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찍어야지 찍어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드디어 해설강의를 찍었습니다. 집에서 휴대폰으로 찍어서, 개인도 인강을 업로드할 수 있는 에듀캐스트에 올렸습니다. 제가 올린 강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2017학년도 법학적성시험 표준점수 145.6
- 2017학년도 법학적성시험 추리논증 영역 만점(백분위 100, 표준점수 76.3)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합격

 

본 강의는 2016년 8월에 시행된 2017학년도 법학적성시험 추리논증 기출문제를 같이 풀어보면서 해설하는 강의입니다. 저는 당시 법학적성시험을 응시하여 언어논리 영역에서 32개를 맞혔고, 추리논증 영역에서는 35개를 맞혀 만점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어떻게 공부하였는지, 그리고 제가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에 대해 문의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저의 경험을 통해, 이론 위주의 다른 교/강사분들과는 다른 시각, 당시 함께 문제를 풀었던 수험생의 시각에서 문제를 더 잘 풀 수 있는 계기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본 강의를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1강~6강까지 기출문제를 순서대로 같이 풀면서 해설하고, 7~8강에서는 전체적인 공부법 조언과 문제 풀이 테크닉과 마음가짐을 다루었습니다.

강의는 전반적으로 위에서 시험지를 보는 시각에서 진행됩니다. 집에서 혼자 휴대폰으로 찍은 강의이니만큼 조금 미숙하고 부족합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강의를 촬영하는 게 처음이고 전문 강사도 아니니만큼 부족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의문이 가시는 부분이나 틀린 부분, 궁금증, 기타 문의가 있으시면 문의로 남겨 주시거나 메세지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강의는 다음 링크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http://educast.pro/13.669)


(이후 3월 말에 2015, 2016년도 해설강의도 추가로 촬영했습니다.)


2016학년도 추리논증 기출문제 해설강의

2015학년도 추리논증 기출문제 해설강의

2015~2017학년도 추리논증 3개년 기출문제 해설강의 패키지



강의는 제7강을 제외하면 아래 스크린샷처럼, 같이 시험지를 두고 푸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또한 현재 제5강이 맛보기 강의로 제시되어 있으니, 듣고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위 스크린샷은 리뉴얼 이전 기준으로, 현재는 더 나은 화질로 리뉴얼하였습니다.)







1. 지난 2월 14일에,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니 발렌타인 데이만 즐길 것이 아니라 역사에도 신경을 써야 된다는 식의 글들을 많이 봤던 것 같다. 솔직히 웃기는 일이라 생각했다. 특히 발렌타인 데이 분위기에 못마땅해하는 느낌이 감지되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린 안중근 의사의 탄신일, 이토 히로부미 저격일, 사형선고일, 사형집행일, 이토 히로부미를 쏘기로 마음먹은 날... 등등에 다 유념하고, 그럼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등등의 날짜들도 다 유념하고 그 때마다 순국선열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날짜들을 외우는 게 정말 '역사'를 아는 것인가.

순국선열께는 평소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면 되고, 발렌타인 데이에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와 초콜릿 잘 까 먹으면 된다.


2. 근데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과 발렌타인 데이에 묻혀버린 2월 14일이 하나 더 있어서 그걸 조금이라도 더 알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렇게 뻘글을 쓰게 되었다. 1990년 2월 14일은 바로 내가 올린 이 사진이 촬영된 날이다. 태양광 때문에 새 개의 밝은 부분이 보이고, 가장 오른쪽의 중간 쯤에 점 하나가 찍혀 있다.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해왕성 궤도 밖으로 나아가면서 찍은 사진. 저기 보이는 아주 작은 점이, 바로 우리가 사는 지구다.


3. 내가 이 사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칼 세이건 때문이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천문학자이자 대중저술가인 칼 세이건은 1996년에 죽었는데, 1994년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책을 출간했고(개인적으로는 '희미한 푸른 점'이 더 알맞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 사진에 대한 장으로 시작한다. 

 칼 세이건은 이 책 말고도 정말 많은 책들을 썼다. 어릴 때부터 칼 세이건의 책들을 읽으며 무한한 존경을 느껴왔는데, 그 존경의 이유는 차가운 이성과 더불어 항상 기저에 깔려 있는 낙관주의였다. 


4. 생각건대 서방 사람들에게 아마 90년대 중반은 그러한 낙관주의가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였을 것이다. 소련의 붕괴와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라는 '역사의 종말' 앞에서, 한국인들은 IMF 전까지, 미국인들은 9.11 테러 전까지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다는 기분을 만끽하지 않았을까.

 칼 세이건의 낙관주의는 이런 일시적인 낙관주의와는 다르고, 냉전기에 수많은 국제적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저술들의 기저에 항상 깔려 있었지만, 칼 세이건이 이 사진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며 내가 항상 느끼는 줄어들지 않는 감동의 강도는, 이 글에 반영된 것은 칼 세이건 개인의 낙관과 임종 직전의 감정에 더해, 그 낙관의 시대까지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5. 그래서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고서, 이런 글을 썼다.


"Consider again that dot. That's here. That's home. That's us. On it everyone you love, everyone you know, everyone you ever heard of, every human being who ever was, lived out their lives. The aggregate of our joy and suffering, thousands of confident religions, ideologies, and economic doctrines, every hunter and forager, every hero and coward, every creator and destroyer of civilization, every king and peasant, every young couple in love, every mother and father, hopeful child, inventor and explorer, every teacher of morals, every corrupt politician, every "superstar", every "supreme leader", every saint and sinner in the history of our species lived there — on a mote of dust suspended in a sunbeam.

저 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이 여기이고, 저 점이 우리 고향이며, 저 점이 우리 자신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두가, 당신이 아는 모두가, 당신이 들어본 모두가,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인간이, 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아나갔습니다. 우리 기쁨과 슬픔의 총합이, 수천 개의 자신만만한 종교들이, 이데올로기들이, 경제 교리들이, 모든 사냥꾼과 채집자가,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문명의 모든 창조자와 파괴자가, 모든 왕과 농부가,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이,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촉망받는 아이가, 발명가와 탐험가가, 윤리를 가르친 모든 스승이, 모든 부패한 정치가가, 모든 "슈퍼스타"가, 모든 "위대한 영도자"가, 우리 종(種)의 역사의 모든 성인과 죄인이 바로 저 곳에 - 태양빛 한 줄기에 매달린 흙 티끌 위에 살았습니다.

 

The Earth is a very small stage in a vast cosmic arena. Think of the rivers of blood spilled by all those generals and emperors so that, in glory and triumph, they could become the momentary masters of a fraction of a dot. Think of the endless cruelties visited by the inhabitants of one corner of this pixel on the scarcely distinguishable inhabitants of some other corner, how frequent their misunderstandings, how eager they are to kill one another, how fervent their hatreds.

우주라는 광막한 경기장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저 점의 극히 일부를 찰나동안 지배하는 주인이 되기 위해서, 영광과 승리 속에서, 장군들과 황제들이 흘리게 한 피의 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화소(pixel)의 한 구석의 거주자들이 거의 분간할 수 없는 다른 구석의 거주자들에게 자행한 끝없는 잔혹함을, 그들의 오해가 얼마나 잦았으며, 서로를 죽이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했으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열렬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Our posturings, our imagined self-importance, the delusion that we have some privileged position in the Universe, are challenged by this point of pale light. Our planet is a lonely speck in the great enveloping cosmic dark. In our obscurity, in all this vastness, there is no hint that help will come from elsewhere to save us from ourselves.

우리의 가식은, 우리의 상상된 자기 중요성은,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특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이 희미한 빛 한 줄기에 의해 도전받습니다. 우리 행성은 우리를 감싸는 거대한 우주적 어둠 속의 외로운 얼룩입니다. 우리의 보잘것없음과, 이 모든 광막함 속에서,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도움이 다른 곳에서 올 기미란 없습니다.

 

The Earth is the only world known so far to harbor life. There is nowhere else, at least in the near future, to which our species could migrate. Visit, yes. Settle, not yet. Like it or not, for the moment the Earth is where we make our stand.

지구는 지금까지 생명을 품고 있는 유일한 세계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 종(種)이 이주할 수 있는 다른 장소란 없습니다. 방문은 가능하겠지만, 정착은 아직 안 됩니다. 좋든 싫든, 지금은 지구만이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장소입니다. 

 

It has been said that astronomy is a humbling and character-building experience. There is perhaps no better demonstration of the folly of human conceits than this distant image of our tiny world. To me, it underscores our responsibility to deal more kindly with one another, and to preserve and cherish the pale blue dot, the only home we've ever known. 

천문학은 사람을 겸손케 하고, 인격을 형성하는 경험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심의 어리석음을 우리가 사는 자그마한 세계를 멀리서 본 이 사진보다 더 잘 드러내는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이는, 서로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책임과,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희미한 푸른 점을 보존하고 아껴야 하는 책임을 강조합니다."

 

6. 내가 만 25세고 이 사진이 내 출생보다 1년 반 전에 찍혔으니 이 사진은 벌써 만 27세가 되어버렸다. 27년 전의 세계와 지금은 너무 달라 보인다. 전세계의 보편적 개방과 발전을 이끌 것 같았던 기존 체제는 고립주의의 물결에 위태로워지고 있고, 낙관은 사라져버린 것 같다. 칼 세이건이 얘기했던, "이 점의 극히 일부를 찰나동안 지배하는 주인"이 되고자 한 자들이 흘리게 한 피의 강이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말리, 나이지리아 등 저 점의 여러 군데에서 쉴 새 없이 흐르고 있다. 티끌같은 희미한 푸른 점 위에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강제하고자 힘쓰고 있다. 칼 세이건이 살아있었다면 변함없는 낙관주의로 무언가 일을 했겠지만, 아마 90년대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7.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적어도 나는 광막한 우주 속에 놓인 티끌같은 인간으로서의 겸손함을 느낀다. 그리고 칼 세이건의 글을 읽을 때마다 위대한 낙관주의자가 남긴 잔향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느낀다. 그로써 내 구체적 계획과 행동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때로는 그저 그런 느낌들만으로도 충만하다.






 2017년 1월에, 저는 서울대-해비타트 봉사단의 일원으로 필리핀 세부 반타얀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팀 내에서 언어 쪽 일을 맡았는데 일을 좀 게을리 해서 학기가 끝나고야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어요.


 문제는, 필리핀은 여러 많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반타얀에서 사용하는 현지어는 따갈로그가 아니란 거죠. 물론 필리핀 사람들, 따갈로그나 영어도 알아듣고는 합니다만, 거기 가서 그 지역의 말을 몇 마디라도 쓰자는 취지로 배우는 건데 영어나 따갈로그로 '퉁'치기에는 뭔가 아쉬웠습니다.


 대충 리서치를 해 보니, 우리가 가는 반타얀에서 원래 쓰이던 말은 '반타야논(Bantayanon)'인데, 옆의 세부에서 쓰이는 '세부아노(Cebuano)'와 같은 비사야 어족이라서 유사하기도 하고, 세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냥 자신들도 "원래 세부아노 쓴다."고 할 정도라고 해서, 세부아노 언어 책자를 만들어야겠다 하고 결심했습니다.


 다만 한국어로 나와 있는 세부아노 책도 하나도 없고, 인터넷에도 체계적으로 정리된 게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나도 없어서, 영미권 웹을 뒤지다 결국 책을 한 권 샀습니다.




A HANDBOOK OF CEBUANO VISAYAN

이름 보시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핀란드 사람이 쓴 책입니다. 그래서 괜히 반가웠습니다.^_^;




 단기 봉사단에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설명이 자세합니다.

 이 책은 갔다 와서 기증하려 했는데, 아직 집에 쳐박아두고 있었네요. 생각난 김에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일단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내일 아침 도서관에 문의해 봐야겠네요. 그렇게 장서가 많은 서울대 도서관에 세부아노 책 한 권 없는 게 너무 마음의 상처였어서요. 직접 구매하시면 가격은 2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솔직히 500페이지 가까이 되고 엄청 자세해서(친절한 책은 아니지만) 공부하며 돈이 아까울 만한 책은 아닙니다.









 그래서 뭐 이걸 바탕으로, 여러 영어권/필리핀권 웹사이트들을 참조해 가며 최대한 벼락치기해서 만든 게, 지금 올린 pdf 파일입니다. 사실 앞부분 의욕에 가득차 만들다가 가장 다채로운 동사 파트에서 포기해 버려서 이걸 유용하게 사용하실 분들이 많을까 고민했는데, 제가 처음 세부아노 언어 책자를 만들어야겠다고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을 때의 답답함이 생각나 일단 공유합니다. 




 만약 나중에, 혹은 곧 가는데 현지어를 배워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신다면, 전 꼭 배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몇 마디 암기해 가는 건 필수고, 여유가 있다면 아주 간단한 회화 가능할 정도만 어휘를 알아 가세요. 언어에도 권력관계가 존재합니다. 몇 마디 못 하고 현지 사람들도 영어를 하긴 한다고 하더라도, 세부아노로 말 거는 것, 따갈로그로 말 거는 것, 영어로 말 거는 것은 청자에게는 굉장히 큰 차이입니다.






아래는 랭귀지 북 내용 캡쳐입니다. 세부아노도 1도 모르고 디자인도 모르는 아무것도 아닌 문과 졸업생이 오랫만에 인디자인 쓰려니 힘들었습니다ㅠㅠ



마지막 시는 제가 봉사 끝나고 헌정식 때 낭독한 시입니다. 사실 헌정식에 아주 적합한 시는 아니지만 너무 느낌이 좋아 읽고 싶었습니다...ㅠㅠ






※ 활용, 출력, 재배포 등등 환영합니다. 다만 상술한대로 여러 소스에서 짜깁기한 것이니 신뢰성은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상업적 이용은 제가 사용한 디자인의 원 저작권 문제(서울대 봉사단 모집 포스터에서 가져옴) 때문에 힘들 것 같습니다.


Cebuano_Language_Book.pdf








응,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장학금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을 하긴 하지만, 금액의 크기를 보니까 상당한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긴 하다. 어찌 되었건 잠깐이나마 낼 돈이 필요했으니 부모님께 신세를 졌다. 운 좋게 목돈을 많이 벌어 학부 생활동안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적어도 명확한 미래 계획이 없었던 건 확실했던 만큼, 소득 없는 생활이 더 이어질 수도 있었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대비해서 돈을 좀 덜 쓰고 모아놓아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뭐 경제학 전공했지만 경제관념 1도 없는 건 사실이니 어차피 안 그랬을 가능성도 크지만.





이젠 정말 공부뿐이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아무튼 이제부턴 정말 공부 뿐이다.








 발단은 이랬습니다.




 당시 로스쿨 최종발표를 기다리고 있었어서 정신이 나갔던 것인지, 아무튼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3월에 탈색한 머리에 입힌 빨간색은 너무나도 덧없이 빠르게 빠져버렸고, 그냥 빠져버린 색도 괜찮은 것 같아 자라난 검은 머리만 여러번 탈색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를 계속 노란 색으로 보내고 나니 뭔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세 가지 색을 골랐는데, 뭐 역시나 또 관종끼가 발현. 페북으로 이렇게 했는데...







응, 역시 자기 인생 아니라고. 제일 특이한 색에 몰아넣네요.



 근데 뭐 사실 저 글에서는 '이 색으로 염색을 할거다!'라고 하진 않았으니까 말이죠. ^__^;; 좋아하는 색을 고르라 했으니, 파랑이 많은 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어쨌건 저는 염색을 하기로 결심을 했으므로, 그리고 저는 민주주의를 굉장히 존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결론을 받들어 그대로 파란색! 염색을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또 로스쿨 발표가 12월 6일이었는데, 원래 발표 당일날 기다리면서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파란색! 파란색! 하니까 조바심이 나서 12월 4일, 일요일에 염색을 하러 갔습니다. 오호 아직 3주밖에 안 됐구나.





 제가 간 곳은 낙성대의 장피엘 헤어였습니다. 사실 여기를 가게 된 이유는 그냥 예전에 선배로부터 추천을 받았다는 역사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염색을 잘 한다고 해서 간 곳에서 파란색으로 매니큐어를 한다고 하니 굉장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좀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계속 완곡하게 곤란함을 표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가격이 전체적으로 비싸긴 한데, 뭔가 이번에는 돈을 써도 되겠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곧 로스쿨 결과도 나오고 평소에 소비도 잘 안 한다는 이상한 이유. 뭐 옷도 잘 안 사입고 헤질 때까지 입으니까요. 그런데 옷을 안 사입는 만큼 스팀 게임을 사고, 술을 사고, 얼마 전에 눈썹 문신도 하고... 아 이건 원서값을 아낀 거지만, 아무튼 그렇게 돈을 펑펑 쓰고 있다는 사실은 망각하고 있네요 ^_^


 아무튼 장피엘에 들어가 파란색 염색 얘기를 하니, 다행히 평소에 탈색에 관심이 많아 맨날 탈색을 하셨다던 미용사분이 계셨습니다. 키가 크셨던 '유라'님인데 책임지고 파란색 잘해 주겠다고 하셔서 일단 그리 알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때 머리는 대충 오렌지색이었어요. 아래는 두 번 탈색, 중간은 한 번 탈색, 그리고 뿌리에는 검은색 머리가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탈색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전체를 두 번 하기로 했습니다. 이러면 아래는 네 번, 중간은 세 번, 뿌리는 두 번 탈색한 것이 되겠죠.


 탈색을 두 번 거친 상태입니다. 그 땐 몰랐는데 정말 눈에 띄게 색이 바뀌었네요. 사실 처음에는 완전 흰색이 나올 것이라 기대해서 조금 실망한 것도 사실인데 지금 보니 색이 정말 많이 바뀐 듯! 다만 여기서 보실 수 있듯이 중간 아래는 좀 더 흰색에 가깝고, 위로 갈수록 노란색에 가깝습니다. 탈색 횟수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매니큐어 바르기.



 아 진짜 너무 신기했었습니다. 그전에는 갈색이나 빨간색 염색을 할 때도 정말 약품이 그 색을 선명하게 띠고 있는 것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매니큐어 같은 경우는 정말 색을 그대로 입히는(!) 거더라구요. 애초에 색도 기본 색을 헤어디자이너가 혼합해서 만드는 게 신기했습니다. 전 약간 밝은 파랑, 조금 보랏빛을 띠는 파랑, 청록색 세 가지를 디자이너님이 제시해 주셨고, 저는 당연히 애시당초의 목표였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선택했습니다.


머리카락에 파란색 매니큐어를 입힌 모습.



 아 진짜 지금 봐도 짱신기하네. 저걸 이제 가열하면 머리가 파란색이 되는 겁니다. 넘나 신기한 것.



 다만 바를 떄 이게 진짜 '물감'같은 느낌이다 보니 두피에 닿으면 두피에 색칠이 되어 버려서, 두피에 안 닿게 하다 보니 저렇게 약간 노란 머리 부분이 남게 됩니다. 그래도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_? 아무튼 진짜 물감을 섞어서 만드신 다음에 머리에 마치 미술용 브러시같은 걸로 바르시니 정말 유니크한 경험으로 남을 듯.




 아래는 결과입니다.



 일단 이런 느낌. 다만 여기서는 위가 빛을 받아서 밝게 나왔는데, 실제로는 제가 윗부분에 탈색을 덜 했기 때문에 좀 색이 탁한 느낌입니다. 약간 회색 섞인 파란색 느낌이에요. ㅎ.ㅎ 개만족...


 다만 문제라면



 씻을 때마다 이렇게 물이 죽죽 빠집니다. 게다가 이건 물로만 헹궜는데 이 정도로 빠진 거고, 샴푸를 하면 더 빠져요. 예전에 컬러샴푸 사 놓은 게 있어 그걸 쓰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잃어버린듯...ㅎ 그래서 안 그래도 겨울이고 기말고사 기간이기도 하겠다 사람 볼 일 없으면 최대한 샴푸 안 쓰고, 찬물로만 감자 전략으로 나가긴 했습니다. 파란색에 돈 쓴 게 얼만데 넘나 아까우니...



 2주가 지난 12월 16일의 사진입니다. 필터를 존나 먹여서 파란색이 보존된 것처럼 보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건 12월 20일 사진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필터가 부족해 물 빠짐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탈색을 적게 했던 윗부분에서 이런 물빠짐이 더 크게 나타나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원래 색이 흐려서인지 더 돋보이는 것 같아요. 그러니 여러분 파란색 할 때 머릿결이 버텨 준다면 탈색 많이 하고 하세요.  


이것은 절대 여자친구가 아닌 친구와 같이 찍은 사진인데, 12월 25일 사진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중간 부분은 노란 머리가 많이 자랐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넘기면 이마 경계 부분은 파란물이 빠져서 초록색으로 바뀐 부분도 많아요. 그래도 용케 지금까지 열심히 잘 버텼습니다 ^_^;









 사실 더 이상 가장 따뜻한 색 드립을 치면 레아 세이두 팬들이 저를 가만 냅두지 않으실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파란색은 정말 따뜻한 색입니다. 파란색을 하면, 어딜 가나 시선을 받을 수 있고, 또 수많은 질문과 감상을 들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거의 평소에 얘기 나눌 일이 없던, 학생식당 배식 아주머니와 얘기를 할 수 있었던 훈훈한 경험도 있었구요. 특히 대구 집에 내려갔을 때는 워낙 이런 색 자체가 흔하지 않으니 들어가는 식당이나 카페마다 감탄사나 질문을 들어야 했는데 정말 쏟아지는 관심은 겨울을 가장 따뜻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한 번 시도해 보심이 어떨까요?





 네...


 지난달(11월) 12일, 서울대 로스쿨 면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제가 밝은 탈색 머리를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물론 올해 서울대 로스쿨 면접은 인성 면접이 아닌 지성 면접, 즉 지적 능력을 테스트하는 면접이라고 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보수적인 법조계 정서를 생각했을 때 너무 밝은 머리는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스프레이를 뿌려서 일시적으로 염색이 되지만, 샴푸를 통해 다시 제거할 수 있는 헤어 스프레이를 발견했어요. 사실 인터넷으로 사면 집으로 배송이 오는데, 발견한 시기가 좀 늦기도 해서 그냥 2차 발표 후에 확정나면 발품 팔아 사기로 생각했습니다.

 



고속터미널역 8-1번 출구로 나가시면 상가에 패션상점이 있고, 거기서 팝니다. 인터넷보다 꽤 비쌌던 걸로 기억해요.


제 머리를 보시고 한 통이면 충분하다고 하셨는데... 음, 아무튼 전 일단 흑색으로 샀습니다.





인터넷 보니 최저가로 팔리는 건 보통 XF인데 거기는 미네밖에 없어서 미네를 샀어요.


미리 인터넷으로 사 뒀다면 돈을 아끼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ㅠㅠ








 다행히 저는 면접이 오후조가 되어 아침에 시간이 있었어요. 점심 때 일이 있다는 동생을 불러세워놓고 해달라고 찡찡대 봅니다. 다행히 동생이 스프레이를 뿌려주겠다고 해서 개꿀. 솔직히 혼자 뿌렸으면 엄청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일단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말려야 합니다.


근데 동생이 손으로 말려주니 넘나 기분 좋은 것...


기분 좋아서 사진 폭주... 눈갱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제 화장실에서 비닐을 두르고 앉아 대기.







긴장 속에서, 작전을 개시합니다.




좌측부터 스프레이를 시작한 동생. 알콜 냄새가 화장실에 가득 차지만, 아무튼 뭐 ... 순로좁게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거의 다 됐다... 싶었는데.




스프레이가 떨어짐 ㅡㅡ;


문제는 동생이 오른쪽 머리는 뒤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제일 앞에 약간의 노란머리가 남아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충 이렇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론 검은색이지만 약간씩 밝은 머리들이 섞여 있는 모양새.


게다가 제가 평소에 스프레이 잘 안 써서 몰랐는데 어마어마하게 뻣뻣합니다.




아, 저 때 제가 입고 있었던 티는 혼밥티2입니다. 이제 한정템이라 못구함 ^_^;



아무튼... 제가 혼밥하는 찐따임을 가슴에 새기면서,


"혼밥하는 찐따주제에 거짓말까지 치는구나?"를 뒷면에 새긴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면접을 위해 셔츠를 입고, 정장을 입습니다.



표정이 왜 이따위지.


지금 보니 또 머리가 많이 밝아 보이긴 하는데 뭐 이미 합격했으니 알 바 아니지요 ^_^;


면접 때 교수님들과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크게 티가 안 났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노란머리든 레인보우머리든 면접결과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되겠지만요. 


저도 교수님들이 머리색 같은 것에 신경쓰셨을 거라곤 생각치 않구요.





아무튼 기업/공공기관/로스쿨 등 준비하시는 분들께 싼 값으로 염색을 가릴 수 있는 컬러스프레이... 그야말로 개꿀이었습니다. 


(탈색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 검은색은 5번 머리 감고야 빠졌다 카더라...ㅠㅠ)





 ※ 이 글은 다음 카페 '서로연'의 합격/불합격 스펙 게시판에 제가 업로드한 것을 복사하여 게재한 것입니다.

 

 

 

 

 

 

 

 

* 아래 질문에 답해주세요!

1. 출생년도 및 성별은?

1991년/남

2. 출신교(학부)는 어디신가요?

서울대학교

3. 전공은 무엇인가요?

경제학부

4. 학점은?

3.87/4.30(94.7). (지원 시까지)129학점 이수.

재수강 8개. 주전공평점 3.68.

부전공 2개(심리학, 정치학). 심리학 평점 3.78, 정치학 평점 3.9. 

5. 리트(표준점수로, 언어/추리)?

145.6 - 언어69.3 추리76.3

(백분위 - 언어 98.5 추리100)

6. 영어점수는?

텝스 864

7. 다른 군은 어느 학교를 쓰셨어요? / 둘다 합격하시면 어디로 가실건가요?

서울대학교만 지원했습니다.

8. 기타 특이사항

북유럽 교환학생 1학기, 교환학생 장학금

경찰청장 표창 (차관급)

한자 1급

종편 채널 퀴즈대회 우승

출신고등학교 서울대동문회 회장 (및 이로 인한 사학재단 장학금)

자잘한 동아리 활동, 반 자치활동, 기부금 

9. 소감 한 마디

합격해서 마음이 놓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데이터만 올리려고 했습니다. 환산점수가 194.1이라, 발표가 늦어지니 조바심이 나긴 했지만 떨어질 거란 걱정은 안 하기도 했습니다. (고민하긴 했지만) 서울대학교만 썼던 것도, 그런 의미였구요. 그렇지만 스누라이프를 보니 환산점수 187임에도 떨어진 분이 계시고, 환산점수 195인데도 예비를 받은 분도 계시더라구요. 

 

 

 

저는 환산점수가 높았기 때문에 제가 쓴 자기소개서나 정성요소, 면접 등이 합불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입시설명회에서 들은 바로는 서울대학교 로스쿨에서는 '재수강을 많이 해서 학점을 세탁한 사람', '꿀교양만 들어 평균 학점이 높은 사람'의 학점 거품을 걷어내고 보겠다고 했는데, 위의 데이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딱 그런 케이스입니다. 재수강은 8개 과목, 전공평점은 3.68이니 총평점보다 0.2나 낮고, 결국 높은 건 죄다 교양(4.01) 과목들입니다. 그래서 입시를 준비하며 서울대학교에서 학점의 내실을 중하게 본다면 저를 떨어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자기소개서에 꽤 공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이렇게 준비했다는 것을 남기고자 합니다. 특히, 스누라이프에는 정보가 범람함에 비해 서로연에는 서울대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매년 서울대 로스쿨에 서울대생이 2/3, 연고대에서 그 나머지 1/3의 2/3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 서울대 로스쿨에 대한 정보가 스누라이프나 세연넷, 고파스와 같은 학교 커뮤니티에 집중되어 일반 학생들에 개방되어 있는 서로연에는 잘 돌지 않아, 정보의 격차가 누적적으로 벌어지게 되어, 연쇄적으로 서울대 로스쿨에 지원하는 비스카이 지원자들이 적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록 서울대생 표본이라 타대생 분들께 도움이 어느 정도 될 지는 알 수 없으나, 제 글을 참고하시고 원서 접수에 반영하시고, 합격하시는 분이 있으면 보람있을 것 같아 일단 글을 남깁니다.

 

 

 

 

 

 

 

 

 

 

 

< 자기소개서 >

 

 

 


 

 

- 총론

 

 

 

1. 저는 전체적으로 제 자신의 삶에 대한 유기적이고 통합된 하나의 상을 구축하고 이를 자기소개서에 투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게 어찌 보면 서로 방향성이 달랐던 삶의 편린들을 모아 하나의 서사로 잇는 것이 제 삶의 요소들을 살리면서 설득력 있는 자기소개서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삶의 티끌들을 긁어 모아 구축하고자 했던 제 삶의 상을 요약하면,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지식에의 갈증과 배움에의 열정이 넘치는, (비록 꾸준함은 떨어지더라도)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2. 그렇지만 거짓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소한 경험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고 하여 좀 더 설득력 있게 스토리를 짤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한 지인이 있었는데, 물론 맞는 말이긴 하지만 입시에서 그렇게까지 하기는 싫었습니다. 물론 사실 학부 입시때부터 거짓말로 자기소개서를 써서 입학했다는 소문이 도는 경우가 많은만큼 거짓말을 하고자 하는 유혹을 많이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같은 경우, 거짓말을 쓰면 안 된다는 윤리의식에 더해서, (1) 어차피 거짓말은 서류 증빙이 안 되므로 중요하게 평가되지 않으리라는 점, (2) 스토리에 살을 붙이기 위한 거짓말 같은 것이라도 어찌 되었건 저의 삶이 아니었으므로 전체적으로 봤을 때 부정합한 느낌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 즉 득은 적고 실은 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비록 한 게 너무 없고 건조하더라도 그냥 있는 사실만 쓰려 노력했습니다.

 

 

 

3. 입시 설명회에서 최계영 교수님은 서울대 로스쿨이 원하는 인재상을 '수월성과 다양성'으로 요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한 중요한 평가 포인트는 '학업지속력'입니다. 최근 서울대 로스쿨에서도 무한경쟁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겪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를 지인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월성과 다양성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것이라면, 체력과정신력이 약하지 않다, 소위 '유리멘탈'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처럼 학점이 낮고, 매 학기마다 학점 기복이 높은 학생의 경우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이 세 가지에 계속 신경을 썼습니다.

 

 

 

 

 

- 구성

 

 

 

1. 서울대학교 자기소개서는 1번 문항 3,000자, 2번 문항 800자의 총 두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합쳐진 통문항인 1번 문항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번 문항은 '자유롭게 자기를 소개하라'는 문항입니다. 저는 3,000자를 채우고 나서 보니 너무 글이 긴 것 같고, 주변에 목차를 단 친구를 봐서, 아주 간단한 대제목을 붙여 글을 세 개의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즉, 각 부분 위에 <지원 동기>, <역량과 경력>, <계획과 포부>로 나누고 부분 사이에는 한 줄씩을 띄워, 좀 더 체계성 있어 보이도록 했습니다.

 

 

 

2. 제목을 포함하여 지원 동기는 1296자, 역량과 경력은 1197자, 계획과 포부는 496자를 작성하였습니다. 즉, 계획과 포부에 1/6을 투자하고 지원동기, 역량과 경력에 각각 5/12씩을 투자하였습니다. 계획에 비교적 적게 투자한 이유는, 예년의 자기소개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계획 문항이 사라진 것을 제가 상대적으로 계획에 대한 평가를 덜 신경쓰겠다는 시그널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의 계획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고, 특히 법조시장이 어떻게 바뀔 지 모르는 지금은 더 그러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지원동기와 역량-경력 부분에 집중하여 제가 서울대학교 로스쿨이 필요로 하는 인재, 즉 수월성과 다양성, 학업지속력을 갖춘 인재라는 것을 어필하고자 했습니다.

 

 

 

 

 

- 지원 동기

 

 

 

1. 지원 동기는 제가 의경으로 복무하던 때의 경험을 주요한 골자로 하였습니다. 의경 복무 때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앞뒤의 스토리를 이어 왜 공익변호사가 되고자 하는지 최대한 설득력있게 주장하고자 하였습니다.

 

 

 

2. 첫 부분에는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나면서, 능동적으로 사회를 개선하는 일을 하고 싶었으며, 이러한 포부를 바탕으로 행정고시를 준비했으나, 공무원의 수동적 속성에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며 일단 병역부터 마치기로 결심하였다고 서술했습니다.

 

 

 

3. 이어 의경 파트에 695자를 할애했습니다. 제가 의경으로서 느꼈다고 서술한 두 가지 문제는, (1) 시위 등 여러 현장에서 국가의 자의적 판단이 (행정고시를 준비하며 배운) 법규나 행정법의 일반원칙보다 더 즉각적으로 국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이 많아 보였다는 점. (2) 또한 법집행기관의 최전선에 있는 의경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둘 중 (2)를 선택하여 당시 있었던 일화와 함께 상세히 서술하며, 이는 구조의 문제이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성을 갖추고 약자들을 돕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특히 이 부분을 서술함에 있어 단순히 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우수한 복무 태도로 경찰청장 표창을 수훈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4. 사실 위에서 언급한 (1)과 (2) 중 굳이 (2)를 선택했다는 점에 여러 지인들이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전반적으로 군 인권이 개선되었을 뿐 아니라, 의경 생활문화개선으로 인해 정말 심한 기본권 침해는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글을 수정하면서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점, '권력의 억압과 무지로 인해서, 의경들은 비록 지금은 기본권 침해가 없더라도 언제나 기본권 침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드러내려 노력했는데, 글자 수의 부족으로 충분히 선명하게 드러내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5. 의경 복무 이후에는 교환학생 경험을 언급하며 왜 저의 전문성에의 열망이 법조인으로 향했는지 서술했습니다. 특히 위에서 '능동적으로 사회를 개선'하고자 했는데, 사법은 소극적 작용이라는 일반적 관념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의 문제를 해소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유럽 선진국 등에서의 사법부와 경찰에 대한 높은 신뢰, 그리고 사회적인 높은 신뢰와 투명성을 언급하며, 이러한 요소들이 복지국가의 번영을 이끌었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의 실질적 방어권을 보장하면 결국 사회적 신뢰가 두터워져 더 나은 사회를 적극적으로 형성하게 됨을 깨달았다고 서술했습니다. 이를 서술하며 교환학생 시기 들었던 관련 과목의 이름을 적시했습니다.

 

 

 

 

 

 

 

- 역량과 경력

 

 

 

1. 역량과 경력에서는 지원 동기와 다르게, 총론에서 언급했던 서울대 로스쿨이 원하는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역량과 경력은 총 5개 문단으로 작성하였는데, 각 문단의 내용의 대강은, (1) 유년기부터 항상 책을 좋아했고 지식욕을 꾸준히 키워왔다는 것, (2) 학부 진학 이후의 전공 선택과 두 부전공을 선택한 계기, (3) 반 학회에서의 세미나와 동아리에서 회지 발행한 것 언급, (4) 리트 점수와 여러 정성 요소를 통해 수월성 강조, (5) 약자들과 공익을 위해 노력한 내용 등입니다.

 

 

 

2. (1) 문단은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비록 제가 굉장한 특이경력자는 아니지만, 단순히 학점 높고 골고루 뛰어난 모범적인 학생보다는 차별성이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상술한 바와 같이 같이 작성했습니다. (2) 문단에서 저는, 지금까지 계속하여 강조한 지식욕을 바탕으로, 부전공을 두 개를 한 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어떤 마음으로 대학 공부에 임하였는지(사회에 대한 통합적 이해에 기반하여 사회의 실질적 개선을 이룰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고 싶었음.), 왜 처음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는지, 왜 경제학에 한계를 느꼈는지, 경제학의 어떤 점을 보충할 수 있을 것 같아 정치학과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는지 작성하였습니다. 또한 마지막에 심리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 개인 문제라고 여겨지는 정신장애 발병도 경제적 빈부와 크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경제적 격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첨언하였습니다. (3) 문단은 매우 짧고 상술한 내용이 전부입니다.

 

 

 

3. (4)는 비교적 나열식이었지만 앞의 내용과 연결하여 최소한의 흐름을 갖추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성과는 지속적인 지식 추구의 결과이고, 어떤 성과는 사회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얻은 것, 이런 식으로 인과를 잇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과들로 드러나는 저의 능력이 법학을 배우고 이를 통해 약자들을 도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서술하였습니다. (5) 역시 마찬가지 측면에서, 제가 한 어떤어떤 활동들이 어떤 맥락에서 있었는지 최대한 앞의 내용과 연관하여 서술하고자 했습니다.

 

 

 

4. 사실 저는 칸이 비어 있으니 괜히 불안해서 (3)과 (5)에서 최대한 잡다한 경력이라도 끌어와 증빙서류 10개를 채웠는데, 당연히 안 채워도 붙는 분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사실 오픽 AL이 있는데 법공부랑 영어회화랑 뭔상관? 싶어서 안 쓰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보니 자치경력 1개 빼고, 영어회화를 배우기 어려운 환경임에도~ 지식욕때문에 배웠다, 이런식으로 쓸걸 그랬다는 후회가 드네요. 뭐 어떻든 서류가 많아서 나쁠 것도 없고 결국 본인 선택의 문제이니 취향 따라 채우시기 바랍니다.

 

 

 

 

 

 

 

- 계획과 포부

 

 

 

1. 계획과 포부는 계획 한 문단, 포부 한 문단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계획에서는 진학 후 기본 과목과 공익인권, 실무 과목들을 학습하겠다는 점, 실무수습을 어디서 할 것인지, 이후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의 직장 또는 단체에서 어느 분야의 공익 향상을 위해 힘쓸 것인지 썼습니다. 또한 서울대학교 로스쿨 입학설명회에서 '꿈이 큰' 사람들을 원한다고 하신 점에 착안하여 나중의 꿈을 무엇이라 쓸지 헌법재판관과 국회의원 중 고민하다가, 국회의원이 보다 적극적인 위치에 있으며 공익변호사의 이후 진로로 더 현실성 있다는 생각이 들어, 국회의원이 되어 인권 향상에 지속적으로 힘쓸 것이라 썼습니다.

 

 

 

2. 포부 부분은 카프카의 '소송'을 언급하여 이를 중심으로, 아래와 같이 작성하였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제가 지속적으로 저의 '지식욕'을 강조하였으므로, 문학이나 전공분야 외 기타 분야를 인용하여 그에 부합하는 서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카프카의 걸작 『소송』은 근대 사법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힙니다. 당국에 느닷없이 체포당한 『소송』의 주인공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 노력하지만,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법원’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좌절하며 처형당합니다. 우리 사법과 상황이 완전히 같지는 않으나,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이 느끼는 바는 『소송』의 주인공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공익변호사로서 억압􀂷무지􀂷가난으로 인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을 도와 정의를 실현하고 신뢰 사회 형성에 기여하겠습니다."

 

 

 

 

 

- 2번 문항

 

 

 

1. 800자를 작성할 수 있었던 2번 문항의 주 목표는 비교적 낮은 평점과 더 낮은 전공평점의 방어였습니다. 사실 서울대학교에서 요구하는 여러 사실들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적극적으로 작성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총 5개 문단으로 2번 문항을 구성하였습니다. 첫 문단에서는 지시대로 제가 이수한 학점 구성을 서술했고, 총평점평균과 제가 비교적 높게 받은 교양평점평균도 같이 제시하였습니다.

 

 

 

2. 또한 역사교양이 20학점 4.21인 것을 성적표를 보면서 발견하여(...) 이 부분을 둘째 문단에 썼고, '학업지속력' 측면을 감안하여 체육 교양을 3학점 이수한 것을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전공 이수의 기준, 그리고 전공 과목을 선택한 이유를 1번 문항의 '역량과 경력'에 쓴 이유와 일관성 있게 작성하였습니다.

 

 

 

3. 네번째 문단에서는 부진했던 2016년 1학기의 평점(3.5)에 대한 변명을 썼습니다. 다만 이 때 개인적으로 안 좋은 경험에 대해 쓰고 이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고 썼는데, 학점에 대한 변명이 되면서 학업지속력에 대한 평가를 해치지 않도록 최대한 균형있게 서술하려 노력하며 끝까지 고민했습니다. 마지막 문단에는 재수강에 대해 썼는데, 비록 재수강이 8개라 부정적 평가가 될 것은 당연하지만, 경제학부 전공필수 과목들만은 재수강을 해서 A를 받았다는 사실을 적시했습니다.

 

 

 

 

 

 

 

 

 

< 면접 >

 

 

 

 

 

면접은 바로 복기를 했어야 하는데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제대로 복기가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팁보다는 면접 과정을 돌아보는 정도의 느낌으로 쓰려고 합니다.

 

 

 

일단 학내에서 스터디를 구해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서울대를 포함한 각 대학의 기출, 각 대학의 학부 수시 논술문제, 리트 논술문제 등을 베이스로 해서 모의면접을 매주 1~2회 진행했고, 면접 직전에는 합격한 선배들에게 부탁하여 평가를 받고 타 스터디와 교환하여 모의면접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돌이켜 보면, 아침잠이 많은 사람들이 많아 주말 스터디를 잡아놓고 파토나고... 이런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면접 당일, 저는 다행히 오후조에 배정받았습니다. 아침잠이 많아 제발 오후조가 되길 바랐기에 일부러 늦게 접수했습니다. 참고로 서울대 로스쿨 수험번호는 접수순이고, 수험번호가 뒷 번호인 지원자들은 오후조가 됩니다.

 

 

 

면접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것이 꽤 지루했지만 다행히 다과가 주어져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지원자와 말을 트고 얘기를 좀 나누려 했는데 잡담은 금지당했습니다. ^^; 그래서 옆을 어슬렁 돌아다니며 스트레칭을 하고 창밖에 쌓인 낙엽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은, 면접이 끝나면 바로 건물에서 나가야 하는데, 창문을 볼 수 있게 해 주니 먼저 나간 사람이 창문을 통해 신호를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설로 관계자분이 보시면 내년부터 창문에 블라인드를 치시게 될까요...

 

 

 

대기는 복도에서 하는데, 교실 안에서 면접을 진행하는 교수님과 학생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아주 조금씩 들릴락 말락합니다. 저는 귀가 안 좋아서 거의 하나도 안 들렸는데 귀 좋으신 분들은 들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대기할 때 가장 가까운 면접실과 실제 면접을 본 면접실이 달라 들어도 별 소용이 없었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면접 절차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시문을 주고 10분간 읽고, 이동안 메모 가능. 10분 후 제시문 및 메모지 회수하고, 5분간 제시문 및 메모지 없이 의자에 혼자 앉아 생각할 시간 있음. 이후 앞 사람의 면접이 끝난 뒤 메모지를 다시 주고 입실. 제시문은 면접실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이후 퇴실 시 메모지를 다시 직원께 제출합니다.

 

 

 

면접실에 들어가니 교수님이 세 분 계셨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중간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님(아마 박정훈 교수님 같습니다.), 좌측에는 장년의 여성 교수님(오정후 교수님 같습니다.), 그리고 우측에는 장년의 안색이 좀 검은 편의 남성 교수님(김복기 교수님 같습니다.)이 계셨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제시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지문: 아래의 글들은 과거와 미래의 관계에 대해 다른 생각들을 개진하고 있다. 이들의 논지와 비교를 염두에 두고 읽으시오.

 

 

 

(가) 지문은 주역의 '석과불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검색하다 보니 한겨레 기사 중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2013년 기고의 내용과 전반적으로 전개가 비슷합니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아마 여기서 가져오신 것 같습니다. 지문에 나온 부분만 복사합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87105.html)

 

 

 

동서고금의 수많은 언어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주역(周易)의 효사(爻辭)에 있는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절망을 희망으로 일구어내는 보석 같은 금언이다. 석과불식의 뜻은 ‘석과는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과는 가지 끝에 남아 있는 최후의 ‘씨과실’이다. 초겨울 삭풍 속의 씨과실은 역경과 고난의 상징이다. 고난과 역경에 대한 희망의 언어가 바로 석과불식이다. 씨과실을 먹지 않고(不食) 땅에 심는 것이다. 땅에 심어 새싹으로 키워내고 다시 나무로, 숲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것은 절망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길어 올린 옛사람들의 오래된 지혜이고 의지이다. 그런 점에서 석과불식은 단지 한 알의 씨앗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에 관한 철학이다. 정치의 원칙을 생각하게 하는 교훈이기도 하다. 석과불식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교훈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엽락(葉落), 둘째 체로(體露), 셋째 분본(糞本)이다.

 

‘엽락’은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거품과 환상을 걷어내는 일이다. 거품과 환상은 우리를 한없이 목마르게 한다. 진실을 외면하게 하고 스스로를 욕망의 노예로 만든다. 오늘의 정치가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기보다는 도리어 그것을 키우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소유는 끝이 없을 뿐 아니라 좋은 사람,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도 못 된다. 먼저 잎사귀를 떨어뜨려야 하는 엽락의 엄중함이 이와 같다.

 

 

 

 

 

‘체로’는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나무의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다. 뼈대란 그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이를테면 정치적 자주(自主), 경제적 자립(自立), 문화적 자부(自負)이다. 정치적 자주는 우리의 삶에 대한 주체적 결정권의 문제이다. 경제적 자립은 위기를 반복하고 있는 세계경제 질서 속에서 그 파고를 견딜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만들어 놓고 있는가를 직시하는 것이다. 경제적 자립기반이 튼튼할 때 비로소 정치적 자주가 가능한 것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문화적 자부는 우리의 문화가 우리들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성찰과 자부심을 안겨주는 것인가를 직시하는 것이다. 자부심이야말로 역경을 견디는 힘이기 때문이다.

 

 

 

 

 

엽락과 체로의 교훈은 한마디로 환상과 거품에 가려져 있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구조를 직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삶의 근본을 마주하는 것이다. 포획되고 길들여진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분본’은 나무의 뿌리(本)를 거름(糞)하는 일이다. 엽락(葉落)과 체로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분본이다. 무엇이 본(本)이며, 무엇이 뿌리인가에 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 지문은 최근에 산업화와 정보화가 진행되고 있으나 오히려 자연적인 방법으로 회귀하는 일이 많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새롭다고 이야기되는 것들이 실제로는 과거에 시행되고 있던 것들이었다는 내용이었고, 예시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다) 지문은 데모크리토스 등 고대 그리스 과학자들이 '과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철학자조차 아니며 작가에 가깝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논지를 입증하기 위해 적극적인 논증을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라)는 발칸화(balkanization)에 대한 글입니다. 인터넷의 속성으로 인해 여론이 극단화됨에 인해 정치적 극단주의의 발흥, 즉 사이버 발칸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면 자신이 선호하는 의견만 받아들이기에 이러한 기조가 더 심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래 면접 질문들은 생각나는 것만 쓰겠습니다.

 

 

 

Q. 각 지문을 간단하게 요약하라.

 

 

 

당연히 예상한 질문이엇지만 이 때 좀 어버버하게 요약해서 저도 당황하고 교수님들도 당황했습니다. 다행히 여자 교수님께서 제가 당황한 것 같은데 침착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체적으로 핵심 내용을 얘기하면서 과거에 대한 관점을 위주로 글들을 평가했습니다. 또한 (나) 지문에서 과거를 '답습'한다고 하여, 나중에 교수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물어보셨고 저는 답습은 좀 잘못된 워딩이었고, 과거를 '충실히 계승'하는 정도로 순화했습니다. (근데 사실 제 생각은 답습이 맞긴 했습니다.)

 

 

 

Q. 어떤 지문이 (가)와 반대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사실 (나)와 (다) 모두 (가)와는 다른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굳이 더 다른 지문을 고르자면-

 

 

 

Q. 아니 뭐 굳이 더 다른 걸 고를 필요는 없다. 둘 다 반대라면 왜 반대인지 말하라.

 

 

 

A. 네. (가)의 핵심은, 과거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고 이를 비판하지만, 또한 과거를 토대로 하여 미래를 준비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경우 과거에 대해 그대로 계승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다)의 경우 과거와의 질적 차이, 단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의 비판적 계승과는 둘 다 큰 차이가 보입니다.

 

 

 

Q. (다) 지문의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스 과학자들에 대해서.

 

 

 

저는 그리스 과학자들, 여기 지문에서 말한 데모크리토스 등을 일단 학계에서 '자연 철학자'로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학자는 아닙니다. 지문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과학적 이론을 구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시문에서 말하듯이 작가라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은 단순히 미학적으로 자신들의 이론을 가다듬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 나름의 세계에 대한 관점을 바탕으로 세계의 여러 현상들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즉, (다)에서 말하는 그리스 과학자들은 철학자였다고, 자연 철학자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과학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Q. 그 뜻은?

 

 

 

비록 그들의 이론은 과학적으로 엄밀하지 않았으나, 과학 역시 과학적으로 엄밀하게만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과학적 발견들은 우연이나 미적 이론에의 열망, 순간적 영감 등에서 시작하여 과학적으로 이론화되곤 합니다. 그리스 과학자들이 과학을 하진 않았을지라도 원자론 등의 이들의 이론이 후대 과학자들의 영감을 자극하여 현대 과학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은 폄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Q. (라) 지문에 대해 본인의 견해는.

 

 

 

최근 우파 대중주의를 바탕으로 극우정당들이 세계적으로 득세하고 있고, 또한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 보호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극단화 극복을 위해서는 열린 공론장이 최대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발칸화 문제가 인터넷을 통해서만 심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심한 발칸화가 있었던 때가 전간기의 유럽이었듯이, 예전부터 이런 가능성은 상존해 왔습니다. 공론장이 무너지고 이를 회복할 힘이 없을 때 발칸화는 점점 심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인터넷에서도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혐오발언 등은 어느정도 규제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혐오발언을 규제하여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형사처벌까진 아니더라도 행정제재 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아니 그럼 왜 지금까지 그렇게 안 했지?

 

 

 

그 이유는 혐오발언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 역시 공론장과 민주주의의 유지를 위해 굉장히 핵심적인 가치입니다. 그러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 기승을 부리고 이러한 추세가,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보이듯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수자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 역시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입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존중하고 어디부터 규제하여 소수자의 권리를 지킬 것인지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고 사회적 상황과 필요에 따라 결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그리고 제가 배우기에는 최근 혐오발언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늘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안 나온 여러 가지 질문 이후)

 

 

 

Q. 근데 4번 지문에서 왜 하필 정치적 극단주의라고 안 쓰고 발칸화라는 용어를 썼다고 생각하나?

 

 

 

여기서 말하는 발칸화는 정치이념의 극단화로 인해 파벌이 나뉘고 분쟁이 생기는 현상을 뜻합니다. 제가 알기로 발칸 반도에서는 극단적 민족주의로 인해 분쟁이 많았고, 특히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 당시 각 구성국, 특히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발흥하며 코소보 사태, 보스니아에서의 인종청소, 학살 등 참혹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로 인해서 극단적 정치이념의 분화로 인한 사회적 분쟁을 발칸화로 명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질문들이 다 기억이 안 나 인상적이었던 질문만 겨우 씁니다. 마지막에 발칸화라는 용어에 대해 제가 답변한 내용은, 그 용어를 모르고 한 말이었는데 인터넷 검색해보니 같은 맥락이라 다행이었습니다. 교환학생때 유고슬라비아 역사를 들은 게 이런 이득이 ㅠㅠ

 

 

 

전 말이 빠른 편이라 말을 많이 했고, 사실 말하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았는데 그러려면 말이 빨라야 되니 지적을 받아도 딱히 고치려는 노력을 안 했습니다. 결국 말을 정말 많이 하긴 했네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말이 느린 것 보다는 이득인 것 같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탈색을 두 번 한 매우 선명한 밝은 노란 머리였는데, 면접을 위해 염색을 할까 고민하다가 검은색 컬러 스프레이를 구매하고 동생한테 아침에 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한 쪽을 다 뿌리고 다른 쪽을 뒤쪽부터 뿌리다가 스프레이가 다 떨어져서, 뭐 앞을 어떻게 덮긴 했는데, 검은 머리 사이에 드문드문 갈색 머리가 섞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상태로 면접을 봤구요. 다행히 교수님들과 거리가 멀기도 했고, 또 사실 공식적으로는 머리 색 같은 거 보면 안 되니 어찌저찌 잘 넘어간 것 같긴 한데, 완벽한 결과를 원하시면 두 통을 사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스프레이 좋은 게 일단 엄청 뻣뻣해져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몇 번 감으면 싹 없어집니다. 탈색을 지우기엔 들인 돈이 너무 아까워 ㅠㅠ

 

 

 

 

 

 

 

 

 

 

 

 

< 법학적성시험 >

 

 

 마지막으로 법학적성시험입니다. 위에서 보셨다시피 제가 LEET 점수가 꽤 높아서, 어떻게 공부했느냐, 또는 어떻게 푸느냐 등등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총체적인 이론을 갖고 수험을 한 게 아니라서요. 여러 개별적이고 지엽적인 대답만 하다 보니, 차라리 인강을 하나 찍어서 보여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만점을 받은 2017학년도 추리논증 기출로 아예 유료 해설 강의를 찍었습니다. 이후 계속 강의를 촬영하여, 최근 기출문제까지 해설강의를 찍었습니다. 무료로 할까 생각도 해 봤는데 도저히 2학기에 해외봉사에 쓸데 없이 바쁜 일을 벌려 놓은 상황에서 동기부여가 안 되더라구요ㅠㅠ. 기본적으로 문제지를 보며 추리논증 기출 한 회를 모두 푼 다음, 말미에 장기적인 공부 및 문제 풀이법 등에 대한 생각을 더 찍어서, 총 3시간여 가량 분량입니다.

 

 점점 시험을 직접 본 때로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풀이 센스도 예전같지 않고, 전문성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해서 계속 찍기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전개년 기출문제 패키지 가격을 최대한 적정하게 설정했고, 수강생 분들께서 질문하시면 최대한 성의있게 답변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리트 보고 다 붙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백분위로 바뀐다는 소리에 멘붕하고, 다시 계산하고 표본 보니 그래도 낮지 않다는 점에 안도하고, 자기소개서 쓰면서 너무 살면서 한 일이 없는 것 같아 멘붕하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러 번의 굴곡이 있어 제가 로스쿨에 들어가서 멘탈을 붙잡고 공부를 잘 할 성격인지는 모르겠어서 걱정도 됩니다만 일단 지금은 붙었으니 안도하고 쉬어야겠지요.

 

 노력하신 모든 분들 합불 여하에 관계없이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LEET 추리논증 기출문제 전개년 해설강의 - 에어클래스>

 

 

 

 





예전(4월)에 말레이시아 출신 여행자를 카우치서핑으로 호스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선물로 가져 온 어포가 맛있어서 거의 학살 수준으로 먹었더니 마음에 들면 집에 가서 보내 준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서, 그런 약속을 한 사실도 잊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소포가 와서 시킨 것도 없는데 뭐지 하고 받았더니 보낸 주소지가 말레이시아라서 엄청 감동...










어포 뿐만 아니라 쌀과자, 망고 젤리, 커피 사탕, 전통 과자 등등 엄청 많이 보내 줘서 친구 없는 찐따 입장에서 너무나도 감격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의 유로파 플레이 국가는 말라카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을 보았다.

전쟁닦이로 불릴 만큼. 문제점이 굉장히 두드러지는 영화다. 가장 거슬렸던 건 너무나도 산만한 교차편집과 부실한 설명, 감정의 발달이 느껴질 시간도 주지 않는 스토리의 급전개, 뜬금 로맨스.

그래도 블빠면 볼 만 하다고 느꼈다. 워크래프트를 고오급진 영상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희열을 불러일으키고, 산만한 스토리도 어차피 배경지식이 있으면 이해에는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후속작이 계속 나와야 아서스도 나와서 썩씨딩 유 파더도 해 주고 쓰랄도 일리단도 나올 게 아니겠는가. 그 일념으로 동생을 꼬셔서 티켓값을 흥행실적에 보탰다.









교환학생 일기: 2015년 9월 30일 수요일 






 ...



 다음 날. 수업이고 뭐고 두 시에 일어났습니다. 제 방에 있던 탁자를 꺼내 놓은 모습과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단 한 병의 먹다 남은 보드카가 어제의 광란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군요. 속도 안 좋고 머리도 울렁거렸지만, 오늘은 튜터 그룹끼리 하는 신입생 오리엔티어링 행사가 있어요. 그래서 허겁지겁 씻고 갑니다.
















 네 사실 저는 좀 늦었습니다. 아무튼 이건 우리 그룹끼리 뭐 지정된 장소들을 돌아다니면서 하는 오리엔티어링... 그런 건데,












상태가 너무 안 좋음...










그냥 막 자고 싶고 피곤합니다. 여기 왜 온 거지 대체.



별로 안 친한 셋. 죄송합니다...





 다섯 명이서 나가서 뭐 하라는 거에요. 저한테도 나가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저는 피곤합니다 피곤해요.




안 돼. 피곤해. 안 할거야. 돌아가.






 네 다섯 명이서 사진 몇 개를 보고 급속히 이야기를 잇는 과제를 하고 있습니다.




잘 했겠죠? 잘 했을 겁니다. 우리 사랑하는 튜터 그룹... 잘 했을 거야...








 다음 장소는 어떤 천문대를 가야 한다는데, 트램을 타고 남쪽으로 향합니다. 저 위에 나온, 별로 안 친한 튜터...인 율리우스에게 물어봤더니, 카이보푸이스토(Kaivopuisto; 우물 공원)로 간다고 해요. 헬싱키 남부에 있는 공원인데, 주변에 외국 대사관 등등이 많은 굉장히 럭셔리 한 동네라는 것은 들었습니다. 우와 뭔가 그래도 자연을 보니까 머리도 살짝 상큼해지고 씐나는 느낌이 나네요.



그래도 다리가 휘청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니콜라는




뭐가 이리



신이 났던 걸까요.




어찌 되었던 공원이 굉장히 넓고 좋네요. 헬싱키엔 이런 공원들이 정말 많아서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긴 굉장히 조용하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응 알았어 갈게.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우르사(Ursa) 천문대. 1926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천문대에 올라가니




이게 도심에 있는 공원인가...







녹지는 너무나 아름답고,






멀리는 바다가 보이네요.




바다가 너무 예뻐서 뜬금포로 뛰어가서 좀 더 가까이에서 찍었습니다. 저런 섬에 집 갖고 있으면 참 좋곘다...




하늘도 더없이 아름답구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희가 찾아야 하는 천문대가 이 곳이 아니었던 겁니다. 천문대가 한 군데 더 있다네요. 무슨 공원에 있는 천문대가 둘이나 있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천문대 안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렇게 닫혀 있는 곳이 아니라고.





 지도를 보니 맞았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온 카이보푸이스토 말고, 태흐티토르넨부오렌 푸이스토(Tähtitorninvuoren puisto), 그러니까 한국어로는 '천문대 공원(...)'인 공원이 근처에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저 공원을 지나쳐 왔어요... 으아 율리우스 왜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느냐 부들부들. 


 뭐 그래도 경치가 좋았었으니 됐습니다. 여러분 카이보푸이스토 꼭 가세요, 두 번 가세요. 제가 가 보진 않았지만 카페 우르술라(Ursula)라는 굉장히 좋은 카페가 있대요.






오오 뭔가 좀 큰 건물 등장. 이래야 천문대답지..!?




진행하는 사람들도 보이구요.




들어갑시다.





오오 뭔가 좀 천문대같...!?긴 한데,


저는 수업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ㅠㅠ 어휴 슬퍼라





오늘도 나중에 시험 어차피 망칠 핀란드어 수업을 들으러 열심히 트램을 뻘래뻘래 타고 학교로 돌아갑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유니카페에서 밥 고기 마카로니를 왕창 쓸어담아 후다닥 먹고 수업에를 갑니다.






근데 걸어다닐때도 상태 안 좋은데 수업 가서도 당연히 상태 안 좋아서 거의 비몽사몽으로 수업에 임함;;






그런데도 집에 돌아오니 또 배가 너무 고프니 삼겹살이나 먹읍시다.





도대체가 건설적인 일들은 다 하기 싫고 즉각적인 결핍에만 반응하는 나란 인간은 정말 어떤 인간인가 ;;





본능에는 참 충실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먹고 자고 마시는 본능...






솔직히 김치버터삼겹살 먹고있으면 내가 있는 곳이 헬싱키인지 한국인지 모르겠습니다. ㅇㄱㄹㅇ...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생일 파티 후유증을 겪었을 뿐이지, 남들한테 쪽팔릴 정도로 대놓고 노답 행동은 안 하던 제가, 

















곧 정말 술자리에서 우려먹을만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는데...

















(아 근데 생각해보니 저거보다 멍청한 일들도 교환 끝날때까지 계속 겪겠구나ㅠㅠ)



















아무튼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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