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사존 키건, 2차세계대전사   


8월에 읽은 책들
1. 존 키건, 1차세계대전사
2. 존 키건, 2차세계대전사
3.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시
4.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소설
5. 할레드 호세이니, 그리고 산이 울렸다
6. 토머스 조이너,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
7. 윤호정, 박광희 편역, 대한제국아 망해라
8. 니나 상코비치, 혼자 책 읽는 시간
9.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10. F. 스콧 피츠제럴드, 아가씨와 철학자


1.2. 먼저 존 키건의 양차 세계대전사는 볼륨 때문에 읽을 때 ㅎㄷㄷ했지만 읽은 보람이 확실히 있었다. 다만 전투 묘사 같은 건 의경이라 그런...건 아니겠고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특히 1차세계대전사의 경우 지도같은 것들이 많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또한 80년대 후반에 쓰인 책이다 보니 최신 연구성과들이 없는 것도 읽을 때 감안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2차대전에서 독소전쟁 비중이 너무 적다...


3.4. 김연수의 책들인데, 김연수가 시나 소설들을 뽑고 거기에 짧은 글들을 붙인 것. 결론부터 말하면 솔직히 별로. 물론 시는 일단 내가 잘 모르는 것도 있고... 짧은 글들이 재치있는 글들도 많은데 뭔가 굳이 이 책을 봐야 하나 싶다. 다른 산문집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으니까. 다만 소설편 뒤에 있는 저자의 말은 굉장히 공감갔다. 자신이 비관, 비관, 비관만 하다가 긍정주의자가 된 이야기.


5.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에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었는데, 그 때도 인상깊었지만, 좀 더 다양한 소재들과 시간들을 포괄하는 이야기. 비단 아프가니스탄에 국한된 감성이 아니라 보편적 감성을 풀어내는 느낌.


6. 나를 이해하기 위해 읽었다.


7. 제목이 자극적이긴 한데, 결국 한말의 여러 비사, 야사들을 당시 '우국지사'가 모아놓은 책. 제목이 너무 자의적인 것 같은게 윤호정은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 놓아서 어떨 때는 고종이나 민비(명성황후)가 병맛일 때도 있는데 어떨 때는 괜찮아 보이기도. 비록 단편적이고 체계는 없으나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 사회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았지만, 굳이 샀어야 했나 싶다.


8. 1년동안 하루에 1권씩 책을 읽고 서평을 쓴, 전직 변호사 엄마에 관한 책. ㄷㄷ하다 나도 언젠가 이런 1년을 보내 봐야지 하고 생각만 합니다.


9. 맨부커상 수상작이라서 기대했고, 어느 정도는 기대가 충족되었던 소설책. 그런데 너무 막장드라마 같기도 하고... 어떻게 그런 인과관계가 있었는지 납득이 안 가서, 쉴새없이 읽어내린 후 덮고 나서 속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10. 피츠제럴드의 단편들은 읽을 때마다, 발랄하게 튀면서도 가슴에 잘 스며드는 것 같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때도 피츠제럴드 식의 아름다움에 취했었는데, 비교적 초기작들인 이 책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읽으면 읽을수록 1920년대의 미국 사회에 대한 향수병 비슷한 게 생길 것 같다.






이상이라는 신화에 대한 또다른 '원본'

김연수, 『꾿빠이, 이상』


I. 이상 신화, 그리고 김연수


 이상. 한국 문학사를 풍미한 천재 시인. 드라마틱한 삶과 난해한 작품들로 그는 한국 문학계의 하나의 신화로 자리잡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나도 어린 시절 이상에 매료되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오감도」연작,「이상한 가역반응」 같은 난해한 시들을 이해도 못한 채 읽고 또 읽으면서, 요즘 '중2병'이라 불리는 증상을 보이지 않았던가 싶다. 이상 전집을 샀는데 시·수필 편이 파본이라 반품하러 갔던 것도 기억난다. 이상 전집 소설 편은 그래서 중학교 때 딱 한 번 읽어봤는데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은 날개 뿐이었다. 그 뒤 대학 다닐 때 자취방에도 꽂아두었지만, 다시 읽어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문학적인 사람은 아니라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숭배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지 않은 일반인들은 그랬을 것 같다. 아니면 나의 바람일지도. 그렇지만 이상으 '천재'이지 '정신병자'는 아니라는 평가에 대다수가 수긍하는 것으로 볼 때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나는 이상이 천재라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이러한 지배적 관념은 어디서 형성될 것일까? 이상의 삶에는 하나의 영웅담이 녹아 있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엄청난 수재로 지금의 서울대학교의 전신 중 하나인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입학 졸업, 총독부에서 일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문학과 기생 금홍과의 사랑 때문에 이를 그만두고 다방을 차렸다가 망하는 이야기.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해 갈등하다가 원대한 포부를 안고 도쿄로 건너가지만 (당시 조선인들에 만연한) 가난과 일본의 탄압 때문에 폐병으로 숨을 거두고 만 이야기가 그 영웅담이다. 「꾿빠이, 이상」의 저자 김연수는 이를 두고 '이상수난곡'이라고 소설에서 쓴다. 이상이라는 한국문학사의 예수는 죽은 지 한 달만에 동료 작가평론가들에 의해 되살아났던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김연수가 최근 한국 문학계의 '아이돌'이며 '슈퍼스타'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왔다. 그런 그가 이상을 '정신병자'라 생각해서 이 작품을 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작품을 쓸 필요 없이, 고은이 「이상 평전「에서 이상을 비난했던 견해에 동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지만 김연수는 책을 통해 이상의 인생과 문학의 '신화성'을 드러내면서도, 이상의 삶에 또다른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연구와 조사로 탄탄하게 받침되는 줄거리 내에서, 지속적으로 '진본'과 '위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II. 책의 구성과 줄거리


「꾿빠이, 이상」은 총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목차를 봤을 때는 '김연수 장편소설'이 아니라 '김연수 소설집'인가 했다. 그렇지만 세 이야기는 모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첫 이야기 '데드마스크'는 이상의 데드마스크 대한 이야기이다. 이상이 죽으면서 떴던 데드마스크는 지금 전해오지 않는데,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을 잡지사의 김연화 기자가 접촉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김연화 기자는 자꾸 자신을 '김연'기자로 호칭하는 전화들을 받고, 이상의 데드마스크라는 소재에 끌려 이를 취재한다. 또한 그는 평생 이상을 추종했던 서혁민이라는 사람이 남긴 유고와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를 넘겨받는다. 그는 무엇인가에 이끌려 이상의 데드마스크의 발견 소식을 발표하지만, 접촉한 업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최 교수라는 사람도 가짜로 밝혀지자 검찰의 조사를 받기에 이르러 잡지사를 퇴사하게 된다. 첫 이야기에서 김연화 기자는 줄곧 '진짜'와 '가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피력하는데, 이는 세번째 이야기의 단초가 된다.


 두번째 이야기 '잃어버린 꽃'은 평생 이상을 추종해온 이상 연구가 서혁민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생 이상을 좇아왔지만 그는 이상이 아니라 서혁민이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대접받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인사동에서 이상에 관한 책을 수집하던 그는 이상의 미발표 시 소설을 가지고 있다는 일본인 와타나베의 말을 듣고 일본으로 향하지만, 와타나베는 그에게 자신은 이상의 원고들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평생 천재로 산 이상이 그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얘기였기 때문에, 이상의 문학세계를 지키기 위해 이를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처음에 분노하던 서혁민은 와타나베의 말이 옳음을 깨닫고, 이상이 죽은 동경대학병원에서 음독자살하며, 자신이 쓴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를 남긴다


 세번째 이야기 '새'는 교포 학자 피터 주의 이야기이다. 그는 한국인 부모 아래에서 자라면서 '오감도 시 제2호'를 접하고, 자신의 뿌리를 알기 위해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으로 택한다. 그러나 그는 '출생증명서'가 아닌 '입양신고서'를 가져오라는 공무원의 말에 자신이 한국계가 아니라 사실은 대만 여성의 아들이었다는것을 알게 된다. 그는 한국에 건너와 오감도 연작시의 미발표시의 내용을 추정하는 논문을 발표하지만, 권민희 교수가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를 입수했다며 이를 발표하자 망연자실한다. 이 때 첫번째 이야기에서 등장한 김연화 기자가 피터 주에게 서혁민의 원고를 넘겨준다. 문제는 서혁민의 원고의 시가 가짜 데드마스크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피터 주 스스로 예전 자신의 논문을 뒤엎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를 발표하지만, 이는 오감도에 등장했던 단어들을 빈도수에 따라 끼워맞추기 한 것이란 다른 학자의 지적을 받고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투신 후 3m 떨어진 다른 층 옥상에 떨어진 그는, 권민희 교수 발표의 모순과 자신의 중국 태생을 모두 묻어버리고 한국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이상


III. '진본'과 '위본'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진짜와 가짜의 문제이다. 책 내내 이상의 데드마스크와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의 진위여부가 문제가 된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김연화 기자는 자신이 김연 기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자신이 불륜 상대인 정희를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되뇐다. 두번째 이야기의 서혁민은 그야말로 가짜 이상이다. 그의 삶 자체가 가짜 이상이었다. 세번째 이야기의 피터 주는 한국계가 아니라 중국계이지만 한국계로 살아왔으니 그의 삶도 가짜이다. 이처럼 가짜 삶을 사는사람들을 두고 데드마스크와 시의 진위여부를 다루며,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소 포스트모던적 표현의 과잉이 있는 것 같은 책 말미의 평론을 참고해서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상이 '미친놈의 개수작'이 아니라 천재로 남은 이유는, 50%가 넘는 사람들이 이상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즉 진본과 위본의 경계는 언제나 유동적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진짜일지 가짜일지는 유동적이며, 다수의 의견에 좌우되며, 때로는, 우리가 우리 삶의 진위 여부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연화 기자는 김연 기자로 행동하기를 택했다. 서혁민은 이상의 삶을 좇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침으로써 가짜 이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를 남김으로써 진짜 서혁민이 되었다. 피터 주는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불태움으로써 가짜 한국인이 아닌 진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한편 이는 이상에게도 적용된다. 책에서 이상은 본명인 김해경과 책 속의 인물인 이상이라는 두 개의 인격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상의 미발표작으로 작중에 등장하는 소설 '백병'에서, 작중의 이상은 김해경을 죽인다. 즉 이상은 죽음을 통해 가짜 김해경이 아니라 진짜 이상으로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IV. 맺으며


 고은은 '이상 평전'에서, 나이 들어서까지 이상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상을 평가절하했다. 김연수가 이 책에서 70대의 서혁민을 등장시킨 것은 어느 정도는 이 주장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 것 같다. 고은의 생각에는 현실에 관여하지 않고 '예술을 위한 예술'이니 하며 난해시를 남긴 이상은 '가짜'였던 것이고, 김연수에게는 '진짜'였던 것이다.


 사실 책에 등장하는 진위의 문제를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하나는 데드마스크와 이상의 시 등에서 보이듯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진위여부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 삶의 진위여부이다. 고은과 김연수의 시각 차이는 전자의 것이다. 이와 별개로 이상은 스스로 자신을 진짜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상이 만약 '미친놈'으로 평가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후자이다. 즉 절대적 기준이 업는 시대에 스스로 실존을 성취한 '진짜 나'로서 사는 것이다. 가짜 이상이었지만 스스로 이상을 추구해 일생을 바친 서혁민은 행복하게 눈을 감았지만, 모두 한국인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음을 스스로 알았던 피터 주가 출생서류를 불태우기 전까지 자괴감에 시달렸던 것처럼. 누군가의 모조나 복제일지라도, 아니면 근본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 스스로의 유일한 삶을 살 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진짜'로 살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을 진짜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외박 때 이상 소설 전집이나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그 이상의 소설들이 원본이듯, 꾿빠이 이상도 이상에 관한 또 하나의 원본임을 음미하면서.







덧붙이는 말


작년 10월 중순경에 썼던 독후감. 이상에 관한 책을 읽었다고 쓸 때 이상에 휘둘리기라도 했는지, 지금 읽어보니 서평이 난잡하다. 게다가 이 책, 품절됐다고 한다. 나름 문학상도 받았고, 그 뿐만 아니라 정말 재밌고 대단한데, 이런 책이 품절됐다는 게 우리 출판계의 현주소인 것 같아 많이, 정말 많이 씁쓸하다.


꾿빠이, 이상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1월이 아직 하루 한나절이 남았지만 그 동안 책 한 권을 다 읽을 것 같지는 않으니, 올려 보는 1월에 읽은 책들.

1.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소설)
2. Franz Kafka, 전영애 옮김, 『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소설집)
3. 김훈, 『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소설)
4.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연작소설)
5.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문학동네 (소설집)
6. 이덕무, 권정원 옮김, 『책에 미친 바보』, 미다스북스 (수필집)
7.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소설)
8. Joseph Conrad, 이상옥 옮김, 『암흑의 핵심』, 민음사 (소설)
9. 파울로 코엘료, 공보경 옮김,『아크라 문서』, 문학동네 (소설)
10.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문학과지성사 (소설)

총 10권이니 3일에 한 권씩 읽은 셈이다. 12월에 비해서, 12월에 한 결심에 따라 정말 많이 줄이긴 했다. 그렇다고 독서량을 줄인 만큼 다른 일들을 했다 뭐 이런 것은 전혀 없긴 하지만. 

1.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번 달 읽은 최고의 책은 '채식주의자' 였을 것이다. 그만큼 두 책 모두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밤은 노래한다'의 경우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그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는 거. 그 때 내가 일부러 집중하지 않았나, 아니면 집중했더라도 별 느낌을 못 받았었나, 별 인상을 못 받았던 책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한 줄 한 줄을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2. '채식주의자'는 너무 강렬하다. 내가 읽은 한강의 첫 소설인데 김연수 소설에서 맨날 봤던 '세계의 붕괴'나 '취약성' 이런 것들을 다루고 있는데도,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세계의 붕괴를 무채색이 아니라 강렬한 이미지, 색과 빛과 형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에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3. 이덕무의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정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구나, 그런데 뭐 그 이상의 느낌, 그러니까 그 시대에 돋움새김된 마냥, 도드라진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성리학적 도학자의 느낌이 강하달까. 책을 읽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읽고 나면 그 이상의 경지는 비판적이고 치밀한 사유,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재능 ...^^;;이 없으면 도달할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덕무의 산문들은, 뭐라 해야 할지, 인상적인 내용이 너무 없었다. 과거에는 글을 배우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높은 수준의 활동이었고, 일반적인 글에도 아우라가 있었으니 이런 글들이 전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니면 그냥 내가 아직 학문의 수준이 미천해서 이덕무의 뜻을 못 느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4.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사실 앞부분에 흩뿌린 단서들이 약간 비겁하다는 생각이 드는 반전이긴 했지만, 충분히 재밌고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김영하의 대표작이라는 '검은 꽃'이나 '빛의 제국'도 반드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

5.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모두 재밌었지만, '산책하는 사람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 이상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문학작품인지는 나의 문학적 소양이 일천하여 느끼지 못하였다. 한강의 '몽고 반점'을 읽었을 때는 바로 느낌이 확 왔는데, 끙 ^^ 작년엔 김애란, 올해는 편혜영이 이상문학상을 받았다는데, 그 소설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 올까.

6. 마지막으로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 저번에도 결심했지만 지키지 못한 거. 앞으로도 파울로 코엘료 소설은 안 읽어야겠다.



밤은 노래한다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과지성사








김연수의 1997년작『7번국도』를 읽었다. 13년 뒤에 다시 쓴『7번국도 Revisited』와는 비슷한데도 다른 느낌이었는데, 시간에 쫓기듯이, 그리고 익숙해서 막 넘기면서 읽느라 제대로 못 느낀 것 같다.

7번국도 Revisited의 메인 주제는 기억과 망각이었던 것 같은데, 7번국도의 주제는 그에 분노와, 더욱더 진해진(진했었던) 허무함이 더해져 있는 것 같다. 마치 요즘 일베 글들같이 (용법은 다르지만) '민주화'라는 단어가 이탤릭체로 강조되어서 조롱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데, 민주화 이후 우리 세대가 놓인, 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이기까지 했던 희망찬 미래상을 상실한 상황, 그렇지만 윗 세대는 그런 절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을 풍자한 듯하다. 낙원은 가짜 낙원이고, 우리를 대신할 놈들은 세상에널려 있다. 아버지 세대들이 만든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일 뿐이고, 우리에겐 다른 맥락과 방법이 있다. Revisited에서는 없어진 자주 등장하는 성 묘사나, '나' 또는 재현의 어두운 뒷이야기들도 그렇고, 그 외에도... 일단 다시 읽어봐야지. 

어쨌든 나에겐 Revisited 버젼이 마음에 드는데, 거의 40이 된 작가가 그나마 좀 더 원숙한 눈길로 청춘을 바라보고 있어서, 청춘의 짧음과 불완전함, 절망이 덜 드러나는 것 같고, 조금은 더 친절하고 따뜻한 눈길로 청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 책에서 말하듯이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나도 눈부셔서, 그 때의 일들은 나이 자체가 발하는 광채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스무 살을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스무 살은 더 먹고 뒤돌아 봐야 하는 걸까.

그리고 갑자기 몇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1. 김연수 작가도 어쨌든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비교적 어린 시절에는 지금보다는 미적으로나 뭐 조금 불완전한 문장들을 구사했다는 것이 김연수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레 생겼던 약간의 열등감 같은 게 아주 약간 해소되었다는 것. 2. 그리고 너무 급하게 소설을 읽고 나서 드는 찜찜한 같은 걸 느끼면서, 아무래도 교양서가 아니라 소설이야말로 여유 시간이 많이 남고 넉넉할 때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3. 아무래도 이제 잠시 현대 소설 읽기를 쉴 때가 된 것 같으니 이미 대출한 것들만 읽고 잠시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 마지막으로 4. 인생에 마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것. 이제 겨울인데 또 한 번의 겨울 마법이 오려나.

소설을 한 번 읽고 그 소설의 다른 버젼까지 읽었지만, 나는 아직 희망은 기억에 있는 지, 망각에 있는 지 모르겠다. 기억들을 학살하는 망각에 맞서는 것이 희망인지, 아니면 모든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후 나의 과거에 평화가 찾아오게 하는 것이 희망일지. 희망이란 둘 다에 있을 지도 모르고, 둘 중 어디에도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다음 휴무 때 다른 생각일랑 안 하고 천천히 읽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난 찜찜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다. 그리고 정기휴가는 웬지 3월인 것 같으니 나도 자전거여행!이나 가볼까.

마지막으로 7번국도에는 있는데 Revisited에는 없었던 것 같은 인상적이었던 구절.

결국 우리는 누구도 영원히 기억할 수는 없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은, 그러니까 영원히 기억할 수 없는 그 사람을 별들의 무리 속으로 보내어 그 별들의 무리 안에서 우리가 영원히 기억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게 만들려는 생각의 소산일 것이다. - 196p


7번국도 Revisited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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