독자살하며, 자신이 쓴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를 남긴다


 세번째 이야기 '새'는 교포 학자 피터 주의 이야기이다. 그는 한국인 부모 아래에서 자라면서 '오감도 시 제2호'를 접하고, 자신의 뿌리를 알기 위해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으로 택한다. 그러나 그는 '출생증명서'가 아닌 '입양신고서'를 가져오라는 공무원의 말에 자신이 한국계가 아니라 사실은 대만 여성의 아들이었다는것을 알게 된다. 그는 한국에 건너와 오감도 연작시의 미발표시의 내용을 추정하는 논문을 발표하지만, 권민희 교수가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를 입수했다며 이를 발표하자 망연자실한다. 이 때 첫번째 이야기에서 등장한 김연화 기자가 피터 주에게 서혁민의 원고를 넘겨준다. 문제는 서혁민의 원고의 시가 가짜 데드마스크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피터 주 스스로 예전 자신의 논문을 뒤엎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를 발표하지만, 이는 오감도에 등장했던 단어들을 빈도수에 따라 끼워맞추기 한 것이란 다른 학자의 지적을 받고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투신 후 3m 떨어진 다른 층 옥상에 떨어진 그는, 권민희 교수 발표의 모순과 자신의 중국 태생을 모두 묻어버리고 한국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이상


III. '진본'과 '위본'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진짜와 가짜의 문제이다. 책 내내 이상의 데드마스크와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의 진위여부가 문제가 된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김연화 기자는 자신이 김연 기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자신이 불륜 상대인 정희를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되뇐다. 두번째 이야기의 서혁민은 그야말로 가짜 이상이다. 그의 삶 자체가 가짜 이상이었다. 세번째 이야기의 피터 주는 한국계가 아니라 중국계이지만 한국계로 살아왔으니 그의 삶도 가짜이다. 이처럼 가짜 삶을 사는사람들을 두고 데드마스크와 시의 진위여부를 다루며,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소 포스트모던적 표현의 과잉이 있는 것 같은 책 말미의 평론을 참고해서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상이 '미친놈의 개수작'이 아니라 천재로 남은 이유는, 50%가 넘는 사람들이 이상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즉 진본과 위본의 경계는 언제나 유동적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진짜일지 가짜일지는 유동적이며, 다수의 의견에 좌우되며, 때로는, 우리가 우리 삶의 진위 여부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연화 기자는 김연 기자로 행동하기를 택했다. 서혁민은 이상의 삶을 좇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침으로써 가짜 이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를 남김으로써 진짜 서혁민이 되었다. 피터 주는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불태움으로써 가짜 한국인이 아닌 진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한편 이는 이상에게도 적용된다. 책에서 이상은 본명인 김해경과 책 속의 인물인 이상이라는 두 개의 인격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상의 미발표작으로 작중에 등장하는 소설 '백병'에서, 작중의 이상은 김해경을 죽인다. 즉 이상은 죽음을 통해 가짜 김해경이 아니라 진짜 이상으로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IV. 맺으며


 고은은 '이상 평전'에서, 나이 들어서까지 이상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상을 평가절하했다. 김연수가 이 책에서 70대의 서혁민을 등장시킨 것은 어느 정도는 이 주장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 것 같다. 고은의 생각에는 현실에 관여하지 않고 '예술을 위한 예술'이니 하며 난해시를 남긴 이상은 '가짜'였던 것이고, 김연수에게는 '진짜'였던 것이다.


 사실 책에 등장하는 진위의 문제를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하나는 데드마스크와 이상의 시 등에서 보이듯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진위여부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 삶의 진위여부이다. 고은과 김연수의 시각 차이는 전자의 것이다. 이와 별개로 이상은 스스로 자신을 진짜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상이 만약 '미친놈'으로 평가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후자이다. 즉 절대적 기준이 업는 시대에 스스로 실존을 성취한 '진짜 나'로서 사는 것이다. 가짜 이상이었지만 스스로 이상을 추구해 일생을 바친 서혁민은 행복하게 눈을 감았지만, 모두 한국인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음을 스스로 알았던 피터 주가 출생서류를 불태우기 전까지 자괴감에 시달렸던 것처럼. 누군가의 모조나 복제일지라도, 아니면 근본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 스스로의 유일한 삶을 살 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진짜'로 살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을 진짜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외박 때 이상 소설 전집이나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그 이상의 소설들이 원본이듯, 꾿빠이 이상도 이상에 관한 또 하나의 원본임을 음미하면서.







덧붙이는 말


작년 10월 중순경에 썼던 독후감. 이상에 관한 책을 읽었다고 쓸 때 이상에 휘둘리기라도 했는지, 지금 읽어보니 서평이 난잡하다. 게다가 이 책, 품절됐다고 한다. 나름 문학상도 받았고, 그 뿐만 아니라 정말 재밌고 대단한데, 이런 책이 품절됐다는 게 우리 출판계의 현주소인 것 같아 많이, 정말 많이 씁쓸하다.


꾿빠이, 이상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