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 기쁘다.

2.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한강이 받은 상은 '인터내셔널' 상이라는 점. 원래 맨 부커 상은 영어권 작가들에게만 수상되는 상이고, 인터내셔널 상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생긴 상이다. 그러니까 '맨 부커 상'이 권위와 역사가 있는 상인 건 맞지만 그 권위와 역사가, 신설된 인터내셔널 부문까지 자동으로 (언론들이 노벨 문학상과 동급이라고 설레발칠 정도로) 세계 최고의 상으로 만들어 주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어느 정도 큰 상임은 사실이고, 경쟁한 작가들을 봤을 때는 정말 최고 클래스의 상 중 하나긴 한데, 이건 권위 없는 상도 좋은 작가 꼽으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3. 그래도 내가 기쁜 건 이 기회로 사람들이 그래도 이 책을 전보다 많이 읽을 것 같아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감정은 굉장히 복잡했는데, 맨 부커 상에서 얘기한 것처럼 정말 '아름다우면서도 잔인한' 이야기에 읽기를 멈추지 못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가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인, 소속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인데, 이런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서.

4. 평범해 보였던 어떤 현대인이 구도(救道)에 모든 것을, 삶의 마지막 불꽃까지 바치는 모습을 내가 지켜볼 수 있다면 비슷한 느낌이 들까. 인간의 폭력의 본질에 대해 수십 년을 탐구한 작가가 제시한, 폭력을 피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다가 죽음, 또는 무(無)에까지 다가가는 주인공과 달리, 나는 육식의 맛을 그 어떤 맛보다도 좋아하고 뭐 폭력을 딱히 선호하진 않지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매체들을 좋아하는 지극히 말초적인 감수성을(감수성도?) 지닌 사람이니까... 사실 그 "폭력을 거부하는 과정"에의 묘사가 매우 서늘하고 선명한 폭력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끌렸던 것이기도 하고. 나는 이러한 사람들의 감정과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노력하면 최소한의 진전이라도 맺을 수 있을까.

5. 채식주의자는 군생활 중 굉장히 드물게 내가 두 번 읽은 책 중 하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까먹어서 쓸 말이 없는 걸 보니 조만간 다시 읽어야겠다.







 

 

 

1월이 아직 하루 한나절이 남았지만 그 동안 책 한 권을 다 읽을 것 같지는 않으니, 올려 보는 1월에 읽은 책들.

1.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소설)
2. Franz Kafka, 전영애 옮김, 『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소설집)
3. 김훈, 『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소설)
4.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연작소설)
5.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문학동네 (소설집)
6. 이덕무, 권정원 옮김, 『책에 미친 바보』, 미다스북스 (수필집)
7.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소설)
8. Joseph Conrad, 이상옥 옮김, 『암흑의 핵심』, 민음사 (소설)
9. 파울로 코엘료, 공보경 옮김,『아크라 문서』, 문학동네 (소설)
10.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문학과지성사 (소설)

총 10권이니 3일에 한 권씩 읽은 셈이다. 12월에 비해서, 12월에 한 결심에 따라 정말 많이 줄이긴 했다. 그렇다고 독서량을 줄인 만큼 다른 일들을 했다 뭐 이런 것은 전혀 없긴 하지만. 

1.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번 달 읽은 최고의 책은 '채식주의자' 였을 것이다. 그만큼 두 책 모두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밤은 노래한다'의 경우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그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는 거. 그 때 내가 일부러 집중하지 않았나, 아니면 집중했더라도 별 느낌을 못 받았었나, 별 인상을 못 받았던 책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한 줄 한 줄을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2. '채식주의자'는 너무 강렬하다. 내가 읽은 한강의 첫 소설인데 김연수 소설에서 맨날 봤던 '세계의 붕괴'나 '취약성' 이런 것들을 다루고 있는데도,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세계의 붕괴를 무채색이 아니라 강렬한 이미지, 색과 빛과 형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에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3. 이덕무의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정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구나, 그런데 뭐 그 이상의 느낌, 그러니까 그 시대에 돋움새김된 마냥, 도드라진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성리학적 도학자의 느낌이 강하달까. 책을 읽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읽고 나면 그 이상의 경지는 비판적이고 치밀한 사유,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재능 ...^^;;이 없으면 도달할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덕무의 산문들은, 뭐라 해야 할지, 인상적인 내용이 너무 없었다. 과거에는 글을 배우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높은 수준의 활동이었고, 일반적인 글에도 아우라가 있었으니 이런 글들이 전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니면 그냥 내가 아직 학문의 수준이 미천해서 이덕무의 뜻을 못 느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4.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사실 앞부분에 흩뿌린 단서들이 약간 비겁하다는 생각이 드는 반전이긴 했지만, 충분히 재밌고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김영하의 대표작이라는 '검은 꽃'이나 '빛의 제국'도 반드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

5.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모두 재밌었지만, '산책하는 사람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 이상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문학작품인지는 나의 문학적 소양이 일천하여 느끼지 못하였다. 한강의 '몽고 반점'을 읽었을 때는 바로 느낌이 확 왔는데, 끙 ^^ 작년엔 김애란, 올해는 편혜영이 이상문학상을 받았다는데, 그 소설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 올까.

6. 마지막으로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 저번에도 결심했지만 지키지 못한 거. 앞으로도 파울로 코엘료 소설은 안 읽어야겠다.



밤은 노래한다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과지성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