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 일주일 간 이유도 없이 그냥 책만 읽었다. 나에겐 아무래도 학자보다는 딜레탕트가 어울리는 것 같다...

1-1.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은 너무 대단해서 한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전율이 일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이런 건가. 출판사의 횡포로 절판되어 살 수 없다는 게 아쉽다.

1-2. 어제 읽은 건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한 책 안에 4개의 중편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마지막 하나 빼고는 모두 사랑과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 있는 초기작 '가정의 행복'은 평범한 구성으로 흘러가지만, 남녀가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다시 권태를 느끼다가 진정한 부부간의 행복을 깨닫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로 성욕이 엄청났던 톨스토이는 인생의 후반기에서 더 이상 정욕이 가정...에서 제어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크로이체르 소나타'와 '악마'에서 주인공은 모두 파국을 맞이한다. 마지막 중편인 '신부 세르게이'는 주된 주제가 성욕은 아니다.
비록 자신의 지나친 성욕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톨스토이의 금욕적 세계관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그 금욕의 행복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욕정으로 인한 파멸을 그린 두 단편들은 톨스토이 특유의 심리 묘사 때문인지 정말 강렬하게 남았다. 다음에 감상실에 가면 꼭 꼭 크로이체르 소나타 1악장을 들어야겠다.

1-3. 장은진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전국의 모텔을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주소를 알아 편지를 쓰는 '편지여행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빨리 읽힌다. 이 책을 읽고 진심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휴대폰 번호 대신 주소를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1-4.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오웰은 프랑코에 맞서 총을 들고 스페인으로 뛰어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리스 독립 전쟁 때도 바이런이 총을 들고 뛰어들었다.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들에서, 흔히 선하다고 여겨지는 편에 작가나 예술가들이 목숨을 바친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벌어지는 전쟁들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는데, 전쟁이 산업화되고 총력전화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부분의 전쟁들이 제1세계 외부에서 벌어지기 때문인지. 아무튼 역시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오웰은 목숨을 걸고 목에 총을 맞아 가면서까지 싸웠지만 줄을 잘못 탔다는 이유만으로 공산당 정권의 탄압을 받아 프랑스로 도주하고, 잘 알듯이 스페인은 파시즘화된다.

1-5. 『빅 히스토리』. 한국어로 옮기면 거대사. 미국에서 빌 게이츠가 후원하는 중고등학생 대상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중등교육에서 빅뱅부터 지구의 형성, 지질, 진화, 그리고 문명의 발전에까지 모든 것을 연관지어 다른 학문들과의 관계에서 생각하도록 한다는 것이 놀라웠고 부러웠다.

1-6. 류성룡, 김시덕 역해『징비록』. 징비록은 임진왜란에 관해 류성룡이 쓴 사서인데, 읽으면 임진왜란에 대해 류성룡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느낄 수 있다. 매우 두꺼운데 어차피 한문은 안 읽으니까 생각보단 양이 적고, 역해가 본문보다 양이 많다...

1-7.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읽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서 그냥 덮었다. 대충 한 챕터를 다 읽으면 무슨 소린지는 알겠는데, 한 문단씩은 뭔 소린지 모르겠다. 정치철학 전공자들만 읽어야 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집중력이 부족해서 못 읽었나 싶기도 하고. 이런 책을 신문 광고에 내다니... 생각보다 우리나라 대중의 독서력이 쩌나 보다.

2. 그리고 무엇을 또 읽을까 생각하지만 도서관 검색해보면 지금 빌려가서 없는 게 너무 많아서, 어차피 생각나는 것들, 역사나 문학이나 한번에 다 빌리긴 힘들고 조금씩 조금씩 빌려와야 할 것 같다.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조급해하지 말고 많이 읽자.

3. 첫눈이 온다. 부대 앞에서 눈발이 엄청나게 휘날린다.

4. 특박이 얼마 안 남았는데 벌써 특박 끝나고 느껴질 공허함이 생각나는 걸 보면 정말 내가 권태에 시달리고 있긴 한가보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8점
장은진 지음/문학동네




『고종시대의 재조명』을 다 읽었다. 읽고 난 느낌은 뭐랄까, 주모 국뽕 다섯사발만 더 주소 해서 다섯사발 들이킨 느낌. 다만 뽕답게 끝맛이 쓰고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태진 교수님의 연구를 뽕으로 비유하면 안 되겠지만, 1902~1903년간에 무기제조소를 만들고 징병제 실시를 예고하고 그랬던 것을 보니 좀 아쉽고 쓰라리다. 그랬으면 제대로 된 전쟁이라도 해봤을 텐데. 이외에도 재정적으로나 토지제도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전근대적이라고 비판하겠지만 나름의 개혁을 했고, 무엇보다 몰랐던 서울 도시개조사업에 대해서 알게 되어서 좋았다. 독립협회 위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봤고.

근데 우리나라가 아무리 개항이 1876년으로 늦었다고 해도 일본의 1863년보다 13년밖에 차이 안 나는데, 일본은 13년만에 운요호라는 배를 띄워 다른 나라를 함포로 개항시켰는데(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태진 교수는 고종의 능동성을 강조하지만) 우리나라는 개항 13년 후인 1889년에 왜 아직 시골 구석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역시 청이라는 압력이 너무 강했다는 답변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일본은 전통적인 조공-책봉 질서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그 질서 안에 제대로 포함되어 있었고, 청의 속방화 정책에서 벗어나려고 열강들이랑 조약들 맺고 했지만 임오군란 이래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으로 관세권을 뺏겨버렸으니 뭐 개혁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있나. 한성주보마저 돈 없어서 폐간되는 마당에. 그런 의미에서 청일전쟁으로 청의 영향력이 상실되고 아관파천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상실된 대한제국기부터 비로소 제대로 된 (근대적이든 보수적이든) 개혁이 시작된 거고, 그래서 러일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징병제 군대도 없었고 해군도 없었던 게 아닐까. 갑오개혁은 제도개혁에 국한되어 있었고, 제대로 된 산업진흥과 실질적 국력향상을 동반한 광무개혁은 8년밖에 안 했으니. 아무튼 원래 우리나라가 속해 있었던 외교질서의 제약이 너무 아쉬웠다. 고종이 얼마나 똑똑했어야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었을지 생각하니 괜히 숙연해진다.




고종시대의 재조명 - 10점
이태진 지음/태학사






 

이렇게 볼륨은 가벼우면서도 흥미로운 책도 오랫만이다. 260페이지 가량에 글씨 크기도 큰데 문장 하나하나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2012년 여름학기 수업에서 처음 소개받은 책인데 그 때는 큰 관심은 없다가, 입대^_^ 하고 나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순식간에 독파했다.

 


 

1. 머리말

 

 이 책은 고종과, 그가 주도하였던 광무개혁, 그가 주도해서 세운 대한제국에 대해서 정말 국내 유수의 학자들이 대립하며 토론하며, 낱낱이 따졌던 기고문들을 한 데에 모아 놓은 것이다. (제목 한 번 정말 잘 지었다.) 정확히는 교수신문에서 2004년에 지면상으로. 책은 약 20여 개의 기고문들과 마지막 1회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서울대 경제학부 김재호 교수가 이태진 당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가 집필한 『고종시대의 재조명』이라는 책에 대해 비판적인 서평을 게시한 것이 시작이었다. 김재호 교수는 이태진 교수의 저서에 대해 '조명이 너무 세다.'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에 대해 이태진 교수가 반박 기고문을 쓰면서, 장대한 논쟁이 시작된다.

 

 신문 기고문이라는 특성상 방대한 내용이나 근거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강렬한 표현을 구사하며 자신들의 논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마치 눈앞에서 세기의 토론이 벌어지듯이.

 

 


2.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이태진 교수의 고종 옹호론

 

 이 논쟁이 갖는 성격을 이해하려면, 한국 근대사를 바라보는 상이한 두 개의 시각, 즉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내재적 발전론이란 말 그대로 한국의 근대가 외부의 영향 없이도 '내재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일제의 침략 이전에도 조선 후기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맹아가 형성되고, 계급 사회가 철폐되는 등 근대가 자주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는데, 일제의 침략으로 그 내재적으로 발전하던 근대가 왜곡되었고 식민지 체제가 성립하였다는 주장이다. 이는 서울대 국사학과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견해이며,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근대 태동기'라는 단원까지 따로 만들면서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견해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일제 침략 이전에 조선왕조는 이미 내재적 파탄 상태에 이르렀으며, 식민지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근대화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선왕조는 이미 1800년대에 이르러 극심한 흉작, 빈발하는 민란, 문란한 정치로 인해 19세기 중반에는 체력이 소진되어, 외세의 침략 없이도 멸망할 운명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즉, '내재적 발전'이 아니라 이미 '내재적 파탄'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경제사학자들이 실증적 통계자료들을 무기로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견해이며, 이 책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교수들도 대부분 경제사학자들이다. 

 

 다만 유념해야 할 것은,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사이에 (또는 그 밖에) 많은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이다. 일제가 조선을 위해서 은혜를 베풀었다는 식민지 시혜론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합리적 토론에서 당연히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재적 발전론도 (맹꽁이 서당에서 봤던 것 같은) 정말 조선이 정조가 살아있었다면 미국보다 더 쎄졌을거라거나... 이런 차원을 논하는 게 아니다.

 

 한편 이태진 교수의 견해는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과는 조금 다르다. 이태진 교수는 조선 후기의 전체적인 근대화 추세보다는 '고종'과 '대한제국' 시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 시기에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개항 이전의 시기들보다는, 개항 이후 고종의 적극적인 대처로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근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내재적 발전론과도 다르면서, 식민지 근대화론과는 충돌하는 견해이다. 이태진 교수에 따르면, 근대화의 시작은 고종의 개화정책이고, 본격적 시작은 광무개혁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종의 개화정책이 신속하게 추진되자 이에 경계심을 품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조기 병탄하였다는 것이다.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굉장히 논쟁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고종황제


 


 

3. '대한제국 논쟁'과 고종

 

 책은 대한제국의 전방위에 대해 논쟁을 멈추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경제성장으로부터, 고종의 정치이념, 민국정치 이념이 근대성을 띠고 있는지, 고종은 근대적 개명군주인지, 개화기 급진 개화파는 일본의 사주를 받은 친일 분자였는지 개화의 선각자들이었는지, 고종의 국정 운영은 근대적이었는지, 궁내부 위주의 재정 운영은 전근대적 재정 운영을 반영하는 것인지 왕권 강화를 노렸던 고종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인지. 이태진 교수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 이외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논쟁은 매우 심화된다.

 

 책에서조차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이므로 내가 이 논쟁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독자니까 여기다가 내 생각을 써 놓고자 한다. 나는 이태진 교수가 제시한 고종에 대한 견해들이 다 옳다고 하기엔 너무 섣부른 것 같지만, 기존에 지속적으로 견지되어 왔던 고종에 대한 암약설 등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하고 고종과 그의 측근들이 진행한 근대화 사업들의 위상을 적극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사를 배우면서도,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서는 평소에 회의를 품고 있었지만 고종이 암군이었다는 것은 그냥 대전제로 받아들이던 차에, 이태진 교수가 제시한 사료들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학설들은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사실 제도권 근현대사에서 고종의 위상은 매우 낮다. 일반적으로 개화기 초기는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대립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고, 중기 이후에 급진 개화파가 개화를 주도해 나가고 고종은 끊임없이 개화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만 묘사된다. 그러나 전제국가였던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에서 고종과 그를 중심으로 한 이용익 등의 측근세력의 역할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대원군-민비-독립협회 중심으로만 역사를 이해하려다 보니 항상 어디가 비고 허전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고종이라는 인물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읽어나가다 보니 근현대사의 빈 조각이 맞아 들어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에 비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견해는 지나치게 고종에게 엄격한 느낌마저 들었다. 경제적 수탈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억압이 있었던 식민지 시대에 '근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하면서도, 주변 외압에 시달리면서 8년간만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고종에 대해서는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폄훼하는,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느낌이었다. 자신들이 근대화 지상론자가 아니라는 김재호 교수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당시 민중이 겪었던 고통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화폐정리사업과 토지조사사업을 예찬하는 부분에서는 근대화 지상론의 그늘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통계적 수치로 역사를 그려내려는 작업을 하고 있고, 그런 작업들이 성과를 얻고 있고, 그런 성과들로 근거를 제시하여 역사를 서술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 대해 찬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국사까지만 배운 나로서는,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아직 실증적인 연구방법이 정착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처럼 기후, 지질, 식생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역사서는 아직 보지 못한 것 같지만, 흩어져 있는 여러 통계자료들을 모으고 추계하는 작업으로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으로도 대단한 발전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런 자료들의 해석 과정에서 오직 숫자만을 고려하려는 것 같은 점은 아쉬웠다. 숫자는 분명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숫자를 고려하면서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도 같이 고려해야 통합적인 역사 서술이 되지 않을까. 현재 이태진 교수의 『고종시대의 재조명』을 읽고 있는데, 이를 다 읽고 나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저서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논쟁을 살펴보면서 느꼈던 것은 양쪽이 동의하듯이 어떠한 편견으로 결과를 미리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이건, 내재적 발전이건, 고종 주도의 근대화이건, 셋 중 하나는 답일 수 있고 셋 모두가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민족주의적 감수성이 손상된다고 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처음부터 틀렸다고 재단하거나, 자신의 편견에 합당하지 않는다고 내재적 발전을 틀렸다고 재단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분명히 양 쪽 모두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그런 편견이 느껴졌다.   양 쪽 모두 역사적 담론들과 실증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편견을 버리고 소통해 나간다면 인식의 간극을 조금씩은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4.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이 책을 온전히 감상하기에는 나의 끼적끼적댄 부분들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짧은 기고문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호소력있는 정말 인상깊은 문단들이 많다. 이러한 구절들을 살펴보기만 해도 책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될 것이다.

대한제국 근대화 사업은 더 많은 발굴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 사업은 일제 침략으로 미완에 그쳤지만 우리의 자학자조를 걷어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대한제국은 무능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근대화 사업의 빠른 성과에 대한 일본의 조기 박멸책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 이태진,「식민사관의 덫을 경계해야 한다」, 책 32p

앞날을 내다볼 수 없이 전개됐던 한국근대사를 친일이라는 현재의 잣대 하나로 재단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대한제국 재정의 난맥상과 악화(백동화) 남발에 의한 인플레이션마저도 일제의 '국제선전전'에 의해서 날조된 것이라고 사고하는 이 교수에게 객관적 사실 인식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주장하듯이 국왕만 홀로 남은 역사에서 우리는 과연 '자학자조'를 싯어내고 자긍심을 되찾게 될 것인가. 역사 연구가 어느 개인을 지목해 책임을 지우고 청산하는 것으로 전락해서는 앞날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면 대한제국 '국제'에서 규정하고 있는 유일한 주권자 고종황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 김재호,「대한제국에는 황제만 산다」, 책 40p

 

김재호 교수는 나의 작업을 '고종 홀로 남기기' 역사라고 했다. 이것은 큰 오해다. 내가 그동안 고종을 주로 거론한 것은 이 시대 역사 왜곡이 그의 무능을 핵심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역사학도가 근대화란 시대적 대과제를 황제 1인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겠는가. 그에게는 그의 노선을 지지하면서 소리 없이 임무를 수행한 많은 신료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변방 상공인 출신(이용익), 서얼 출신(이채연) 등 비 양반 출신들이 많았다. 근대화의 주역이라면 김옥균 같은 존재보다 이들이 앞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 이태진,「'고종시대' 악센트는 '시대'에 있다」, 책 46p

 

우리 사회는 식민지시대에 개시된 근대 경제성장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 식민지시대의 과거는 제도의 연속성을 통해서 현재와 굳게 연결돼 있다. 이 점을 숙고한다면 '내재적 발전론'이 주장하듯이 식민지시대에 개시된 근대 경제성장 과정을 우리 역사에서 소거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장기역사에 통합해야만 한다. 이 때 과거는 외국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낯선 이방인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식민지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 김재호,「누가 근대화 지상주의자인가?」, 책 58p

인간 사유의 역사에서 근대란 무엇인가? 이 어려운 질문에 부닥칠 때마다 나는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오랜 전통에 따라 자연과 사회의 분리, 정치와 경제의 분리 또는 공과 사의 분리 등과 같은 명제로 평범히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상식으로서의 근대에 비추어 볼 때 앞과 같은 근본주의적인 성리학의 교의체계는 근대가 아니다. 지난 50년간 한국의 사회과학과 역사학이 이른바 실학이란 장을 펼쳐 놓고 18~19세기의 선각자들에게서 성리학을 넘어서는 사유방식이나 적어도 그 조짐을 발견하고자 그렇게 애써 왔던 것도 다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이 교수는 따지고 보면 성리학의 교의에 더 없이 충실한 민국이념을 근대 지향이라고 함으로써 우리들의 오랜 상식과 전통을 간단히 일축하고 있다. 상식과 전통은 결국 어느 위대한 지성에 의해 무너지기 마련이다. 나는 이 교수가 그러한 위대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중인지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래서 나는 이 교수의 논문을 그 행간까지 몇 차례 뒤졌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상식으로서의 근대를 대체할 새로운 근대를 제시하거나 모색하고 있음을 확인하지 못했다.

 

- 이영훈,「고종은 여전히 소중화적 세계관에서 헤엄친다」, 책 96~97p

나는 이 교수가 주도한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의 성과를 주목한다. 학계는 이 책이 제시한 많은 통계 분석들을 크게 활용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 교수가 총설을 통해 재확인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이 글에서 수량 분석적으로 나타난 1896년부터의 반등세에 대한 해석은 빠져 있다. 그러면서 1860년대의 '위기적 형세'만을 가지고, 조선왕조가 "어떤 강력한 외세 작용이 아니라 모든 체력이 소진된 나머지 스스로 해체된 것"이란 엄청난 결론을 내렸다. 1890년대 후반 이후의 반등세를 건너뛴 이런 역사 규정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 이태진,「1896년 이후 반등세, 왜 그냥 넘어가는가?」, 책 113~114p

 

도대체 1873년 20세에 친정에 나서서 30여 년을 다스렸던 군주가 아무런 사상적 발전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1876년부터 이루어진 문호개방 과정에서 고종은 대체로 개방론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김홍집이 들여온 《조선책략》과 《이언》을 유생들의 천식을 개도한다는 명목으로 인쇄해 반포하도록 한 사람이 바로 고종이었다. 1882년 일본에서 조선 정부 내에서 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한 자들이 고종과 김옥균, 박영효 정도밖에 없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아관파천 이후에도 척사론자들의 요구에도 단발령의 취소를 거부했고 대한제국 수립 후에는 대신들의 단발을 강요하기까지 했던, 그리고 과거제의 부활과 연좌제의 재도입을 주장하는 보수세력의 요구에 끝까지 응하지 않았던 고종이 성리학적 도학군주를 지향했다고 주장하는 논리에서 고종의 의미를 철저하게 부정해 식민지화의 필연성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비록 실패했고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고종이 개명군주를 지향했다는 점은 인정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 주진오,「개명군주이나, 민국이념은 레토릭이다」, 책 128~129p

경제사학자들이야말로 일제시대 경제성장을 조선후기 이래 우리의 '장기' 역사와 완전히 단절시켜 '맨땅'에서 새로 출현한 것으로 보면서 고작 36년에 불과한 이민족 지배자의 '단기' 통치를 현대의 우리 경제와 통합시켜 보자는 의도는 무엇인가? 한국 현대 경제성장의 기원이 일제의 '효율적인' 식민 지배체제에 있다고 보는 것인지, 아니면 일제 지배체제의 경제적 효율성을 '극적으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대한제국은 부정부패와 비효율이 만연한 봉건왕국의 오명을 굳이 뒤집어써야 한다는 것인지 그 저의를 의심케 한다. 일제의 재정정리사업이나 토지조사사업이 가진 그 심각한 폭력성과 수탈성은 무시한 채 더없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듯한 외피를 입힌 통계 수치로 그 야만의 시대를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근대만 달성되었다면 그것이 이민족 지배자에 의해서건 아니건 상관없다는 태도를 우리는 근대화 지상주의라고 부른다. 혹자는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부패한 왕정이나 이민족 지배자나, 수탈자이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성으로 코스모폴리턴을 꿈꾸는 우리네 지식인 연구자들과는 달리 역사속의 보통 대중들은 오히려 소박한 동포애와 애국주의에 이끌려서 '나랏님'을 위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조선왕조의 유교 지식인들이 내내 중화 문명에 경도되어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듯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 역시 '근대'라는 또 하나의 우상에 갇혀 있는 것인 아닌지 걱정된다.

 

- 서영희,「일제의 폭력과 수탈 잊었는가?」,  163~164p

3·1만세시위운동 후,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헌법기초위원회는 새 국가의 국호를 조선공화국으로 준비했다. 그러나 대의원 회의에서 수개월 전, 대한문 앞에서 고종황제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일어난 함성은 곧 고종황제에 대한 온 국민의 충정을 보여준 것으로, 새 국호는 대한제국을 승계하는 대한민국으로 하자는 동의가 나왔다. 이것이 다수 의견으로 채택되고 임정 제1차헌법은 제4조에 대한제국의 영토를 승계한다고 명시했다. 백범 김구는 이 승계의식을 끝까지 지킨 임정 지도자였다.

 

- 이태진,「민국이념은 역사의 새로운 동력」, 198p

엉뚱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대한제국은 완전히 멸망하지 않았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다. 대한제국으로 집성된 조선사회의 문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호흡하고 있는 현대 문명을 밑바닥에서부터 규정하고 제약하고 있다. 그것이 역사인 것이다. 그 역사적 맥락을 실체적으로 잡아내고 현대 문명을 선진화시키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의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재규정하는 데 쉽게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렇게 되기를 똑같이 바라고 있지만 아직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거나 서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다투고 있는지 모르겠다.

 

- 이영훈,「논쟁을 마무리하며」, 216~217p

 







 클리셰란, 너무 자주 등장하고 뻔해서 지루한 것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의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뭐 그런 것들. 클리셰들은 쓰이면 작품을 지루하고 뻔하고 재미없고 흔하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얼마나 그 소재들이 흥미있었기에 우리 조상들로부터 수백년동안 쓰여서 우리 모두가 뻔하게 느끼게 된 요소일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클리셰가 적당히만 들어가면 재밌고 흥미로운 작품이 된다. 생각해 보면, 익숙한 요소가 하나도 없으면 그건 그냥 실험적 전위작품일 뿐이지 않겠는가.


 예전에 『매트릭스』 시리즈가 클리셰들의 집합이라고 쓴 글을 봐서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기계가 준비하는 미래'는 터미네이터에서 따 온 것이고, 모두를 구원할 1명의 구원자라는 개념이야 신약성서 이후에만도 2천년을 지속되어 왔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클리셰고, 정말이지 난무하는 종교적이거나 포스트모던적인 은유들까지 헐리우드의 클리셰들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클리셰들에 독창성과 멋진 연출력을 가미하니까 매트릭스 시리즈는 우왕ㅋ굳ㅋ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너무너무 몰입해서 빠르게 읽었던 『헝거 게임』시리즈에도 여러가지 클리셰들이 정말 많았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이 소설 덕에 미국에서 저번 2012년 런던 올림픽 중 시청률 1위 종목이 양궁이었을 정도였으니까.


영화 『헝거 게임』 포스터

 헝거 게임 영화를 이전에 봤었었는데, 꽤 재밌긴 했지만 정말 재밌다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중대 독서실에서 『헝거 게임』을 보고 바로 집어들었고, 읽고 나니까 멈출 수가 없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캐칭 파이어』와 『모킹제이』도 빌려 읽었다. 『모킹제이』는 밤 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오면서 독서등을 키고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다 읽었는데, 아마 내 눈이 많이 안 좋아졌겠지 ...


 헝거 게임 시리즈의 1부에 해당하는 『헝거 게임』은 만화 『배틀 로얄』에서 봤던 것 같은, 청소년끼리의 죽고 죽이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제국 '판엠'을 지배하는 도시 '캐피톨'은, 75년 전에 있었던 구역들의 반란에 대한 보복으로 그 해부터 12개의 각 구역 남녀 청소년 1명씩을 추첨으로 뽑아서 단 1명만 살아남는 죽고 죽이는 '헝거 게임'을 만들고, 이를 쇼처럼 판엠 전 지역에 생중계한다.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은 동생이 추첨되자, 자신이 자원하여 헝거 게임에 참여한다. 그리고 배고픔에 시달리던 자신에게 예전에 빵을 주었던 빵집 아이 피타도 함께 헝거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아무튼 그 후는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헝거 게임에서 어떻게 살아남게 된 캣니스는 『캐칭 파이어』와 『모킹제이』를 통해 반란의 상징이 되어 마침내 캐피톨을 전복시키고 판엠에 새 세상을 가져다 준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가운데 삼각관계도 있고.


 언뜻 보면 뻔한 스토리일 수 있겠지만, 저자는 신경을 정말로 정말로 많이 썼다. 현장감 넘치는 묘사는 물론이고, 군데군데 숨어 있는 충격적인 반전들. 청소년 소설답게 캣니스는 혁명의 주인공이 되지만, 먼치킨이 아니라 방송을 통한 프로파간다 담당이고, 정말 마음이 피폐해질 정도로, 독자가 안타까울 정도로 고민하고 절망하며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 결말도 주인공이 영웅이 되어서 끝나는 단선적인 결말이 아니고, 해피 엔딩이긴 한데, 아무튼 ... ^^


 다만 전쟁의 전체적인 측면에서 너무 쉽게 이긴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쪽으로는 좀 에러였던 것 같다. 군사력도 짱이고 자원도 짱인 캐피톨이 너무 이상하게 쉽게 발린다. 그리고 어린 소녀인 캣니스의 시선으로 헝거 게임 내를 바라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캐칭 파이어』에 가서는 캣니스의 시선과 전체적인 스토리 흐름이 균열되는 느낌이 든다.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책에서는 자꾸 사소한 것만 서술하는 느김. 캣니스가 혁명의 전면전에 나서는 『모킹제이』에 가면 이런 균열은 없어지지만.


아무튼 시간 나면 봐서 손해볼 것 없는 책.


덧. 『캐칭 파이어』영화는 11월 개봉 예정인 것 같다. 볼 영화가 하나 늘었네.


덧2. 헝거 게임 시리즈는 영한대역본도 있다. 영어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영판이 더 잘 쓰긴 잘 쓴 것 같다. 번역도 힘드셨겠지만.



헝거 게임 세트 - 전3권 - 10점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북폴리오







 허삼관매혈기는 예전에 읽었다. 입대하고 논산에서는 정말이지 정신없고, 하루하루 생각할 시간도 없었는데, 경찰수련장에 오니까 꽤 여유가 생겼다. 하필 내가 온 날 뒤에 현충일이랑 주말이 연달아 있어서 제대로 된 훈련도 안 하고, 군기만 쓸데없이 잡으면서 잉여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었다. 생각보다 꽤 빨리 공중전화 통화를 풀어줘서 전화번호 아는 친구들한테 다른 전화번호를 묻고 또 물어서 계속 전화를 했었다. 그리고 여기 너무 지루하다고, 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징징댔다. 다행히 그 다음 주부터 제식이니 체력이니 방패술이니 훈련이 시작되어서 책 읽을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고맙게도 부모님이 공부라도 하라고 한자사전과 영어단어집을 보내주셨고, 그 뒤에 자대배치 받자 마자 친구 한 명이 이 책을 보내 주었었다. 자대에서 눈치는 보였지만 너무 잘 읽혀서 쉬는 시간에 순식간에 읽어버리고 말았었다.


 사실 나는 중국 현대 소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아니, 이전에 소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주로 읽는 책들은 역사나 교양과학 책들이거나, 그런 저자들이 쓴 에세이류니까. 중국 현대 소설은 완전히 문외한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앞으로 중국 현대 소설을 좀 읽어 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삼관매혈기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시종일관 담담하면서도 희극적인 어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허옥란이 허삼관의 아이를 낳으면서 허삼관을 원망하는 장면이나, 허옥란이 허삼관의 구박(구타?)을 당할 때마다 대문밖에 앉아서 하소연을 하는 장면 등등. 사실 장면으로 굳이 따지지 않아도 책이 전체적으로 허삼관이 피를 팔아서 생계를 부양하는 내용이고, 중국 현대사의 우여곡절과 그로 인한 보통 사람들의 생계의 곤란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인데도. 나는 이러한 희극적인 서술에서 일반 민중이 고난에 대처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고통스러운 것을 계속 고통스럽다고 질질 짜봐야 긴 인생에서 큰 소용이 없다는 걸 노인 분들은 알고 있다. 부조리나 고난이 심했던 과거라면 당연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판소리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어렵고 슬픈 일도 가능하면 웃음으로, 웃으면서 넘기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허삼관매혈기에서의 서술도 이를 반영한 것일 거라 생각했다. 담담하면서도 희극적인 어투 뒤에 펼쳐지는 허삼관 가족과 민중들의 생활은 결코 희극적이지 않으므로. 


 허삼관매혈기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역시 주인공인 허삼관이다. 그는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인 사람이다. 아내를 구박하고, 불륜도 하고, 일락이에게 모질게 대하는 동시에, 때로는 가족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걸고 피를 파는 사람이다. 읽으면서 처음엔 모순적이고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니 이게 보통 사람들이었다. 충동에 이끌려 실수를 하기도 하고, 성품이 안 좋아서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굴기도 하면서,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고 사소한 공공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하기도 하는 사람들. 마지막에 허삼관이 피를 팔면서 상하이로 가는 부분은 그래서 더 찡했다. 그 부분은 정말 책에 적힌 카피처럼, '세상 모든 아버지에게 건네는 따뜻한 황주 한 잔'과 같은 느낌이었다. 작가는 이 부분을 결함도 있고 편견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하기도 하는 모든 아버지들을 위해 썼을 것이다.



덧. 독후감을 쓰기 전 기억을 되살릴 겸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놀랐다. 허삼관매혈기가 하정우 감독 및 주연의 영화로 나온다고 한다. 나중에 나오면 꼭꼭 봐야지.


허삼관 매혈기 - 10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푸른숲










북조선 혁명의 토착성에 주목한 실증적 연구

『북조선 탄생』 서평


※이 포스트는 제가 2011년 2학기 '한국현대사의 이해' 수업에서 작성했던 서평을 편집한 것입니다.


I.     들어가는 말


 

1948, 38도선 이남에 8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38도선 이북에 9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천년 동안 단일한 국가 체제를 유지해 왔던 한국은 두 나라로 분열되었고, 2년 후에는 그 두 나라 사이의 참혹한 전쟁이 한반도를 덮쳤다. 거기다가 더욱더 심화되는 전세계적 냉전 구조는 두 나라에게 서로 상대방을 철저히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을 부여했고, 남은 군사 독재, 북은 유일 체제의 확립을 겪으며, 그러한 경직성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90년대 초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가 일으킨 후폭풍으로 인해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여 냉전이 종식되었을 때, 북조선은 동구권처럼 몰락하지도, 중국처럼 시장주의의 길을 걷지도 않은 채 체제를 유지했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후계를 이었을 때에도, 고난의 행군에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생겼을 때에도, 북조선이 몰락하리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북조선은 체제를 유지했고, 현재에 이르러 3대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내부적으로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현대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비민주 국가가 폭압만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 위에서, 『북조선 탄생』의 저자 찰스 암스트롱은 책에서 이러한 북조선 체제의 내구성을 설명하기 위해 북조선의 초기 혁명 과정을 강조한다. 그는 서론에서, 책의 연구 주제로 네 가지를 들고 있다. ①북조선 공산주의의 토착화’, ②해방 이전 역사와 정치 문화의 영향, ③북조선 혁명의 총체적 성격, ④인민들 사이의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북조선 당국의 노력이 그 연구 주제들이다. 이러한 분석 틀을 바탕으로 저자는 여덟 개 장에 걸쳐 혁명기의 북조선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II.    토착 혁명으로서의 북조선 혁명

 

북조선 혁명은 당시 냉전 형성기라는 국제적 맥락을 배제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냉전의 형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역사학계에서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라는, 두 개의 큰 흐름 사이의 대립이 있어 왔고, 당연히 연속적 맥락에서 북조선 정권의 탄생에 대해서도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는 대립하는 관점을 형성해 왔다.


전통주의는 냉전이 소련의 팽창을 미국이 저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냉전의 일차적 책임은 소련에 있다고 주장한다. 소련체제의 성격을 규정하는 이념이라는 요소가 소련의 팽창정책을 이끌었고, 냉전의 종식은 이에 대한 미국의 성공적인 억지 정책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주의적 해석과는 반대로 수정주의는 소련은 미국보다 국력의 모든 측면에서 열세에 있었고 따라서 팽창정책의 추진이 불가능했으며, 오히려 전후 미국이 공격적으로 시장 확보에 나섰고 이러한 확장에 소련이 대응함으로써 냉전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김영호: 446~447). 그런데 냉전 이후에 공산권의 문서고가 개방되면서, 전체적인 시각은 개디스(Gaddis)를 중심으로 전통주의와 수정주의의 종합으로 자칭함에도 불구하고 종합이라기보다는 전통주의에 좀 더 가까운 탈수정주의로 기울었다(박인숙: 196~199).


냉전의 최전선인 한반도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시각들의 대립에서도 최전선이었다. 냉전에 대한 전통주의적, 수정주의적 시각을 북조선의 성립 과정이라는 더 작은 사안에 적용하여 보면, 전통주의는 북조선의 탄생이 소련의 팽창주의의 결과물이었다고 보는 시각으로, 수정주의는 북조선의 탄생에 소련의 팽창보다는 북조선의 자체적 동력과 같은 다른 요소들에 주목하는 시각으로 대립항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조선 탄생』은 명백하게 수정주의적 시각을 계승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시종일관 북조선 혁명이 조선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한, 토착적이고 내인적인 혁명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1장에서 주변부에서의 혁명을 강조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저자가 북조선 혁명은 소련으로부터의 외부성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지역적 상황과 역사적 유산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조선 혁명이 북조선의 소비에트화가 아닌, 소비에트 체제의 조선화라는 저자의 언급은 이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1장에서 저자는 조선 동북 지역의 사회 구조, 만주의 주변부적 성격, 그리고 이들을 기반으로 한 빨치산 투쟁에 대해 다루며, 김일성의 만주 유격대 경험에 특별히 주목한다. 토지 개혁을 예로 들며, 만주 유격대 시절의 김일성의 경험이 북조선 혁명에 소련의 지도나 중국의 영향보다 더 주요하게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내인적 요소에 대한 주목은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2장에서 저자는 소련에 의한 강간과 약탈이 상대적으로 짧았고, 경제적 수탈도 약탈이 아니라 곧 복구로 전환되었고, 산업 손실은 주로 일본에 의한 것이었음을 언급하며 소련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소련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 최소한의 통제만 가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들은 우호적인 조선인들을 지도부에 앉혔을 뿐이다. 저자는 또한 당시 북조선을 방문한 미국 언론인 스트롱의 북조선 주민에 대한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소련인들의 존재에 대한 당시 주민들의 낮은 관심도를 소개함으로써, 중앙에서도, 현지의 체감으로도, 소련의 개입 정도는 낮아 보인다는 것을 강조한다.


북조선 당국은 소련의 간접적 도움을 받았으나, 정통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방법으로 국가를 장악해 나갔다. 조선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정당이라고 규정되었으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정의는 느슨하여 실제로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 1945 11월에 일어난 신의주 사건 이후에는 대중화가 더욱더 전격적으로 추진되었고, 김일성은 공공연히 당이 프롤레타리아트뿐 아니라 모든 대중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선에서 계급투쟁의 언어는 반식민주의 민족투쟁의 언어라고 주창한 조선신민당의 의견을 옹호함으로써, 당은 계급주의적 색채보다는 민족주의적 색채를 더 강하게 띠게 되었다.


저자는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북조선 혁명의 총체성과 내인성을 조명하고 있다. 북조선 혁명은, 비록 농업 현물세 징수 등에 대한 반발을 불러 일으키긴 했으나, 대체적으로 토지 개혁을 통해 농민으로부터의 지지 기반을 확고히 굳혔고, 그 후에는 봉건적 차별의 철폐 등의 조치를 통해 노동자 계급, 여성, 청년 등의 집단을 효과적으로 지지 기반으로 편입했다. 이후에는 역동적인 정치적 경쟁을 통해 조선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을 우당(友黨)으로 편입하였고, 문화와 예술을 효과적으로 사회주의 정치화, 나아가서는 민족주의화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 성과와 교육의 확대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도 확보하였다. 그리고 식민 시기의 사회 통제를 부분적으로 계승한 감시체제의 구축을 통해서 체제의 내구성을 확보했고, 마침내는 개인숭배, 공동체와 혈연에 대한 은유를 통해 북조선이 ‘인민의 국가’로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조선은 단순한 소비에트 체제의 이식이 아닌, 독자적인 체제를 구축했고, 지금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실증적 연구 방식도 주목할 만 하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들을 전개하는 데에 뛰어난 실증성을 보인다. 기존의 수정주의자들의 논지 전개가 냉전기 공산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던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실증성은 더 큰 의의를 지닌다. 저자는 미국의 노획문서인 RG 242, 소련측 문헌들, 북한측 문헌들뿐 아니라 국내 학자들의 연구 결과까지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기광서: 447면). 특히 자뭇 주관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다루는 장()들에서 농민연맹의 회원 수, 직업별 휴양소 숫자, 청년들의 지역별 민청 참여 비율 등의 다양한 통계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주장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신뢰성을 강화하고 있다.

 

<!--[III.  지나친 김일성 일파에의 환원론



김일성

 



그러나 북조선 혁명의 내인적 요인에 주목한 저자의 안목은 대체로 훌륭하지만 몇몇 지점에서 과잉을 드러낸다. 그러한 과잉은 북조선 혁명의 내인적 요인이라는 총체적인 것을 김일성 일파의 성격과 유교의 유산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환원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김일성 일파는 물론 북조선 형성 당시의 주요한 정파 중 하나였으며, 여러 사건들을 거치며 북조선의 유일한 정파로 우뚝 섰다. 그러나 국가 형성 당시의 북조선은 저자도 지적했듯이 공산주의 계열을 제외하고도 조선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이 경쟁하고 있던 시기였고, 공산주의 내에서도 김일성 일파만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 단적으로 1948 9 9일 수립된 북조선 정부 역시 김일성 일파와 소련파, 연안파, 남로당파 등의 정치적 연합이었다(기광서: 447). 김일성 일파가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한국 전쟁과 8월 종파 사건을 거치면서였고, 1967년에 갑산파를 숙청하면서 유일 체제가 완성되었다.


   이에 비해 책의 범위는 저자가 소개한 대로는 1945~50년이며, 대부분의 내용은 1945~48년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김일성 일파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저자는 토지개혁과 연합전선운동을 포함해 북조선의 많은 국가 형성 작용을 해석하는 데에 김일성 일파의 성격을 이유로 적용하고 있다. 서론에서 저자는 김일성 일파의 정치적 성격을 전적으로 만주 항일 무장 투쟁에 의한 것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고 하지만, 곧이어 만주에서의 경험이 북한 정치 문화의 전개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여 내인성의 김일성 일파의 성격으로의 환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북조선 국가 형성 과정에서는 김일성 일파의 성격이 아니더라도 설명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굳이 김일성 일파의 성격이 북조선의 지속성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려고 했다면, 초기의 짧은 기간이 아니라 더 넓은 기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또한 김일성 일파가 아니라 다른 정치 세력들을 고려했다고 해도, 결국 책이 소련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있다는 지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소련의 영향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 책이 취하고 있는 근본적 입장이므로, 단순히 소련의 영향력을 종전보다 적게 평가했다고 해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소련이 당시 북한 사회의 모든 부분에 개입할 수 있을 만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그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김일성 일파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저자는 몇몇 부분(암스트롱: 95면 등)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IV.   유교의 비중에 대한 지나친 강조

 

또한 저자의 북조선 혁명의 토착적 요소로 크게 강조되는 것은 유교이다. 색인에서 유교라는 단어는 서론을 제외하고도 17번이나 등장(암스트롱: 430)하며, 이는 단일 단어로는 아주 많은 횟수이다. 이처럼 저자는 사회, 경제, 문화, 감시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계속해서 유교의 영향을 인용하며, 마지막으로는 북조선이 지금과 같은 유일 체제로 발전하는 데에 유교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 왕조 5백년을 걸치며 신유교가 한국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북조선 혁명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측면에서, 비록 여성이 해방되었으나 이혼은 허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금지되었고, 여성의 미덕은 어머니의 보살핌과 같은 봉건적 가치에 한해서만 선전되었다는 점, 그리고 안정적인 사회적 위계 질서가 위아래만 뒤집혀서 새롭게 나타났다는 점을 그 증거로 든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북조선 혁명은,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인식과는 다르게, 상부 구조를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유교 전통 때문에 북조선 혁명은 물적 조건보다 이념이나 정신을 더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러한 양상이 인공기에 노동자와 농민을 나타내는 망치와 낫과 함께 사무원을 나타내는 붓을 추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김일성 환영 평양 시민대회, 1945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저자는 김일성 개인 숭배의 원형을 유교에서 찾고 있다. 북조선의 개인 숭배가 유격대와 혈연, 또는 신체의 비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하루끼: 137~140). 개인 숭배는 소련이나 중국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북조선의 김일성에 대한 유별난 숭배는 일본 천황제의 잔재와 초기 기독교 유산과 함께, 유교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김일성이 과거와의 결별을 선언한 마오쩌둥과는 다르게 할머니에게 극진한 효성을 보인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 숭배의 대상이 김일성 개인을 넘어 김일성의 가족들에게까지 확장되고, 공동체와 혈연에 대한 은유가 효과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어버이 수령”, “어머니 당으로까지 상징들이 확장되어 마침내 아들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할 정도가 된 것은, 결국에는 유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을 유교 사회로 범주화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발로일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에 따르면, 현실 행동의 개별 사례를 소수의 설명적인 ‘기원’으로 환원하여, 비서구에 시간을 초월한 반복과 강제를 인상 짓는 것은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설명 방식이다(예대열: 432면). 저자는 마치 현대 이슬람 사회를 연구하는 일부 오리엔탈리스트들이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의거하기보다는 꾸란의 구절을 분석하는 데에만 치중하는 것과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저자가 주목한 특성들이 북한에 고유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 비록 마르크스가 하부 구조를 상부 구조보다 중요시했으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난 역사적 노정에서는 많은 경우 이데올로기가 하부 구조보다 중요시되어 왔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후진 국가들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의 주도 세력들은 혁명적인 상부 구조와 빈약한 하부 구조의 모순을, 혁명 정권이 정권에 걸맞은 생산력을 확보하는 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예대열: 433). 이미 일제의 수탈로 인해 물질적 기반이 거의 사라진 북한에서, 그나마 동원할 수 있는 인간의 의식만이라도 동원하고자 했던 것은 당연했다.


지식인에 대한 예우도 북한의 고유한 특성이라고만 보긴 힘들다. 비록 초기 공산주의가 지식인들을 모호한 계급으로 규정했으나, 전세계 대부분의 공산당이 혁명을 수행하면서 현실적 필요로 지식인들을 포섭하기 위해 노력했고, 중국공산당의 경우도 지식인의 흡수를 중국 혁명 승리의 열쇠로 여겼다(예대열: 434). 지식인, 또는 사무원에 대한 필요는 사회주의 국가도 근대 국가이고 많은 전문적인 일이 필요함을 생각할 때 당연한 일이며, 명백한 사회의 구성원인 이들을 배제하고서 혁명을 완수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체제의 보수성을 유교로 설명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체제의 보수성은 북조선에서는 소련이나 중국에서와는 달리 김일성이 빠르게 정적들을 숙청하고 이후 오랫동안 집권하였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 이는 좁은 영토와 남쪽의 남한이라는 라이벌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일성은 1967년의 갑산파 숙청 이후에도 1994년까지 생존하였고, 그 사이에 김일성은 살아서 유일 체제를 강화하고 김정일을 육성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이는 마오쩌둥이나 스탈린에게는 없었던 기회였다.


이처럼 북조선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유교라는 오리엔탈리즘적 틀은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많은 부분에서 유교라는 개념에서 필요한 곳만 취사 선택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보였다(예대열: 437). 굳이 유교를 분석의 틀로 사용하겠다면, 유교 전통 부활의 역사적 맥락과 기능, 효용 등의 관점에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V.    맺는 말

 

찰스 암스트롱의 『북조선 탄생』은 북조선 탄생의 내인성과 토착성에 주목하여 수정주의 역사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헌 자료와 연구 성과들을 포섭하여 신뢰성을 갖추었다. 책의 몇몇 부분에서는 저자가 혁명기의 북조선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고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저자의 연구는 신선했고 명확한 근거를 지니고 있었으며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에서 김일성 일파의 성격이나 유교 체계로 이후 북조선 사회의 성격을 환원하는 오류를 범한 점은 안타깝다. 저자는 북조선 탄생 과정에서의 김일성 일파와 초기 건국 과정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했고, 당시 북한 내각의 연정적 성격과 소련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특히 저자가 유교 체계를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북조선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연구의 다른 부분들에서와 같은 수준의 실증을 유보했기에 나타난 오류들, 즉 지식인에 대한 예우나 상부 구조의 강조와 같은 다른 공산주의 체제와의 공통점도 북조선의 유교적 특징으로만 치부한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조금씩 부서져 가면서도 아직까지도 붕괴하지는 않은, 그러면서 폭압적 정치를 시행하고 있는 북조선이라는 국가를 이해하는 것은 일반론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특히 직접 북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비록 부분적으로 지나치게 전체 사회를 특정 요소들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하긴 했지만, 북조선의 탄생 과정의 특수성에 대한 연구를 시도한 것은 분명히 뛰어난 통찰이며, 독자들에게 북조선을 인지하는 데 필요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참고문헌

 

기광서, 「내부적 역동성에 주목한 북조선 혁명사」, 『역사비평』 83, 역사문제연구소, 2008.

김영호, 「탈냉전기 냉전 기원의 새로운 해석에 관한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35 2, 한국정치학회, 2001.

박인숙,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탈 수정주의(post-revisionism)' 냉전 해석에 대한 비판적 고찰」, 『대구사학』 70, 대구사학회, 2003.

안찬일, 「북한의 병영국가화와 김정일의 세습체제를 불러온 갑산파의 숙청」, 北韓 425, 북한연구소, 2007.

와다 하루끼, 고세현 옮김, 『역사로서의 사회주의』, 창작과비평사, 2005.

예대열, 「미국 역사학계의 북한사 인식 비판」, 『한국사학보』 36, 고려사학회, 2009.

찰스 암스트롱, 김연철·이정우 옮김, 『북조선 탄생』, 서해문집, 2006.






북조선 탄생 - 10점
찰스 암스트롱 지음, 이정우.김연철 옮김/서해문집







 

 ※ 아래의 글은 기본적으로 제가 2011학년 2학기에 학교에서 종교학 교양수업인 '인간과 종교' 수업을 들으면서 작성한 영화 『밀양』에 대한 감상문의 내용입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실 분들은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 『밀양』포스터

 

  I. 들어가는 말

 

  기독교는 “신은 존재하며, 전능(全能)하고 전선(全善)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수많은 고통과 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연이 천재지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뿐 아니라, 인간들 사이에도 부패, 탐욕, 갈등이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20세기는 물질적 풍요가 찾아온 시기였으나,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 원자 폭탄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지요.


  거기에 이토록 세상에 만연한 고통과 악은 항상 선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되어 왔습니다. 당장 지금의 세계에서도 가장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폭력적인 정치인들이나 일부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아니라, 죄 없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지요. 멀리 볼 것 없이 한국 사회에서도, 선한 사람일수록 손해를 보고, 악하게 행동할수록 이익이라는 관념이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습니다.


  고통을 선신과 악신의 투쟁으로 설명하는 조로아스터교나, 환상 또는 무지의 소치로 설명하는 힌두교와는 다르게, 유일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은, 사랑과 공의를 지닌, 전능한 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현존하고 있다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이러한 모순이 명약관화한데, “전능하고 전선한” 신이란 과연 존재하는 걸까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II. 영화에서 나타난 고통과 신정론(神正論)

 

신애와 준, 종찬

  영화의 주인공인 신애(전도연)는 남편을 잃고 아들 준과 같이 남편의 고향이었던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어린 아들 준은 비록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아이이긴 하지만,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웅변 대회에서 어머니를 기쁘게 하고, 숨바꼭질 장난을 쳐서 어머니를 놀리는 등 발랄하고 착한, 신애에게 더없이 사랑스러운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돈을 노린 웅변학원 원장에 의해 유괴되어 살해당하자, 남편의 불륜과 사망이라는 두 번의 아픔을 겪은 데다 470만원밖에 되지 않는 은행 잔고가 보여주듯이 경제적 고난마저 겪고 있던 신애는 정신이 붕괴하는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지요.


  그런 신애가 의지하게 된 것은 종교입니다. 아직 준이 살아 있을 때에는, 이웃 은혜약국의 약사 부부 중 아내가 신애에게 하나님을 믿을 것을 권하며 책을 선물했음에도, 신애가 약사의 권유를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준의 피살이라는 극한의 정신적 고통과 직면한 신애는, 사망 신고서를 제출하던 길에 약사에게 참석을 권유 받았던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의 현수막을 보고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고, 거기에서 감정의 폭발과 함께 회심 체험을 하게됩니다. 이후 신애는 교회 모임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말, 전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요, 이제는 확실히 알았어요.”라고 말하며, 회심 체험을 강조하고 자신이 겪은 고통에는 신의 뜻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여기에서 신애가 받아들이는 담론이 바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입니다. 신정론은 약사가 신애에게 기도회에 올 것을 권유하는 장면에서 처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면 왜 죄가 없는 준이를 처참하게 죽게 했는가?’라는 신애의 질문에, 약사는 비록 그 이유를 지금 알 수는 없지만, “세상에 주님의 뜻 아닌 것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겉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종교적으로 논증하는 것이 바로 신정론입니다. 성경에서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로 유명한 욥기가 대표적입니다.

 

  여러 맥락에서 등장하는 신정론들은 크게 자유의지 신정론, 교육 신정론, 종말론적 신정론, 신비 신정론, 친교 신정론으로 범주화할 수 있는데, 이 중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은 대체로 신비 신정론에 가까워 보입니다. 신비 신정론이란,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와 신의 무한성으로 인해 인간은 신의 엄청난 뜻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모든 설명을 신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약사가 말한 맥락에서 가장 가까운 신정론입니다.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며 멘붕한 신애. 이 장면 이후 신애는 기도회에 가서 교회에 귀의하게 됩니다.

  신애에게 일어난 일을 신비 신정론이 아닌 다른 신정론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교육 신정론의 맥락에서, 초기 교부인 이레나이우스(Irenaeus)는 인간이 도덕적∙영적으로 완성되는 과정에서 악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으므로, 인간의 완성은 고난과 시험에서 도덕적 선택을 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이러한 도덕적 성장을 위해 신이 마련한 것이 ‘물리적 악’이란 것입니다. 한편 ‘물리적 악’과 구별되는 ‘도덕적 악’은 신이 내린 고난과 시험의 과정에서 바람직한 선택을 하지 못한 자들의 상태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따라서 선과 악은 섞인 상태일 수밖에 없으며, 악은 인간의 완성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됩니다. 이를 영화에 적용하면, 준이의 죽음은 신애에게 주어진 ‘물리적 악’이 되고, 신애는 그런 악에 대해 신에 귀의함으로써 영적인 성숙과 자각을 이룬 것이지요. 지금의 세계는 ‘가능한 최선의 세계’이며, 악은 더 큰 신적 질서를 위해 필요하며, 그로써 선은 더욱 완전해질 수 있다는 라이프니츠(Leibniz)의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연장되어 해석될 수 있습니다(민순의, 2007: 219~222).


  영화에서 신애는 “이제는 정말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아래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와 같은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진심으로 신정론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강렬한 믿음을 바탕으로, 준을 살해한 웅변학원 원장조차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지요. 그리고 여기에서 또다른 비극이 시작됩니다.

 

 

  III. 신정론에 대한 비판과 인간적 가능성

 

  모든 일에는 신의 섭리가 있다고 믿게 된 신애는 웅변학원 원장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에 그를 직접 면회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면회에서 신애가 용서하고자 했던 웅변학원 원장이 이미 하나님에 의해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애는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면회 이후 쓰러지게 되지요. 즉, 신애는 직접 고통을 받은 자신이 범인을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용서하고 구원을 주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애의 모습은 하나님은 범죄자의 편이지 피해자의 편이 아니라는, 인도 철학자 라즈니쉬(Rajneesh)의 기독교 비판과 통하고 있습니다(오죠 라즈니쉬, 1995: 250~251; 민순의, 2007: 230~231에서 재인용).

 

  면회 이후, 신애가 교회에서 얻었던 마음의 평안은 사라져 버리고, 신애는 다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교회에서 시끄럽게 의자를 쳐 소리를 내거나, 기도회에서 음향 기기를 몰래 조작하여 ‘거짓말이야’라는 가사가 나오는 노래를 틀거나, 은혜약국 약사 부부 중 남편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고자 시도하면서 신을 저주하는 모습은 용서의 기회를 빼앗긴 신애의 절망과 증오,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들입니다.

 

  결국 신애는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주체적으로 결정한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한 채, 준이의 죽음도, 범인의 평온함도 모두 신의 섭리, 신의 용서로 해결되는 비인간적 상황에서 자신의 팔을 칼로 자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붕괴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신정론이 인간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화의 원작인 〈벌레 이야기〉를 지은 이청준도 이러한 문제 의식으로 집필을 시작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그가 우연히 본 ‘용서받은’ 사형수를 언급하며, ‘하나님 또한 그를 정말 용서했고, 그럴 권리가 있을까! 그 섭리자의 사랑 앞에 사람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과 권리는 무엇인가!’라며 절대자의 ‘섭리’와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의 주체적 존엄성을 짓밟는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애는 ‘제 울음소리조차 낼 수 없는 피투성이 인간의 영혼’의 단적인 표상이 됩니다(이청준, 2007: 4~5).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에서 나타난 메시지는 종교학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인정론(Anthropodicy)입니다. 인정론이란, 고난에 대해 신의 문제를 개입시켜 설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이 직면하는 고통과 고난을 철저히 인간적 물음으로 보고, 고통 해결을 위한 논의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정론적 의미에서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영화의 감독인 이창동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이 영화는 신애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신애와 종찬의 이야기다.”(이창동∙허문영)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종찬입니다. 이청준의 원작에서 아내 곁에 있는 사람은 객관적 관찰자에 불과한, 아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남편이지만, 영화에서는 투박한 종찬이 신애의 곁을 맴돌며 그녀를 지탱해 줍니다.


  송강호가 분한 종찬은 신애가 직설적으로 지적했듯이 속물입니. 영화의 초반부터, 밀양이라는 지명을 ‘비밀의 볕’이라고 해석하는 다소 낭만적인 신애와, 밀양에 대해 “한나라당 도시고, 경기는 나쁘고,…” 등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종찬은 확연한 대비를 이루며, 그의 속물적 이미지를 드러냅니다. 종찬은 신애가 밀양에 왔을 때부터 관심을 보이며, 신애의 피아노 학원에 가짜 상패를 내걸고, 지역 유지를 소개해 주며 이런 사람을 알아야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속물적인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찬은 신애와 지내면서 속물성을 점차 벗어나는 변화를 겪습니다. 이러한 종찬의 변화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서 다방 종업원의 속옷을 훔쳐보며 희롱하는 모습을 보이던 그가, 짝사랑하던 신애가 절망의 끝에서 육체적으로 유혹할 때, 정신을 차리라며 호통을 치고 물건들을 부수면서까지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입니다. 처음에 신애에게 품었던 단순한 연정에서 벗어나, 종찬은 신애의 절망과 고통을 함께 하면서, 인간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동반자로 거듭난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 혼자서 머리칼을 자르려고 하지만 거울이 잘 보이지 않는 신애의 곁에서 종찬이 거울을 조용히 들어주는 장면은 이를 함축하고 있습니다(김희선, 2009: 186~187).

 

 

  IV. 맺는 말

 

〈밀양〉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영화는 아들의 유괴와 피살이라는 극한의 고통의 상황에서, 그에서 헤어나오려는 몸부림을 조명하면서, 고통과 용서, 구원의 문제라는 근본적 문제를 우리 앞에 제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직면하여 신에게 의지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드러나듯이, 고통을 무한하고 완전한 신의 섭리로 환원하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또다른 폭력일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받는 고통에 싸워야 하는 주체도 인간이라는 것, 고통에 대한 용서의 주체도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신정론 등 지나치게 신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원작 〈벌레 이야기〉에서 〈밀양〉의 신애에 해당하는 알암이 엄마는 절대자 앞에서의 ‘벌레’와 같은 삶의 고통을 자살로 끝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밀양〉은 신애를 끝까지 돕는 종찬의 존재를 통해 인간 삶의 긍정적 측면을 드러내고, 결국 인간의 구원은 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싸우고 극복하는 인간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들간의 연대와 소통에서 그러한 구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김희선, 2009: 188). 절대자인 신이 찬란하지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사막의 열사라면, 불완전한 종찬은 신애가 살아 있을 수 있도록 하는 ‘비밀의 볕(密陽)’인 것이지요.

 

 

  참고 문헌
 
김희선, 「용서와 인간실존의 문제에 대한 두 태도」, 『문학과 종교』 제14권 제2호, 한국문학과종교학회, 2009년.
민순의, 「영화 《밀양》이 제시하는 인간학적 성찰」, 『종교와 문학』 제13호,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2007년
서광선, 『종교와 인간』,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9년. 
이기성, 「신정론: 기독교 신앙과 악의 문제에 대한 고찰」, 『성령과 신학』 제25호, 한세대학교 영산신학연구소, 2009년.
이창동∙허문영, 「이창동 감독∙영화평론가 허문영 대담 – 유괴는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고통이다」, 『씨네21』, 2007. 5. 15.,  http://www.cine21.com/do/article/article/typeDispatcher?mag_id=46374
이청준, 최규석 그림, 『밀양 –원제「벌레이야기」–』, 열림원, 2007년.

 

밀양 - 10점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열림원


밀양 (2007)

Secret Sunshine 
7.7
감독
이창동
출연
송강호, 전도연, 조영진, 김영재, 선정엽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한국 | 142 분 | 200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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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La Casa de los Espiritus

『영혼의 집』
이사벨 아옌데


 대학에 와서 첫 학기를 시작할 때, 아마 가장 설렜던 때가 시간표를 짜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 '핵심교양' 과목 중 고르고 골라서 선택한 과목이 김창민 교수님의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사회' 과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익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던… 수업이었습니다. 일단 무엇보다도 무지하게 졸렸습니다. 교수님의 목소리도 목소리거니와, 수업 시간대가 워낙에 자기 좋은 시간대라서, 앉으면 거의 꿈나라로 직행하곤 했습니다. 거기다가 수강한 여섯 과목 중에 가장 많은 무지막지한 과제량을 자랑습니다. 출석, 서평 3회, 온라인 토론 3회, 영화평 4회, 쪽지시험 2회, 조별 주제 발표 1회, 거기에 기말고사까지. 물론 태도 점수도 조교님이 체크하시는 것 같았구요. 대학에서 사용 가능한 모든 평가 방법을 다 동원한 수업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 조가 제일 첫 조로 조별 발표를 마치고 난 후에는 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4월을 지나면서 어느 새 화-목은 하루 종일 자는 날이 되어버렸고,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사회는 하루의 수면량을 책임지는, 이 잠의 타임라인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었습니다. 초반에 교수님의 강의 이후는 학생들의 조별 발표로 수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딱히 필기하거나 들을 것도 없었고, 그러므로 자고 또 잤습니다. 미친듯이. 교수님은 지식도 풍부하셨고 유머 감각도 있으셨지만 이미 기울어진 대세는…. 그렇게 한학기 내내 자다가 수업을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학점은 만족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한 학기 내내 수면을 취했음을 생각해 봤을 때 충분히 잘 떴습니다. 이정도로만 보면, 그냥 무난한 교양 수업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수업을 통해 알게 된 명작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갓 대학에 입학한 학부생에게 다양한 교양은 필수적 요소이고, 어떻게 보면 이 수업은 미친듯이 졸리는 것을 제외하면 라틴아메리카의 문학 작품 다섯을 읽게 함으로써 그 소임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 이름만 알았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마술적 사실주의에의 거대한 매력을 느꼈고, 임철우『백년 여관』에서는 마술적 사실주의 내지 주술적 요소들이 역사적인 배경과 결합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업의 마지막 서평 과제였던 이사벨 아옌데『영혼의 집』에서는 역사성과 마술적 사실성이 결합하여 역사의 성찰을 이루고 화해의 미래를 구축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서평은 머리를 짜내지 않고 쓸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부족한 비전공자 학부생의 눈으로 『영혼의 집』을 살펴 보겠습니다.
 

이사벨 아옌데, 1990년

 이 소설에 대해 이해하려면 먼저 이사벨 아옌데가 누군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사벨 아옌데는 1942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태어났고, 외교관인 의붓아버지를 따라서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17세에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언론계에 종사합니다. 기자, 편집자, 희곡 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맡다가, 오촌[각주:1]인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쿠데타에 의해 실각, 사망함에 따라 위험 인물 명단에 올라가게 되고 1975년 베네수엘라로 망명, 도피하게 됩니다.
 아옌데는 도피처인 베네수엘라에서 작가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1981년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외할아버지께 편지를 쓰는데, 이 편지를 토대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영혼의 집』입니다. 이 작품은 극찬을 받고, 아옌데는 세계적 유명 작가가 됩니다. 이후에도 『에바 루나』,『파울라』 등의 많은 소설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서의 입지를 굳혔고, 최근에는 『영혼의 집』에 이은 3부작인 『운명의 딸』『세피아빛 초상』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옌데는 쿠데타로 인해 쫓긴 사람입니다. 즉 진보적 지식인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성이 너무나도 잘 드러납니다. 그 역사성을 마술적 사실주의로 녹여내고 있는 작품이 『영혼의 집』입니다.


1. 소설의 줄거리와 역사적 배경

 이 책의 제목인 '영혼의 집'은 이 책의 주인공인 트루에바 가문이 살아가는 집을 지칭합니다. 에스테반의 부인 클라라가 불러낸 영혼으로 가득찬, 그리고 종국에는 클라라가 영혼이 되어 떠도는 '모퉁이 큰 집'입니다. 이 집은 에스테반이 클라라와 결혼할 때 지어서 집안의 번영과 함께 하고, 집안의 몰락과 함께 쇠퇴합니다. 이 집은 그 자체로 트루에바 가문을 상징합니다.
 이 영혼의 집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트루에바 가문은 라틴아메리카 역사의 질곡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소설의 처음 부분은 막연한 한때의 라틴아메리카를 다루며 특정한 시간적 상황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몰락한 귀족이었던 에스테반은 과거의 영지를 가꾸어 지주가 되지만, 투표소를 감시하기까지 하면서 소작인들의 권리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특권층의 모습을 보입니다. 역사는 점점 진행됩니다. 에스테반의 첫아들인 하이메는 새로운 사상에 심취하지만 실천은 꺼리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블랑카와 알바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고, 클라라는 이를 묵인합니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시대정신과 연관되어 있고 가족 내에서도 서로 적대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아마 이 시기에 칠레의 집안들은 대체로 이러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1973년

 그러다가 점점 역사는 구체화됩니다. 외국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한번도 없었던 나라, 지배층으로부터 한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던 피지배층에게 적극적으로 유입되는 혁명의 사상들은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기존의 사상과 미덕들을 수호하기 위한 보수층과 새로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혁신층의 대립은 선거에서 사회당의 승리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보수 세력의 반발로 인한 쿠데타로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됩니다. 
 이 후반부의 줄거리는 살바도르 아옌데와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야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칠레에서 있었던 1970년의 선거에서 살바도르 아옌데는 대통령이 되고, 살바도르 아옌데의 정당인 인민 연합은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당이 됩니다. 집권한 그는 '사회주의를 향한 칠레의 길(La via chilena al socialismo)'을 주창하며, 대규모 산업을 국유화하고 정부의 의료와 교육의 관리, 어린이에 대한 우유 무상 배급 등을 시행합니다. 그러나 기존 보수층과 미국의 방해로 칠레의 경제는 난항을 겪습니다. 특히 미국의 구리 가격 인하가 칠레 경제에 치명타를 가합니다. 이 와중에도 인민 연합이 지방 선거에서 선전하자 보수층은 1973년 쿠데타를 통해 아옌데를 몰아냅니다. 아옌데는 대통령 궁에서 버티다가 최후의 연설 이후 자살합니다. 이사벨 아옌데는 혁명과 쿠데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역사에 대한 심판을 요구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 비극적 역사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또한 책이 쓰인 시점이 군사 정권의 종결 전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결말은 희망적입니다. 이것은 아이러니인데, 이러한 극한의 절망적 상황에서 가족들은 마침내 화해하게 됩니다. 보수 세력의 무장 봉기를 계속해서 주장해왔던 에스테반도, 손녀딸 알바가 특수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가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평화와 관용 없이는 국가의 미래나 가족의 행복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결국 에스테반은 가난한 농민 혁명가 페드로 테르세로를 사랑한 딸 블랑카와 과격파 혁명가인 미겔을 사랑한 손녀딸 알바를 용서합니다. 이는 보수파와 혁신파의 화합을 상징하며, 화해의 역사를 추구하는 이사벨 아옌데의 뜻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화해의 결단에는 또한 깨달음이 깔려 있습니다. 알바는 에스테반 가르시아 대령을 용서하기로 결정하면서, 에스테반 트루에바가 에스테반 가르시아의 할머니 판차 가르시아를 넘어뜨렸을 때 업의 고리가 연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이 복수의 마음을 품으면, 또 다른 피의 역사가 수십년 동안 지속될지도 모르기에 그녀는 복수를 포기합니다. 
나는 이제 증오심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도 없다. 내가 가르시아 대령과 그와 같은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서 증오심도 차츰 수그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 내가 복수를 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처절한 복수의 연장이 되기 때문에, 이제는 복수받아 마땅한 사람들 모두에게 복수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내 임무는 살아남는 것이고, 내 사명은 두고두고 증오를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원고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각주:2]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옌데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작품 초반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종교의 가치가 긍정적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폭언을 퍼붓는, 광기의 온상이라 할 수 있는 레스트레포 신부가 작품 초기 종교의 부정적 이미지를 대표한다면, 중기에는 페룰라 고모와 상담하며 비밀을 지켜주고, 그녀와의 연락을 담당하는 안토니오 신부가 보다 순화된 종교의 이미지를 대변합니다. 그리고 군부의 독재기에 가서는 빈민들을 구제하고 자선 활동을 펼치는 종교의 이미지가 부각되며, 에스테반에 의해 '빨갱이'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이는 당연히 실제 역사와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제국주의 시대와 독립 초기에 종교는 지배 계층의 입맛에 맞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계도 점점 새 시대를 맞아 해방되기 시작했고,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주교는 진정한 해방신학 운동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독재 시대를 맞아서는 종교도 구제와 자선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변화한 종교의 이미지를 이사벨 아옌데가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대통령궁을 포위한 쿠데타군


2. 소설에 나타난 남성상과 여성상

 이사벨 아옌데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트루에바 가문에서 남성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여성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트루에바 집안의 대표적인 남성 캐릭터인 에스테반 트루에바만을 봐도 이 점은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에스테반은 애초에 로사 델 바예를 사랑한 것도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한 것이 아니었으며, 이후 트레스 마리아스 농장을 경영하면서 소작인들을 착취하고 딸들을 자기 마음대로 강간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클라라와의 결혼 이후에는 정말로 가부장의 극치를 보여 주는데, 딸과 연애한 페드로 테르세로를 도끼로 내려쳐 손가락들을 잘라버린 것이나, 화를 이기지 못하고 클라라의 얼굴을 때려 이를 뽑아 버리는 등의 행동에서는 폭력성까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야말로 라틴아메리카의 전형적인 남성상입니다. 에스테반의 아들 니콜라스 역시 부정적인 남성상으로, 바람기만 충만하던 그는 인도에 갔다온 뒤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되고, 아만다가 임신한 상황에서는 책임을 지지 못하고 쩔쩔 매기만 하는 한심한 인간상을 보여 줍니다.

 반면에 니베아 델 바예, 클라라, 블랑카, 알바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특징은 진취적이고 자기 주도적이라는 것입니다. 클라라의 어머니 니베아 델 바예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 투신했고, 클라라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녀 심령술 탐구에 몰두합니다. 비록 집안일엔 무관심하지만 유모와 페룰라 고모가 사라진 상황에서는 집안일을 곧잘 해내며, 줄곧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블랑카는 태어날 당시에는 털이 달린 기묘한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페드로 테르세로와 사귀며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고, 알바는 처음에는 미겔과의 사랑에서 학생운동에 가담한 것이지만 공포 정치 시대에는 스스로 목숨을 무릅쓰고 해바라기를 그려넣은 차를 통해 미겔의 사람들을 구조해 줍니다. 이런 일은 독자적 결단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트루에바 가문 외에도, 50페소를 바탕으로 싸구려 사창가를 고급 호텔로 변모시켜 마지막에 에스테반 트루에바에게 도움을 주는 트란시토 소토 역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여인상을 보여 줍니다.
 물론 이 소설이 단지 부정적 남성 대 긍정적 여성의 이분법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이메의 경우에는 비록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면도 있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정의를 위해 투신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의사로서 많은 돈을 벌려고 하지 않고 빈민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사회당의 의견에 동조하는 그는 폭력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자입니다. 거짓 증언을 거부하여 군부의 폭력에 죽음으로 맞선 그는 트루에바 가문에서의 긍정적 남성상이라 할 만 합니다.
 트루에바 가문을 벗어나면 긍정적 남성상을 더 찾을 수 있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긍정적 남성상은 트루에바 가문의 긍정적 여성상인 블랑카, 알바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블랑카의 연인인 페드로 테르세로와 알바의 연인인 미겔은 여러모로 유사한 인물로, 둘 다 열성적 혁명가이며 에스테반에게 부정받고, 공포 정치기에는 탄압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딱히 그 캐릭터 자체로 독자적인 남성이라기 보다는 블랑카와 알바의 독자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시대적 배경 때문에 독자적 여성을 창조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남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일부 예외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라틴아메리카의 가부장적인 남성상과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신여성상을 대비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두 이미지가 충돌하면서 피해를 보는 쪽은 여성이고, 클라라는 가장 큰 피해를 입습니다. 미래를 예지하고 초능력을 사용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가부장적 권위 앞에서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에스테반은 비록 클라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도 했지만, 가부장제 내에서 클라라를 억압하는 기제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단순히 남성들을 공격하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책의 서술자의 시점은 계속해서 바뀝니다. 에스테반의 시점과 3인칭 시점이 교체되다가 마지막엔 알바의 시점이 들어가는데, 에스테반의 시점이 들어간 장면들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가부장적인 남성이 가진 생각, 그리고 그가 겪는 나름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발휘하는 폭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클라라와 블랑카, 알바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점은 인상적입니다. 즉 가부장제 하에서는 남성도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소설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잘 쓰인 페미니즘 소설입니다.


3.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과『백년 동안의 고독』과의 비교

 『영혼의 집』에서는 또한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 방식입니다. 이는 작품 내에서는 적용되는 일반적 규칙을 갖고 있는 판타지 소설과는 다르며, 스토리는 예측 불허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또한 마술적 사실주의의 특징적 경향은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그러한 이상한 일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호세 아르까디오의 죽은 피가 우르슬라에게까지 흘러가서 죽음을 알리고, 작중 인물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이 소설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는 작품에 드문드문 쓰이면서 서술을 더 강렬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일부 등장인물은 마술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특히 클라라가 대표적입니다. 물건들을 움직이거나 미래의 재난을 미리 예언하고, 나중에는 영혼들과 대화하며 죽고 나서도 '영혼의 집'을 배회합니다. 클라라의 개 바라바스도 초반에 책의 마술적 서격을 특징짓는 강렬한 마술적 사실주의를 보여줍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를 논하려면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인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의 비교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백년 동안의 고독』도 수업 중 서평 과제에 포함되어 있었고, 교수님께서는 한국 작가 임철우의 『백년 여관』과 비교하여 서술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같은 문화권에서 쓰인 작품이기에 『영혼의 집』과 비교할 것이 더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온라인 토론을 발표할 때에도 『영혼의 집』 발표에서는 시키지 않았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과의 비교가 각 조에 모두 들어가 있었습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 역시 『영혼의 집』처럼 한 가문의 역사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나타낸 소설입니다. 그러나 마술적 사실주의를 강렬하게 사용함에 따라 역사적인 요소들은 많이 추상화되었고 접근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성은 뛰어났지만 보통 사람이 보기에 난해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영혼의 집』은 역사적 시간 구성을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집권과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 등은 이름만 지워졌을 뿐이지 역사적 사건의 충실한 재현입니다. 아옌데는 로사의 미모, 에스테르 부인의 비참함, 심령술의 신비함 등 필요한 부분을 강조하는 데에만 마술적 사실주의를 사용하여 이러한 부분들이 강렬하게 느껴지게 만들면서도 실제 역사 사건들이 등장하는 후반부에는 기록주의적 서술에 치중하여 비장미를 느끼게 했습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를 사용했으나 이를 적절히 자제함으로써 책 전체의 혼잡성을 줄인 것입니다. 따라서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느껴지는 엉뚱한 스토리 전개와 해학성은 덜하지만, 조금 더 일반적인, 나름의 세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백년 동안의 고독』의 연속된 순환 이후 종말하는 묵시록적 세계관과 달리 『영혼의 집』은 역사적인 선적 세계관을 따릅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는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없지만, 『영혼의 집』의 결말은 열린 미래를 지향합니다. 또한 『백년 동안의 고독』이 남성 기준에서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면, 『영혼의 집』은 니베아 - 클라라 - 블랑카 - 알바로 이어지는 여성 기준에서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파블로 네루다

 『영혼의 집』은 칠레의 사람들과 사회,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뛰어난 소설입니다.리고 단지 그 뿐만이 아니라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칠레의 슬픈 역사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게 하고 감동을 느끼고, 분노를 느끼는 그 감정을 공감하게 하는 데에도 이 책의 의의는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벨 아옌데의 칠레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데에도요.
 마지막으로 한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면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언급입니다.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의 천재적인 시인으로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197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또한 사회주의 정치가였습니다. 1943년 칠레 북부에서 사회당의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한 때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외국으로 도주하기도 했으나, 살바도르 아옌데 집권 후에는 칠레에서 낭송회를 가지기도 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시인입니다. 그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 당시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이 책은 도입부터 파블로 네루다의 말과 함께 시작하며, 본문 군데군데에 ‘시인’이라는 명칭으로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언급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책의 종반에서는 파블로 네루다의 장례식 장면이 나오고, 시민들이 장례식을 계기로 군부에 항거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에, 그리고 아옌데에게 큰 의미를 지닙니다.

 『영혼의 집』이 쓰여진 지는 거의 30년이 되어갑니다. 최악의 공포 정치를 펼쳤던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지도 20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남아메리카에는 속속 좌파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칠레는 바첼레트 여사의 좌파 연합 정권이 엄청난 지지율을 기록하며 퇴임했지만, 곧 우파 정권이 들어서는 등 민주적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은 역사에서 충분히 배웠을까요? 과연 그들은 화해의 미래를 쓸 수 있을까요?

결국, 인간은 얼마나 사는 걸까?
천 년? 단 하루?
일주일? 수 세기?
인간은 얼마나 오랫동안 죽는 걸까?
'영원히'라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파블로 네루다[각주:3]

영혼의 집 1 - 10점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민음사


영혼의 집 2 - 10점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민음사

  1. 흔히 이사벨과 살바도르 아옌데는 삼촌 관계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실 살바도르 아옌데는 이사벨 아옌데의 오촌 당숙부가 됩니다. [본문으로]
  2. 이사벨 아옌데, 《영혼의 집》1, 민음사, 2003, 327~328면. [본문으로]
  3. Ibid., 9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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