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혁명의 토착성에 주목한 실증적 연구

『북조선 탄생』 서평


※이 포스트는 제가 2011년 2학기 '한국현대사의 이해' 수업에서 작성했던 서평을 편집한 것입니다.


I.     들어가는 말


 

1948, 38도선 이남에 8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38도선 이북에 9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천년 동안 단일한 국가 체제를 유지해 왔던 한국은 두 나라로 분열되었고, 2년 후에는 그 두 나라 사이의 참혹한 전쟁이 한반도를 덮쳤다. 거기다가 더욱더 심화되는 전세계적 냉전 구조는 두 나라에게 서로 상대방을 철저히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을 부여했고, 남은 군사 독재, 북은 유일 체제의 확립을 겪으며, 그러한 경직성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90년대 초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가 일으킨 후폭풍으로 인해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여 냉전이 종식되었을 때, 북조선은 동구권처럼 몰락하지도, 중국처럼 시장주의의 길을 걷지도 않은 채 체제를 유지했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후계를 이었을 때에도, 고난의 행군에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생겼을 때에도, 북조선이 몰락하리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북조선은 체제를 유지했고, 현재에 이르러 3대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내부적으로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현대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비민주 국가가 폭압만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 위에서, 『북조선 탄생』의 저자 찰스 암스트롱은 책에서 이러한 북조선 체제의 내구성을 설명하기 위해 북조선의 초기 혁명 과정을 강조한다. 그는 서론에서, 책의 연구 주제로 네 가지를 들고 있다. ①북조선 공산주의의 토착화’, ②해방 이전 역사와 정치 문화의 영향, ③북조선 혁명의 총체적 성격, ④인민들 사이의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북조선 당국의 노력이 그 연구 주제들이다. 이러한 분석 틀을 바탕으로 저자는 여덟 개 장에 걸쳐 혁명기의 북조선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II.    토착 혁명으로서의 북조선 혁명

 

북조선 혁명은 당시 냉전 형성기라는 국제적 맥락을 배제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냉전의 형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역사학계에서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라는, 두 개의 큰 흐름 사이의 대립이 있어 왔고, 당연히 연속적 맥락에서 북조선 정권의 탄생에 대해서도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는 대립하는 관점을 형성해 왔다.


전통주의는 냉전이 소련의 팽창을 미국이 저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냉전의 일차적 책임은 소련에 있다고 주장한다. 소련체제의 성격을 규정하는 이념이라는 요소가 소련의 팽창정책을 이끌었고, 냉전의 종식은 이에 대한 미국의 성공적인 억지 정책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주의적 해석과는 반대로 수정주의는 소련은 미국보다 국력의 모든 측면에서 열세에 있었고 따라서 팽창정책의 추진이 불가능했으며, 오히려 전후 미국이 공격적으로 시장 확보에 나섰고 이러한 확장에 소련이 대응함으로써 냉전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김영호: 446~447). 그런데 냉전 이후에 공산권의 문서고가 개방되면서, 전체적인 시각은 개디스(Gaddis)를 중심으로 전통주의와 수정주의의 종합으로 자칭함에도 불구하고 종합이라기보다는 전통주의에 좀 더 가까운 탈수정주의로 기울었다(박인숙: 196~199).


냉전의 최전선인 한반도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시각들의 대립에서도 최전선이었다. 냉전에 대한 전통주의적, 수정주의적 시각을 북조선의 성립 과정이라는 더 작은 사안에 적용하여 보면, 전통주의는 북조선의 탄생이 소련의 팽창주의의 결과물이었다고 보는 시각으로, 수정주의는 북조선의 탄생에 소련의 팽창보다는 북조선의 자체적 동력과 같은 다른 요소들에 주목하는 시각으로 대립항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조선 탄생』은 명백하게 수정주의적 시각을 계승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시종일관 북조선 혁명이 조선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한, 토착적이고 내인적인 혁명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1장에서 주변부에서의 혁명을 강조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저자가 북조선 혁명은 소련으로부터의 외부성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지역적 상황과 역사적 유산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조선 혁명이 북조선의 소비에트화가 아닌, 소비에트 체제의 조선화라는 저자의 언급은 이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1장에서 저자는 조선 동북 지역의 사회 구조, 만주의 주변부적 성격, 그리고 이들을 기반으로 한 빨치산 투쟁에 대해 다루며, 김일성의 만주 유격대 경험에 특별히 주목한다. 토지 개혁을 예로 들며, 만주 유격대 시절의 김일성의 경험이 북조선 혁명에 소련의 지도나 중국의 영향보다 더 주요하게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내인적 요소에 대한 주목은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2장에서 저자는 소련에 의한 강간과 약탈이 상대적으로 짧았고, 경제적 수탈도 약탈이 아니라 곧 복구로 전환되었고, 산업 손실은 주로 일본에 의한 것이었음을 언급하며 소련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소련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 최소한의 통제만 가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들은 우호적인 조선인들을 지도부에 앉혔을 뿐이다. 저자는 또한 당시 북조선을 방문한 미국 언론인 스트롱의 북조선 주민에 대한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소련인들의 존재에 대한 당시 주민들의 낮은 관심도를 소개함으로써, 중앙에서도, 현지의 체감으로도, 소련의 개입 정도는 낮아 보인다는 것을 강조한다.


북조선 당국은 소련의 간접적 도움을 받았으나, 정통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방법으로 국가를 장악해 나갔다. 조선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정당이라고 규정되었으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정의는 느슨하여 실제로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 1945 11월에 일어난 신의주 사건 이후에는 대중화가 더욱더 전격적으로 추진되었고, 김일성은 공공연히 당이 프롤레타리아트뿐 아니라 모든 대중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선에서 계급투쟁의 언어는 반식민주의 민족투쟁의 언어라고 주창한 조선신민당의 의견을 옹호함으로써, 당은 계급주의적 색채보다는 민족주의적 색채를 더 강하게 띠게 되었다.


저자는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북조선 혁명의 총체성과 내인성을 조명하고 있다. 북조선 혁명은, 비록 농업 현물세 징수 등에 대한 반발을 불러 일으키긴 했으나, 대체적으로 토지 개혁을 통해 농민으로부터의 지지 기반을 확고히 굳혔고, 그 후에는 봉건적 차별의 철폐 등의 조치를 통해 노동자 계급, 여성, 청년 등의 집단을 효과적으로 지지 기반으로 편입했다. 이후에는 역동적인 정치적 경쟁을 통해 조선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을 우당(友黨)으로 편입하였고, 문화와 예술을 효과적으로 사회주의 정치화, 나아가서는 민족주의화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 성과와 교육의 확대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도 확보하였다. 그리고 식민 시기의 사회 통제를 부분적으로 계승한 감시체제의 구축을 통해서 체제의 내구성을 확보했고, 마침내는 개인숭배, 공동체와 혈연에 대한 은유를 통해 북조선이 ‘인민의 국가’로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조선은 단순한 소비에트 체제의 이식이 아닌, 독자적인 체제를 구축했고, 지금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실증적 연구 방식도 주목할 만 하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들을 전개하는 데에 뛰어난 실증성을 보인다. 기존의 수정주의자들의 논지 전개가 냉전기 공산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던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실증성은 더 큰 의의를 지닌다. 저자는 미국의 노획문서인 RG 242, 소련측 문헌들, 북한측 문헌들뿐 아니라 국내 학자들의 연구 결과까지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기광서: 447면). 특히 자뭇 주관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다루는 장()들에서 농민연맹의 회원 수, 직업별 휴양소 숫자, 청년들의 지역별 민청 참여 비율 등의 다양한 통계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주장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신뢰성을 강화하고 있다.

 

<!--[III.  지나친 김일성 일파에의 환원론



김일성

 



그러나 북조선 혁명의 내인적 요인에 주목한 저자의 안목은 대체로 훌륭하지만 몇몇 지점에서 과잉을 드러낸다. 그러한 과잉은 북조선 혁명의 내인적 요인이라는 총체적인 것을 김일성 일파의 성격과 유교의 유산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환원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김일성 일파는 물론 북조선 형성 당시의 주요한 정파 중 하나였으며, 여러 사건들을 거치며 북조선의 유일한 정파로 우뚝 섰다. 그러나 국가 형성 당시의 북조선은 저자도 지적했듯이 공산주의 계열을 제외하고도 조선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이 경쟁하고 있던 시기였고, 공산주의 내에서도 김일성 일파만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 단적으로 1948 9 9일 수립된 북조선 정부 역시 김일성 일파와 소련파, 연안파, 남로당파 등의 정치적 연합이었다(기광서: 447). 김일성 일파가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한국 전쟁과 8월 종파 사건을 거치면서였고, 1967년에 갑산파를 숙청하면서 유일 체제가 완성되었다.


   이에 비해 책의 범위는 저자가 소개한 대로는 1945~50년이며, 대부분의 내용은 1945~48년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김일성 일파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저자는 토지개혁과 연합전선운동을 포함해 북조선의 많은 국가 형성 작용을 해석하는 데에 김일성 일파의 성격을 이유로 적용하고 있다. 서론에서 저자는 김일성 일파의 정치적 성격을 전적으로 만주 항일 무장 투쟁에 의한 것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고 하지만, 곧이어 만주에서의 경험이 북한 정치 문화의 전개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여 내인성의 김일성 일파의 성격으로의 환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북조선 국가 형성 과정에서는 김일성 일파의 성격이 아니더라도 설명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굳이 김일성 일파의 성격이 북조선의 지속성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려고 했다면, 초기의 짧은 기간이 아니라 더 넓은 기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또한 김일성 일파가 아니라 다른 정치 세력들을 고려했다고 해도, 결국 책이 소련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있다는 지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소련의 영향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 책이 취하고 있는 근본적 입장이므로, 단순히 소련의 영향력을 종전보다 적게 평가했다고 해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소련이 당시 북한 사회의 모든 부분에 개입할 수 있을 만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그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김일성 일파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저자는 몇몇 부분(암스트롱: 95면 등)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IV.   유교의 비중에 대한 지나친 강조

 

또한 저자의 북조선 혁명의 토착적 요소로 크게 강조되는 것은 유교이다. 색인에서 유교라는 단어는 서론을 제외하고도 17번이나 등장(암스트롱: 430)하며, 이는 단일 단어로는 아주 많은 횟수이다. 이처럼 저자는 사회, 경제, 문화, 감시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계속해서 유교의 영향을 인용하며, 마지막으로는 북조선이 지금과 같은 유일 체제로 발전하는 데에 유교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 왕조 5백년을 걸치며 신유교가 한국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북조선 혁명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측면에서, 비록 여성이 해방되었으나 이혼은 허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금지되었고, 여성의 미덕은 어머니의 보살핌과 같은 봉건적 가치에 한해서만 선전되었다는 점, 그리고 안정적인 사회적 위계 질서가 위아래만 뒤집혀서 새롭게 나타났다는 점을 그 증거로 든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북조선 혁명은,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인식과는 다르게, 상부 구조를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유교 전통 때문에 북조선 혁명은 물적 조건보다 이념이나 정신을 더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러한 양상이 인공기에 노동자와 농민을 나타내는 망치와 낫과 함께 사무원을 나타내는 붓을 추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김일성 환영 평양 시민대회, 1945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저자는 김일성 개인 숭배의 원형을 유교에서 찾고 있다. 북조선의 개인 숭배가 유격대와 혈연, 또는 신체의 비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하루끼: 137~140). 개인 숭배는 소련이나 중국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북조선의 김일성에 대한 유별난 숭배는 일본 천황제의 잔재와 초기 기독교 유산과 함께, 유교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김일성이 과거와의 결별을 선언한 마오쩌둥과는 다르게 할머니에게 극진한 효성을 보인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 숭배의 대상이 김일성 개인을 넘어 김일성의 가족들에게까지 확장되고, 공동체와 혈연에 대한 은유가 효과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어버이 수령”, “어머니 당으로까지 상징들이 확장되어 마침내 아들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할 정도가 된 것은, 결국에는 유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을 유교 사회로 범주화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발로일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에 따르면, 현실 행동의 개별 사례를 소수의 설명적인 ‘기원’으로 환원하여, 비서구에 시간을 초월한 반복과 강제를 인상 짓는 것은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설명 방식이다(예대열: 432면). 저자는 마치 현대 이슬람 사회를 연구하는 일부 오리엔탈리스트들이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의거하기보다는 꾸란의 구절을 분석하는 데에만 치중하는 것과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저자가 주목한 특성들이 북한에 고유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 비록 마르크스가 하부 구조를 상부 구조보다 중요시했으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난 역사적 노정에서는 많은 경우 이데올로기가 하부 구조보다 중요시되어 왔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후진 국가들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의 주도 세력들은 혁명적인 상부 구조와 빈약한 하부 구조의 모순을, 혁명 정권이 정권에 걸맞은 생산력을 확보하는 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예대열: 433). 이미 일제의 수탈로 인해 물질적 기반이 거의 사라진 북한에서, 그나마 동원할 수 있는 인간의 의식만이라도 동원하고자 했던 것은 당연했다.


지식인에 대한 예우도 북한의 고유한 특성이라고만 보긴 힘들다. 비록 초기 공산주의가 지식인들을 모호한 계급으로 규정했으나, 전세계 대부분의 공산당이 혁명을 수행하면서 현실적 필요로 지식인들을 포섭하기 위해 노력했고, 중국공산당의 경우도 지식인의 흡수를 중국 혁명 승리의 열쇠로 여겼다(예대열: 434). 지식인, 또는 사무원에 대한 필요는 사회주의 국가도 근대 국가이고 많은 전문적인 일이 필요함을 생각할 때 당연한 일이며, 명백한 사회의 구성원인 이들을 배제하고서 혁명을 완수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체제의 보수성을 유교로 설명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체제의 보수성은 북조선에서는 소련이나 중국에서와는 달리 김일성이 빠르게 정적들을 숙청하고 이후 오랫동안 집권하였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 이는 좁은 영토와 남쪽의 남한이라는 라이벌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일성은 1967년의 갑산파 숙청 이후에도 1994년까지 생존하였고, 그 사이에 김일성은 살아서 유일 체제를 강화하고 김정일을 육성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이는 마오쩌둥이나 스탈린에게는 없었던 기회였다.


이처럼 북조선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유교라는 오리엔탈리즘적 틀은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많은 부분에서 유교라는 개념에서 필요한 곳만 취사 선택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보였다(예대열: 437). 굳이 유교를 분석의 틀로 사용하겠다면, 유교 전통 부활의 역사적 맥락과 기능, 효용 등의 관점에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V.    맺는 말

 

찰스 암스트롱의 『북조선 탄생』은 북조선 탄생의 내인성과 토착성에 주목하여 수정주의 역사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헌 자료와 연구 성과들을 포섭하여 신뢰성을 갖추었다. 책의 몇몇 부분에서는 저자가 혁명기의 북조선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고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저자의 연구는 신선했고 명확한 근거를 지니고 있었으며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에서 김일성 일파의 성격이나 유교 체계로 이후 북조선 사회의 성격을 환원하는 오류를 범한 점은 안타깝다. 저자는 북조선 탄생 과정에서의 김일성 일파와 초기 건국 과정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했고, 당시 북한 내각의 연정적 성격과 소련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특히 저자가 유교 체계를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북조선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연구의 다른 부분들에서와 같은 수준의 실증을 유보했기에 나타난 오류들, 즉 지식인에 대한 예우나 상부 구조의 강조와 같은 다른 공산주의 체제와의 공통점도 북조선의 유교적 특징으로만 치부한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조금씩 부서져 가면서도 아직까지도 붕괴하지는 않은, 그러면서 폭압적 정치를 시행하고 있는 북조선이라는 국가를 이해하는 것은 일반론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특히 직접 북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비록 부분적으로 지나치게 전체 사회를 특정 요소들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하긴 했지만, 북조선의 탄생 과정의 특수성에 대한 연구를 시도한 것은 분명히 뛰어난 통찰이며, 독자들에게 북조선을 인지하는 데 필요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참고문헌

 

기광서, 「내부적 역동성에 주목한 북조선 혁명사」, 『역사비평』 83, 역사문제연구소, 2008.

김영호, 「탈냉전기 냉전 기원의 새로운 해석에 관한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35 2, 한국정치학회, 2001.

박인숙,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탈 수정주의(post-revisionism)' 냉전 해석에 대한 비판적 고찰」, 『대구사학』 70, 대구사학회, 2003.

안찬일, 「북한의 병영국가화와 김정일의 세습체제를 불러온 갑산파의 숙청」, 北韓 425, 북한연구소, 2007.

와다 하루끼, 고세현 옮김, 『역사로서의 사회주의』, 창작과비평사, 2005.

예대열, 「미국 역사학계의 북한사 인식 비판」, 『한국사학보』 36, 고려사학회, 2009.

찰스 암스트롱, 김연철·이정우 옮김, 『북조선 탄생』, 서해문집, 2006.






북조선 탄생 - 10점
찰스 암스트롱 지음, 이정우.김연철 옮김/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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