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란, 너무 자주 등장하고 뻔해서 지루한 것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의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뭐 그런 것들. 클리셰들은 쓰이면 작품을 지루하고 뻔하고 재미없고 흔하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얼마나 그 소재들이 흥미있었기에 우리 조상들로부터 수백년동안 쓰여서 우리 모두가 뻔하게 느끼게 된 요소일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클리셰가 적당히만 들어가면 재밌고 흥미로운 작품이 된다. 생각해 보면, 익숙한 요소가 하나도 없으면 그건 그냥 실험적 전위작품일 뿐이지 않겠는가.


 예전에 『매트릭스』 시리즈가 클리셰들의 집합이라고 쓴 글을 봐서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기계가 준비하는 미래'는 터미네이터에서 따 온 것이고, 모두를 구원할 1명의 구원자라는 개념이야 신약성서 이후에만도 2천년을 지속되어 왔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클리셰고, 정말이지 난무하는 종교적이거나 포스트모던적인 은유들까지 헐리우드의 클리셰들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클리셰들에 독창성과 멋진 연출력을 가미하니까 매트릭스 시리즈는 우왕ㅋ굳ㅋ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너무너무 몰입해서 빠르게 읽었던 『헝거 게임』시리즈에도 여러가지 클리셰들이 정말 많았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이 소설 덕에 미국에서 저번 2012년 런던 올림픽 중 시청률 1위 종목이 양궁이었을 정도였으니까.


영화 『헝거 게임』 포스터

 헝거 게임 영화를 이전에 봤었었는데, 꽤 재밌긴 했지만 정말 재밌다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중대 독서실에서 『헝거 게임』을 보고 바로 집어들었고, 읽고 나니까 멈출 수가 없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캐칭 파이어』와 『모킹제이』도 빌려 읽었다. 『모킹제이』는 밤 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오면서 독서등을 키고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다 읽었는데, 아마 내 눈이 많이 안 좋아졌겠지 ...


 헝거 게임 시리즈의 1부에 해당하는 『헝거 게임』은 만화 『배틀 로얄』에서 봤던 것 같은, 청소년끼리의 죽고 죽이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제국 '판엠'을 지배하는 도시 '캐피톨'은, 75년 전에 있었던 구역들의 반란에 대한 보복으로 그 해부터 12개의 각 구역 남녀 청소년 1명씩을 추첨으로 뽑아서 단 1명만 살아남는 죽고 죽이는 '헝거 게임'을 만들고, 이를 쇼처럼 판엠 전 지역에 생중계한다.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은 동생이 추첨되자, 자신이 자원하여 헝거 게임에 참여한다. 그리고 배고픔에 시달리던 자신에게 예전에 빵을 주었던 빵집 아이 피타도 함께 헝거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아무튼 그 후는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헝거 게임에서 어떻게 살아남게 된 캣니스는 『캐칭 파이어』와 『모킹제이』를 통해 반란의 상징이 되어 마침내 캐피톨을 전복시키고 판엠에 새 세상을 가져다 준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가운데 삼각관계도 있고.


 언뜻 보면 뻔한 스토리일 수 있겠지만, 저자는 신경을 정말로 정말로 많이 썼다. 현장감 넘치는 묘사는 물론이고, 군데군데 숨어 있는 충격적인 반전들. 청소년 소설답게 캣니스는 혁명의 주인공이 되지만, 먼치킨이 아니라 방송을 통한 프로파간다 담당이고, 정말 마음이 피폐해질 정도로, 독자가 안타까울 정도로 고민하고 절망하며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 결말도 주인공이 영웅이 되어서 끝나는 단선적인 결말이 아니고, 해피 엔딩이긴 한데, 아무튼 ... ^^


 다만 전쟁의 전체적인 측면에서 너무 쉽게 이긴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쪽으로는 좀 에러였던 것 같다. 군사력도 짱이고 자원도 짱인 캐피톨이 너무 이상하게 쉽게 발린다. 그리고 어린 소녀인 캣니스의 시선으로 헝거 게임 내를 바라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캐칭 파이어』에 가서는 캣니스의 시선과 전체적인 스토리 흐름이 균열되는 느낌이 든다.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책에서는 자꾸 사소한 것만 서술하는 느김. 캣니스가 혁명의 전면전에 나서는 『모킹제이』에 가면 이런 균열은 없어지지만.


아무튼 시간 나면 봐서 손해볼 것 없는 책.


덧. 『캐칭 파이어』영화는 11월 개봉 예정인 것 같다. 볼 영화가 하나 늘었네.


덧2. 헝거 게임 시리즈는 영한대역본도 있다. 영어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영판이 더 잘 쓰긴 잘 쓴 것 같다. 번역도 힘드셨겠지만.



헝거 게임 세트 - 전3권 - 10점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북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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